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헐 소름...'돋는 색다른 공포 게임 8선

기획기사 | 정재훈 기자 | 댓글: 14개 |



저는 공포 게임 부적응자입니다.

뼈와 살이 분리되는 고어 게임들이야 눈하나 깜짝 안하고 하지만,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섬뜩함과 그 침침한 분위기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별 일 없을 걸 뻔히 알면서도 등 뒤로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주륵 흐르는 그 기분은 말로 설명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저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공포'로 분류되는 장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장르'는 이 게임을 할지 안 할지를 판단하게 해주는 기준이 됩니다. 1인칭 멀미 나는 사람들은 1인칭 슈터는 못하고, 지루한 것 못참는 이들은 턴제 게임은 일단 피하듯 말이죠. 그런데 '공포'는 이 모든 시스템에 앞서 표기됩니다. 공포면서 슈팅이고, 퍼즐이고, RPG고 뭐 그렇죠. 이 말은 곧, 시스템에 앞서 '공포' 그 자체가 게임을 할지 안할지 거르는 거름망 역할을 해낸다는 것이죠.

하지만, 공포 게임을 즐기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공감은 못하지만 이해는 하죠. 등뒤로 흐르는 스산함이 몇 시간 넘게 지속되면 아주 죽을맛이지만, 잠깐 지나가는 정도는 여름 무더위 아래서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거든요. 물론, 그와 상관 없이 소름이고 뭐고 눈하나 깜빡 않고 게임을 씹어먹는 공포 게임 전문 괴수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 업무 스트레스가 가장 극심했던 5년 전...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아웃라스트'나 '프레디의 피자가게'처럼 널리 알려진 공포 게임이 아닌, 조금은 색다른 느낌으로 여러분을 섬뜩하게 식혀줄 게임들이죠. 좋은 게임 위주로 찾다 보니 다소 연식이 된 게임들도 있지만 뭐 어떻습니까. 그 시절 공포라고 안 무서운 건 아닙니다. 참고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무서워집니다. 그리고, 그 무서움의 기준은 제가 느끼는 거부감입니다.

※ 하단에 포함될 영상 및 이미지는 공포, 고어 관련 콘텐츠가 포함되어 있으니 시청에 주의 부탁드립니다.

1. 옵저베이션(Observation)
공포 농도: 아주 순한맛
세부 장르: 퍼즐, 어드벤쳐
가격: 26,000원(스팀, 7월 10일까지 13,000원으로 할인)


작년 여름 에픽스토어를 통해 출시되었고, 1년이 지나 독점이 풀리면서 스팀에도 릴리즈된 인디 게임입니다. 사실, 공포라 하기도 좀 뭣한 게임이긴 합니다. 기본적으로 퍼즐 어드벤처 게임인데, 워낙 퍼즐 난이도가 높다 보니 별로 무서울 틈이 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시종일관 등 뒤에 소름이 돋습니다.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 순간은 '미지'를 접할 때라 했던가요? '옵저베이션'은 이 간단한 공포의 공식을 게임 내에 아주 폭넓게 풀어둔 게임입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 알 수 없는 존재, 알 수 없는 메시지, 그리고 머리를 굴려도 알 수 없는 퍼즐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임이 그렇듯 익숙해지면 다 할 만 합니다.

흔히 공포의 매개체로 사용되는 싸이코 살인마나 귀신, 괴물, 좀비 등은 없지만, 어떻게 보면 그 이상의 공포를 주는 게임입니다. 일단 게임의 무대부터 완벽하게 갇힌 우주 정거장이니까요. 저와 같이 본격적인 공포 게임을 접하기엔 심장이 약하지만, 공포 게임에 준하는 스릴을 맛보고 싶은 게이머분들께는 아주 좋은 선택일 겁니다.





2. 배드 드림: 코마(Bad dream: Coma)
공포 농도: 순한맛
세부 장르: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고어 주의!)
가격: 9,500원(스팀, 7월 10일까지 950원(!!!)으로 할인)


손으로 직접 그린 삽화들로 이뤄진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 게임입니다. 할인가 950원이라는 압도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게임이기도 하죠. 게임의 핵심 맥락은 게이머의 선택입니다. 게이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분기가 나뉘고, 굉장히 잔혹한 결말과 그렇지 않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나리오 구성도 꽤 알찬 편이고 게임 볼륨도 이 가격 대비 적지 않은 편이죠.

엄밀히 말하면, '배드 드림: 코마' 또한 죽자고 달려드는 진한 농도의 순수 공포 게임은 아닙니다. 기괴한 분위기와 삽화가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고, 노골적인 고어 묘사가 이를 더하는 정도입니다. 앞서 서문에서 말한 '아웃라스트'나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공포라는 소금을 팍팍 끼얹는 형태라면, 이건 그릇 끄트머리에 맛소금 몇 알 뿌려주는 정도입니다.

공식적인 한국어 지원은 없지만, 유저 제작 한글 패치는 존재합니다. 웬만한 게임들의 리뷰에 '세일하면 사라'는 글이 달리는 것과 달리 이 게임의 리뷰란에는 '정가라도 살 만 하다'라는 리뷰가 빽빽합니다. 그만큼 높은 완성도의 인디 게임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 기사의 취지와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폭력적인 공포는 없지만, 오싹합니다. 하는 내내 오싹해요.





3. 반교 -Detention-
공포 농도: 조금 순한맛
세부 장르: 사이드뷰 2D 어드벤쳐
가격: 13,000원(스팀, 7월 10일까지 3,900원으로 할인)


국내에서도 유명한 'RedCandleGames'의 작품이자, '환원-Devotion-'에 앞서 제작된 게임입니다. 1950년대, 장제스 치하의 대만을 배경으로 한 학교에서 일어난 비극을 소재로 하고 있죠. 참고로 당시의 대만은 정치적으로 매우 경직된 상황이었습니다. 이 당시 정치적 탄압으로 사망한 이들만 4천 명이 넘고, 행방불명, 처벌자는 14만 명에 달합니다.

'반교'의 특징이라면, 자극적이고 기괴한 연출로 강제적 공포를 야기하지 않고, 다양한 메타포와 좋은 시나리오를 통해 비교적 조용한 공포를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공포 게임이라면 일단 학을 떼고 보는 사람들이라도, 어떻게 게임을 시작하게 되면 이를 악물고 게임을 계속 하게 만드는 높은 몰입도를 보여주는 게임이죠. 이게 무서울 수 있나 싶은 사이드뷰 시점으로도 연출을 기막히게 활용해 공포의 농도를 조절했다는 점 또한 반교의 특징입니다.

소개해드릴 다른 작품들과 달리, 동아시아의 색채가 진하게 묻어난다는 것도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생판 듣도 보도 못한 악마나 물 건너온 귀신보다는 익숙한 동양적 공포가 저희에겐 더 가슴저리게 다가오니까요. 워낙 바탕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높은 관계로 대만 현지에서는 영화화도 이뤄졌고, 역시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공포 알러지만 없다면 일단 살 만한 게임이라는 뜻이죠.





4. 패시파이(Pacify)
공포 농도: 양념 따라 다르다
세부 장르: 1인칭 어드벤쳐
가격: 5,500원(스팀, 7월 10일까지 3,850원으로 할인)


'초자연적 현상 도우미' 라는 고스트버스터즈 느낌의 기업 요원이 되어 폐가 수색을 나선다는 기이한 컨셉의 게임입니다. 폐가에는 유령이 날아다니고 있고, 게이머는 이 유령 퇴치를 위해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는 표시된 인형을 수거해 소각해 버려야 합니다. 만약 귀신한테 걸렸다면, 표시가 되지 않은 일반 인형을 건네서 잠시나마 귀신의 분노를 낮출 수 있죠.

당연히, 더럽게 어렵고 무섭습니다. 귀신은 오지게 빠른데다 표시가 된 인형들은 지 멋대로 집안을 돌아다니고, 귀신에게서 숨어 가며 여차저차 인형을 찾아 태워도 걸리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게 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기본 상태의 게임으로는, 하단에서 서술할 매운맛 게임들과 비교해도 결코 꿀리지 않죠. 그런데 이 게임, 협동이 됩니다. 최대 네 명의 플레이어가 동시에 폐가를 들쑤시게 되는데...

귀신한테 쫓겨 괴성을 지르며 뛰어가는 친구, 그 와중에 집 구석에 박혀 멍 때리는 친구, 신들린 움직임으로 귀신을 데리고 노는 고인물 친구까지... 게임의 공포 농도가 급격히 옅어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게임이 쉬운 건 아니지만 말이죠. 정리하자면, 친구가 없는 이들에게는 무섭고, 친구가 많은 이들에게는 즐거운, 묘하게 현실 반영이 되어있는 잔혹한 게임입니다. 저렴한 가격에 꽤 괜찮은 게임성을 갖춘데다 협동까지 되는 '갓'게임이죠.





5. 레이어즈 오브 피어(Layers of fear)
공포 농도: 조금 매운맛
세부 장르: 1인칭 어드벤쳐
가격: 21,000원(스팀, 7월 10일까지 5,250원으로 할인)


앞선 게임들이 시나리오에 기반해 공포를 양념으로 끼얹은 게임들이었다면, 레이어즈 오브 피어는 보다 순수한 공포에 보다 무게가 실린 게임입니다. 스토리 자체는 꽤 평범한 편이지만, 찐한 분위기와 고수준의 연출로 승부를 보는 작품이죠.

게임의 무대는 빅토리아 시대의 한 맨션이고, 주인공은 화가입니다. 게임은 하나의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으로 표현되고, 그 와중 수많은 환각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와중 공포의 농도는 상당히 짙은 편입니다. '암네시아'나 '아웃라스트'같은 서바이벌 호러는 아니기 때문에 긴장이 덜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게임 생각 이상으로 무서울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으로는 크게 조작할 부분이 없다는 겁니다. 퍼즐 난이도도 낮은 편이고 망해서 게임 오버가 될 일도 없기 때문에(대신 분기가 갈립니다) 공포게임 치고는(?) 편한 마음가짐으로 게임에 임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말이 이 게임을 다큐멘터리로 바꿔주지는 않기 때문에 여전히 공포에 대한 긴장은 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참! 2편도 존재하지만, 평가는 영 좋지 않습니다. 1편이 굉장히 고평가받는 작품이니 이 점은 참고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6. 에밀리 원츠 투 플레이(Emily wants to play)
공포 농도: 매운맛
세부 장르: 1인칭 서바이벌
가격: 5,500원(스팀, 7월 10일까지 1,370원으로 할인)


앞선 다섯 작품이 협동으로 공포를 연하게 만들거나, 직접적인 공포 강요보다 메타포의 활용으로 공포를 표현했다면, 이 게임은 대놓고 "넌 무서울 것이라"라고 말하는 농도 짙은 생짜 공포 게임입니다. 앞서 소개한 '패시파이'와 같은 개발사가 만든 작품으로,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 6시간 동안 생존하는게 목표인 게임이죠.

이쯤 들으면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생각나실 겁니다. 실제로 게임의 컨셉 자체는 유사합니다. 다른 점이라면, 이 게임의 주인공은 그저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 생이고, 배달 갔다가 현관문이 잠겨서 갇혀 버렸다는 것. 그리고 CCTV나 컨트롤 룸이 없어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버텨야 한다는 점입니다.

6시간 동안, 게이머는 각각의 퇴치법이 있는 네 종의 인형과 맞서게 됩니다. 움직이지 말거나, 움직이거나, 눈을 마주치거나, 제한 시간 내에 불 꺼진 집 안에서 찾아내야 하는 등이죠. 당연히, 둘이 한 번에 나올 때도 있습니다.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이면 안되는 녀석이 나올 때의 절망감이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도전부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이 게임 또한 2편이 있긴 합니다만, 1편의 평가가 더 좋습니다.





7. 러크 인 더 다크(Lurk in the Dark: Prologue)
공포 농도: 불지옥맛
세부 장르: 1인칭 어드벤쳐
가격: 무료(프롤로그 버전)


아직 본편은 개발조차 다 되지 않은 게임이지만, 1시간 분량의 프롤로그만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은 '찐' 공포게임입니다. 수많은 공포 게임 개발 노하우가 쌓인 일본 게임답게, 분위기부터 일단 먹어줍니다. 살짝 엿본 게임 속 모습은 공포라는 코드에 걸맞는 모든 아이템을 모아서 주무른 다음 적당한 모양새로 깔아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끝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게임의 특징은 딱히 말할 게 없습니다. 매우 일반적인 형태의 1인칭 어드벤쳐 게임이고, 우리는 이와 같은 게임을 수도 없이 봐왔으니까요. 굳이 말하자면, 명치에 스트레이트로 날아오는 공포스러움입니다. 은유, 암시, 분위기, 뭐 그런 좋은 수단 많지만 여기서는 굳이 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더럽게 무서운게 굉장히 노골적으로 내려와 꽂히는 그런 기분입니다.

이 프롤로그로 관심을 끌어 후원을 받아 본편을 제작하겠다는 개발사의 목적은 성공했습니다. 지난 4월, 다음 챕터와 업데이트에 대한 로드맵이 올라왔으니 말이죠. 앞서 공포 게임을 잘 못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게임 하고 더 못하게 됐습니다. 이제 남은 여생은 좀 편하게 살아볼까 합니다. 저도 가족이 있는지라 건강을 생각해야 하거든요. 그만큼 치명적이었습니다.





8. 프로틴 포 머슬(Protein for Muscle)
공포 농도: 보충제맛
세부 장르: 1인칭 액션
가격: 2,200 원(스팀)


게임은 심플합니다. 비오는 헬스장에 숨어들어 단백질 보충제 20통을 훔쳐오면 됩니다. 몇 가지 문제는 이 어두컴컴한 헬스장에 단백질 냄새를 기가막히게 맡는 근육질 경비원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경비원들이 팬티만 입고 빛나는 젖꼭지를 들이댄 채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달려온다는 겁니다.

웃자고 산 게임이 죽자고 무섭습니다. 공포게임 주제에 그 흔한 피 한 방울 볼 수 없는데, 무표정한 얼굴로 마치 호랑이를 위협하듯 두 팔을 하늘 높이 든 채 달려오는 근육맨은 상상 이상의 공포를 줍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 게임을 보고 나서야 일단 사람이 세 보이려면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걸 깨달았습니다.

어릴적 어두운 곳에 숨어 있다가 동생을 놀라게 하는 장난을 가끔 치곤 했는데, 만약 그때 제가 3대 500을 치는 근육맨이었다면 동생이 아직도 절 피할 겁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게임을 생각한 걸까요? 그러고 보니 오늘 운동 가는 날인데 아...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