[이슈점검] 사드가 쏘아올린 작은 공, 실탄인가 공포탄인가

기획기사 | 이현수, 정필권 기자 | 댓글: 102개 |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인한 중국의 통상 압력(일명, 한한령(限韓令))이 게임업체까지 영향을 미쳤다.

중국이 한국 게임의 신규 판호 불출을 금지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판호제((版號制)는 중국에서 게임, 영상, 출판물 등 문화 콘텐츠 출시를 허가하는 절차다.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国家新闻出版广电总局, 이하 광전총국)에서 지역별로 관리하고 있다.

다만, 공문이 하달되지는 않았다. 광전총국이 외교적, 국가적 관례에 따라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드라마, 영화 제재 때와 똑같은 모습이다. 공문으로 하달된 상황이 아니므로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실제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 단계에서 무산된 사례가 보고됐다. 광전총국이 개입했는지, 아니면 퍼블리셔가 현재 한중관계를 보고 예단했는지는 모른다.

중국은 거대한 게임 소비국이다. 그러므로 중국 시장에서 배척당할 경우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중국과 파트너십이 있는 업체, 중국계 기업, 중국 진출을 앞둔 기업들은 이를 인지하고 예의하고 있으며 사태 파악 및 향후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 한국 게임의 중국 수출 규모,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국내 게임산업의 중국 수출 규모는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이번 금지 조치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될까?

2016 게임백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내 게임의 주요 수출국별 비중에서 '중화권 (중국, 홍콩, 대만 3국 통합. 2015년 기준)'이 차지하는 비중은 32.9%로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북미와 동남아, 유럽 등과 비교하면 약 세 배의 수치다.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이 주를 이루고 있고, 수출 비중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총 수출액은 32억 1,463만 달러(한화 3조 6,373억 원)로 집계된 상태. 계산해보면 10억 5,761만 달러(한화 1조 1,966억 원)·원이 국내 게임이 차지하고 있는 중국 게임 시장의 규모로 추정할 수 있다. 2015년 국내 게임 시장의 규모가 10조 7,223억 원이었으니, 국내 시장 규모의 10% 정도와 비슷한 셈이다.



▲ 국내 게임산업의 수출 현황. (2016 대한민국 게임백서 총론, 8페이지)

여기에 중국 게임 시장 수출액에서 개별 게임들의 수출액을 감안해보자. 넥슨의 2015년 매출액은 약 1조 8천억 원. 이 중 40%(약 7,200억 원)는 '던전앤파이터'를 중심에 둔 중국 게임 시장에서 발생한다. 지난해 12월 '5억 불 수출의 탑'을 문화 콘텐츠 업계 최초로 수상했던 스마일게이트도 마찬가지다. 매출의 90% 이상이 중국 시장에 기반을 둔 '크로스파이어'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외에도 웹젠의 '뮤오리진'이나 엠게임의 '열혈강호 온라인'이 중국 시장에서 대부분의 해외 매출을 거두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이와 같은 현황으로 작금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중국 게임 시장의 수출액은 몇 개의 게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수출액 대부분이 해당 게임들에서 나오고 있음을 익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게임 만이 아니라 '문화 콘텐츠' 자체에 대한 규제 - 드라마의 사례로 비추어보는 판호 금지

게임에 대한 판호 금지 조치가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상태지만, 지금의 상황은 게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사드 보복조치로 '한류 전면 금지령(한한령)'이 대두하기 시작했고, 현지 온라인매체들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 등의 방송이 금지된다'는 소식을 보도한 바 있다.

한한령이 단순한 루머에 그쳤다면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한국 방송 콘텐츠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 실제로 적용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중국 동영상 사이트인 유큐와 큐큐 등에서는 '런닝맨',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최신 콘텐츠를 찾아볼 수 없게 됐고, 몇몇 포털에서는 방영 중인 드라마가 사라지는 일도 발생했다.

2016년 8월에는 배우 유인나가 주인공으로 2/3 정도 촬영을 마친 드라마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하차 통보를 받았으며 사전 제작 드라마 '화랑'은 중국 LeTV와 동시 방영 계약을 체결했음에도 예고 없이 방영되지 않았다.

또한, 조수미, 백건우의 중국 공연이 취소된 데 이어 지난 2월 8일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지영의 상하이발레단 공연이 취소됐다.




중국 정부는 한한령을 공식문서로 발표하거나 인정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관계자의 입을 통해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또는 '내부 문건이 있는 것은 들었지만, 구체적인 통지는 받지 못했다'는 입장만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콘텐츠가 사라지는 상황을 경험하게 됐고, '공식 발표는 없었어도 한한령이 내려왔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예상을 해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한한령의 적용 사례는 비단 방송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번의 게임 판호 금지 조치도 방송 콘텐츠 한한령의 연장 선상에 있는 문제다. 그리고 방송 콘텐츠의 적용사례를 비추어 봤을 때,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로 전방위 시행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정부의 공식 입장은 없었다'는 것부터 신규 콘텐츠에만 적용된다는 점까지 일련의 과정이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그렇기에 게임 판호 금지 조치 또한 방송 콘텐츠 한한령의 사례를 따라갈 것으로 예상한다.

한한령이 언급되었던 시점부터 시행까지의 기간은 약 3개월. 어쩌면 해당 조치는 이미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방송 콘텐츠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단기적으로야 큰 영향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가져올지는 짐작할 수 없는 상태다.



■ 사드가 쏘아올린 판호, 공포탄일까 실탄일까?

공식 문건이 없었으니 이제 남은 문제는 한한령의 진위 확인이 아니라 그것에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것인가다. 한한령은 정치, 외교, 안보, 경제가 종합적으로 맞물린 일이니 정부 차원에서 매우 치밀하고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정부는 한한령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 역시 한한령을 공식 문건화 하지 않은 이유는 국제간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판단일 것이다.

주무부서인 문체부는 정확한 파악이 필요하다면서도 FTA나 WTO 쪽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지만, 대중국 외교, 안보, 경제 문제의 우선 순위를 고려할 때 한한령의 문제가 최우선 선결 과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콘텐츠 업계가 자구책을 마련하고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준비해야 한다.

우선, 게임산업협회도 협회 차원에서 게임업체에 피해가 실질적으로 있는지 전수 조사가 들어가야 한다. 대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실제 피해사례가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당사자인 업계는 공포감에 떨고 있다. 신규 계약은 물론이고, 기존 계약도 취소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떨고 있다. 중국 보아오 포럼에서 한국의 산업부장관 초청도 일방 취소했는데 게임 판호라고 못하겠느냐는 불안감이다.

주가도 동요하고 있다. 소식이 들려온 6일 종가 기준으로 웹젠(-4.82%), 게임빌(-3.80%), 위메이드(-3.77%), 컴투스(-3.14%)가 하락했다. 게임 관련 주 평균 등락률은 -1.04%였다. 특히 위메이드는 7일 장중 2만 4,000원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전일 종가는 2만 8,050원이었다.



▲ 중국판 다보스 포럼인 보아오 포럼에서 한국 산업부장관은 초청 취소 통보를 받았다.

다만, 기존에 판호를 발급받아 직접 서비스나 파트너사를 통한 서비스를 하는 업체들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광전총국의 심사를 통과한 만큼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판호가 취소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중국 지사를 두고 있는 게임빌은 "아직 명확히 무엇인가 진행된 상황이 아니므로 예의 주시 중이다"라고 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큰 수익을 올리고 있는 위메이드는 "신규 IP가 없고, 이미 서비스 중인 게임이라 크게 영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현지화가 아닌 '중국形'을 내세우던 넷마블게임즈는 "리니지2 레볼루션 판호는 이미 텐센트社가 신청했고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서비스는 직접 서비스보다는 합작 법인이나 현지 파트너사를 통해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향후 국내 개발사는 IP 사업을 전개하거나 혹은 중국 내 파트너사 등을 통해 게임을 개발, 유통하는 방법으로 선회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산 IP를 활용해 게임을 제작한다면 국외 법인의 자회사 스튜디오 개념이 아닌 이상 외주 개발 형식으로 계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향후 재산권 행사에 대한 제한이 있을 것으로도 예상된다. 아직 IP 활용 게임에 대한 사례가 보고되지는 않았지만, 일유망(一遊網)에 따르면 합작 회사든, IP를 가지고 중국 파트너사가 제작한 게임이든 '한국계' 게임은 모두 심사에서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 하지만, 신둥과 샨다는 한국 IP인 라그나로크와 드래곤네스트로 심사 받았다.

한국 게임의 진입이 원칙적으로 막힘으로써 카피캣 게임의 범람도 예상할 수 있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의 경우 중국 내 파트너사와 스킨쉽이 어려우므로 이를 악용하여, '찍어낸' 게임이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이미 한국보다 기술, 인력이 월등한 상황에서 똑같은 게임을 만들어 내는 건 '일도 아니다'라는 사례를 자주 보여줬던 중국이다.

아주 긍정적으로 현 상황을 바라보면 신흥 시장인 인도, 동남아시아, 남미로 눈을 돌릴 기회일 수도 있다. 중국에서 크게 성공한 게임이 있었는가 생각해보면 몇몇 대기업을 제외한 업계의 회사들에는 과도하게 장밋빛으로 포장된 환상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한한령은 명분상으로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경고이자 위협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국 문화 기업 보호와 사실상 수입규제 조치다.

케이프투자증권에 따르면 광전총국은 2016년 총 3천851종의 판호를 내줬는데, 이중 외산 판호는 228종이고, 한국 게임은 13종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공포심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현재로써는 외산 게임에 대한 전반적인 차별인지 사드로 인한 한국 게임 차별인지 면밀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또한, 최근 계약 과정에서 계약이 취소되는 경우에 대해 사드의 영향인지, 중국 자국 게임 보호 강화 인지는 더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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