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류금태 대표, "디렉터 업무의 절반은 '견디는 것'이다"

인터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2개 |



스튜디오비사이드의 류금태 대표는 게임업계에 흔한 개발자 중에서도 꽤 드문 케이스에 속한다. 굉장히 특별한 이유가 있거나 한 건 아니지만, 그가 특별한 건 많은 개발자들이 노력함에도 얻기 어려운 것을 이미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무지막지하게 굉장한 게임을 만들지 않았고, 엄청난 상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유저의 사랑을 얻었다.

개발자와 유저 간의 심리적 간극이 점점 벌어지기만 하는 요즘같은 때 류금태 대표는 유저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물론 그도 천생 개발자이고, 디렉터인지라 욕도 많이 먹었고 힘든 일도 많이 겪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게이머들이 그를 지지하고, 그의 이름만 듣고도 차기작에 대한 기대심을 품는다. 이번 NDC 2019에서 진행된 그의 강연에서는 강연이 끝나고 즉석에서 사인회가 이뤄질 정도였다.

강연이 끝난 후 연단에서 내려오는 그를 만났다. 미리 말해둔 인터뷰이긴 하지만 공교롭게도 작년 4월 24일, 스튜디오비사이드를 방문해 인터뷰를 진행한 이후 정확히 1년 만의 인터뷰다. 막상 잡아놓고 보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차기작에 대해서는 아직 말할 수 있는 부분도 적다 하고, 과거의 이슈에 대해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인터뷰의 초점을 원론적인 부분으로 맞췄다. '류금태 대표'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한 번쯤 이야기를 나눠볼 시간이 아닌가 싶었다.



▲ 스튜디오비사이드 류금태 대표


▶관련링크 : [NDC2019] 류금태 대표의 게임 시장 정글 속 '생존의 법칙'

Q. 만나서 반갑다. 강연은 이번이 처음인가? 굉장히 숙련된 모습이어서 놀랐다.

류금태 대표 : 이런 컨퍼런스에서 강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강연 중에도 한 번 말하긴 했는데 요청이 와도 타이밍 잡기가 꽤 애매하다. 게임을 내기 전에 괜히 강연에 나섰다가 게임이 망해버리면 많이 민망해지고, 막상 게임이 나오면 또 바빠서 강연을 할 수가 없더라.(웃음) 개인적으로 꼭 나와보고 싶기도 했기에 이번에 요청을 받고 열심히 준비했다.


Q. 강연 내용이 꽤 쉬우면서 서브컬쳐를 잘 몰라도 공감하기 쉬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주제를 어떻게 정한 건가? 그리고 첫 강연 치고는 관객이 굉장히 많이 몰렸는데,연단에 올랐을 때 기분이 어땠나?

류금태 대표 :주제를 정할 때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기술적인 부분이나 기획과 관련된 이슈를 다룰까 했는데, 한 시간이라는 강연 시간 내에 이걸 말해 봐야 내 말주변에 얼마나 설명할 수 있을까 싶더라. 괜히 내용을 빨리 풀다가 오해도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서 모두가 쉽게 들을 수 있고, 그러면서도 내 경험을 살릴 수 있는 내용을 주제로 정했다.

연단에 오른 후 관객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NDC 시작 전에 기사를 좀 찾아 봤는데 내 얘기는 하나도 없어서 그냥 적당히만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서브컬쳐는 말 그대로 메이저가 아니기도 하고... 다시 한 번 오늘 강연을 들으러 와주신 분들께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Q. 게임 개발을 시작한 이후, 서브컬쳐 게임 외길 인생을 걸어 왔다. 지금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면 본인의 커리어에 아쉬운 점은 없는가?

류금태 대표 :아쉬운 점이 없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굉장히 운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가 이뤄온 커리어에 만족한다. 나는 내 커리어의 절반 이상은 운이라고 생각한다. 첫 프로젝트에서 내가 원하는 게임을 맡을 수 있었던 것도 운이 좋았고, 그 후로도 좋은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늘 옆에 좋은 분들이 함께했다. 지금의 커리어도 내 능력 이상의 결과라고 생각하니 만족할 수 있다.



▲ 앞으로의 목표는 서브컬쳐계의 킹갓엠퍼러


Q. 본인이 생각하기에 오늘날 의미가 굳어진 '서브컬쳐'라는 소재가 가지는 차별화된 장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류금태 대표 :나는 서브컬쳐의 장점이 '어떤 주제라도 편하게 풀어낼 수 있는 힘'에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 콘텐츠적인 측면에서 서브컬쳐는 '희극'과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서브컬쳐 외적인 부분, 이른바 메이저 문화 시장에서는 진지한 주제는 진지하게 표현해야만 대중에게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가끔은 굉장히 좋은 주제라고 해도, 너무 진중한 접근이 계속되어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서브컬쳐는 기본적으로 예쁘고 귀여운데서 출발하고, 편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어떤 주제든 쉽게 풀어낼 수 있다. 물론, 그 후는 창작자의 몫이다. 진지한 주제의식을 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지금이야 서브컬쳐가 메이저 문화보다 하위에 있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영화도, 만화도 결국 시작은 '저급 문화'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수십 년 후는 또 모른다고 본다.(웃음)


Q. 류금태 대표 본인도 알겠지만, 게이머층의 지지가 대단하다. 본인의 어떤 점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류금태 대표 :사실 내가 특별히 뭔가를 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어쨌거나 디렉터이기 때문에 욕도 많이 먹어 봤고, 때로는 심한 모욕도 당해 봤다. 물론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나도 궁금해서 왜 그럴까 생각을 해 봤는데, 아무래도 서브컬쳐라는 장르의 소비층이 단순 소비보다는 스스로를 투영하는 소비 형태를 보이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서브컬쳐 소재의 작품들은 다른 비슷한 매출 수준의 작품들에 비해 월등한 수준의 유저 피드가 보여진다. 게임이 단순한 게임 이상의 콘텐츠로서 소모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이렇게 지지받는 개발자는 흔하지 않다.


Q. 그러고 보니 전혀 다른 개발사와 퍼블리셔가 서비스하는 '에픽 세븐'의 엔딩 크레딧 특별 감사란에 이름이 있더라. 어떤 연유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나?

류금태 대표 :나도 아직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웃음) 평소 슈퍼크리에이티브의 김형석 대표님과 자주 인사도 하고 친하게 지내는 사이이긴 하다. 게임 개발 관련해서 도움도 주고받고 이야기도 나눈 적이 있는데, 아마 그 때문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직접 물어봤더니 그냥 웃으시고 말더라.


Q. 서브컬쳐 소재의 작품 중 간혹 과도한 수준의 표현이나 묘사로 지탄을 받는 작품들이 있다. 서브컬쳐 게임을 만들어온 입장에서 이런 작품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류금태 대표 :무엇이든 어떠한 판단을 할 때는 각자 개인이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선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 같다. 나 또한 내 안에 어떠한 선이 있고, 그 선을 넘어가는 표현이나 묘사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낀다. 때문에 나는 다른 게임에 대해 직접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적어도 국가의 심의를 정상적으로 통과한 게임이라면, 그 게임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고, 성찰한 사람은 그 게임의 개발자일 수밖에 없다. 게임 내 도덕적 기준에 대한 농담으로 이런 말이 있다. "사람 죽는 건 아무 말도 안 하면서 흡연 장면은 규제한다" 모두의 기준이 다른데, 어떻게 내 기준으로 무언가를 판단할 수 있겠나?


Q. 강연 중 인상깊었던 부분이 꽤 있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일 텐데, 자신을 성찰하기 위한 팁이 있나?

류금태 대표 :그나마 게임은 비주얼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문학과 같이 상상력에 기대야 하는 문화콘텐츠보다는 접근이 쉽다. 나의 성찰 과정은 토대를 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조작하고 싶은 조작감, 내가 원하는 비주얼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이 토대에서 시작해 점점 모습을 구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친다.

중요한 건, 이런 토대가 만들어지는 기반이다.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움직이는 어떠한 캐릭터를 만들 것인가는 모두 내 경험에서 온다. 내가 지금껏 겪은 일들, 감상한 미디어 등에서 얻은 경험이 이리저리 섞여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다. 이것 때문에 문화 미디어만 죽어라 파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다양한 경험은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본다.



▲ 만드는 게임에 대한 성찰은 디렉터의 의무다


Q. '매력'을 설명할 수 없는 그냥 좋은 것이라고 풀이한 부분도 인상깊었다. 그래도 개발자로 일하면서 '매력'에 대한 분석이 없진 않았을 텐데, '매력'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는가?

류금태 대표 :이건 아마 누구도 대답하기 힘든 질문일 거다. 나는 분명 사람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하는 어떤 '스위치'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스위치가 얼마나 있고,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이건 수천 년 간 '문화'라는 개념을 연구해온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찾고 있는 일종의 진리다.

다만, 수많은 경험을 통해 이미 검증된 스위치들은 존재하고, 우리는 이를 '클리셰'라고 부른다. 클리셰는 사람의 카타르시스를 효율적으로 자극하는 일종의 공식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클리셰에 식상함을 느끼지만 계속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Q. 강연 서두에서 '디렉터'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에 대해 말했다. 강연의 주제도 '생존'이라는 꽤 무거운 단어가 중심이었는데, 디렉터라는 자리는 어떤 자리이며 스트레스는 어떻게 이겨내는가?

류금태 대표 :개인적으로 PD와 디렉터의 업무 중 절반은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업무 지시, 결과물에 대한 컨펌 등도 업무이지만, 실제로 업무의 절반은 그냥 견디고 버티는 것이다. 가령, 무언가 지시를 하면 결과물이 나오는 데는 3일이 걸린다. 디렉터는 그 상황에서 3일을 불안하게 버텨야 한다. '결과물이 잘 안 나오면 어쩌지?', '이것 때문에 작품이 망하면 어쩌지?' 나아가서 '그럼 지금 내가 진 빚들은 다 어쩌지'에 이르기까지 오만 불안한 생각이 나를 덮친다.

이 3일의 기다림을 이겨내지 못하는 디렉터는 팀원을 닥달한다. 닥달한다고 결과물이 나올 거였으면 진작에 나올 일이기 때문에 의미 없이 분위기만 해치는 일이지만, 그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고 버티는 것이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닥달하게 된다. 실제로 이렇게 무너지는 디렉터들을 나는 많이 봐왔다.

이에 대한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게임이 나오는 시점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때의 달콤함을 생각하면 하루를 더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동시에 팀원들 또한 내 마음을 알고 도와준다. 우리 게임은 잘 될 거라는 믿음을 주고, 그것이 내가 버티는 힘이 되어준다.

물론 그렇지 못한 팀도 있다. 디렉터부터가 게임의 성패를 자신없어하고, 팀원들은 게임이 망할 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팀들은 대부분 와해되기 마련이다. 다행이라면, 지금까지 나는 프로젝트가 엎어진 적도 없었고, 분위기가 좋지 못한 적도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앞서 말했듯 운이 좋았던 것이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내가 늘 배수의 진을 친 상태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만약 거대 게임사의 많은 팀 중 하나를 맡았다면, 나에게 두 번째 기회가 있었다면 아마 프로젝트가 엎어지기도 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망하면 그대로 끝장인 뒤 없는 프로젝트를 반복해왔고, 때문에 어쩔수 없이 견디는데 익숙해져야 했다.



▲ 인내심과 책임감의 디렉터의 필수 소양이다.


Q. 강연 막바지에서 '좋은 동료'에 대해 길게 말했다. 아마 본인도 주변에 좋은 동료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옆에서 많은 도움을 준 동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해줄 수 있나?

류금태 대표 :클로저스를 만들던 시절에도 그렇고, 카운터사이드를 만드는 지금도 과거 엘소드와 그랜드체이스 작업에 참여했을 당시 도와주시던 분들이 여전히 도움을 주신다. 지금와서 말하지만 아마 나랑 일하는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을 거다. 그 점에 대해 늘 후회하고 있다. 말을 좀 더 부드럽게 할 걸, 굳이 고집부리지 말 걸 하고 생각한다.

그 분들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고, 앞으로의 내가 있을 수 있다. 삶을 다른 이에게 맡긴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임이 분명한데도 나를 믿고 인생을 걸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나아가 게임 디렉터를 꿈꾸는 분들에게도 늘 주변의 좋은 분들을 잘 대하고, 좋은 인연을 만들어두시기를 권유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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