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포켓몬 GO, 게임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편견'을 깰 수 있을까?

칼럼 | 정재훈 기자 | 댓글: 56개 |




"뭔가 음침할 것 같고…. 밖에 잘 안 나가지 않아요?"

"그 사람들은 그 안에서 사는 거잖아요. 뭔가 소심해 보이고 대인관계도 별로 좋아 보이진 않아요."

"건강도 별로 안 좋을 것 같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을 것 같은 느낌?"


지난 몇 년간, 사람들에게 '게이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들었던 말들이다. 뭐 오래전 기억도 섞여 있다 보니 정확히 저렇게 말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 뉘앙스만큼은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게이머'라는 소비 집단은 그렇게 반가운 대상은 아니었다.

물론 저 생각이 옳다고 볼 수 없는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물론 저런 사람이 존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게이머들은 게임에 관심이 없는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들 문제없이 직장에 다니고, 다른 이들과 소통하며 살아간다. 게이머 또한 인간이다. 인간이라는 집합 안에 수많은 부분집합이 존재하듯, 앞서 말한 '편견'에 맞는 대상들은 게이머 중에도, 또 다른 인간 군상 속에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저런 말을 들었을 때, 난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게이머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아직 곱다고 할 수 없다. 내 잘못도, 그의 잘못도 아니다. 오래전부터 국내 언론은 '게임'을 비롯한 여러 놀이문화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보내왔고, 언론의 시선은 곧 대중의 시선이 되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만화'가 그 시선 속에서 불태워졌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웹툰'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만화 산업이지만, 스마트 기기가 보급되기 전까지 수십 년은 한국 만화계에게 있어 암흑기와 같았다. 비단 내 생각이 아니라,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는 현실이었다.



▲ 그나마 게임은 오래 버텨왔다. 별로 다르진 않았지만...

만화에 비하면 게임은 비교적 덜한 편이긴 했다. 지금에서야 국내 게임업계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과거의 영광이 엇갈리면서 부정적 시선이 쏟아지고 있지만, 게임산업 자체는 마치 갓 쇳물을 부은 용광로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도가니와 같았다. 종사자의 수에 비해 산업의 규모는 컸고, 국가에서도 이를 어느 정도 의식한 듯 게임에 대한 긍정적 견해를 밝히는 정치인들도 심심찮게 등장하곤 했다.

문제는 게임에 씌워진 '프레임'이었다. 단순히 '오락거리'라는 이유 때문에라도 게임은 대중 사이에서 딱히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왜 우리나라가 '노는 것'에 관대하지 못한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아마 더 많은 사회학적 성찰과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대중의 정서 자체가 '노는 것'을 죄악으로 취급한다는 것은 게임에 있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게임은 나쁘다', '게임은 아이의 정서에 좋지 않다', '게임은 방만한 여가활동이다'와 같은 부정적 프레임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다.

이 정서에 편승한 주요 언론의 보도, 소위 '게임 탄압'의 현상을 만들어냈다. 게임은 높은 부가가치를 지닌 산업임에도 '중독 물질'(게임을 물질이라 표현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으며, 가장 위에 써둔 대화가 실제로 오가게 된다. '게임 하는 놈은 폐인', '게임을 하느라 다른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 '게임에 목숨 건 사람'. 게이머들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고, 게이머가 아니라 할지라도 조금만 논리적으로 현실을 살펴본다면 누구나 저 말이 옳지 않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다.



▲ 직접적 규제가 아닌 언론 차원의 탄압은 늘 존재했다

하지만 이 낡은 편견을 깰 방도는 딱히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쓴 내용과 비슷한 취지의 글은 수도 없이 많았다. 게임을 대하는 지식인들의 각성을 요구하거나, 대중의 관대함을 바라는 등 딱히 해결방안이 없는 답답한 현실을 타파하고자 하는 글은 꽤 많았다. 단지 이 모든 글은 실질적으로 대중이 느끼기 어려운, 연구 결과나 조사 자료, 그리고 논리와 현상에 의존한 '글'일 뿐이었다. 첨부 자료가 믿을 수 있건 없건 간에, 거대한 흐름인 대중의 정서를 바꾸기엔 힘이 모자랄 수밖에. 나 또한 어떠한 특별한 계기가 있기 전까지 게임에 대한 대중의 시선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포켓몬 GO'가 등장하면서,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생각들이 다시 지면 밖으로 솟아올랐다. 현재 인터넷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이며,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는 '포켓몬 GO'이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식 출시조차 이뤄지지 않은 게임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이슈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포켓몬 GO'는 놀라운 영향력을 보여주며 문화 트렌드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이 '포켓몬 GO'는, 그간 게임에 씌워져 있던 갖가지 부정적 프레임을 깨부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포켓몬 GO'는 단순한 게임이다. GPS로 근처에 있는 포켓몬을 찾고, 자신이 가진 포켓몬으로 배틀을 하는 게 콘텐츠 전부다. 과거부터 존재했던 원작 포켓몬 게임(포켓몬의 원작은 애니메이션이 아닌 게임이다)의 무대를 현실 세계로 옮긴 것뿐이다. 하지만 그 플레이 과정에서, 게이머들은 대중의 일반적인 '게이머에 대한 편견'과 상반된 행동 양식을 보여준다.




'포켓몬 GO'의 게이머들은 더 이상 집에 박혀 게임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패드와 키보드로 움직이던 필드는 이제 두 발로 걸어야 할 동네다. 밖에 잘 나오지도 않고 게임만 할 것 같다던 게이머들은 아무 불만 없이 밖으로 나오고 있으며, 오히려 그 과정을 즐긴다. 앞서 말했듯 그들 또한 사람이다. 그들은 집에서 나오기 싫어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집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 재미있을 뿐, 더 재미있는 게임을 밖에 나와서 한다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정식 서비스가 진행 중인 미국에서는 수많은 포켓몬 GO 유저들이 만나 담화를 나누는 장면들이 그려지고 있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총격전이 일어날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었던 흑인들과 백인 경찰이 한데 모여 포켓몬을 잡는 그림도 나오고 있다. '게이머들은 대인 관계도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추측성 편견에 대한 완벽한 반박사례다. 게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계속 걷고 돌아다녀야 하므로 건강에도 나쁘지 않고, 게임 자체의 재미도 충분하다.

비단 물 건너 이야기만이 아니다. 현재 국내에서 '포켓몬 GO'를 플레이할 수 있는 곳은 강원도 속초와 그 인근이다. 소식을 접한 취재팀이 새벽 택시를 잡아 속초로 가서 겪은 하룻밤 사이의 일들은 너무나도 놀라웠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게이머들, 함께 더 많은 포켓몬을 잡기 위해 즉석에서 길을 나서는 사람들. 직접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현장 취재팀에게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가 이들에게 사교성이 부족하다 했을까?'



▲ 뜻하지 않게(?) 지역 경제를 살리기도 한다(출처: 인벤 유저 'EQ' 게시물)

부정적인 시선이 없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지상파 방송에서는 이미 '포켓몬 GO'의 부작용에 대해 역설하는 보도가 이뤄졌으며, 스마트폰만 보고 다니는 걷는 게이머들을 비판적 시선으로 말하는 의견도 눈에 띄곤 한다. 하지만 이 주장들이 올바른지는 잘 모르겠다. 주요 언론의 비판적 보도는 늘 그래왔으니 그렇다 치고,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는 행위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비단 게이머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물론 나 역시 '포켓몬 GO'가 마치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기적처럼 게임에 씌워진 온갖 부정적 프레임과 편견을 가르고 게임의 가치를 다시 세우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간단한 게임이 게임이라는 문화 매체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주홍글씨를 지워나가는 변혁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간 많은 사람이 게임이라는 놀이 문화에 대한 편견이 옳지 않다고 주장했으나, 그 어떤 게임이 이렇게 뚜렷한 반박 사례를 만들어냈던가.



▲ 시도는 많았지만, 실효는 적었다.

대중의 정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묵직하고 거대한 '굴러가는 돌'과 같다.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그 진로가 바뀌지 않는다. 그저 지금까지 그래 왔듯 묵직하게 직선으로 구를 뿐이다. 하지만 작은 계기라 할지라도, 아주 약간만 방향을 틀어준다면 세월이 지난 후 돌은 원래 가야 할 곳과 완전히 다른 곳에 있게 된다. 아주 조금의 방향을 틀어줄 계기들. 그것을 우리는 '사건'이라고 부르고, 인류는 수없이 많은 사건을 겪어 오면서 지금의 정서를 갖게 되었다.

나는 '포켓몬 GO'의 열풍이 이 '사건'이 되기를 바란다. 게임업계에서 일하며 만난 이들 중에는 아직도 집에 어떤 일을 한다고 말하지 못한 이가 많았다. 그들도 아는 거다. 게임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이 가족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 그런 낡은 편견은 고이 접어 역사 속으로 흘려보낼 때가 되었다. 필요한 것은 그 계기가 될 '사건' 뿐이다.

수많은 편견과 아집이 세계화와 그에 따른 다양성 앞에 무너지고 있는 지금이다. '포켓몬 GO'의 강력한 대중성, 그리고 새로운 게임 플레이 패러다임은 충분히 또 하나의 편견을 무너뜨릴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이 바뀌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후, 게임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지금과는 사뭇 다르게 바뀌어 있다면, 그 시작에 '포켓몬 GO'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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