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C2019] '마블 배틀라인' 시나리오 탄생기 - 큰 IP에는 큰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

게임뉴스 | 윤홍만 기자 |


▲ 넥슨코리아 손수현 디자이너

  • 주제: MARVEL 게임 시나리오 탄생기 포스트모템 - 슈퍼 히어로의 스토리텔링
  • 강연자 : 손수현 - 넥슨코리아 / NEXON KOREA
  • 발표분야 : 게임기획
  • 권장 대상 : 게임 디자이너, 시나리오 라이터
  • 난이도 : 사전지식 불필요 : 튜토리얼이나 개요 수준에서의 설명


  • [강연 주제]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와 같은 영웅들부터 타노스와 같은 우주 최강 악당까지! 마블 캐릭터들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두근거리신다면 여길 한 번 봐주세요!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캐릭터들이 이제 내 펜촉 끝에서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인가?! '마블 배틀라인'의 게임 시나리오 제작 과정을 소개합니다.

    게임 업계에 있어서 IP의 위력은 엄청나다. 국내에서만 인기를 끈 IP라고 해도 그럴진대 그게 마블처럼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IP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주어진다고 했던가. 마블 IP 역시 그렇다.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IP인 만큼, 신경 쓸 것투성이다. 단순히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게 다가 아닌 마블의 정체성도 유지해야 한다.

    특히, 시나리오는 더욱 민감하다. 마블 IP의 핵심이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마블이 정립해온 히어로상이나 설정을 변경하는 시나리오 같은 건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시나리오는 집필하는 것만 해도 마블의 검수를 받아야 해서 몇 배나 걸릴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블 배틀라인'은 과연 어떻게 시나리오를 집필할 수 있었을까? '마블 배틀라인'의 시나리오를 담당한 손수현 디자이너의 얘기를 들어보자.

    * 본 강연은 독자분들의 이해를 위해 강연자의 시점으로 작성됐습니다.



    ■ 마블 IP로 게임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선? - IP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




    처음 '마블 배틀라인'을 개발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모두 달콤한 유혹을 느꼈다.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그 마블 IP로 게임을 만들 수 있다니 얼마나 신이 날까 싶은 거였다. 시놉시스도 재빨리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마블에게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첫 시놉시스는 행크핌 박사가 영웅들의 능력을 빌리는 장치를 개발하는데 로키가 이 장치를 탈취하고 인피니티 스톤을 부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방식이었다. 장치와 인피니티 스톤이 터지면서 영웅들의 능력이 카드로 변해서 이걸로 싸운다는 당위성을 부여했다. 그런데 시놉시스를 설명하니 마블 쪽에서 안된다고 했다. 왜 그런가 했는데 인피니티 스톤은 절대 부서지지 않아서 이 시놉시스는 잘못됐다는 거였다. 솔직히 그 얘기를 듣고 좀 위축됐다. 시놉시스를 새로 짜기가 겁난 거였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블에 어울리는 새로운 시놉시스를 작성했는데 다행히 통과되면서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도중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았는데 코믹스를 보니 인피니티 스톤이 부서진 적이 있어서 그걸 보고 황당하기도 했다. 진작에 알면 좋았을 걸 싶었다.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간 '마블 배틀라인'은 게임을 하면서 만화책을 읽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이걸 시나리오에도 녹이려고 했는데 쉽지만은 않았다. 마블을 만족시킬 고퀄리티의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고퀄리티 시나리오를 짜기 위해선 IP에 대한 이해와 관심, 그리고 최적화된 작업 프로세스 두 가지 요소가 성립해야 했다.

    IP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사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모두 마블 IP를 좋아했으니까. 그래서 스토리를 짜는데 가볍게 생각했는데 간과한 게 있었다. 북미 코믹스는 우리가 흔히 보는 일본 만화와는 이야기 전개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거였다. 일본 만화는 1권을 읽고 2권을 읽으면 된다. 매끄럽게 스토리가 연결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북미 코믹스는 그렇지 않았다.

    시빌워를 예로 들자면 시빌워 1권과 2권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도중에 다른 시빌워 관련 코믹스를 읽어야 누락된 스토리를 알 수 있다. 대충 찾아보니 30권에 달하는 시빌워 관련 코믹스를, 그것도 순서대로가 아니라 왔다갔다하면서 읽어야 이해가 되는 수준이었다. 특이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어벤져스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닥터 스트레인지 각각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와중 시빌워라는 하나의 사건이 터지면 모두 이쪽으로 스토리가 우회되는 식이었다.




    여기서 알아야 할 건 우리가 '마블 배틀라인'의 스토리를 짤 때 이런 방식을 녹일 필요가 있었다는 거다. 물론, 방대한 스토리를 모두 살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런 특징은 우리도 살려야 했다. 이렇게 IP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커지자 바꿔야 할 점들이 눈에 띄었다. 북미 코믹스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했더라면 파악하지 못했을 문제점이었을 거다.




    한 차례 크게 문제점들을 수정하자 이어서 다른 고민거리가 생겨났다. 캐릭터 간 대사와 어투를 어떻게 할지 였다. 팔콘과 스파이더맨이 만나면 서로 존댓말을 할까 반말을 할까? 화법은? 단호한가? 장난기가 가득한가? 고민의 연속이었는데 우리는 그냥 무작정 부딪혀서 해결했다. 코믹스를 왕창 읽고 전문 번역가의 감수를 받았으며, 데이터 베이스를 통해 최적의 어투를 찾아냈다.

    이외에도 캐릭터의 호칭을 정하는 것도 꽤나 고민스러웠다. 아이언맨의 호칭은 아이언맨, 토니, 미스터 스타크 등 다양하다. 물론 이것들은 국내 유저들에게도 익숙한 호칭일 거다. 워낙 유명한 히어로니까. 그런데 비주류 히어로의 경우는 어떨까? 그들도 다양한 호칭이 있는데 유저들이 헷갈리진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한국 버전에서는 히어로명과 이름만 내보내는 식으로 통일했다.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캐릭터들의 동기를 정하는 것도 어려웠다. 코믹스에서 타노스가 세계를 파괴하려는 이유는 영화와는 다르다. 고민 끝에 그래도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 속 타노스를 게임에 녹여냄으로써 북미 코믹스의 맛을 살리는 동시에 대중성을 확보했다.






    ■ IP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끝이 아니다! - 퀄리티를 책임지는 작업 프로세스




    IP에 대한 이해와 관심으로 게임을 개발한다고 해보자. 이때 중요한 게 바로 작업 프로세스다. 한두 명이 개발하는 게 아니기에 한쪽에서 멈추면 전체적인 작업이 멈추게 되고 결국은 게임 퀄리티에도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마블 IP의 작업 프로세서는 대략 이렇다. 우리가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마블 작가에게 전달하면 작가가 판단 후 마블에게 넘겨준다. 이후 마블에서 시나리오에 대한 의견을 주면 그걸 우리가 반영하고 수정, 다시 마블의 검수를 받은 후 한국어화하는 식이다. 시나리오를 짜고 한국어화하는 데만 6단계의 검수가 들어가는 셈이다. 만약 중간에 검수를 통과하지 못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나리오를 짜야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도 시나리오를 짜는 데만 검수를 포함해 3~4개월의 시간이 걸려서 고생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검수가 게임의 퀄리티를 올린 건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스토리 진행 방식의 경우 사건이 터지고 유저가 배경 A에서 어벤져스와 만나 조사하다가 보스전을 치르면 배경 B로 이동하고 여기서 토르를 만나서 또 다른 보스전을 치르는 식으로 기획한 게 있었다. 이 시나리오의 경우 흐름을 따라가긴 쉬웠으나 전개가 너무 단조롭다는 단점이 있었다. 여기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어려웠다. 사건이 터지고 어벤져스가 첫 번째 보스를 처치하는 동안 왜 토르는 아무것도 안 하고 유저를 기다렸느냐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시나리오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바꾼 시나리오는 사건이 터지면 히어로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움직이는데 중간에 유저와 만나서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니 앞서 시빌워를 설명한 것처럼 큰 스케일로 마블 코믹스의 이벤트를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러 사이드 스토리를 동시에 전개하기에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주인공인 유저가 아니라 히어로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진다는 부작용이 있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이걸 고려해서 수정했다. 스케일은 유지하면서 복잡하진 않도록 고려했고 그 결과 보스를 처치하면 사건이 확대돼서 다른 영웅에게 영향을 끼치는 식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하니 코믹스와 비슷한 스케일로 가면서 등장인물의 복잡도가 훨씬 떨어졌다. 마침내 원하는 형태의 시나리오를 짠 거다.






    ■ 마블이 되어가는 과정을 거치다 - 절반으로 준 검수 기간




    이런 작업이 계속되자 이제는 검수에 걸리는 시간도 훨씬 짧아졌다.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작가에게 전달, 공동 논의하는 데만 2개월이 걸렸던 게 이제는 1개월로 단축됐다. 여기에 마블의 검수 역시 처음에는 일주일이 걸리던 게 이제는 하루 이틀로 줄었다.

    게임을 만들수록 마블 IP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지고 결국 이게 개발 기간을 단축하는 결과를 불러온 거다. 그리고 마블과도 친숙해져서 이제는 마블 쪽에서 스토리에 직접 관여하기보다는 힌트를 던져주는 식이 됐다. 처음에 굉장히 힘들었는데 그 고생이 인정받은 거다.

    하지만 아직도 숙제는 남아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마블 트랜드를 게임에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계속 신선함을 줄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다만, 숙제만 남은 건 아니다. 희망적인 부분도 많다. 여전히 마블 IP를 사랑하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는 영화와 비교할 때 영화에서 다루지 않은 캐릭터와 사건을 담기가 쉽다는 거다. 앞으로 이런 장점을 연구해 마블 IP의, '마블 배틀라인'의 매력을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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