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벤큐 조위, 이제는 마케팅 다각화를 꾀할 때다

기획기사 | 이형민 기자 |



"총게임 하려면 벤큐존에 앉아야해"

15년 지기 깐부 녀석과 술 한잔 걸치고 추억도 곱씹을 겸 찾은 PC방. FPS류 게임에서 나름 방귀 좀 뀌어 본 경력이 있는 녀석인지라 좌석부터 가리더라. '벤큐존'이 만석이라 하는 수없이 바로 옆 PC방을 들렀다. 두 번째 들른 곳에는 다행히 벤큐존에 앉을 수 있었다.

벤큐는 국내 마케팅의 일환으로 PC방 마케팅을 선택했다. 14년부터 시작된 벤큐의 PC방 마케팅은 게이머의 성지인 PC방과 상생 전략을 택해 1년 만에 200호점을 돌파했다. 성장세는 그칠 줄 몰라 이듬해 700호점, 이후 급격히 점유율을 늘려 2020년에는 3000호점을 돌파하며, 동네 PC방 어디에서나 벤큐존을 쉽게 찾을 수 있게됐다.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년 기준 대한민국 PC방 점포 수는 9,970개로 집계됐다. 따라서 벤큐는 당해 국내 PC방 중 약 30%에 뿌리를 내리게 된 셈이다. 업주들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반영된다는 이유에서 좀처럼 진출하기 힘든 PC방 시장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건 벤큐의 국내 마케팅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성공 원인은 벤큐 모니터의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국내 PC 인기 게임의 격변에서 비롯됐다. 벤큐 XL 모니터는 높은 주사율과 빠른 반응 속도로 출시 초기 프로게이머 및 상위 유저들에게 각광받았다. 특히, XL 시리즈 초기 모델인 'XL2411z'의 출시 시기는 2014년 상반기로 벤큐존 초창기의 첫 모델이었다. 이후 24.5, 27인치 모델을 선보여 국내 PC방에 빠르게 도입했다.




벤큐 모니터의 폭발적인 수요는 오버워치 1의 등장부터였다. 블리자드의 첫 FPS 게임인 오버워치는 국내에 광풍을 몰고 왔으며, PC방들의 전체적인 사양 업그레이드와 고주사율 모니터가 집중됐다. 이때부터 '144Hz'라는 주사율은 게이밍 모니터의 표준이 되었으며, 모니터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며 144Hz 모니터가 우후죽순 쏟아졌다.

오버워치는 캐릭터 이동 속도가 빠르고, 돌진 및 점멸 스킬이 대거 포함된 하이퍼 FPS 장르로 고주사율 모니터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벤큐 모니터는 144Hz 외에도 1ms GtG 응답 속도, MBR(Motion Blur Reduction)과 같은 잔상 제거 기술로 같은 주사율의 모니터 중에서도 평이 좋아 사실 상 시장을 꽉 잡고 있는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오버워치 하락세가 시작될 때쯤, 국내를 강타한 슈팅 게임이 하나 더 출시됐다. 3인칭 배틀로얄 배틀그라운드는 출시 13주 만에 누적 매출 1억 달러를 돌파했으며, 역대 가장 많이 팔린 PC 게임 1위로 꼽힐 정도로 국내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왔다. 초창기에는 최적화가 완전히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어서, 배틀그라운드의 등장은 PC방 사양 업그레이드를 반강제 했다.

시간이 지나며, 1000번대 미만 그래픽 카드를 가진 PC방이 하나 둘 업그레이드를 진행하고, 배틀그라운드 역시 최적화가 이루어져 144 프레임은 물론이고 240 프레임까지 넘볼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사양이 넉넉한 PC방들은 애초에 240Hz 모니터 'XL2540', 'XL2720' 등을 들여놓기에 이른다. 개선된 제품도 대거 등장해 제품 교체의 여지도 충분했다. Dyac, AMA 등 잔상과 인풋랙이 탑재되고 TN 패널 2세대가 적용되는 등 후속 제품을 선보이며, 벤큐존의 입지를 더욱 굳혔다. 최근에는 발로란트의 성행으로 Dyac+가 포함된 360Hz 'XL2566K'의 수요도 꽤 있는 편.

국내는 모니터 위주의 PC방 벤큐존 마케팅이 주력이지만, 글로벌로 확장하면 영역이 보다 넓어진다. EC, FK, ZA, S 마우스 시리즈, SR 마우스 패드, 카마데 마우스 번지까지 모두 '벤큐 조위' 시리즈로 묶여 해외 슈팅 프로 게이머 타겟으로 마케팅이 진행됐다.




이렇듯 벤큐 조위는 슈팅 게임에서 두각을 보여 e스포츠 마케팅 또한 용이했다. 애초에 프로페셔널 게이밍이 타겟이다 보니 슈팅 프로 선수들의 선호도가 높았고, 글로벌 e스포츠에서 일찍이 시장을 점유했다. 이를 통한 브랜딩 및 제품 노출의 기회는 무궁무진한 편. e스포츠 경기로 온오프라인 중계를 통해 널리 홍보할 수 있으며, 대회 비시즌 기간 동안은 선수 스트리밍까지 가능하다.

오랜 기간 위와 같은 마케팅을 고수하며, 성장을 거듭해 온 벤큐지만 이를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TN 패널임에도 불구하고 고주사율, 빠른 반응 속도가 주무기였던 모니터였지만 이제는 타 업체의 신제품으로 대체가 가능할 정도로 기술 발전이 더딘 상태다. 벤큐에서 눈을 돌리면 패널의 선택지가 넓어지고, 360Hz는 고사하고 더 높은 주사율까지 적용된 모니터가 수두룩하다.

절륜한 그립감과 준수한 스펙으로 호평받던 마우스도 마찬가지다. 그립감이야 마우스 쉘을 비슷하게 제작하면 그만이었기 때문. 게다가 타 업체는 스위치, 센서 발전에 이어 타공과 무선까지 적용된 신제품을 내놓는 반면, 벤큐 조위는 신제품 개발의 의지가 낮아 내부 개발자가 퇴사하고 신생 게이밍 기어 기업을 설립하는 등 지속적으로 점유율을 빼앗겼다. 그나마 이번년도 상반기에 EC-CW 무선 마우스를 내놓았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는지 다수의 혹평이 따랐다.

문제는 가격적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졌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XL2566K' 모니터의 가격은 99만 5천 원이며, 'EC-CW' 무선 마우스는 22만 9천 원에 육박한다. 모니터의 경우 FHD 해상도, TN 패널, 320cd 밝기, 마우스는 PAW-3370, 3200 DPI 등 가격 면에서는 프리미엄 수준인데, 제품의 퀄리티는 프리미엄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짧은 제품 보증이 아쉽다는 사용자 의견은 덤.



▲ 벤큐 조위 XL2566K 게이밍 모니터, EC-CW 무선 마우스

e스포츠화가 가능한 슈팅 게임의 한계성도 따른다. 벤큐 조위는 'GTSL', 'LCS' 등 슈팅 외 장르에도 얼굴을 비추긴 했지만 그 수가 적고 모니터 후원이나 소규모 이벤트를 지원하는 정도로 슈팅 일변도나 다름없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발로란트, 배틀그라운드, 레인보우 식스 등 기라성 같은 게임들이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지만, MOBA, RTS, 레이싱 장르 또한 e스포츠에서 유효한 성적을 내고 최근 이렇다 할 신작 슈팅 소식이 없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게이밍 기어 업체들의 행보는 어떨까. 덴마크의 게이밍 기어 제조업체 스틸시리즈는 프로페셔널, 하드코어 게이머가 포진한 슈팅 게임을 대상으로 초기에 마케팅을 진행해 벤큐와 궤를 같이했지만, 다양한 게임 장르의 e스포츠 산업 그리고 콜라보레이션 영역으로 발을 넓히고 멀티플랫폼 트렌드를 캐치해 PS, Xbox 대응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로지텍은 마우스, 키보드, 헤드셋, 웹캠 등 사무용 제품으로 출사표를 던지며, 이후 M 시리즈와 K 시리즈에 이어 게이밍 시장 공략을 위한 G 시리즈까지 확장했다. 자사의 무선 기술을 적극 활용, 게이밍 기어 시장에서도 단기간 내에 저변을 확대하기에 충분했다. e스포츠 마케팅도 활발한 편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어느 대회던 로지텍이 빠지지 않고 e스포츠를 후원하거나, 협업할 정도로 꾸준하다.




비교적 후발대에 속하는 브랜드도 있다. LG전자는 게이밍 모니터 라인업을 2020년에 '울트라기어'로 통합, OLED 모니터를 중심으로 스피커, PC 등으로 글로벌 e스포츠팀과 협력하고 게임쇼, IT 박람회 등 다양한 장르에서 마케팅 활약을 이어나가고 있다. MOBA의 'LoL 에디션'이나 심지어 격투 장르의 '무릎' 선수 팀과의 협업을 맺는 등 폭넓은 장르에 속한 게이머의 마음을 잡기 위한 다각적인 마케팅이 특히 돋보였다. 대열 합류에 늦었지만 그만큼 공격적인 글로벌 마케팅으로 게이밍 기어 시장 파이를 빠르게 가져가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렇듯 대다수의 IT 하드웨어 게이밍 기어 업체는 성장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동향을 읽어 변화를 추구한다. 고인물은 썩는다는 말이 있듯, 제 아무리 수십년 간 쌓아올린 견고한 금자탑이라도 관리가 없고, 보수 또한 없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다.

벤큐 조위, 게이밍 시장을 향한 전략이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만의 철학인 제품에 대한 퀄리티나 기술 발전은 고사하더라도 게임 관련 산업의 전체적인 규모와 향후 인기 장르 추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브랜딩 마케팅'이 그 시작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입소문에 의한' 시대는 저물었다. 경쟁업체의 맹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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