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날아오른 '도타2 오토체스', 도대체 무엇이 재미있나?

리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80개 |
매일 아침이면, 출근과 동시에 하는 몇 가지 행동이 있다. 외신을 싹 훑어본다거나, 각종 순위를 점검하는 등 전날 뭔가 놓친 소식은 없나, 혹은 뜨고 있는 새로운 이슈가 있나 하는 마음에 하는 일들이다. 그러던중 '스팀'의 게임 이용자 순위에서 'PUBG'가 2등으로 밀려나고, '도타2'가 다시 왕좌를 차지한 것을 보게 되었다. 이유 없이 그럴수는 없을 테고, 궁금한 마음에 찾아보니 '오토 체스'가 그렇게 인기가 좋단다.



▲ 얼마 전 뒤바뀐 순위

어떤 게임인지 대충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는 몰랐다. 게임 스트리머들이 간혹 플레이하는건 알고 있었지만, 커스텀 맵 하나가 순위를 뒤바꿀 정도의 인기라니. 마치 과거 워크래프트3가 '카오스'의 에뮬레이터 취급받던 시절의 일 같지 않은가? 여기저기 물어보니 단순히 '인기'만 많은 것이 아니라 나름의 깊이가 있단다. 말만 들어서는 알 수가 없다. 뭐라도 찍어 먹어봐야 아는 거다.

그렇게 정말 오랜만에 도타2를 켰다. 나름 아직도(?) 내 계정에서 누적 플레이 탑5 안에 있는 게임이지만, 안 켠지 몇 년은 된 것 같다. 그리고 아케이드 탭을 누르자 손쉽게 게임 시작까지 직행이다. 간만에 들어보는 도타2 게임 준비 완료 효과음과 함께 시작된 게임. 로딩 화면에 한자가 찍히는게 조금 낯설었다. 그러고보니 이 커스텀맵을 만든 이들이 중국 개발진이었다.



▲ 중국 개발진이 만들었다.

■ 도타2 오토체스에 대한 간략한 설명

- 1~5 코스트로 구성된 유닛이 라운드마다 5종씩 무작위 등장. 마음에 안 들 경우 2골드로 다시 굴리기 가능

- 각 유닛은 게임 전체에 수가 제한되어 있어 많은 이들이 고른 유닛은 나올 확률이 줄어듬.

- 유닛의 수는 '짐꾼'의 레벨을 따라가며, 짐꾼은 매 판, 혹은 5골드로 경험치를 살 때마다 경험치를 받음

- 골드는 매 판 일정량을 받고, 현재 보유 금액과 연승, 연패 상황에 따라 보너스를 받음.

- 유닛은 3개가 모일 때마다 2성, 3성으로 업그레이드되며, 3성의 경우 9개의 1성이 필요.

- 만든 유닛은 체스판에 배치 가능. 전투는 라운드마다 자동으로 이뤄짐. 전략적 배치 가능.

- 각 유닛은 고유의 종족값과 직업값을 가지며, 필드에 나온 동일 종족, 동일 직업의 수마다 시너지 효과를 받음

- 몬스터가 나오는 특정 라운드를 제외하면 게임 내 타 플레이어의 유닛 배치를 상대로 싸우게 됨. 질 경우 플레이어 체력 감소, 체력이 0이 되면 탈락

- 게임 결과에 따라 보상 지급 및 플레이어 티어 결정.



▲ 한국 팬에 의해 만들어진 유닛 표


◆ 간단한 오토 게임인 줄 알았는데...

아무 정보도 없이 게임을 시작하니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인터페이스는 영어로 되어 있지만 어렵지는 않아 어떻게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알아가는 시간에 준비 시간이 다 끝나버려 순식간에 라운드가 넘어가버렸다. 그렇게 몇 판을 아무것도 못하고 깨지다가 조작법을 알고 몬스터를 잡다 보니 갑자기 상대 플레이어가 넘어와서 날 깨부순다. 그렇게 몇 판을 내리 아무것도 못해보고 지기만 했다.



▲ 일단 가이드는 있는데 읽다 보면 라운드가 넘어간다

답답한 마음에 이리저리 공략이며 팁을 찾아보는데 이거 생각보다 볼 게 많다. 시너지, 자리배치, 아이템 조합까지 뭐 하나 쉬운게 없다. 처음 하는 입장에서는 눈이 마구 돌아간다. 어쩔수 없다. 하나씩 돌파해가면서 배우는 수밖에.

그렇게 맨몸으로 계속 게임을 반복했고, 처음에는 종족 시너지를 맞추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 이후에는 직업 시너지도 신경쓰게 되었고, 이후 게임을 반복할수록 처음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탱커 라인과 딜러 라인을 만드는 법, 적의 광역기에 대비해 봉인기를 쓰는 유닛을 준비하는 법, 최대한 덜 아프게 맞는 자리배치, 암살자를 이용한 적 딜러 라인 공략까지. 매 판을 반복할 때마다 실력이 늘어간다는 것을 내 스스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 이런 정보는 게임 내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벽이 다가왔다. 일반적으로 2성 유닛 하나정도는 나와야 하는 시점에 패가 더럽게 꼬였는지 1성만 드글드글 쌓였다. 드로우를 다시 굴리자니 2골드가 아쉬운 상황. 연패에도 보너스 골드가 있기 때문에 내리 몇 판을 지면서 돈을 모았지만 운이 정말 이럴 수가 없다. 이쯤되서 뭔가 이상하다 싶어 주위를 살펴보니, 내 핵심 유닛의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유닛을 다른 플레이어들이 죄다 사서 창고에 쟁여둔 상태였다. 운이 없는게 아니었다. 상대방이 운을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 처음엔 점지해주는 대로 갈 수밖에

나만 잘 해서 되는 게임이 아니라 상대로 꾸준히 살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 게임의 깊이가 배가 된다. 이때부터는 상대의 유닛 배치도 봐야 하고, 상대의 라인업에 끼면 위험한 코어 유닛들을 미리 선점해놓는 전술도 필요하다. 문제는 상대가 한 명이어도 버거운 판에 7명이라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을 결정할 라운드 준비 시간은 채 1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배치만 해두면 전투는 알아서 한다.

이 숨막히는 빡빡함 속에서 상대 플레이어가 하나둘 나가떨어지고, 마침내 1:1 상황까지 가고 나니 '오토체스'가 어떤 게임인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더불어, 어째서 도타2가 PUBG를 제치고 동접 1위를 석권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진짜 겁나게 재밌다. 질 때마다 그 판에 실수한 것들이 생각나고, 다음 판을 계속 누르게 된다.


◆ 운과 실력의 황금 비율을 잡은 게임 디자인

게이머가 아닌 기자로서 분석적 시선으로 오토체스를 살펴보면 감탄이 나온다. 거의 대부분의 PVP 게임에서 승패는 두 가지 조건으로 인해 갈라진다. 바로 '실력'과 '행운'이다. 그리고 오토체스는 이 실력과 행운의 밸런스를 정말 잘 잡아놨다.



▲ 실력과 운이 모두 필요한 게임 디자인

운이 좋아서 초반부터 유닛을 빠르게 모으고, 남들보다 빠르게 2성 3성을 달성해도 전략적인 통찰력이 없다면 유닛 배치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 또한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운이 없으면 완벽한 승리가 어렵다. 실력이 너무 우선이면 '피지컬 게임', 반대로 운이 우선이면 '운빨X망겜' 소리를 듣는 지금 아슬아슬하게나마 선을 유지한 것이다.



▲ 간혹 아슬아슬한 승부가 나올 때도 있다.

이러다 보니 유닛 간 밸런스가 다소 맞지 않는게 오히려 전략적 요소가 되어버렸다. 게임 내 일부 유닛은 시너지 용도로나 쓸 정도로 저질이고, 또 일부 유닛은 시너지 없이도 굉장히 강력한데, 강력한 유닛은 그만큼 원하는 이들이 많으니 2성 업그레이드도 빡빡해지는 경우가 많다. 스펙 좋고 경쟁력도 쎈 유닛을 잡을지, 혹은 스펙은 다소 낮아도, 남들이 고르지 않는 빌드를 타 3성을 만들지도 유저의 선택이다.




▲ 다시 굴림과 유닛 선택, 조합 컨트롤을 빨리 하는 피지컬(?)도 필요하다.

또한, 실력이 쉽게 늘지도 않는다. 오토체스의 고수가 되려면 각 유닛별 시너지와 상성, 상대의 진영과 코어 유닛 파악, 적절한 자리 배치에 골드 및 짐꾼 경험치 관리까지. 생각할게 한두개가 아니다. 이러다 보니 준비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뇌가 팽팽 돌아가게 되고, 처음에는 루즈하게만 느껴졌던 게임이 가면 갈수록 빡빡해진다.



▲ 엘프, 암살자 위주로 덱을 짠 케이스. 게임의 승자였다.

돈 관리를 하자니 초반 연패를 감수해야 하고, 초반부터 강력한 유닛들을 만들면 후반에 이르러 넉넉한 골드로 황금 라인업을 만든 플레이어를 이길 수가 없다. 강력한 유닛을 모으기 시작하면 상대들도 경쟁적으로 이를 방해하기 위해 유닛을 선점하는가 하면, 인기 없는 유닛을 모으면 왜 인기가 없는지 직접 체험하게 된다.

이렇듯, '오토 체스'는 그리 많지 않은 종류의 유닛에 종족과 유닛으로 분류하고, 시스템을 통한 변수를 몇 가지 더 추가하면서 무한에 가까운 변수를 만들어냈다. 게이머들이 게임에 질리는 큰 이유가 '무의미한 반복'을 자각해서임을 생각해보면, 이와 같이 매 판을 달라지게 만드는 게임 디자인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이 게임의 승자는 '전투력이 센' 사람이 아닌, 수많은 변수를 '가장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지는 일도 많지만, 몇 라운드 지는건 아무 일도 아니다.


◆ '오토체스'는 날아올랐다.

이 모든 요소들이 결합되면서 오토체스는 말 그대로 '굉장한 게임'이 되었다. 굳이 내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하루 수십만 명씩 가파르게 늘고 있는 구독자 수를 보면 알 수 있다. 동시에, 오토체스가 성공하면서 '게임 디자인'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부각되었다. 굉장한 비주얼을 만들고도 내부 시스템 디자인이 헐거워 저평가당하는 AAA급 게임들이 다수인 요즘, 오토체스는 디자인 외에는 아무것도 내세울게 없음에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 압도적인 활성 로비 수

'아티팩트'의 실패 이후로 한동안 침울했던 '도타2'의 본진은 오토체스가 당긴 불씨로 인해 한 동안 뜨겁게 타오를 테다. 지금만 해도 도타2는 딱히 플레이하지 않지만 마치 오토체스 에뮬레이터처럼 도타2를 켜는 이들이 많고, 이와 같이 본편보다 변형이 더 인기를 끌던 사례는 충분히 많으니 쉽게 유행이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즐거운건, 고사양 게임은 버거워서 제대로 돌리지 않던 어정쩡한 사양의 노트북에서 진짜 마음 놓고 돌릴 수 있는 좋은 게임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공짜인데다 높은 사양도 필요하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이게 왜 재미있는지 잘 모르지만, 재미가 붙는 순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새로운 게임은 통 나오지 않고, 나온 게임들이 신통찮은 요즘같은 때 '오토체스'는 딱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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