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황금기 쿨타임 끝! AMD, 모바일 프로세서로 또 한 번 날아오를까

기획기사 | 백승철 기자 |



이제는 세월이 좀 지났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인데 나는 PC 하드웨어에 관심도, 지식도 전무했었다. 소싯적 게임으로 이름 좀 날려서 평소에 시스템 및 게이밍 주변기기에 관심이 많은 동료나, 영상 및 그래픽과 관련된 일을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어 기본 지식이 있는 기자나, 그냥 태생부터 하드웨어와 친숙할 수밖에 없는 하드웨어 지식 금수저 후배까지. 이들 앞에서 유튜버 하려다가 PC 시장에 좀 관심이 생겨서 이 일을 하게되었다곤 죽어도 말 못 하겠더라.

평소 컴퓨터를 잘 알던 친구에게 "나 가게 처분할 돈 미리 당겨서 방송용 컴퓨터 맞출 거야"라며 물어보며 눈팅을 하던 2019년,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i9 프로세서도, RTX 2080Ti도 아니었다. 알리스타를 플레이하는 해외 유튜버의 리그오브레전드 플레이 영상이었는데, 당시 40만 원도 하지 않는 저렴한 구성에 무엇보다 그래픽카드가 없는 컴퓨터로 부드러운 게임이 가능하나 싶을 정도로 신기했다. 게임할 때 그래픽카드 필요하다며?

해당 CPU는 AMD 라이젠 3 2200G라는 데스크톱용 APU였는데, 그 매력에 빠져 가족과 지인, 친구들에게 2200G 구성 PC를 10대 정도는 마련해 준 것 같다. 내가 처음 AMD를 알게 된 순간이기도, PC 하드웨어에 조금씩 관심이 생기게 된 순간이기도 해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 APU 하나로 쾌적하게 롤이 되다니! 그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 2019년 여름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 때 당시 가성비 PC는 딱 이런 느낌.




AMD(Advanced Micro Devices)의 시작은 1960년대 말이었지만 우리, 그러니까 게이머들에게 친숙해진 시점은 2017년 AMD 라이젠(RYZEN) 시리즈를 발표한 직후다. 하드웨어 팬들 입장에서는 2000년대 초반의 팔로미노가 더 의미 있다 할 수 있겠지만, 게이머들에겐 생소할 수 있는 제품일 테니. AMD는 이듬해인 2018년 APU 라인업인 레이븐 릿지 시리즈를 선보였으며 데스크톱용 라이젠 2세대 CPU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국내 게이머들로부터 언급되기 시작했다. 출시 직후보다는 이후의 소비자 친화적인 가격정책으로 인해 게이머들 사이에서 가성비의 제품이라는 입소문이 났다.

그리고 2019년, ZEN 2 아키텍처 공개를 통해 꽃을 피웠다. 라이젠 3세대를 발표한 당시 '컴퓨텍스 2019(COMPUTEX)'는 AMD의 축제라고 할 만큼 신제품의 성능을 비롯한 발표 현장의 분위기, 관람객들의 반응, 시연 현장까지 모두가 완벽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AMD와 게이머의 인연은 CPU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AMD에서는 라데온(Radeon) 그래픽카드를 취급하고 있는데, 여전히 훌륭한 가성비를 자랑하고 있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역시 게이머를 위해 출시된 RX 시리즈 중 2017년 출시된 RX 570과 RX 580이라 생각한다. 경쟁 제품 대비 압도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충분한 성능을 발휘하여 가성비 PC를 희망하는 게이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제품이다. 지금은 세월이 지나 구하기가 어렵지만 여전히 현역인 그래픽카드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2200G. 해당 제품이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당시에 그래픽카드 없이도 우리나라 게이머들에게 익숙한 온라인 게임들을 큰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저가형 PC의 경우, 그래픽카드가 예산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데 가정집 PC 예산을 크게 줄이는 데에 기여했다는 뜻이다.



▲ 지금은 저가형도 몇 십만 원이지만, 몇 년 전만해도 RX 570 혹은 580이라는 차선택이 있었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왜 하냐고? 하드웨어 시장에 2200G가 불러온 그 격변 비슷한 것이 조만간 일어날 징조가 보였기 때문이다. 2019년 그 이후로 PC 하드웨어 시장은 좀 고착화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그 고요함을 깨트릴 무언가가 말이다.

요즘은 신제품이 나오면 기존 제품 대비 물리적으로 어떤 점이 업그레이드되었고 성능이 몇 프로 증가했으며 특정 게임을 더 쾌적하게 할 수 있다 정도이다. 물론 하드웨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입장에서야 주목할 만한 포인트가 많았지만,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크게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 없었다는 점이 계속 아쉬웠었다.

내 기준에서 가장 관심이 컸던 부분은 "노트북으로 언제 어디서나 게임이 가능할까?"였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언제, 어디서나이다. 이제는 글로벌 노트북 제조사라 하면 어지간한 플래그십 컴퓨터 성능 뺨치는 수준의 제품들은 한두 개씩 갖고 있는 세상이지만, 제아무리 가벼워도 2kg 정도 넘어가는 노트북으로 어디서나 들고 다니며 게임을 즐기긴 어렵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다르게 노트북은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다. 휴대용 컴퓨터, 말 그대로 들고 다닐 수 있을 수준의 부담 없는 무게와 두께도 스펙인 분야다. 일반적으로 다른 분야에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상위 호환의 제품이 존재하는 편이지만, 노트북 시장에는 그런 게 잘 없다. 흑백으로 구분하면 성능은 비교적 아쉽지만 휴대성이 좋거나, AAA 급 게임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사양이 빵빵하지만 어디에나 들고 다니긴 다소 부담스러운 무게를 자랑하는 제품뿐이다. 혹은 그 밸런스를 정말 조화롭게 이루었거나. 아무리 가격이 비싸도 어떤 자리에나 들고 갈 정도로 가볍고, 누구나 만족을 느낄 만큼의 빵빵한 성능을 자랑하는 노트북은 아직 없다.



▲ 가볍고 성능 좋고 그만한 가격까지 갖춘 노트북은 잘 없다. 가끔은 이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이 탄생하기도 하지만..



▲ 이제는 경량을 넘어 초박형 노트북의 시대! 라이젠 7 7840HS가 탑재된 '레노버 IdeaPad 5 Pro'

사실 이 시장에서 기대했던 것은 노트북 외장그래픽 부문이었다. 개인적으로 메인스트림형 경량 노트북에 탑재되는 지포스 MX 시리즈에 많은 기대를 걸었었다. 물리적으로 CPU와 VGA가 분리되어 있으면 노트북 발열 해소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MX450 이전으로 유의미한 성장을 보여줬기에 계속해서 주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에서는 이 정도의 게임은 된다!"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체감할 순 없어 아쉬웠다.

자연스레 눈길은 AMD 쪽으로 돌아갔다. 꾸준히 유의미한 성능 개선을 보여주고 있는 AMD의 APU 라인업은 이번 7000시리즈를 통해 다시금 황금기를 누릴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졌다. AMD 라이젠 모바일 프로세서 라인업은 멘도시노, 바르셀로-R, 렘브란트-R, 피닉스 그리고 드래곤 레인지라는 명칭이 붙어있다.



▲ 올해 개최된 'CES 2023'에서 공개된 라이젠 7000시리즈 모바일 프로세서 사양 표

7020 시리즈에 해당되는 '멘도시노(Mendocino)'는 사무용 노트북을 위한 저전력 모바일 프로세서(U시리즈)이다. 성능 및 라인업 순서대로 애슬론 실버 7120U, 애슬론 골드 7220U, 라이젠 3 7320U, 라이젠 5 7520U로 구성되어 있으며, 저전력 프로세서답게 높은 배터리 수명이 특징이다. Zen 2 아키텍처를 채택했으며 최대 4코어 8스레드로 사무용으로서 부족함 없는 성능과 6nm 공정을 통해 슬림형(초박형) 노트북을 가능케하는 물리적 구조를 구현한 제품이다.

7030 시리즈의 '바르셀로-R(Barcelo-R)'은 그 어떤 작업과도 잘 어울리는 균형잡인 저전력 모바일 프로세서(U시리즈)이다. 해당 시리즈는 성능 순으로 라이젠 3 7330U, 라이젠 5 7530U, 라이젠 7 7730U로 구성되어 있으며 7nm 공정의 Zen 3 아키텍처를 채택했다. 가장 높은 성능의 라이젠 7 7730U의 경우, 라데온 680M 내장그래픽을 탑재하여 무거운 작업 혹은 고사양 게임도 무리 없이 구동할 수 있다.

7035 시리즈인 '렘브란트-R(Rembrandt-R)'은 저전력 모델(U시리즈)과 고성능 모델(H시리즈)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저전력 모델의 경우 라이젠 3 7335U, 라이젠 5 7535U, 라이젠 7 7735U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성능 모델은 라이젠 5 7535H와 라이젠 7 7735H로 구성되어 있다. 렘브란트-R은 6nm 공정의 Zen 3+ 아키텍처를 채택하여 얇고 가벼운 노트북을 구현케하는 물리적 조건에 훌륭한 성능을 지원하는 모바일 프로세서다. 개인적으로 해당 라인업의 U시리즈를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7040 시리즈인 '피닉스(Phoenix)'는 전력 소비량과 성능의 균형을 맞춘 모델(HS시리즈)로, 라이젠 7 7640HS, 라이젠 7 7840HS, 라이젠 9 7940HS로 구성되어 있다. 5nm 공정의 최신 Zen 4 아키텍처 기반 모바일 프로세서로 고사양 게임은 물론 4K 환경의 스트리밍도 가능할 정도로 높은 성능을 자랑한다. 특히 7840HS와 7940HS의 경우, 8코어 16스레드에 라데온 780M 그래픽을 탑재하고 있다.

이름부터 뭔가 느낌이 오는 7045 시리즈, '드래곤 레인지(Dragon Range)'는 고성능 오버클럭 모델(HX시리즈)로, 라이젠 5 7645HX, 라이젠 7 7745HX, 라이젠 9 7845HX, 라이젠 9 7945HX이 포함되어 있다. 최신 Zen 4 아키텍처를 채택하여 게임과 스트리밍, 그리고 녹화를 동시에 진행해도 무방한 전문가급의 성능을 갖추고 있다.



▲ 덕분에 무거웠던 제품들은 좀 더 가볍게, 가벼웠던 제품들은 더욱 가벼워질 수 있었다!



▲ 드래곤 레인지 라인업의 게임 성능. 모바일 프로세서가 벌써 이만큼이나 왔다.

올해 초부터 노트북을 서칭하기가 정말 어려워졌다. AMD 7000시리즈 모바일 프로세서가 출시하기 직전까지는 얇고 가벼우면 대부분 내장 그래픽, 갯벌에 진주만큼이나 외장 그래픽 모델이 있긴 했으나 다른 방면으로 아쉬운 모델들이 많았으니까. "이 정도 성능은 내야지"라며 노트북의 크기와 무게를 보면 뒤로 가기가 저절로 눌리는 것은 함정. 하지만 AMD 7000시리즈가 출시된 직후부터, 내 취향에 딱 맞는 얇고 가벼운 노트북을 모니터링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이미 다양한 글로벌 제조사들에서도 AMD 7000시리즈가 탑재된 노트북을 출시하고 있다. 국내 기업 LG를 필두로 에이수스(ASUS), 에이서(ACER), 델(DELL), 레노버(LENOVO), HP, MSI 등 비즈니스 노트북을 비롯하여 게이머와 고사양의 환경이 필요한 전문가도 사용할 정도의 고성능 제품까지 모두 최신 AMD 모바일 프로세서가 탑재된 모델을 취급하고 있다.

데스크톱용 APU를 시작으로 RX 500시리즈 GPU, 라이젠 3세대와 4세대 데스크톱용 CPU까지. AMD가 유독 돋보였던 2010년 후반의 황금기 시절도, 그 이후에도 지금까지 AMD 모바일 프로세서는 호평을 받았으나 주인공이 되진 못했던 것 같다. 다른 제품들이 눈에 띄게 빛났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이번 AMD의 모바일 프로세서 7000시리즈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얇고 가볍고 성능 좋은 노트북이라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니콘과 같았던 그 존재를 구현해낸 것으로만 해도 주인공이 되기 부족하지 않다. AMD는 이번 모바일 프로세서를 통해 다시 한번 독보적인 성적을 이뤄낼 수 있을까? 앞으로의 AMD 모바일 프로세서의 귀추가 더욱더 주목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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