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드컵 경기분석] SKT T1은 EDG를 상대로 정말 불리했을까?

게임뉴스 | 김경범 기자 | 댓글: 193개 |


▲ 전설급 선수 두 명의 대결로 주목 받은 메이웨더 vs 파퀴아오


2년 전, 복싱에서 세기의 대결이 있었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 매니 파퀴아오가 펼친 웰터급 통합 타이틀전은 평소 복싱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주목할 정도로 화제가 된 경기다.

하지만 전설급 선수 두 명이 맞붙은 것치고는 만족스럽지 못하단 평가를 받은 경기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준 파퀴아오의 공격은 메이웨더의 단단한 방어를 뚫지 못했고, 결국 실리를 챙긴 메이웨더가 판정승을 거두며 최강자들의 난타전을 기대한 팬들을 실망하게 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닌 지지않은 싸움으로 승리를 거두었다"며 메이웨더의 운영을 높게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경기가 이번 2017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서도 있었다. 지난 주말 진행된 그룹스테이지 2주차 A조 마지막 경기가 바로 그것으로, 지난 대회 우승팀인 SKT T1과 중국 1시드의 EDG의 대결이다. 이미 SKT는 조 1위가 확정되어 있었지만, 북미의 Cloud9이 8강에 직행하는가, 아니면 EDG와 재경기를 펼치게 되냐가 결정되는 경기이기에 한국과 중국 외에도 북미 팬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초반부터 거세게 몰아친 EDG의 공세를 견뎌낸 SKT의 승리. EDG는 1주차에 이어 2주차에도 골드 우위인 상황이 뒤집히며 패배하는 수모를 겪으며 올해 롤드컵 일정을 마무리 짓게 되었다.

물론 승리한 SKT도 팬들에게 좋은 평을 듣진 못했다. 그룹 스테이지 내내 불안한 초반을 보여줬고, ahq와의 경기에서 초반이 강력한 바루스+룰루 조합으로 라인전 주도권을 갖지 못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런 SKT의 모습에 많은 사람이 "봇 듀오의 경기력이 현저히 하락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서포터인 '울프' 이재완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트위치+잔나 조합을 하면 타워가 5분만에 밀릴 거라고 알고 있었다"며, "큰 손해 없이 잘 운영했다"라고 경기를 자평해 많은 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과연 EDG와의 경기는 울프의 인터뷰처럼 계획대로 진행된 경기였을까? 해당 경기의 주요 장면과 시간대별 지표를 바탕으로 SKT가 말하는 승리의 근거를 분석해보았다.




▲ 밖에서 보기에 불안한 경기로 비칠까봐 걱정했다는 SKT T1의 서포터 울프



■ 창과 방패. 밴픽에서 드러난 양 팀의 계획

밴픽 단계에서 양 팀의 생각은 명확했다. SKT는 사거리가 길어 초반 라인 압박이 강하고 중국팀에서 선호하는 케이틀린 외엔 자르반 4세와 갈리오를 밴하며 상대가 만들 수 있는 변수를 줄이는데 주력했다. 반대로 EDG는 필밴 카드인 칼리스타에 코그모, 자야를 밴하며 SKT의 원딜 선택 폭을 제한했다.

이러한 성향은 이후 픽 단계에서도 드러났다. SKT는 평소에 정글러를 먼저 확보하던 경향대로 세주아니를 먼저 선택했다. EDG는 룰루와 그라가스를 선택해 상대의 서포터를 잔나로 유도하며 라인전에서 주도권을 가져가려 했다. 이런 상대의 의도에도 SKT는 잔나와 트위치라는 초반에 엄청나게 취약하지만 후반 성장 기대치가 높은 봇 듀오를 선택했다.

이후 EDG는 트리스타나, 마오카이, 르블랑으로 중후반 밸런스와 미드의 적극적인 로밍을 통해 초중반 압박이 가능한 조합을 완성한다. SKT도 트런들과 오리아나를 가져가면서 중반 이후의 스플릿과 한타의 강력함을 노리는 구성을 갖췄다. 무난하게 중반 이후로 가면 SKT가 조합상 유리하지만, 그 단계가 오기 전에 EDG가 라인전을 터트릴 수 있는 조합이 된 것이다. 결국 이 대결은 SKT의 방패를 EDG의 창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뚫어내느냐의 구도였다.




▲ 후반전은 SKT가 좋지만 EDG가 그 전에 게임을 종결낼 수도 있는 조합



■ 첫 인베이드의 스노우볼, 거센 압박을 받는 SKT의 봇 라인

EDG는 경기 초반, 탑 라인 쪽으로 인베이드를 시도해 후니가 점멸을 소모하게 했다. 물론 이후 라인 합류 타이밍을 통해 클리어러브의 그라가스가 레드 버프 시작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상성 상 유리한 마오카이를 상대로 라인전 자체에 큰 부담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 초반 후니의 점멸을 소모시킨 EDG의 인베이드


오히려 압박을 받는 것은 SKT의 봇 라인이었다. 리시로 인한 시간 낭비가 없었던 아이보이와 메이코는 먼저 라인에 도착해 뱅과 울프를 압박했다. 상성에서 밀리는데다가, 상대 정글의 동선이 탑에서 바텀으로 향한다는 부담을 가진 SKT의 봇라인은 일방적으로 밀리며 타워 근처에서 수비적인 운영을 해야 했다. 그나마 미드에서 페이커가 스카웃을 효과적으로 압박하며 강 아래쪽에 와드를 설치하는 여유가 생긴 것 정도가 좋은 소식이라면 좋은 소식이었다.

탑과 미드에서 SKT가 약간의 우세를 갖고, 바텀에서 EDG가 매우 강세를 갖는 구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양팀 정글러는 3분대에 드래곤 앞에서 처음 마주친다. 상대 정글이 봇 라인 쪽에 있다는 걸 확인한 후니는 더욱 적극적으로 탑 라인 압박을 할 수 있었지만, 땅굴 플레이에 위협을 느낀 SKT의 봇 듀오는 타워에서 한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는 타워의 생명력을 지키기 힘들 정도로 압박을 받는 원인이 된다.

반면, 블랭크는 칼날부리를 먹고 잠시 미드 근처에 머물다가 봇 라인을 지원하기보다는 탑 라인에 힘을 기울이는 동선을 취하게 된다.




▲ 4분대에 이미 포탑의 생명력이 60% 밑으로 떨어진 상태다.



■ 너무 많은 정보가 가져온 착각... 봇 라인이 버틸 수가 없다!

기지로 귀환한 블랭크는 자기 진영 블루 정글을 거쳐 상대 정글로 이동해 클리어러브를 추적하기 시작했고, 와드와 수정초를 사용해 정글 동향을 살피던 그는 탑 라인 쪽의 돌거북이 멀쩡히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보통 기지로 귀환한 레드 진영 정글러는 탑 라인 갱킹을 노리더라도 경험치 효율을 위해 돌거북을 먹으면서 라인 진행을 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돌거북이 멀쩡하다는 것이 확인되자마자 그 자리에 핑이 찍혔다. "돌거북이 멀쩡하다. 정글러가 봇라인 쪽에 있을 것 같은데?"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 SKT 선수들을 착각하게 만든 돌거북. 수정초로 확인하자마자 핑이 찍힌다.


이미 페이커가 미드에서 르블랑에게 체력 압박을 가해 귀환을 보내고 있었기에 SKT 입장에선 봇 듀오가 좀 더 사리면서 탑에서 이득을 가져갈 수 있는 순간이라고 느꼈을 법하다. 그래서 블랭크는 돌거북을 챙긴 후, 후니와 함께 마우스의 마오카이를 노릴 준비를 했다. 문제가 시작된 것은 여기서부터였다.

4분경에 봇 라인에서 숨어있던 클리어러브는 귀환 직후 탑 라인을 따라 이동하며 돌거북마저 포기하고 후니에 대한 갱킹을 설계하고 있었다. 이런 상식을 벗어난 플레이는 SKT가 착각을 하게 만들었고, 초반에 점멸이 빠진 후니가 퍼스트 블러드를 내주고 만다. 봇 라인이 힘들어도 탑 라인 쪽에 힘을 주려던 SKT의 계획이 꼬이는 순간이었다.




▲ 후니 입장에선 "뭐지? 몰카인가?" 싶었을 갱킹


이 여파는 봇 라인으로 이어졌다. 상대 정글이 자신의 근처에 있을 거라 짐작하고 수비적인 태도를 보인 SKT의 봇 듀오를 상대로 EDG의 봇 듀오는 더욱 거센 압박을 넣어 타워의 생명력을 1/4까지 깎아낸다.

텔레포트로 라인 복귀를 한 후니는 봇 라인에 지원을 가는 게 불가능했고, 블랭크도 동선이 꼬이며 이후 봇라인에 지원을 가는 타이밍이 클리어러브보다 상대적으로 늦어졌다. 그리고 6분 경에 EDG의 서포터인 메이코가 자신의 생명력을 미끼로 뱅을 유혹해 갱킹을 노렸다.

이 싸움에서 아이보이의 로켓 점프가 들어갔다면 십중팔구 뱅이 죽고 이후 플레이가 더 어려워졌겠지만, 울프가 절묘한 타이밍의 회오리로 점프를 끊는 데 성공하며 구사일생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빈사 상태였던 타워는 6분 10초에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 트리스타나의 로켓 점프를 회오리로 끊으며 뱅을 구하는 울프



■ EDG의 격한 공격, 하지만 유효타는?

약간의 소강상태가 지나고 SKT는 드래곤을 먹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를 와드로 확인한 EDG는 SKT의 탑 라인 1차 포탑을 압박해 파괴했다. 생각보다 드래곤에서의 시간이 지연되면서 EDG는 2차 타워까지 진격을 시도하는데, 라인 클리어가 좋지 않은 트런들로는 수비가 어려워 결국 미드에 있던 페이커가 지원을 위해 이동해야 했다.

8분 10초경, 미니언을 끌고 온 EDG의 봇 듀오와 정글은 후니를 노리지만 가까스로 살아갔고, 페이커의 오리아나가 도착하면서 간신히 방어 태세를 갖춘다. 하지만 미드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SKT의 봇 듀오가 이동하면서 봇 라인 쪽은 잠시 공백 상태가 되었다.

한편 블랭크는 드래곤을 잡은 후 상대의 블루 지역 정글을 먹으며 탑의 압박으로 인한 손해를 벌충하려 했다. 그리고 그것은 8분 50초경에 독두꺼비를 잡는 모습이 수풀에 숨겨진 상대 와드에 노출되면서 르블랑과 마오카이가 포위망을 형성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결국 솔방울탄을 활용한 도주극의 시도가 마우스의 과감한 궁극기 활용으로 저지되면서 9분 10초에 르블랑에게 킬과 쌍버프를 내주었다.



▲ 수풀 속의 와드에 노출되어 습격 당한 블랭크



SKT도 오리아나와 트런들을 지속해서 사이드로 돌리며 상대 라이너와의 CS 격차를 벌리는 노력을 했다. 미드에서 아이보이를 블랭크가 매섭게 노려보기도 했지만, 실패로 돌아가면서 역으로 11분이 되기도 전에 SKT의 1차 타워가 모두 밀리게 된다.

이후 SKT의 정글 시야는 EDG에 잠식되기 시작했고, 이는 미드에서 근근히 파밍 중이던 뱅의 위험으로 이어졌다. 스카웃의 르블랑은 기습적으로 뱅의 트위치를 노렸고, 룰루의 앞점멸과 변이 연계, 그라가스의 궁극기 활용으로 결국 킬을 따낸다.

재미있는 사실은 뱅이 미드에서 죽은 11분 30분경부터 양 팀의 글로벌 골드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2분부터 24분까지 약 12분의 시간 동안 양 팀의 골드 격차는 약 3천에서 4천가량을 계속 유지했는데, EDG가 특정 라인에 압박하면서 뭉쳐다니는 동안 SKT는 그 공격을 유연하게 받아내며 다른 라인에서 여유 있게 CS를 수급한 결과였다. 특히 탑 라이너의 경우 스플릿 구도에서의 효율 차이가 커서 시간이 흐를수록 후니의 스플릿을 마우스가 억제하기 어려워져만 갔다.




▲ 24분까지 3-4천의 골드 차가 계속 유지되며 스노우볼이 억제되었다.


15분 중반에 탑 라인에서 라인을 정리하던 트런들을 기습해 처치하긴 했지만, 후니가 타워 근처에서 상대 정글의 체력을 많이 뽑아낸 덕분에 추가 손실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봇라인에 마오카이가 묶인 것을 이용해 4:4로 전투를 건 SKT의 기세에 밀려 전령을 내줄 뻔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비슷한 전개가 몇 분간 반복되었다. 18분경,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성장 잠재력이 높은 SKT가 유리해질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EDG는 탑 라인에서 다시 라인을 정리하고 정글 쪽에 있던 페이커를 잡아먹는 시도를 해서 킬에 성공한다. 그러나 르블랑의 순간이동, 마오카이와 그라가스의 궁극기까지 소모된 EDG가 루난의 허리케인을 시작으로 아이템을 갖추기 시작한 트위치와 향로의 잔나가 버티는 포탑을 철거하긴 힘들었다.

할 수 없이 전령을 선택한 EDG. 그리고 이 사이 마오카이보다 훨씬 잘 성장한 트런들은 봇 라인 스플릿을 통해 1차 타워를 철거하며 페이커의 죽음과 전령을 내준 손해를 상쇄시킨다.




▲ 슬슬 스플릿 깡패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후니



■ 울프가 말한 무한의 대검 타이밍. 하지만 실수로 반격 템포가 끊기다

이후 22분까지는 여전히 EDG가 계속 주도권을 갖고 있었다. 원딜의 코어템 갯수 차이가 있는 상황을 살려 미드 2차 타워도 가져갔고, 대지 드래곤 역시 챙긴 EDG였다. 하지만 가져간 오브젝트에 비해 골드 격차는 더 벌어지지 않았고, 먹었던 전령을 활용해 밀어보려던 탑 라인도 무한의 대검이 나온 트위치의 화력과 페이커가 상대 원딜의 동선에 공을 계속 띄우며 딜을 할 여유를 주지 않는 플레이로 수비에 성공한다. 되려 바텀 2차 타워에서 마오카이와 대치하던 후니의 트런들이 타워 압박을 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서 울프의 실수가 한번 나왔다. 세주아니의 시야에 들어온 르블랑을 놓쳐 23분 30초에 미드에서 킬을 당해버린 것이다. 향로가 없으면 원딜러의 힘이 반감되는 현재 메타 상 상대가 바론을 먹는 것을 저지하는 것은 어려웠고, 지지부진한 대치전 상황에서 EDG가 다소 탄력을 받게 되었다.




▲ SKT가 기지개를 켤 타이밍에 울프가 죽으며 흐름이 한번 끊긴다.


물론 바론을 먹은 EDG가 바로 공세로 전환할 수는 없었다. 바론을 먹기 전부터 바텀 2차타워를 밀어낸 후니가 억제기 앞 포탑까지 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실 바론 시도 자체가 후니의 스플릿을 저지하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우직하게 밀고 들어오면서 EDG가 한 번 수비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철거에 효과적인 바론 버프를 등에 업고 EDG는 이후 봇 2차 타워 쪽으로 집결한다. 아직 바론 버프는 절반이상 남아 있었기 때문에 억제기 하나 정도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었다.




▲ C9과의 경기를 보았다면 후니를 방치할 수 없었을 것이다.



■ 1만 골드 역전의 그림자. 오리아나의 충격파에 머뭇거린 EDG

26분 경, EDG는 미드를 르블랑이 압박하고, 포탑이 깨진 탑으로는 미니언 웨이브가, 봇라인에는 본대를 전진시켰다. 하지만 포탑 앞에서 페이커의 오리아나가 EDG의 3명에게 충격파를 적중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분위기가 묘해졌다. 물론 아직 공격 아이템이 부족한 오리아나의 궁극기이기에 체력 피해가 높진 않았지만, 위기를 느낀 메이코가 뒤늦게 점멸을 사용하면서 이후 교전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래도 충격파와 트위치의 궁 연계 위협이 사라진 만큼 2차 포탑은 수월하게 밀어냈고, 대치 상황에서 마오카이의 궁극기를 통해 억제기 앞 타워까지 밀어낸 EDG는 억제기까지 파괴하고 뒤로 빠지며 드래곤까지 획득하게 된다. 양 팀의 골드 격차가 7천 가까이 벌어지며 최대를 기록했던 순간이 바로 이때였다.




▲ 이불에 용권선풍각을 날릴 정도의 흑역사 기록의 현장


그러나 루난의 허리케인, 무한의 대검에 이어 광전사의 군화, 열정의 검으로 공격 속도도 확보된 뱅의 트위치는 한타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고, 페이커의 오리아나는 아이보이의 트리스타나만 집중적으로 마크했다.

이미 한 주 전에 1만 골드의 역전을 당했던 EDG는 바론 버프도 사라진 상황에서 이 이상 밀고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동안 주도권은 EDG가 가지고 있었지만 한타에서의 유지력과 광역 피해는 SKT 쪽이 훨씬 강력했고, 트위치의 궁극기가 켜지고 오리아나의 궁극기가 터지면 몰살당할 위험도 있었다. 아니, 차라리 그 전주에 패배 경험이 없다면 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대치전을 이어가며 운명의 30분을 맞게 된다.


■ 재현된 지난 주의 악몽

30분이 되자 주전장은 SKT의 미드 억제기 앞이 되었다. 바론이 부활할 시간이 가까워졌기에 EDG 입장에선 봇 라인 억제기가 밀린 것에 힘입어 미드 타워, 가능하면 억제기까지 밀어내고 바론을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트런들이 라인 정리를 위해 빠져있던 시간 동안 SKT의 본대는 대치전을 잘 이뤘고, 페이커와 울프가 아이보이의 화력이 발휘되지 않게 견제를 잘 하면서 피해를 최소화 시킨다. 되려 후니가 합류하고, 페이커의 공격에 르블랑이 탑쪽으로 밀려나면서 순간적으로 SKT가 인원 상 유리한 구도가 되었다.

SKT가 치고 나오는 상황에서 추격당하던 EDG도 고개를 돌려 반격하면서 스카웃의 르블랑이 생명력이 떨어진 울프를 저격하려 했지만, 기막힌 팀플레이가 이 순간 펼쳐졌다.



▲ 데자뷰 느껴본 적 있어?


울프는 자신을 물러 들어온 르블랑의 시도를 점멸로 무마하면서, 그라가스가 아군 중앙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을 궁극기로 밀쳐냈다. 후니의 트런들은 기둥을 세워 상대의 트리스타나가 제대로 딜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고, 아이보이가 힘겹게 기둥을 피해 딜을 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했을 때는 울프가 날린 회오리가 딜 손실을 만들었다.

본진과 단절되어 존야로 버텼던 스카웃은 이젠 충분히 화력을 발휘하는 뱅의 좋은 먹잇감이었고, 트런들과 세주아니에게 시달리다가 뒤늦게 진입한 마오카이는 고기 방패 이상이 되지 못했다. 거기에 페이커가 계속해서 후방 라인과 전방 사이에 공을 띄워 놓는 상황이 되자 EDG의 봇라인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상대의 진영을 단절하며 완벽한 각개격파를 성공한 SKT. 이후, 재생된 바론을 먹기 위해 이동하던 SKT를 저지하려다 EDG의 봇 듀오가 끊기며 게임은 급속도로 기울었다. 결국 37분 이후 미드에서 트리스타나가 물리고 시작한 한타에서 EDG가 일방적으로 패배하면서 8강 진출의 꿈이 무산되고 만다.




▲ 불사대마왕을 도발한 자의 최후.jpg



■ 유리한 타이밍이 있었지만... 트라우마에 패배한 EDG

이 경기에서 EDG의 패인은 무엇일까? 객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성장 기대치가 높은 SKT의 조합을 상대로 스노우볼을 크게 굴리지 못하고 시간을 줬다고 얘기할 수 있다. 트위치가 루난의 허리케인과 무한의 대검을 확보한 이후로는 궁극기가 무서워 싸움을 할 수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싸움이 되려면 트리스타나의 레벨이 훨씬 높아서 사거리 경쟁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진짜 원인을 놓고 보자면 지난 주에 있었던 패배의 트라우마가 크지 않았나 싶다. EDG는 경기 내내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스플릿을 하는 오리아나와 트런들에게 인원과 궁극기 등 과도한 투자를 하고서야 킬을 얻을 수 있었다. 남은 SKT의 챔피언을 상대하기 위한 자원을 남겨두지 않다 보니 추가적인 오브젝트 이득을 얻지 못했고, 초반 6분만에 타워를 밀어냈을 때와 달리 중반 이후부터는 상대 2차 타워를 밀어내는 데 주저하는 경향이 컸다. 덕분에 상대는 압박 받는 것 같으면서도 성장을 하는 데 제약을 받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은 봇 라인과 미드 라인의 억제기 앞 타워를 밀 때도 드러났는데, 마오카이의 궁극기를 사용한 후에야 타워를 밀어냈다는 것은 가뜩이나 한타에서 불리한 조합에 더 큰 약점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 킬을 내는 상황도 너무 많은 투자로 인해 추가 이득을 가져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결과가 나온 데에는 SKT의 대응이 좋았던 점도 있다. 이미 C9과의 경기에서 그림같은 백도어로 승리를 거둔 후니가 우직하게 스플릿을 하면서 EDG로 하여금 "본진이 쑥대밭이 될지도 몰라"라는 공포심을 안겨줬고, 페이커는 아이보이의 이동 경로에 계속 공을 띄우며 "거기서 딜 할거야? 나 충격파 쓴다?"라고 협박을 반복했다.

특히 울프의 경우 봇 라인 타워가 파괴되기 전의 갱킹을 비롯해 절묘한 타이밍마다 아이보이의 손발을 꽁꽁 묶는 회오리 적중률을 보여주면서 알리스타나 라칸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왜 세계 최고의 서포터인가를 증명해 보였다.




▲ 울프 : 자신을 노리는 르블랑을 피하고 그라가스를 밀친 후 트리스타나를 띄우면 됩니다. 참 쉽죠?


무엇보다도 SKT는 자신들이 얘기한 것처럼 스스로 느끼기에 "크게 불리한 상황"이 아니었다. 포탑이나 킬을 내주긴 했지만, 그걸 통해 성장과 관련된 가장 큰 자원인 "성장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후반에 페이커의 절묘한 궁극기 활용으로 상대 챔피언들을 끊어낸 후 게임을 바로 끝내긴 했지만, 30분 이후부터의 전개는 그들이 구상한 대로 질 수 없는 조합이 갖춰지게 된 것이다.

울프가 언급한 "5분만에 타워를 내주는 상황"은 가장 최악을 염두에 둔 것이었겠지만, 결국 EDG는 "충분히 이기지 못했"고, SKT는 "허용 범위 내에서 져서" 결과적으로는 SKT가 승리를 거둔 셈이다.


■ 이기는 게 아닌 지지 않는 싸움. SKT는 넉아웃 스테이지에서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지금의 SKT는 LoL이라는 게임을 상대에게서 점수를 얻어내는 게임이 아니라 내가 일정 점수까지 잃지 않으면 이기는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리그 오브 레전드는 킬이나 타워를 깨는 게임이 아니라 넥서스를 깨는 게임이니까.

이는 같은 장르인 도타에서 지긋지긋하게 보인 "인민 도타"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하이퍼 캐리의 뒷심을 믿으며 좀 얻어맞더라도 꾸역꾸역 골드를 모아 결국에 승리하는 패턴이 이것이다. 향로와 원딜 캐리가 강조되는 현 대회 버전에서 중국팀이 유난히 강세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SKT의 플레이가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롱주와 같이 한번 스노우볼을 굴릴 때 거대한 눈사태를 만드는 팀을 상대로 내줄 걸 내주고 자신들이 원하는 플레이를 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LCK 서머 결승전에서 증명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2014년 The Invitational에서 인민 도타 플레이를 시전한 Vici gaming을 상대로 Newbee가 초반부터 빠른 공세를 통해 우승을 따낸 적도 있어서 노골적으로 드러누우려 한다면 그 전에 걷어차일 수도 있다.




▲ 과연 롱주 등 공격적인 팀을 상대로도 이러한 운영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과연 SKT는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남은 일정을 통해 보여줄 수 있을까? 강한 자가 정의가 아닌, 살아남는 자가 정의라는 것은 그들 손으로 입증해야하는 지금, 금요일에 있을 미스핏츠와의 대결에서 더욱 완성도 있는 플레이를 선보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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