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기반 영화, 'B급'을 넘어설 수 있을까?

기획기사 | 정재훈 기자 | 댓글: 29개 |



'몬스터 헌터' 영화의 개봉 소식을 접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이걸 봐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게임 기자로서의 양심은 "뭐가 됐든 봐야 하지 않겠니?"라고 읊어댔지만, 머릿속 이성은 "그 시간에 잠이나 더 자라"며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그리고, 난 스스로 양심적인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 전 흑룡 토벌까지 성공한 몸. 이 정도는 의리 아니겠나.

헌신적인 마음으로 함께 영화를 봐 주기로 한 아내에게 몬스터 헌터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다.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보는 것 보다는 낫겠지 싶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걸 안 건 한 시간을 채 채우지 못하고 피곤해서 먼저 자러 들어간다는 아내를 볼 때였다. 차라리, 그냥 모르는 채 보라고 할 걸 그랬다.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았음에도, 몬스터 헌터는 퍽 처참했다. 매드맥스에선 카타르시스의 폭포로 비춰지던 모래 폭풍이 이 영화에서는 이세카이로 떠나는 포탈이었을 때부터 느낌이 묘했다. 대전차화기를 맞고도 멀쩡한 디아블로스를 상대로 토니 자는 화살을 쐈다. 차라리 니킥을 날렸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이전 영화에선 잘 먹히는 것 같던데.

영화가 끝난 후,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오직 게임 수준으로 구현된 주방장의 요리 씬 뿐이었다. 지천명을 앞둔 밀라 요보비치는 퍽 지쳐 보였고, 난 그보다 더 지쳐 있었다. 가장 내 힘을 빼는 건, 이 영화의 감독이 밀라 요보비치의 남편이자 그나마 게임 기반 영화를 볼만한 수준으로 만든다는 '폴 W.S 앤더슨' 감독이었다는 점이다. 겨우 남아 초가삼간을 지탱하던 대들보가 반으로 뚝 갈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게임 기반 영화는 B급을 벗어날 수 있을까?

'게임 기반 영화'

상반된 감정을 이처럼 한 번에 불러일으키는 문구가 또 어디 있을까. 게이머 입장에선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미 한 번 게임으로 내 마음을 뒤흔든 작품이 영화로 나온다는데 이걸 어떻게 참을까. 하지만, 동시에 이만큼 걱정되는 일도 없다.

이제는 유부남인 내가 오전/오후반으로 나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게임 기반 영화는 존재했다. 앞서 말한 폴 W.S 앤더슨 감독의 '모탈 컴뱃' 개봉이 95년이었고, 이 해는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뀐 첫 해였다. 그리고, 어린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꽤 괜찮았다. 물론 봐서는 안 되는 나이였지만, TV에서 해주는 걸 어쩌랴.



▲ 꽤 괜찮았던 '모탈 컴뱃(1995)'

하지만, 철이 들 무렵부터 쏟아지던 게임 기반 영화 산업은 말 그대로 '잔혹사'에 가까웠다. 이름도 유명한 '우베 볼'의 수많은 망작들이 판을 깔았고, 도무지 제대로 된 작품이 없었다. 게임의 인기를 끌어올 생각에만 골몰했는지,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게임 장면의 차용이나, 당시 기준으로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VFX등은 보는 내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나마 지금의 전설이 되어버린 드웨인 존슨의 출연작 '둠'이나 '레지던트 이블', 안젤리나 졸리 출연의 툼 레이더(1편) 등이 비교적 양호한 평가를 받으며 꾸역꾸역 명맥을 이었다고 해야 할까. 물론, '비교적'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게이머들의 기대는 점점 사그라들었고, 일반 대중 사이에서 게임 기반 영화는 'B급 액션 영화'의 대명사와 같이 자리잡았다. 개봉은 고사하고 비디오 가게를 노리는 저급 영화들이나, 어찌어찌 개봉관을 잡아 봐야 팝콘 무비 수준에 그치는게 과거 게임 기반 영화의 현실이었다. 심지어, 수없이 많은 대박을 낸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도 이 인식을 벗겨내지 못했다. 그가 제작한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는 게임 기반 영화 치곤 잘 만든 작품이었지만, 이전 그의 작품들에 비하면 너무나 평범한 액션 영화에 그친다는 애매하기 짝이 없는 평가를 받았다.



▲ 신선한 'Z급' 영화로 분류되는 우베 볼의 '포스탈'

그리고 이 흐름은, 지금에 와서도 별로 다르지 않다. 한동안 소식이 뜸하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시작된 게임 기반 영화의 '뉴 웨이브'는 수많은 게이머층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영화 이름만 읊어도 대충 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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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평가는 좋지 못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흥행은 한 '앵그리버드: 더 무비'를 포함해도 2015년~2016년의 게임 기반 영화들은 이전의 인식을 깨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아니, 오히려 더 퇴보시킨 감도 없잖아 있다. 상상을 현실로 불러오는 과정이 쉽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VFX와 CG는 뭐든지 원하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저 영화들은 관객이 원하는 걸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뉴 웨이브'의 처참한 실패는, 게이머층 관람객들의 마음에 깊은 절망을 주었다. 옆동네에선 만화 원작의 영화들이 말 그대로 세계를 정복하고 있는 와중, 게임 원작 영화들은 여전히 죽만 쑤고 있다. 과거엔 그래도 '나중엔 낫겠지' 싶었는데, 그 나중이 되어버린 지금, 게이머층 관람객들은 게임 기반 영화가 어쩌면 영원히 'B급'을 벗어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의 마법 하나만큼은 대단했던 것 같다



스스로 찍어버린 'B급'의 낙인

과거 작품들이 하나같이 망한 이유는 너무나 명확했다. 대충 만든 영화가 너무나 많았다. 우베 볼의 양산작들은 설명할 것도 없고, 꽤 볼만한 영화를 만들던 '폴 W.S 앤더슨' 감독의 영화들도 게임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가져왔을 뿐, 내용은 전혀 관련이 없는 오리지널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더 많았다. 게이머들은 게임의 느낌을 그대로 전해줄 영화를 기대했지만 난생 처음 보는 스토리를 마주했고, 일반 대중은 일반 액션 영화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게임적 요소들에 의해 몰입을 방해받았다.

일부는 게임과 영화의 제작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게임의 경우 게이머가 직접 시나리오에 관여하기 때문에 부실한 시나리오로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지만, 그 시나리오를 그대로 영화에 적용하면 사단이 날 게 뻔하니 오리지널 스토리를 새로 쓸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나마 최근 성공을 거둔 게임 기반 영화인 '명탐정 피카츄'나 '수퍼 소닉'이 둘 다 딱히 시나리오가 중요치 않은 게임이다 보니, 이런 주장은 다소 힘을 얻고 있다.



▲ 원작과는 매우 다르지만, 호평받은 '명탐정 피카츄'

많은 사례를 비춰보면 아예 턱없는 말도 아니다. 실제로 먼 옛날, 게임 기반 영화가 첫 선을 보이던 시절엔 인기 게임에 딱히 시나리오를 요구하지 않았다. 게임에서 시나리오는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는 존 카맥의 언급은 그 시절 한정으로 틀린 말이 아니었다. 빠밤! 하면서 시작되는 스타워즈 영화 인트로의 배경 설명처럼, 게임 내 스토리는 그 정도에서 언급될 뿐이었다. 애초에 시나리오가 허술하니, 당시의 게임 기반 영화는 새로 시나리오를 쓸 수밖에 없었던 거다. 물론, 과거에 한정된 이야기일 뿐이다.

문제는, 그 새롭게 쓴 시나리오가 이도 저도 아닌것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거다. 게임사들은 IP를 팔고 로열티만 받을 뿐, 영화 제작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사는 IP의 파워를 너무 믿었다.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저예산 영화의 기준이 보통 1억 달러다. 그리고 몬스터 헌터의 제작비는 6천만 달러였다. IP홀더는 로열티에 만족하고, 영화사는 영화에 힘을 주지 않으며, 게이머는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에 실망하는게 그간 게임 기반 영화의 반복된 역사다. 애초에 B급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게임의 시나리오를 어떻게든 가져와 보려다가 숨이 넘어가 버린 경우도 있다. 애초에 인기 있는 게임 시리즈는 한 두편으로 만들어진게 아니다. 당연히 방대한 배경 시나리오가 존재하고, 세계관도 복잡하기 짝이 없다. 이걸 2시간 내외의 영화에 쑤셔박다 보니 개연성은 날아가고 영화관을 나오는 관객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줄줄이 달려버렸다.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이나 '어쌔신 크리드' 영화가 이렇게 망해버렸다.



▲ 배경 설명하다 망한 케이스

게임 기반 영화의 현 상황은, 누군가 낙인을 찍어 버리면 곧 대상 스스로가 자신에게 낙인을 찍어버리게 된다는 미국의 사회학자 '하워드 S.베커'의 '낙인 효과'에 부합된다. 어느 순간 'B급'의 꼬리표가 붙어 버리니 영화를 만드는 이들 또한 'B급' 영화를 만든다. 이미 스스로 B급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하며, 제작비 규모에 이게 드러나버리는데 어찌 그 이상의 영화가 나올까.



덧셈이 아닌 곱셈이 필요하다.

생각을 다소 바꿔야 할 때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마블 코믹스를 기반으로 하지만 코믹스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고, 이제는 단순 코믹스 기반 영화 이상의 미디어로 취급된다. 오히려, 영화상의 설정이 코믹스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비교적 최근 이슈의 아이언맨이 과거와 비교해 묘하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닮아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코믹스의 설정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만화 상에서 너무 말이 안 되는 설정을 말은 되는 수준으로 바꿔 납득 가능한 선으로 떨어트린 정도다.

게임 기반 영화도 이와 같은 길을 따라야 한다. 단순히 게임을 영화로 옮기거나, 게임 소재를 영화에 차용하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만드는 순간, 게임 기반 영화에 지긋지긋하게 따라오는 'B급'이란 주홍글씨가 떨어져 나갈 것이다. 김치와 물을 가지고는 김치찌개도 만들 수 있고, 김치찜도 만들 수 있다. 둘 다 '김치'와 '물' 이상의 결과물이다. 지금의 게임 기반 영화는? 그냥 물 탄 김치요, 김치 탄 물일 뿐이다.



▲ 시작은 코믹스 기반 영화였지만, 이제 마블 시네마틱은 그 이상의 무언가다.

물론, '마블'의 경우는 사실 특이한 케이스다. 영화 제작사와 IP홀더가 한 침대를 쓰는 상황이니 앞서 실패한 수많은 게임 기반 영화들과는 아예 처한 상황이 다르다 할 수 있다. 기존 게임 기반 영화처럼 IP홀더와 영화 제작사가 분리되어 있는 DC 코믹스 기반 영화들이 마블과 어떻게 비교되는지만 살펴봐도 쉽게 비교 가능하다.

그래도 게임 기반 영화는 'B급'의 낙인을 벗어던지려는 시도를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는 건 희망적이다. 지금 '소니'가 하고 있는 시도 또한 비슷하다. 소니 픽쳐스와 플레이스테이션 프로덕션은 한 가족이며, 플레이스테이션 프로덕션이 지닌 퍼스트 파티의 IP로 영화 제작을 진행 중이다. 영화는 아니지만 문제의 남자 '닐 드럭만'이 제작 총괄을 맡은 드라마 '라스트오브어스'가 있고, 얼마 전엔 '고스트오브쓰시마'의 영화화 소식이 알려졌다. 각 IP가 독립되어 있는 만큼 마블처럼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상하긴 무리겠지만, 이제 물김치 정도는 기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얼마 전, '모탈 컴뱃'의 트레일러가 공개되었다. 초등학교도 가기 전부터 모탈 컴뱃을 플레이해온 팬으로서 영화는 볼 생각이지만, 몬스터 헌터의 충격이 남아 있어서인지,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다. 성공에는 곱셈이 필요하다. 게임 기반 영화는 '게임 + 영화'의 덧셈 결과가 아닌, '게임'과 '영화'를 약수로 가지는 '게임영화'로 우뚝 서야 한다. '모탈 컴뱃'이 그걸 이뤄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등장할 소니 픽처스의 작품들에서는 기존의 게임 기반 영화와는 또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소니는 게임 기반 영화의 다음 지점을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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