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각본명: 게임장애 그 후...

기획기사 | 이두현 기자 | 댓글: 22개 |



게임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핵전쟁, 대규모 자연재해 및 전염병 때문에 문명이 멸망한 후의 세계를 그리는 장르다. 물을 마실 때도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았나 걱정할 만큼 상황은 극도로 절망적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소재로 게임을 만들던 업계는 진짜 그 상황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 말 그대로 게임업계의 재앙이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지난해 6월 18일, 국제 질병 분류 최신판인 ICD-11에 게임장애(Gaming Disorder)를 포함시켰다. 개정은 올해 5월 예정된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 WHA)에서 발표될 계획이다. 이후 2022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우리나라에는 2025년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지난해 3월 통계청은 2020년 7월 예정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개정에 ICD-11 기준을 적용하지 않을 거라고 밝혔다. KCD는 5년 단위로 개정이 이루어진다.

보류됐다고 게임 업계가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새로운 질병분류체계는 2022년 1월부터 효력이 있고 주무 부처는 통계청이지만, 보건복지부가 빨리 대응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박 장관은 "WHO에서 게임장애 질병코드 등록을 확정하면, 우리도 곧바로 받아서 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이어 최도자 의원은 과거 신의진 의원, 손인춘 의원처럼 '중독세'를 언급한다. 최 의원은 사행성 산업이 전년도 순매출액의 0.35%, 담배산업이 부담금을 내는 것을 근거로 "게임업체에 예방치유부담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스트 게이밍디스오더'의 시작이다.

※ '포스트 게이밍디스오더'에서 예상되는 이야기와 가정은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이장주 소장(심리학 박사)에게서 조언을 구했다. '포스트 게이밍디스오더'는 게임장애 질병등록 그 이후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포스트 게이밍디스오더(Post GamingDisorder)
각본명: 게임장애 세상

※본 영상은 지하철 2호선에 송출했던 광고를 인벤이 직접 촬영한 것으로,
주변 소음으로 인해 음향이 제거됐습니다

'포스트 게이밍디스오더' 세계에서 게임중독 관리는 보건복지부가 맡는다. 관리를 맡은 복지부는 게임장애 대책을 세우기 위해 조직을 설립한다. 가칭으론 '게임장애대책본부'다. ICD 등재 이후 KCD 개정, 게임장애대책본부 설립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과거 게임사가 진흥법과 규제 철폐를 주장할 때 뜨뜻미지근한 정부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새롭게 생긴 게임장애대책본부(이하 본부)에 그동안 게임중독의 위험성을 주장해온 정신과 의사가 1대 본부장에 오른다. 복지부의 예산이 본부에 투입되면서, 여론의 관심이 쏠린다. 본부장에게 가장 중요한 책무는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주는 것. 본부는 게임중독에 빠진 청소년이 몇 명이고, 위험군에 속한 아이들은 또 얼마나 되는지를 알린다. 이 통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와 의견들이 나오지만, 금새 사그라든다.

그리고 본부는 게임사의 책임론을 주장한다.

게임 관련 연구자와 학계는 반발한다. "WHO의 게임장애 질병등록에 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인디씬과 중소규모 개발사 대표들은 모여 성명서를 발표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 대형 게임사들은 여전히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본다. 대형 게임사의 행동은 반대 목소리를 내줄 단체와 학회에 예산을 지원하는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이제 게임중독의 근거는 "WHO에 따르면"이 됐다. 이 말은 곧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처럼 쓰인다. 게임장애대책본부도 WHO를 근거로 게임중독에 관한 대책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논리를 내세워야 할 주체가 바뀐다. 이제 게임업계에서 '게임장애가 질병이 아닌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없는 걸 없다고 논리적으로 주장하기란 어렵다. 게임장애의 근거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아니라는 근거도 명확하지 않다. 큰 문제는 WHO의 운동장이 의학계라는 점이다. 의사가 부족한 게임업계의 목소리는 WHO의 운동장에서 공허하다.

이제 본부는 우리나라 모든 게임사의 사명과 서비스 중인 타이틀을 목록화하고 관리하기 시작한다. WHO가 근거라 해도, 교육용과 부모와 아이가 함께 하는 유아용 게임은 중독세 납부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상식이다. '뽑기' BM이 들어간 모든 게임이 목록에 오른다. 이제 본부는 '무엇을 빼고 무엇을 넣을지' 같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질병은 곧 혐오감을 불러일으킨 다는 것도 문제다. 본부는 "게임 중독에 빠져 일상생활이 힘든 사람들을 위한다"라고 한정적으로 말할 것이다. 하지만 '질병'이라는 딱지는 사람들의 기저에 '게임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깔게 한다. 조류 독감이 들면 치킨을 멀리하는 거처럼.

그리고 게임에 대한 혐오는 게임사에 대한 혐오, 그걸 만드는 개발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 게임산업 진흥은 문체부, 관리는 복지부?

게임중독을 선제적으로 막기 위해 '허가제'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게임사가 현재 서비스 중인 모든 게임에 대해 '게임중독 예방 전문가' 또는 보건복지부 지원의 '감사'를 받아야할 수 있다. 이를 해외 게임사에게도 모두 적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역차별 문제도 불거질뿐더러, 청소년 '셧다운제'와는 차원이 다른 규제가 된다.

청소년 셧다운제는 게임사에게 대응법을 요구했다. 대응하지 못한 대부분의 중소게임사가 나가 떨어졌다. 여기에 중독세가 추가된다면, 중소게임사는 지금보다 더 힘겨운 상황이 된다. 만드는 게임마다 중독성 여부에 대해 감사를 받고, 패치 때마다 눈치를 봐야한다.

그리고 무료 게임은 과거의 유물이 될 수 있다. 영화 상영에는 '영화진흥기금'이라는 게 있다. 어떤 영화든 일부를 기금으로 내야 한다. 만약 공짜로 영화를 보여준다면, 영화사가 관객을 대신해 기금을 내야 한다. 유저마다 중독세를 감당하게된 세상에서 무료 게임은 더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은 "누군가 창고에서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있을까 두렵다"라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문화 산업 수출액을 이야기할 때 바지지 않는 게 '게임이 절반 이상'이었다. 하지만, '포스트 게이밍디스오더'에서 이 말들은 게임업계에서 안 쓰일지도 모른다. 게임 스타트업이 더이상 나올 수 없는 환경이니까.


부두(Voodoo)같은 게임장애
게임장애, 단어를 만들어 쓰면 진짜가 된다



피암시성은 세뇌의 힘으로 설명할 수 있다. 병이 없는데, 있다고 믿으면, 진짜 병에 걸리고 몸이 아프게 되는 효과다. 부두교에서의 주술과 비슷한 원리다. 일례로 잘못된 취조 과정에서 "네가 그 자리에 있었고, 범인이지?"라고 수없이 주입하면,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도 '내가 정말 그런 건 아닐까?'하고 착각할 수 있다.

게임장애가 질병이 되면, 이전까지 게임을 해도 문제가 없던 사람들이 스스로 잘못됐다 여기게 될 수 있다. 간혹 게임과 무관하게 나쁜 일로 경찰서에 갔다고 치자. 이때 문제의 원인이 과거에 'GTA5'를 했거나 어제 '배틀그라운드'를 했기 때문이라 여길 수 있다. 실제 게임이 문제라서가 아니라, 인식이 게임을 문제로 치부한다.

학교로 눈을 돌리자. 청소년은 중독으로부터 특별 보호 대상이다. 술과 담배가 대표적이다.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청소년의 게임 현황 조사가 시작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텐센트가 청소년 관리 시스템인 '아동자물쇠(儿童锁)'를 테스트 중이다. 아동자물쇠는 13세 미만의 청소년이 보호자의 인증 하에 게임을 실행할 수 있도록 한다. 적용 대상 게이머는 보호자의 신분증과 가족관계증명서, 인증 동영상을 준비해야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인증을 거치더라도 매일 1시간씩만 게임을 할 수 있으며, 저녁 9시부터 8시까지는 접속이 원천 차단된다.

하지만 청소년에게 게임을 올바르게 즐기는 방법을 알려줘야지 '몰래' 하도록 몰아가서는 안 된다. 문제가 아니었던 것을 문제로 만드는 격이다

앞서 열거한 문제들을 해결한 가장 좋은 방법은 미국이 반대 목소리를 낸다면 생길 수 있다. 과거 동성애와 성전환을 정신병으로 여긴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동성애와 성전환이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갑자기 수준이 오르고 윤리성이 높아져서가 아니다. 글로벌 스탠다드가 바뀌니 우리도 따라 바뀌었다.

게임장애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내에서 게임장애를 주장하는 이들은 지금까지 근거가 빈약했다. 이들이 기다린 것은 WHO의 발표다. WHO가 발표가 이들 주장의 근거가 된다. 그런데 막상 WHO에서 게임장애는 수천 개의 병 중 하나일 뿐이다. 외과, 내과를 비롯해 중요한 질병들이 허다하며, 정신과 질병이란 것들도 수백 개가 넘는다. 과연 게임장애라는 새로운 정신장애를 공식화하는데 어떤 전문가들이 얼마나 참여해 검토했을까? 알려진 바 없다.

그런데 이들이 게임장애를 ICD에 넣고 도장을 찍는 순간, 게임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야말로 '아포칼립스'다. 일례로 PC방은 게임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유저가 어떤 게임을 얼마나 오래했는지 측정해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군대에 가기 싫어 PC방에서 6개월 내내 즐기며 스스로 중독자라 사칭하는 악용 사례도 예상해볼 수 있다.

현재 담배곽에는 흡연의 위험을 알리는 그림과 경고문이 있다. 이와 같은 그림과 경고문을 게임 패키지에서 볼 수 있다. 예방책이라는 이유에서다. 어느날 새로운 콘솔 게임을 하기 위해 패키지를 샀는데, 유저는 패키지에서 '게임장애로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을 볼지도 모른다.



▲ 패키지에 '게임장애' 경고가 붙는다면?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게임장애 세상에선 누가 돈을 버는가?
지금 필요한 건 댐이 아니라 노를 젓는 방법이다

"약을 팔기 전에 먼저 병을 팔아라!"

오래된 제약업계의 모토다. 언론을 이용해 병의 위험성을 부풀리고, 의학계의 세미나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홍보 전략을 구사했다. 이런 상투적인 수법은 게임장애에 그대로 사용되는 듯 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게임장애도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 질병이 됐으니, 이제 게임장애에 특화된 약이 나올 수 있다. 이제까지 정신병리화 과정을 보건데 개연성이 높다.



▲ 항우울증제 '프로작'에 대한 의심은 오래됐다

'포스트 게이밍디스오더' 시대에서 돈은 의사와 제약회사가 번다. 이전까지 부모와 아이가 게임으로 불화를 겪으면 랜선을 뽑든 컴퓨터를 부수던 가정 내에서 풀어나갔다.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면 관련 상담가를 찾아갔다. 그러나 질병이 되면, 이제 부모는 의사에게 아이를 데려가 진단과 처방을 받는다. 가정 내에서 해결할 일이 암을 치료하듯 전문가의 영역이 되버린다. 일례로,

"어떻게 오셨어요?"
"아휴...우리 애가 게임을 많이 해서요"
"아, 얼마나요?"
"몰라요. 유치원 때부터 계속 게임만 하고....숙제도 안 하고"
"혹시 자녀와 게임 때문에 갈등을 겪은 적이 있나요?"
"그럼요. 자주 싸우는걸요"
"아, 그럼 게임중독에 특화된 약을 하나 처방해 드릴게요. 다음에 또 오세요"

-와 같은 일을 접할 수 있다. 의사도 근거가 있어야 진단을 내릴 수 있다. WHO라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이제 의사의 진단으로 게임을 즐기던 아이는 중독자가 되버린다.

약을 처방 받으면 아이가 당장 게임을 안 할 수 있다. 부모 입장에선 아이가 게임을 하지 않으니 중독을 치료한 것만 같다. 하지만, 정신질환 치료제라 불리는 항정신성약물은 오랫동안 부작용을 지적받았다. 잠시 문제의 행동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듯하지만, 오랫동안 약물에 노출된 이들은 한결같이 더 극심한 부작용에 시달렸다. 안절부절 못하거나 무기력한 아이로 바뀌어 버렸다.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상황이다.

아이가 게임을 하는 모습은 부모가 더 잘 안다. 부모는 게임을 하는 아이의 뒤통수만 볼 게 아니라, 같이 화면을 보면서 아이가 지금 뭘 하는지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와의 갈등을 의사가 해결해주길 바라서는 안 된다. 하지만, 게임중독 질병화는 직접 나서야 할 부모가 손을 놓게 만든다.

물이 무서운 세상에서 댐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댐은 언젠가 넘칠 수 있고 무너질 수 있다. 배를 타고 노를 젓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현재 게임은 과거 단순 유흥거리에서 일상생활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게임에서 일어나는 일부 문제를 질병으로 여겨 치료하는 것은 당장 급해 댐을 세우는 것과 같다. 그보다 노를 잘 젓듯 게임을 잘 이용할 수 있는 방법과 이를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


"그냥 게임 좀 하면 안 될까요?"
"지금 뭐 하냐고요? 노는 거예요"





게임에는 여러 타이틀이 있다. 문화수출을 이끄는 선두주자, 온갖 소프트웨어 기술이 접목된 4차 산업혁명의 정수, 청소년 게임중독의 원인 등등. 그냥 재밌어서 시작한 게임인데 정부만 하더라도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이 주목하고 있다.

사실, 게임을 한 판 더 하고 계속하고 싶은 이유는 '재밌으니까'이다. 게임사들은 재밌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한 판 더 하고, 엔딩을 보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게임을 보면 "잘 만들었다"라고 칭찬해줘야 할 일이다.

재밌는 드라마는 내일을 기다리고, 시리즈 영화는 다음을 기대한다. 인터넷 강의 역시 잘 가르치는 것을 기본으로 재밌게 가르치려 고민한다. 그렇다고 드라마, 영화, 인터넷 강의를 중독이란 색안경을 쓰고 보진 않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재밌는 게임은 중독위험 물질로 치부되어 간다.

일각에서는 아이들을 위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성가족부가 친절하게도 번역해준 'UN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아이들은 쉬고 놀 수 있는 권리가 있다(제31조). 195개 국가에서 헌법만큼 중요시하는 게 아동과 청소년이 노는 권리다. 그냥 놀고 싶어서 하는 게임이라면, 오히려 재밌게 하라고 덕담해줄 일이다.

아동과 청소년의 '수면권 보장'을 위해 게임을 제한한다고도 얘기한다. 하지만, 게임을 하며 노는 아이를 걱정하기에 앞서서 학교와 학원으로 밤 10시까지 내몰아지는 상황도 봐야한다. 학교와 학원을 마치고서 겨우 게임 한 판 하려는데 잠이나 자라며 '셧다운제'가 가로막는 것은 너무 안타깝다.

언급한 게임장애 시나리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비약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쩌면 최소의 상황만 이제 겨우 얘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게임장애 질병화가 가져올 미래는 불확실하다. 단순히 의학서적에 'Gaming Disorder'가 처음 새겨졌다는 데 그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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