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DEC] 히어로즈 속 블리자드 영웅들의 애니메이션, 어떻게 작업했을까

게임뉴스 | 윤서호 기자 | 댓글: 24개 |

블리자드의 캐릭터들이 한 곳에 모인 드림매치,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은 필연적으로 세계관이 충돌하거나, 서로 이질적인 캐릭터들이 뒤엉킬 수밖에 없다.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오버워치 등 블리자드의 게임들을 살펴보면 제각각 분위기도 다르고, 종족 및 세계관의 특성과 그래픽 스타일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한 곳에 모아서 게임을 만든 만큼, 서로 달라도 그것이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작업을 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미 컨셉이 다 잡혀있는 영웅들을 서로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세계 속에 어우러지게 하는 작업은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 라나 바친스키 전 블리자드 수석 애니메이터는 CEDEC 2019 강연에서 블리자드 올스타 시절부터 퇴사하기 전 자신이 작업했던 애니메이션 작업을 예로 들면서 이 과정을 설명해나갔다.



▲ 라나 바친스키 전 블리자드 수석 애니메이터

캐릭터 애니메이션하면 흔히 캐릭터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만을 연상하지만, 바친스키 애니메이터는 그 이상이라는 것을 먼저 언급했다. 캐릭터가 왜 그런 동작을 취해야 하며, 전투 시에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에 맞는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설계할지, 인게임 외에 트레일러에서 그 캐릭터가 어떤 모션을 취해야 하는지, 이런 것도 캐릭터 애니메이션의 영역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특히나 히어로즈라는 게임은 단순히 캐릭터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각자 개성이 뚜렷한 세계관 속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던 캐릭터들이 시공의 폭풍이라는 공통된 공간에 모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를 꿈의 전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애니메이터의 입장에서는 그리 쉽지는 않은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블리자드의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각자가 너무 다르다. 예를 들어 리리와 메피스토를 비교해보면 추구하는 방향이 극명히 갈린다. 뿐만 아니라 원작에 없던 컨셉의 스킨까지 추가되면서 세계관의 충돌은 더욱 더 잦아졌다. 그런 케이스가 한두 가지가 아닌 만큼, 이 모든 것을 한 곳에 녹여내는 것은 그만큼 힘든 작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 리리와 메피스토는 포인트가 전혀 다른데, 이 둘이 같은 세계관에 합류하게 됐다



▲ 심지어 원작에 없던 컨셉의 스킨들도 추가되면서 더욱 고려할 게 많아졌다

그 다양한 캐릭터들을 한 곳에 녹여내기 위해서 블리자드에서 우선 고려한 것은 비주얼 밸런스를 갖추는 것이었다. 다만 그 말이 곧 모두 똑같은 스타일을 갖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캐릭터의 특성을 살리되, 그것을 시공의 폭풍이라는 공간 속에서 다시 녹여낸다는 의미였다.

바친스키 애니메이터는 실제로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라이브로 적용하기 전에 약 3, 40개의 러프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이를 대입해본 뒤에 폴리싱할 것을 골라내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효과를 입혀보는 작업이 이어진다.

가장 먼저 작업했던 것은 빠른 매칭에서 준비 자세 애니메이션이었다. 1초 정도의 짧은 애니메이션이었지만, 이 시퀀스 작업도 단순히 동작만 넣은 것은 아니었다. 그 캐릭터만의 특징과, 캐릭터가 전투를 준비한다는 느낌을 넣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떄 가장 실패했던 케이스가 초반의 누더기 준비 애니메이션이라고 꼽았다. 단순히 칼을 뒤로 젖히는 모션이었는데, 이 모션은 너무 단순해서 어떤 특징도 없었기 때문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손을 단순히 뒤로 축 늘어뜨린 모션처럼 보여서 준비 자세의 느낌도 들지 않았다.

바친스키 애니메이터는 블리자드에서 있을 당시, 애니메이터들은 단순히 인게임 애니메이션만 설계한 건 아니었다고 밝혔다. 인게임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프리렌더링, 애니메이션, 프로모션 영상 등에도 참여하는데, 그 과정이 캐릭터와 게임 전체의 맥락을 어떤 식으로 구현하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지 못했던 결과물의 사례로 자가라 트레일러를 예로 들었다. 단순한 캐릭터 애니메이션 관점에서 봤을 때 자가라의 트레일러는 평균 이상이다. 성우의 연기도 수준급이고, 엔터테인먼트적으로 필요한 요소는 갖췄기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2의 트레일러를 통해 군단과 연결된 자가라의 존재를 어필하려고 했고, 스킬에 대한 묘사도 갖춰져 있어서 유저가 자가라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바친스키 애니메이터는 이것이 시공의 폭풍 속의 자가라를 살리지 못하고 스타크래프트2에 있던 자가라를 억지로 끼워맞춘 것에 불과했다고 평가했다. 에셋을 보면 대부분 스타크래프트2의 것을 활용했으며, 시공의 폭풍 속에서 등장하는 자가라의 모션은 지극히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자가라는 정면에서 드러나는 씬 대부분에서 팔을 쭉 펴고 서있는 자세만 취하고 있고, 인게임 화면에서 짤막하게 스킬을 쓰는 걸 보여주는 것 외에 딱히 인상적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 스타크래프트2의 에셋을 끼워넣은 것 외에 시공의 폭풍만의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처음에 만들었을 때는 무난히 넘어갔지만, 점점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계속 비판적으로 보고 솔루션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솔루션은 문제가 된 파트에서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좀 더 폭넓게 게임 전체적인 관점에서 진행됐다. 처음에 히어로즈의 애니메이션을 설계하는 6주 동안 캐릭터 애니메이션의 기본 틀을 다듬었다면, 2주 동안에는 세계관을 통합해서 체크하면서 원칙을 재정립하는 단계였다.

히어로즈의 캐릭터 애니메이션 제작 당시, 팀의 목표는 크리에이티브한 애니메이션을 가진 영웅을 만드는 것이었다. 크리에이티브가 퀄리티를 바꾸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원칙이 없으면 중구난방이 되기 때문에, 이를 다듬을 필요가 있던 것이다.

이 원칙에는 플레이어가 어떻게 느끼고 있으며, 또 애니메이터가 어떻게 느끼는가가 반영이 되어야 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그때는 이미 원작들이 다 갖춰진 상황에서 그 요소들을 뽑아서 오는 만큼, 어떤 요소를 넣을 때 다른 캐릭터들에게는 위화감이 없는지, 해당 캐릭터의 원작에는 없는 동작이지만 원작 캐릭터에 있는 동작이라면 어떻게 적용해야하는지도 생각해야했다.

귀환 애니메이션을 예로 들면, 귀환시 채널링 애니메이션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채널링 애니메이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는 채널링 스킬을 시전할 때 다양한 모션이 나오지 않는 만큼, 초창기 히어로즈 귀환석 애니메이션은 케리건이 멀뚱히 서있는 것처럼 밋밋했다.

그러다가 음성 및 서브텍스트, 그리고 그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게 됐다. 뿐만 아니라 탈 것에 탈 때 채널링 애니메이션도 그냥 서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말을 타는 것처럼 모션을 취하게끔 수정이 됐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안두인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뿐만 아니라 하스스톤에서의 이미지까지 도입한 애니메이션을 추가하는 등, 그 바리에이션을 넓혀갔다.



▲ 자가라는 저그의 특성을 살려 멀뚱멀뚱히 서있는 모션에서 땅굴파기 모션으로 변경됐다

이런 작업을 진행하면서 바친스키 애니메이터는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어떤 특정 동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특정 동작뿐만 아니라, 그 캐릭터가 서있거나 혹은 가만히 내버려두는 그 짧은 순간에도 그 캐릭터만의 무언가를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캐릭터의 느낌은 비주얼이 처음으로 제시하지만, 그걸 완성하는 것은 애니메이터의 몫이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옛날 캐릭터들의 애니메이션도 좀 더 역동적으로, 그 캐릭터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수정해나갔다. 케리건은 단순히 서있기만 하지 않고 좀 더 공격적으로 바뀌었으며, 특히 유령여왕 케리건에서는 강력한 사이오닉 에너지를 뽐내면서도 조절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뒤로 젖혔다가 다시 돌아오는 식의 모션을 많이 삽입했다.

인게임 애니메이션과 여러 가지 애니메이션을 조합해서 만들어진 것 중에 가장 잘 된 사례로 크로미 트레일러를 손꼽았다. 우선 자가라 트레일러와 비교해봤을 때, 크로미 특유의 개성이 좀 더 노출이 됐다. 트레일러를 거꾸로 돌리고, 마음대로 편집하는 모습에서 엉뚱하고 발랄한 노움 모습일 때의 크로미와, 시간을 관리하는 청동용 크로노르무로서의 일면을 담아냈다. 그러면서 자가라 때와 달리 기존의 트레일러를 끼워맞춘 것이 아니라, 히어로즈에 맞춰서 일부 편집하면서 비중을 낮췄다. 그 대신 시공의 폭풍 속에서 벌어지는 장면에 컷을 더 할애했다.


크로미처럼 원작 속에서 확고히 정체성을 갖고 있는 캐릭터를 작업하는 것은 비교적 쉬웠지만, 원작에 없던 스타일의 스킨을 캐릭터에게 입히고, 그에 맞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업은 또 다른 공정을 요구했다. 우선 바친스키 애니메이터는 그룹 브레인스토밍을 통해서 서로의 비전을 공유하고, 그 캐릭터가 어떤 포텐셜을 갖고 있는지 체크하는 작업부터 거쳤다고 밝혔다. 그 캐릭터가 원작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어떤 스킬을 갖고 있는지, 그 스킬의 이미지가 어떤지를 마구 이야기하면서 한 데 모아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애니메이터들은 각 요소를 뽑은 뒤, 그에 맞는 애니메이션을 준비한다. 그것을 비디오팀에서는 다양하게 활용하고, 블렌딩해보면서 피드백을 준다. 피드백에는 비디오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에서도 참가하는데, 예를 들면 어떤 애니메이션이 어떤 카메라 앵글로 가야 할지, 어떤 구도에서 버그가 나오는지 등을 체크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애니메이터는 다른 팀과 협업이 필수적인 직군이다. 특히 애니메이터는 작업할 때 일부 직군과 협업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직군과 같이 협업하기 때문에 빠른 커뮤니케이션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직군이라고 설명했다. 어느 한 이슈에서 타임딜레이가 생겨버리면, 다른 곳에서도 타임딜레이가 생겨서 연쇄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원인으로는 각 직군마다 원칙이 다른데, 이것 하나하나가 서로 상충하다보니 딜레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소통 없이 따로 작업하다가 일이 터질 때 협력하는 식으로는 빨리 해결하기 어렵다

바친스키 애니메이터는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TICC(Trust, Iteration, Communication, Commiseration)라는 방식을 언급했다. 여기서 신뢰는 단순히 팀원을 믿는다, 이런 것이 아니라 서로 조금 더 오픈된 마인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다. 바친스키 애니메이터는 다른 팀의 규정이나 해결책에 대해서 오픈된 마인드로 받아들이고,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도록 한다고 부연설명했다.

반복은 프로토타입핑을 하다보면 계속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걸 그냥 넘어가지 않고 프로토타입핑을 반복한다는 취지에서 언급됐다. 애니메이션팀은 기술, 아트팀 모두와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만큼, 커뮤니케이션도 필수라고 손꼽았다. 그러는 과정에서 다른 팀에서 실수를 하거나 오류가 날 수 있지만, 거기에 하나하나 다 충돌하기보다는 앞서 언급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실질적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커미저레이션의 항목이었다.



▲ 프로토타입핑에서 계속 각 팀과 프로세스 간의 검증의 반복, 피드백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애니메이터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자신이 직접 캐릭터의 라이브 액션 비디오를 촬영하는 것을 손꼽았다. 머릿속에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고, 이를 영상으로 표현하는 가장 손 쉬운 방법이 자기 자신의 몸 혹은 소도구를 활용해서 어떤 플로우를 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소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그 캐릭터의 특정 동작의 이미지나 모션에 대해서 새로이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하면서 강연을 마쳤다.






현지시각 9월 4일부터 일본 요코하마에서 세덱(CEDEC 2019) 행사가 진행됩니다. 세덱 현장에서 기자들이 다양한 소식과 정보를 생생한 기사로 전해드립니다. ▶ 인벤 세덱 2019 뉴스센터: https://bit.ly/2lF0i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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