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믿고 살 수 없다" 이름값의 몰락

기획기사 | 정필권 기자 | 댓글: 15개 |




'재즈 잭 래빗', '기어즈 오브 워'를 만들어낸 게임 디자이너, 클리프 블레진스키는 지난해 11월 15일 SNS 상에서 다시는 게임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SNS 상에서 '로브레이커즈'의 서비스 종료와 관련한 설전이 오고 갔던 것이 이유였다. 블레진스키는 SNS를 통해 로브레이커즈의 환불을 받지 못해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반응을 두고, "바로 이런 의견들(this kinda shit)이 바로 내가 다시는 게임을 만들지 않는 이유"라고 표현했다.

클리프 블레진스키는 2014년 보스 키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2015년 '로브레이커즈'를 공개했다. 발표 당시에는 하드코어한 스타일과 속도감 있는 전투로 기대를 모았으나, 출시 이후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2017년 8월 게임을 출시한 이후 1개월 만에 동시접속자 수가 300명가량으로 하락하는 등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2018년 5월에는 보스 키 프로덕션의 폐쇄까지 확정하면서 게임 개발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기에 이른다. 게임 역사에 이름을 남긴 디자이너는 이렇게 업계에서 잠시 발을 떼게 됐다.


유명 개발자들의 퇴사, 그리고 실패, 그들은 왜 망하게 됐을까?

소위 '이름값'이 있던 개발자들이 거대한 회사를 벗어나 힘을 쓰지는 못하는 사례는 비단 블레진스키만이 아니다. 퇴사 후, 자신의 회사를 차리거나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고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여럿 있다. 문제는 '~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유명 개발자들. 철인(哲人)에 가까운 능력과 결과물을 보여줬던 이들이 몰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록맨의 아버지, '이나후네 케이지'다. 이나후네 케이지가 퇴사 이후, 콤셉트를 설립하며 내세운 가치는 '컨셉'이었다. 콤셉트의 방향성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선택이었다. "왜 히트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콤셉트는 "무엇보다 소중히 해야 할 것이 결정적으로 결여되어 있다"고 답한다. 컨셉. 즉, 기획의 부재로 말미암은 실패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콤셉트는 기획을 주로 담당하고,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협력으로 게임을 만들어나가는 독특한 회사로 시작했다.

문제는 이제 게임 개발이 기획만으로는 제대로 만들어질 수 없었다는 점에 있다. '마이티 No.9'의 실패는 여기서 시작한다. 콤셉트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다른 회사와의 협력을 통해 게임을 개발했다. 개발 과정에서 파트너들은 개발비를 지원하고, 최종적인 결과물을 받는 형태였다.



▲ 이나후네를 앞세운 기획 위주의 회사. 이게 콤셉트의 컨셉이었다.


나름 준수한 평가를 받았던 '소울 새크리파이스'는 마벨러스와의 협력으로 개발되었고, '리코어'는 아머처 스튜디오와의 협력으로 2016년 출시했다. 이외에 마벨러스와의 협력작이었던 '해왕'의 경우, 개발이 돌연 취소되며, 장기간 개발비를 지원한 마벨러스에게는 손해로 작용하기도 했다.

컨셉만을 내세우는 회사라는 것은 내부적인 개발력의 부재로 이어졌다. 다른 회사와의 협력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형태는 근본적인 부분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콤셉트가 주도하여 시작한 록맨 시리즈의 정신적 후속작, '마이티 No. 9'의 몰락을 보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전 세계에서 모인 펀딩 금액은 어디로 들어갔는지 모르는 제품으로 마감됐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할 정도의 결과물이 나왔다. 정신적 계승작이라는 아이디어. 그리고 초기 컨셉은 인정하나, 실제 결과물은 '최악의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결과물로 대체됐다.



▲ 이때만 해도 정말 기대감이 있었다.


콤셉트의 이전 프로젝트를 돌이켜보면, 마이트 No.9의 실패 원인은 분명하다. 개발 주체가 달랐던 다른 프로젝트는 이 정도의 평가를 받지는 않았다. 콤셉트가 개발에 참여하기는 했으나, 실질적인 개발의 주체가 달랐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주체가 별개로 존재했으며, 거대한 인력을 구성하고 자금을 댈 수 있는 존재가 있었다. 그러나 마이트 No. 9은 달랐다.

게임은 이나후네의 이름을 앞세워, 그저 구상만 존재하는 상태에서 펀딩이 시작됐다. 모인 펀딩 금액은 시간이 지나며 소진되기 시작했고, 몇 번의 추가 펀딩을 진행해야만 했다. 최종적으로 나온 결과물은 굉장한 시간과 예산이 들어간 것과는 반대의 모습으로 나왔다. 이는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주도적으로 구현하기에는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개발력,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 그래. 컨셉은 좋았다. 문제는 개발력이었지만.


아직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쉔무3'도 불안감이 남아있다. 게임 역사에 있어서 큰 전환점을 제공한 스즈키 유였으나, 2017년 컨셉으로 공개된 티저영상은 팬들에게 있어서 실망감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이미 상당한 금액의 크라우드 펀딩을 마친 상태였기에, 전체 금액 대비에 미비한 퀄리티임은 부정하기 어려웠다.

다만, 게임의 퀄리티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긴 하다. 최신 버전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스즈키 유가 속한 개발사 Ys net은 꾸준히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초 2018년 연내 발매를 예정했던 출시일은 계속해서 밀려, 아직 정확한 출시일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한편, 쉔무3는 최종적으로 718만 달러, 한화 약 81억 원에 이르는 금액을 달성하며 크라우드 펀딩을 종료했다.

이전 회사 내에서는 뛰어난 성공과 결과물을 거두었음에도, 회사를 나와 도전하고, 실패를 경험한 인물들은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말 그대로 '몰락'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행보였다. 헬게이트를 선보였던 빌로퍼나, 바이오쇼크라는 걸출한 게임을 만들고 갑작스레 업계에서 사라진 켄 레빈. 그리고 테크모에서 DOA와 닌자 가이덴 시리즈를 만들었으나, 퇴사 이후 데빌즈 서드로 '폭망'을 해버린 이타가키 토모노부까지. 과거 업계 유명인이라 부를 수 있는 개발자들은 조직을 벗어나고 빛을 보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코지마 히데오처럼 각계의 관심 속에 순조로이 개발을 지속하는 인물도 있긴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타 개발자들은 구체적인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했고,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어나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 누군가 만든 이 합성 이미지가 그들의 실패를 대변한다.


세분화, 산업화하는 AAA게임 제작의 시대 - 레전드들이 힘을 못 쓰는 이유

이들의 몰락은 곧, '이제 AAA급 게임 제작은 스타 개발자 혼자서는 만들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이제 소위 AAA급 게임들의 제작비는 수백, 수천 억 원으로 상승했다. 더불어 게임 시장이 산업화하면서 각 분야는 세분되기 시작했고, 서로의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됐다. 현재 게임 제작은 기획, 프로그래밍, 아트 등 각 분야에서 자기 일을 진행하며 개발되기 시작했다.

서로의 영역이 확실하게 나뉘어 있고, 거대한 규모로 진행되기 때문에 천재적인 한 인물의 힘은 큰 영향을 발휘하기 어려워졌다. 슈퍼 낙하산이라는 평가를 받는 '미야모토 시게루'가 1983년 '동키콩'을 만들었을 때처럼, 아트와 프로그래밍 전부를 진행하고, 성공작을 만드는 사례는 현재 게임사의 조직 구조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됐다.

현재 게임 개발은 분업화, 구성원의 노동집약으로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과거와 달리 AAA급 게임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더 많은 기술과 기법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와 비례한 인력과 시간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예로 '레드 데드 리뎀션2(이하 레데리2)'를 예로 들 수 있다. 레데리2는 오픈월드 AAA 게임으로 개발되면서 오랜 시간과 자금이 들어갔던 타이틀이다. 그리고 당연히 게임의 규모와 퀄리티가 높아지면서, 더 많은 개발 인력이 필요했다. 게임의 엔딩을 이후 스탭롤의 분량만 30분을 넘을 정도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게임 하나를 출시하기 위해서 일을 했고, 협력한 결과물이다.



▲ 이게 전체 리스트의 '일부'다.


몇백, 몇천에 이르는 사람들이 AAA급 게임 하나를 만드는 시대에서 프로듀서는 어디까지나 지휘자의 역할에 치중될 수밖에 없다. AAA급 게임 개발 구조상에서 나오는 본질적인 문제다. 어느 정도의 개입은 가능하겠으나, 과거처럼 한 사람이 모든 개발 과정에 참여하여 결과물을 끌고 나갈 수는 없다. 과거보다 개발에 많은 능력과 영역이 요구되고 있으므로, 거대한 게임을 혼자서는 만들어내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지금과 비교해서 느슨한 구조였던 과거의 개발 환경에서, 개인의 반짝이는 창의력은 매우 큰 역할을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문화되고 여러 분야로 나뉜 지금의 환경은 개인의 창의력보다,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가고, 전체 개발 자금과 일정을 신경 쓰고, 출시와 판매까지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한 산업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기에 세부적으로 모든 개발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보다는, 프로젝트를 효율적이고 분명한 지향점을 제시하는 조직 관리의 능력이 프로듀서에게 요구되고 있다.


동시에 태어난 1인 개발의 시대 - 변화된 환경, 개인의 창의성을 알리다

AAA급 게임이 과거보다 몇십 배가 상승한 개발비를 기록하고 있는 사이, 게임에서 개인의 창의성 발현이라는 역할은 인디 게임으로 바톤이 넘어갔다. 크라우드 펀딩이 보편화되고, 게임 시장은 나날이 성장하며 작은 게임을 판매하고 알릴 수 있는 창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소매점에 기반을 둔 오프라인 유통망보다, 온라인 유통망이 더욱 커진 시대가 됐다. ESD가 보편화 되었고, 스트리밍과 SNS 등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 개발 자금 또한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금할 수 있게 됐으며, 얼리 엑세스 등의 제도를 이용해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에도 어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개발을 위한 자금을 모으는 것부터, 구체적인 판매를 위한 생태계까지 마련된 상황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소규모 게임들의 등장을 알렸다. 토비 폭스의 취향이 한껏 들어간 '언더테일', 4년간 개발 끝에 나온 '스타듀 밸리', 약 10년간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아울 보이' 등 개발자의 생각과 취향이 한껏 반영된 게임들은 평단과 게이머들의 만족을 이끌어내기 충분했다.



▲ 오히려 장인정신이라는 영역은 소규모, 1인 개발자들이 더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과거 완전히 산업화 되기 전의 개발 환경이 그러했듯이, 게임 개발 전반에서 본인의 생각을 충분히 녹여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많은 인력이 집약된 AAA급 게임들은 출시일과 판매량 같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들이 요구된다. 그러나 소규모 게임들은 이런 조건들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그렇기에 개인의 생각을 녹여내기 위한 노력은 장기간의 개발 과정에서 자연스레 결과물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영화 시장이 변했듯 게임 시장도 어느 정도 이분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거대한 스케일, 뛰어난 퀄리티와 많은 개발 인력이 들어가는 게임들이 존재하고, 개인의 능력과 생각을 장고하며 펼쳐 보이는 인디 게임들이 주목받고 있다. 시장이 성장했고, 꾸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철인의 의지는 남는다 - 그러나 업계 레전드의 가치관은 이어진다

개인의 생각과 성장이 주목받는 시대. 그렇기에 과거 게임 업계를 주름잡던 레전드, 철인들은 회사라는 시스템을 나와 개인의 도전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결과적으로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들의 구상처럼 완벽하고 거대한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과 자금, 시간이 필요해서다. 그러나 모든 철인이 그저 사라지거나 몰락한 것은 아니다.

1세대 개발자들, 게임사에 한 획을 그었음에도 아직 조직에 속해있는 철인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을 시스템으로 만들고, 개발론에 투영하기 시작했다. 게임의 신, 미야모토 시게루는 개발 일선에서 물러났음에도 닌텐도의 자문역으로 신작 개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GDC 2018 강연에 자리한 야부키 코스케(마리오카트7, 마리오카트8, ARMS의 디렉터) 디렉터의 이야기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닌텐도는 신작 개발에 있어서 항상 시게루의 검수를 진행한다. 그리고 시게루는 조언자의 위치에서 "이 게임은 기존 게임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해당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순간 개발은 막을 내린다. 그렇기에 닌텐도의 개발자들은 이 질문을 위한 답을 개발 과정에서 항상 고민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 미야모토 시게루의 가치관은 개발 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친다.


이렇듯 게임 역사의 철인들은 조직의 내부에서 아직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가치관은 자사의 게임 개발에 영향을 미친다. 개발 과정이 개인에서 집단으로, 뛰어난 한 사람에게 치중하던 것에서 다수로 바뀌었음에도 가치관이 중심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집단이 하나의 기준으로 뭉치고 있고, 개발 과정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결국, 시대가 변한 지금. 중요한 것은 철인들의 가치관과 결과물이다. 어찌 보면 개발보다는 조직 관리의 중요성이 될지도 모른다. 과거 업계의 전설들이 이뤄낸 업적은 부정할 수 없다. 이들은 분명 글로벌하게 기준점을 제시했고, 기획과 개발 면에서 유의미한 결과물들을 남겼다. 배울 점들이 많았고, 우러러볼 수 있는 결과물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업적들이 기존의 회사 또는 자신들의 회사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획만으로, 생각만으로 개발을 주도하고, 만들 수 있는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전문화되고 다수의 사람이 참여하는 현재의 AAA급 게임 개발 구조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결국 회사의 크기나 자금이 아니다. 개발에 참여한 다수를 하나로 결집하고 이끌어나갈 수 있는 가치. 질문이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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