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조日記①] 차이나조이, 첫 탐방 취재는 '실패'였습니다

기획기사 | 정필권 기자 | 댓글: 20개 |



상해에서 반드시 들려볼 만한 '신기한 장소'를 찾는다면? 게임에 관심 있는 누군가는 VR 아케이드를 추천할 가능성이 있다. 상해에 도착한 뒤 지하철에서 VR을 착용한 공익 광고가 나올 정도로 여기저기 VR 관련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다. 구체적인 사정은 어떨지 몰라도 산업적으로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그래서 매년 차이나조이 기간에는 VR 아케이드 탐방을 하곤 했는데, 국내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에 큰 인상을 받곤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도착한 차이나조이에서 취재 첫날, 독특한 VR 아케이드방을 찾아보려는 계획을 세웠다. 큰 규모를 자랑하거나, 사업적으로 지점을 많이 늘렸거나. 중국의 시장을 점쳐볼 수 있는 지표를 살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취재는 '실패'로 끝났다. 그것도 아주 대차고 파란만장하게 말이다. 차이나조이의 본격적인 취재 첫날, 하루간 겪었던 취재 실패기를 적어보려 한다.


■ 발단 - "큰 기대에는 큰 실망이 따르는 법이지"

일단 첫 목적지는 퀴바오 쇼핑플라자(Quibao Shopping Plaza) 4층에 있는 '패미쿠 VR 파크(Famiku VR Park)'. 여기를 첫 목적지로 낙점한 이유는 아주 명료했다. 상해 쇼핑센터 최고층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넓은 매장 규모(2,314㎡)를 자랑하는 크기. 그리고 30종이 넘는 다양한 VR 게임들. 증강현실(MR)과 아케이드를 결합한 'MRCADE'를 표방하는 매장.

장비도 꽤 본격적이었다. 게임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카메라를 통한 모션 트래킹은 물론이고 HMD와 헤드폰, 양손에 마커까지 장착한 섬세함, 그리고 백팩형 컴퓨터 유닛까지. 장비에도 많은 공을 들였음은 분명했다. 내심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상해 VR의 진면목이구나'하는 생각까지 했다. 규모가 엄청났을뿐더러, 장비까지 완벽했으니까. 그야말로 괜찮은 체험기가 나오겠구나 싶었다.



▲ 본격적인 장비. 넓은 매장 규모. 매력적인 탐방 소재였다.

문제는 가는 길이 너무나도 멀었다는 점. 난생처음 중국 지하철을 타봤고, 지도상의 거리감을 일축해버리는 중국의 규모에 몸이 눈물을 흘렸다. 지도상으로는 분명 두 블럭 거리였을 터인데, 왜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걸어야 했는지. 이놈의 날씨는 왜 40도를 넘어가는 것인지. 적응되기 전까지 기묘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역에서 성인 남성의 도보로 약 30분여. 드디어 목표였던 퀴바오 쇼핑플라자에 도착했다. 시원한 공기를 폐부에 한껏 집어넣고 4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옆에서 윤홍만 기자는 "헤헤 공포게임 하시는 거 영상으로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복종의 표시 한 번 더 찍으셔야죠"하는 대사까지 날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만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그리고 도착한 4층은...



▲ 쇼핑몰 앞에서 이걸 보는 순간, 너무나 기뻤다. 그만 걸어도 됐으니까.



▲ 뭐여 이거...

기대감과는 반대로, 매장이 망해버린 상황. 심지어 공사 잔해가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철거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내려가서 직원들한테 물어보니 얼마 전에 철거했다는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확실하게 매장이 '망'해버린 상황. 탐방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슬픔과 더불어, 아무런 수확 없이 그 먼 길을 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앞섰다. 그저 덩그러니 폐허가 된 흔적을 바라보고, 망연자실할 따름이었다.



▲ 실화냐... 실화냐고...!



■ 전개 - "신기한 곳, 신기한 상황"


일단 체감온도 49도의 더위를 뚫고 지하철으로 들어와서 플랜B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기사 내용의 풍성함을 위해 찾아뒀던 두 번째 목적지가 있었다. 바로 'Wasai VR' 이었다. 매장의 규모도 작은 편이고, 매장의 위치도 애매한 곳에 있는 매장.

하지만 프랜차이즈 성공 면에서는 큰 점수를 줄 수 있는 업체였다. 상해 인근의 매장 수만 20여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다양한 자체 HMD를 제작하여 프랜차이즈화한 업체로 평가받는 곳이었다.



▲ 자체 HMD를 생산한다고 해서 관심을 뒀었다.

그래서 지하철을 이용해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지점, '티엔즈팡 (Tianzifang)'을 찾았다. 나중에 복귀하고 나서야 안 사실이지만, 중국의 인사동 같은 느낌의 장소라고 불리는 곳. 이런 사실을 모르고 도착한 티엔즈팡은 그저 낯선 곳일 뿐이었다. '여기에 VR방이 있다고?' 하는 물음이 들 정도로.

그럴만 한 것이. 일단, 여기가 미로와 같은 구조에다, 가게들이 좁고 많은 골목을 꽉 메우고 있는 형태다. 구체적인 지도는 없고 그저 그림으로 그려놓은 약도뿐. 심지어 입구는 많고 사방팔방 뻗어있었다. 관광객을 상대로 성업 중인 이 공간에 VR방이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기 어려워 보였다.






▲ 대충 이런 느낌. VR 방이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한다.

방향치는 아니지만, 이리저리 뻗어있는 골목 탓에 고생을 좀 많이 했다. 거기다 덥지 말라고 위에서 스프링쿨러로 물까지 뿜어대는 상황. 거리는 금세 뿌연 안개로 뒤덮였고 기자들의 방향 감각은 혼선을 일으켰다. 어찌어찌 274라인을 찾았어도 문제. 거리 곳곳에 있는 호수를 보고 24호를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 널 찾을 것이다. 찾아서 취재를 할 것이다.



▲ 필권아 또 속냐!

속으로 천불이 났다. 이쯤 되면 운명의 장난이다. 아까 전은 유동 인구가 적어서 매장 규모를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면, 여기는 규모도 작고 유동 인구도 매우 많다. 하지만 매장이 사라져버렸다. 기자 둘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티엔즈팡 거리를 30분여 구석구석 뒤지기 시작했다.

"으아니 지도에는 나와 있는데 왜 없냐고오!", "어디 잘못 본 거 아닐까. 골목 다 뒤져보자" 등등.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했으나, 우리를 기다리는 건 절규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관광객들과 아이스크림 가게 아주머니의 측은한 시선뿐이었다.



■ 절정 - "진호형. 이제 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두 번째 실패. 이제는 가게가 망해서 짜증 난다는 느낌보다 기사를 낼 수 없을 것이란 불안감에 휩싸였다. 취재 첫날인데, 신기한 탐방기를 내보내겠다는 자신감은 이제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포기하면 안 된다. 마지막 최후의 보루로 와사이의 또 다른 지점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것도 주변이 아닌 저 멀리 위쪽에 있는 지점으로, 제발 살아남아 있으라는 희망을 걸면서.

다행히도 이름으로 검색을 했을 때, 바로 결과물이 노출됐다. 그래 이 정도면 믿을만하지. 근처에 역이 없어서 체감온도 49도를 뚫고 30분을 걸어야 했지만, 상관없었다. 검색을 해보니 여기서 최근에 인터뷰도 진행한 결과물이 나왔다. 종업원도 영어가 되는 모양이었다. 뭐라도 건질 수 있다는 희망에 차있었고 오늘 내로 기사를 완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샘솟기 시작했다.



▲ 검색하면 바로 나온다. 좋다 좋아.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우연이 세 번 반복되면 운명이라고. 운명이 우릴 버린 게 분명했다. 여기도 망해버리고 묘한 잡화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운영했다고 다 믿을만한 게 아니었다. 이쯤에서 기자들의 멘탈은 상해의 햇볕 아래 승천을 해버렸고, 허탈감에 사진조차 찍지 못했다. 그저 우리에겐 마시다 만 뜨거워진 콜라 한 병과 피사체를 찾지 못해 무용지물이 된 짐벌 하나만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 야. 집에 가자. 덥다.



■ 결말 - "그들은 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을까?"

체감온도 49도.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지하철 이동 거리로는 상해 한 바퀴(약 2시간 반), 도보 거리로 약 20~30Km를 걷는 고생을 했지만, 생각해보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얼마 전까지 성업하고 있던 이들이 사라진 이유를 고민하는 것에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VR의 대중화가 중국에서 시작되리란 예측도 의미가 있을 테지만, 반대로 최근 사라지는 매장들에 대한 실패 요인을 분석해도 가치가 있을 듯싶다. 실제로 오늘 방문했던 업체들은 최근까지 영업을 해왔다. 누군가는 최대 매장 규모와 콘텐츠의 질로, 누군가는 자체 생산과 접근성으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모든 매장이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고, 사업을 접은 데에 다양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각 매장이 사라진 이유를 사전에 인지하고 막을 수 있다면? 국내에서도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한 VR 시장에 반면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허탈한 결과만 남았던 탐방이었으나, 그런 면에서는 수확이 있었던 가치 있는 실패였다고 정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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