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검은사막 스토리 #1 - 연대기 상편

게임뉴스 | 유재우 기자 | 댓글: 34개 |
최근 검은사막 개발진은 '몰입형 게임'과 '사막IP 확립'을 추구하면서, 메인 퀘스트라인을 꾸준히 개편하고 명확한 세계관을 정립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특히 최근 해외 개발자 노트에서 앞으로 추가될 콘텐츠들은 검은사막의 세계관을 통해 늘려가겠다고 한 만큼 검은사막에서 진행되는 스토리는 앞으로 이어질 패치에도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그런데 검은사막을 플레이하다보면 의문이 생기곤 한다. '세렌디아는 왜 자치령이고 칼페온은 직할령이지?' '흑정령은 왜 내 캐릭터에 붙어있을까?' '조르다인 얘는 누구길래 갑자기 이러는거야?' 등. 특히 검은사막은 스토리 퀘스트를 반드시 플레이해야하는 것은 아니기에, 점점 방대해지는 스토리를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성장하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번 검은사막 스토리 정리 1편은 그런 모험가들을 위한 첫 번째 스텝이다. 1편은 엘리언력을 기초로 현재 검은사막 무대의 과거를 정리한 연대기, 그 중에서도 전반부다. 곧이어 연재될 후반부까지 함께하면 검은사막의 지형이나 인물, 각 국가간에 얽힌 이야기 등 다양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연대기 이후로는 개편된 메인 스토리를 비롯해 흥미로운 설정의 인물이나 지역 등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보려고 한다. 평소 검은사막의 세계관에 대해 궁금증은 있었으나 직접 확인하기가 귀찮았거나, 혹은 시간이 부족했다면 이번 기사들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공식 홈페이지 역사, NPC 대사 및 지식 등을 참조하여 작성 하였습니다.
*본 스토리 기사는 시리즈물 형태로 연재됩니다.







엘리언력 185년
셰레칸의 등장과 용족과의 대전투


본래 셰레칸은 강인한 전사들로서 고대 드리간(Drieghan) 토착민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당시 셰레칸들 중 특히 뛰어난 자들은 후대에 '첸가 셰레칸'이라고 불렸는데, 그 이름은 아쿰, 마칼로드, 게르비슈, 도로테, 훔이며 각각 힘, 지혜, 사냥, 다산, 예술을 수호하는 존재였다.

그들은 인간보다 월등한 힘을 가진 용을 이용하여 여러 지형과 건물을 건설했는데, 그 대표적인 지형이 바로 현재의 트쉬라 폐허이다. 그러나 이렇게 장대한 건물들을 짓는데에는 끔찍한 고문과 노역을 견딘 용들의 희생이 있었고, 이러한 희생 속에서 그들은 셰레칸에게 앙갚음을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용들은 마침내 검은용 마크타난을 필두로 셰레칸들에게 반기를 들었다.

용과 셰레칸의 전투는 드리간 전역이 황폐해질 정도로 커다란 전쟁이었다. 이것을 일명 '대전투'라고 부르는데, 대전투 초반에 붉은 용 가모스는 큰 상처를 입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야생 늑대들의 서식지로 도망쳤다. 이에 셰레칸이 이끄는 드리간의 부족들은 힘과 지혜를 모아서 용들을 지배해 나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검은용 '마크타난'은 달랐다. 마크타난은 드리간 철광산에서 종종 발견되었던 '그림자의 씨앗', 곧 거대한 고순도 흑결정을 집어삼키고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 상처 입은 붉은 용, 가모스

셰레칸은 강인한 전사였으나 그들의 육신으로는 흑결정의 기운을 받은 용들의 폭주를 막아낼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용들이 힘을 취했던 것과 똑같이 흑결정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순도 높은 흑결정을 취한 육신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했으며, 셰레칸의 일격은 대지를 갈랐고, 고통을 잊었으며, 지치지 않았다. 그렇게 셰레칸 일족과 검은 용 마크타난은 서로 몸을 가눌 수 없을 때까지 혈투를 벌였고, 결국 검은 용이 퇴각함으로서 대전투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에 대한 셰레칸의 대가도 컸다. 트쉬라 지역은 검은 용 마크타난의 피가 쏟아진 뒤로 저주받은 땅이 되어 현재와 같은 폐허로 변하고 말았으며, 당시 셰레칸은 일명 '용의 저주'에 걸렸다고 전해진다. 이 저주는 정신은 온전한 상태로 피부가 갈라지고 온몸이 서서히 돌처럼 굳어가며 자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을 지켜봐야하는 잔인한 저주였다. 또한 그들이 정착한 땅에는 반드시 지독한 가뭄이 들었으며, 그렇게 말라버린 땅 위에서 모두가 물 한 방울을 아쉬워하며 죽어갔다.

그렇게 셰레칸의 전사들이 차례대로 죽음을 맞이해갈 때, 용을 직접 죽인 셰레칸 최후의 생존자 '아쿰'은 숨을 거두기 직전 후대에게 용의 이빨을 건네며 '이것을 땅에 묻어 축복의 비가 내리는 곳에 정착하라'고 일렀다. 그렇게 용의 저주에 의해 죽어간 선조의 뜻에 따라 후대는 긴 방랑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 잊혀진 관문에서 바라본 트쉬라 폐허



▲ 용을 죽인 첸가 셰레칸, 아쿰의 묘



엘리언력 226년
드벤크룬의 탄생과 셰레칸의 후예


거의 40년간의 긴 방랑생활 끝에, 마침내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아쿰이 말한 축복의 비 였다. 사십 년 만의 쏟아진 비는 말라붙은 드리간의 협곡에 마르지 않는 폭포와 호수를 만들며 용의 이빨이 잠든 땅, 드벤크룬의 탄생을 알렸다.

오랜 방랑 생활에 지친 셰레칸의 후예들은 비로소 안도할 땅을 찾았지만, 그들의 몸집은 이전과 달리 작고 쇠약해져 있었다. 그들에게 내린 재앙은 가뭄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본래 셰레칸은 자이언트보다도 거대한 몸집과 힘을 가졌지만, 후대에는 몸집이 점점 작아져 그 힘을 잃어갔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비로소 한 곳에 정착할 수 있다는 기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 세례칸의 후예가 정착한 마을, 드벤크룬



엘리언력 233~234년
발렌시아 국왕 이무르 네세르의 아크만 학살과 검은 죽음의 등장


발렌시아(Valencia), 네세르 왕족의 국왕 이무르 네세르는 검은사막 역사에 커다란 한 획을 긋는 사람이다. 그는 야망이 넘쳤던 사람으로 전 대륙을 무력으로 통치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것이 뜻대로 잘 되지 않자 검은 힘을 이용해 대사막을 떠도는 거대한 고대인을 움직이려는 시도까지 했다.

한편 발렌시아 건국 이전부터 존재해 왔던 아크만 부족은 스스로를 '고대 문명의 수호자'라 칭하며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아크만 부족은 국왕 이무르 네세르가 검은 힘을 이용하려 할 때마다 그를 끊임없이 방해했으며, 발렌시아 사막에 놓인 석실과 고대 유물을 사이에 두고 마찰을 일으켜왔다.

이에 이무르 네세르는 우선 아크만 부족을 규합하는 것이 유일한 과제라고 여겼고, 처음에는 아크만 부족에게 몇 차례 화친을 보내며 회유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회유는 모두 거절당했고, 인내심이 좋지 못한 이무르 왕은 화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군대를 아크만의 영역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것은 공격이 아닌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왕의 군대는 아크만 부족을 처참하게 쓰러뜨렸고, 아크만은 스스로 굴복하지는 않았으나 자신들의 모습을 감추어야만 했다. 그렇게 아크만이 모습을 감추자 곧 검은 죽음(Black Death)이라고 불리는 참담한 재앙이 생겨났다. 검은 죽음은 살덩이가 검게 썩어들어가며 죽게 되는 참혹한 병으로, 이무르 왕도 사랑하는 왕비를 그 병으로 잃고 말았다. 이 일로 사람들은 아크만 종족을 학살한 이무르 왕이 신의 분노를 산 것이라며 수군거렸다.




▲ 현재는 이무르 왕의 후손인 사하자드 네세르가 발렌시아를 통치하고 있다.



▲ 과거 학살의 대상이었던 아크만 무리의 암묵적 리더, 아토사



엘리언력 235년
서대륙으로 번진 검은 죽음, 그 사이에서 돈의 흐름을 읽은 상인 네루다 셴


이렇게 시작된 검은 죽음은 사막 너머 서대륙을 오가던 상단을 통해 칼페온, 케플란, 하이델, 올비아까지 번졌다. 그리고 그렇게 번진 재앙은 용서 없이 서대륙 인구의 절반을 앗아갔다.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왕래를 끊기 시작했다. 그리고 혹여 질병에 걸렸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은 모두 성 밖으로 내쫓겼다.

자식까지 버려야 했던 참혹한 질병 앞에 높은 신분을 가진 왕족과 사제들도 예외는 없었다. 천민 촌에 내쳐진 이들 역시 흉측한 몰골로 죽음을 맞이했고, 지녔던 모든 것들과 함께 불태워졌다. 검은 죽음은 시간이 지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취를 감추었지만, 이 일을 경험한 하층민들은 동요했다.

그들은 고귀한 왕족들조차 자신과 피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고, 재앙을 멈춰달라는 많은 기도에도 그들이 믿던 신 '엘리언'이 답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이에 살아남은 각국의 귀족들은 자칫하면 무너질수도 있는 신분질서에 다급해졌다. 그들은 칼페온에 모여서 발렌시아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이전의 질서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에 엘리언교의 사제들이 먼저 나서서 이교도인 발렌시아가 흑결정을 연금한 마법의 돌로 재앙을 초래했다고 선동했다. 그들은 발렌시아의 이무르 네세를 왕을 악마로 지목하며 비난했다. 또한 서대륙의 왕들은 이 재앙을 막기 위해 흑결정이 나는 검은 사막을 차지해야한다고 그 선동을 거들었고, 노동의 가치를 막 깨닫기 시작한 하층민들에게 이전에는 없던 급료를 약속했다. 그렇게 서대륙 국가 간의 연합이 형성되었고, 발렌시아와의 긴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 칼페온은 엘리언교를 국교로 삼고 있다. 교회 중앙에 위치한 대사제 레하드 모테논.



▲ 이와 대비되는 하층민 빈민가의 고달픈 삶

한편 그 당시 서대륙 국가와 발렌시아 사이에 있었던 메디아 왕국은 무능하고 소극적인 왕 바리즈 2세가 다스리고 있었다. 칼페온은 바리즈 2세에게 서대륙 연합에 참여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바리즈 2세는 전쟁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대신 칼페온이 발렌시아로 향하는 길을 터주었고, 발렌시아에게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연금술사이자 메디아 상인 연합을 꾸리고 있던 네루다 셴은 큰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기술 좋은 대장장이를 모아 칼페온과 거래를 했는데, 메디아 상인회가 칼페온 연합에 전쟁 물자를 지원하는 대신 칼페온은 물자 생산에 필요한 흑결정을 주기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칼페온은 흑결정의 가치를 잘 몰랐기에 거래는 흔쾌히 성립되었다.

셴 상인회는 메디아 용암 동굴의 지형을 이용해 자연의 용광로로 사용하고 있었다. 동굴 안 평탄하고 작은 화구를 이용하여 철과 흑결정을 녹이고, 칼페온보다 빠른 속도로 무기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물자를 칼페온에 실어 나르면, 꼭 그만큼의 흑결정이 돌아왔다. 그럴 즈음 소식을 접한 발렌시아 외교 사절단은 은밀히 소수의 메디아 상인회을 찾아왔다. 메디아 상인회는 칼페온에게서 받은 대가의 일부를 발렌시아에 지급했고, 발렌시아는 메디아 상인회에 교역권과 보호를 약속했다.

칼페온은 메디아가 점점 가공 기술을 쌓자 무언가 속은 기분이 들어 자신들이 바치다시피 한 흑결정을 다시 사들이고자 했다. 하지만 당연히 거래는 결렬될 수밖에 없었다. 본래 자유 종교였던 메디아가 당시 발렌시아의 신, 아알을 섬기기 시작한 것은 사실상 발렌시아와의 외교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 칼페온과 발렌시아 사이에서 큰 거래를 따낸 네루다 셴



엘리언력 235년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모습을 감춘 카마실비아와 드리간


이렇게 검은 죽음으로 시작된 서대륙과 발렌시아의 갈등이 심화될 무렵 요정의 땅, 카마실비아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카마실비아는 본래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 태초의 시대부터 있었다. 숲의 가장 높은 자리에 신단수가 뿌리내리고 섰으며, 그곳에 실비아 여신이 자연정령들과 함께 내려와 그 나무에 카마실브란 이름을 내렸다. 그리고 그녀는 태양의 기운을 받은 가넬과 달의 기운을 받은 베디르를 탄생시키고 숲의 녹색과 이빨 요정의 축복을 받았다.

그런데 이렇게 탄생해 오랜 시간 풍요만을 누리던 카마실비아 대륙의 산과 숲, 초원에 어둠정령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점차 많은 희생이 뒤따랐고, 실비아의 자손들은 오직 여신이 남긴 신단수, 카마실브의 힘에만 의존해 버티고 있었다. 계속되는 재앙에 자손들은 여신에게 재앙을 멈춰달라 기도했으나 아무런 답이 없었다.

게다가 이 때 미래를 보는 숲의 툴리아는 머지않아 수도가 잿더미에 잠식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이 예언을 받은 베디르는 마침내 결단했다. 그들은 어둠의 정령을 넘어설 힘이 오직 신단수 카마실브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최후의 방법으로 신단수 카마실브를 태워 발생한 엄청난 생명의 힘을 이용했다. 이 방법으로 어둠정령을 카마실비아에서 물리치는데 성공했으나 정작 카마실브는 온전하지 못했다. 모든 숲의 양분이자 생명을 만든 대자연의 어머니인 카마실브가 소멸하자 그 자손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런 슬픈 정적 속에서 카마실브가 다시 깨어나리라는 위로가 담긴 숲의 노래는 오랫동안 울려퍼졌다.

더는 여신의 기운을 빌릴 수 없다는 사실은 자손들에게 큰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카마실브가 사라진 지금, 또 다시 이와 비슷한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더 큰 재앙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를 느낀 카마실브의 자손들은 카마실브 가지에 정령의 힘을 더해 정령검을 만들어내고, 다루는 법을 익혀갔다. 그리고 활과 검을 같이 사용하는 레인저 상비군과 그들의 성역 자체를 지키는 아케르 근위대를 만들었다. 아케르 근위대는 수도 그라나를 장악하고 카마실비아의 국경과 모든 관문을 닫았다. 그 이후로 카마실비아는 그 어떤 외부인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 카마실비아의 신단수, 카마실브



▲ 카마실비아 왕궁 앞. 아케르 근위대 대표와 레인저 군사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편 드벤크룬에 정착했던 드리간의 후예들은 드리간 땅을 다섯 영역으로 나누고 용의 머리 자리에 셰레칸의 묘를 지었다. 셰레칸의 묘는 그들에게 단순한 유적이나 무덤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고, 자긍심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던 셰레칸의 의지를 받들어 해마다 세 번씩 그 영광을 기리는 날을 가졌다.

그러나 수도 드벤크룬을 포함한 드리간 일대는 여전히 주변 국가로 하여금 용의 땅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그 인식 자체는 자연스럽게 드리간에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성벽이 되었다. 또한 드리간 땅이 오랜 가뭄 탓에 풀 하나 나지 않는 불모지라는 소문도 외부에서 드리간 땅에 발을 들이지 않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수도 드벤크룬의 존재는 주변 국가들에게서 잊혀지게 되었고, 그 존재가 다시 알려진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그렇게 카마실비아와 드리간은 오랜 시간 외부와 교류하지 않은 채 그들만의 땅을 수호하며 지내게 된다.




▲ 드벤크룬에 정착한 후손들은 거대한 셰레칸의 묘를 건설했다.



엘리언력 236~266년
칼페온 서대륙 연합과 발렌시아의 30년 전쟁


칼페온을 중심으로 한 서대륙 연합과 발렌시아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자신만만하던 칼페온 원정대는 생각보다 발렌시아를 쉽게 이기지 못했다. 발렌시아는 광대한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였고, 칼페온 원정대가 간신히 사막을 넘어서면 예측이라도 한듯 무장한 발렌시아군이 서 있었다. 오직 국왕을 위해 존재하는 탄탄한 발렌시아군과 사막에 익숙하지 않고 이제 막 집결된 서대륙 연합의 싸움은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당시 칼페온의 왕이었던 다하드 세릭의 고집으로 전쟁은 오랜시간 지속됐지만, 이미 계속된 패전으로 서대륙 원정대는 지쳐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엘리언력 265년, 37세의 나이로 하이델 왕가를 계승한 크루시오 도몬가트 왕은 부왕과 달리 엘리언의 종을 자처하지 않았고, 칼페온 왕 다하드 세릭이 자신을 신참 취급하는 것도 못마땅해 했다.

크루시오 왕은 이제 칼페온에게 더 이상 원정은 없을 것이라 통보했고, 칼페온의 엘리언교 사제들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하이델 왕 때문에 속이 답답해졌다. 가뜩이나 이전에 했던 무리한 선동으로 인해 엘리언교에 대한 인심이 떠나가고 있는 상황인데, 급작스럽게 원정마저 중단된다면 교단의 권위가 더 위태로워 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 30년 전쟁 당시 하이델의 왕이었던 크루시오 도몬가트

엘리언교 사제들의 말처럼 검은 죽음은 발렌시아에서 만들어 낸 마법같은 것이 아니었다. 원정길에 즐비했던 발렌시아인들의 검게 썩어버린 시체는 검은 죽음이 발렌시아에게도 피해를 줬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이 때문에 엘리언교가 그간 지탱해 온 신분은 사람들에게 단순히 운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처음에는 재앙을 몰고 온 악마로 소개되었던 발렌시아 왕 이무르 네세르는 오히려 서대륙 연합을 조롱한 영웅으로 칼페온 광대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서대륙 연합이 그동안 수차례 발렌시아로 원정을 떠났으나 발렌시아 성의 모습조차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발렌시아 내부에서 여러번 반역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엘리언교는 원정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동안 원정대가 지나가는 길목엔 엘리언의 예배당이 들어섰고, 이대로 잘만 되어준다면 머나먼 발렌시아까지 엘리언교를 전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쟁의 명분은 이제 그동안의 긴 싸움으로 벌어진 수많은 희생에 대한 '복수'로 변모했다.

엘리언교 사제들은 원정을 거부한 하이델 왕 크루시오에게 파문을 경고하는 한편, 칼페온 왕 다하드를 종용해 하이델 왕을 압박했다. 이에 크루시오는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이 마찰로 인해 칼페온과의 전쟁은 어려운 선택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하이델 군부에는 부왕을 따르던 엘리언 추종자들이 많았다. 그렇게 두 국가간에 수 차례 밀사가 다녀간 끝에, 결국 크루시오는 다시 원정에 나서기로 했다.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당시 하이델 왕 크루시오가 왕위를 계승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안팎의 도전을 이겨낼 만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밀사를 통해 보낸 '마지막 원정'이라는 합의점을 칼페온 왕 다하드가 수용했기에 정말 이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원정을 수락했다. 대신 다하드는 후대에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발렌시아의 성은 한번 봐야 하지 않겠냐며 대규모 원정을 제안했다. 그렇게 서대륙 연합의 마지막 원정대는 꾸려지는데만 2년이 소요되었다.




▲ 서부 대륙 칼페온, 세렌디아(하이델)와 발렌시아의 위치



▲ 서대륙 연합이 발렌시아로 가기 위해 넘어야 했던 아득한 사막. 이 때문에 정복이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 원정은 이상하게 날씨가 좋지 않았다. 원정 초기부터 일기 시작한 바람은 칼페온 원정대가 메디아에 거의 다다랐을 때가 되자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모래 소용돌이로 변했다. 그러나 사막은 아직 멀었기에, 연합은 낯선 성벽 아래 병영을 꾸리고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서야 메디아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메디아가 달라져 있었다. 병영이 꾸려졌던 성벽은 낮게나마 도시 전체를 둘렀고, 곳곳의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쉼 없이 올랐다. 대륙에 중앙에 위치한 탓에 서대륙 연합과 발렌시아 사이에서 거래를 해 온 메디아가 크게 성장한 것이다. 메디아는 칼페온에게서 흑결정을 받고 전쟁물자를 대며 부를 쌓았고, 처음 칼에서 시작했던 무기는 곧 총과 대포가 되며 대규모 철광이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발렌시아 역시 사막의 추운 밤을 견디고 조리를 하기 위해 흑결정이 필요했기에 메디아와 거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칼페온은 메디아의 말만 듣고 흑결정이 단순히 철을 녹이고 화약을 만드는 정도의 물건인 줄 알았다. 따라서 메디아를 통해 원정 비용을 일부 충당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검은사막의 흑결정을 실어 날랐다. 또한 발렌시아 역시흑결정을 일종의 땔감으로 이용할 생각으로 메디아와 거래를 해왔다. 결국 이는 칼페온도 발렌시아도 당시 흑결정의 가치를 몰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어쨌든 그렇게 헐값에 흑결정이 쌓이는 동안 메디아에는 도시가 생겨나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또한 줄을 긋듯 성벽이 한 줄 씩 둘러쳐졌다.




▲ 메디아는 전쟁물자를 대며 조금씩 성장해갔다.

칼페온 원정대는 크게 성장한 메디아의 모습을 보고 의문이 앞섰지만 지체하면 보급에 문제가 생기기에 원정을 서둘렀다. 그런데 원정대의 긴 행렬이 검은사막에 이를 무렵 모래바람이 다시 일었다. 이번에는 빗방울이 섞였다. 사막에 빗방울이라니 무언가 불길했다.

그때 누군가 발렌시아 진영의 붉은 깃발을 보았다고 외쳤다. 그것은 연합이 검은 사막에 들어섰다는 뜻이었고,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발렌시아 군대를 만난다는 말이었다. 종군하던 엘리언 사제들은 모두 하늘을 향해 기도를 시작했다. 그 사이 연합은 오랜 적과의 일전을 위해 막사와 진영을 꾸려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얼마 안가 낮이 밤처럼 어두워졌고, 폭풍우가 몰아쳤다. 거대한 모래바람이 일었고, 모래 구덩이에서 하이델 왕 크루시오가 눈을 떴을 때쯤 이미 다하드는 보이지 않았다. 붉은 깃발 역시 옆에 나뒹구는 것으로 봐서 발렌시아 군의 피해는 더 컸을 것이다.

원정대는 일단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 되어 원정을 포기하고 귀환길에 올랐다. 계속된 모래 폭풍과 지반 침하가 일어났고, 데미강 하류에 이르러서는 바다처럼 넓어진 강물이 길을 막았다. 한달을 꼬박 기다리고 난 뒤 데미강 하류에 생겨난 거대한 삼각주를 건너며 그제서야 크루시오왕은 정신이 들었다. 이번 원정이 후회스러웠다.

서대륙 원정대의 마지막 원정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칼페온의 교단은 병사들의 입을 막듯 크게 포상했다. 그리고 발렌시아가 못 일어설 만큼 큰 승전을 거뒀다고 떠들어 댔다. 이유야 어떻든 재해로 시름이 컸던 상황에서 필요한 위안이기도 했다. 하이델 성까지 이르는 세렌디아 평원은 다행히도 재해의 영향이 크지 않은 듯 했다. 다만 남쪽 지반이 꺼지며 습지가 늘었다. 사람이 끝내지 못한 전쟁을 자연이 끝냈고, 치유의 시간 동안 평화가 찾았다. 다하드 왕을 잃은 칼페온에서는 갓 스물을 넘긴 가이 세릭이 왕위를 이었다.




▲ 세렌디아 남쪽 지반이 꺼지며 이러한 습지들이 생겨났다.



▲ 비교적 재해가 크지 않았던 세렌디아 평원. 저 멀리 농가도 보인다.

한편 발렌시아에게도 이렇게 군대를 집어삼킨 거대한 모래 폭풍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칼페온은 수만의 원정대를 잃었고, 더는 사막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그렇게 전쟁은 자연의 섭리로 끝이 났다. 이내 모래 위에 뿌려졌던 핏자국도, 전쟁의 잔인함도 모두 사막이 거두어 간 듯 잠잠해졌다.

이무르 왕은 희생된 군사를 기리기 위해 전쟁이 일었던 곳을 붉은 사막이라 칭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알신에게 감사 드렸다. 그리고 왕이 남긴 말은 곧 발렌시아의 지침이 되었다. “사막은 아알의 영역이오, 오아시는 아알의 청량함이오, 검은 돌은 아알의 풍족함이라.”

그러나 검은 죽음과 기나긴 전쟁, 그리고 소홀해진 내정 탓에 잇따른 작은 반란이 일어났다. 그렇게 지친 왕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때쯤, 발렌시아 왕국의 상징, 황금 열쇠를 물려받으며 토르메 네세르가 새롭게 왕위를 이었다. 발렌시아 역사상 가장 많은 나이에 왕위를 이어받은 토르메는 이미 세 아들과 하나의 딸을 두고 있었다.


엘리언력 266~267년
잇따른 자연재해로 인한 지형 변화, 다양한 야만족들의 이주 시작


당시 중개무역으로 기세를 타던 메디아도 대자연의 재해 앞에서는 두 손을 들어야 했다. 잇따르던 태풍과 가뭄이 고원 지대와 사막 너머에 부락을 형성하던 야만족의 발걸음을 재촉했고, 야만족의 일부가 비교적 피해가 덜한 메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또한 무기를 제작하던 메디아 용암 동굴과 철광산이 잇따른 야만족의 공격과 사건 사고로 인해 폐쇄되었다.

서대륙 연합과 발렌시아 군을 휩쓸었던 모래 폭풍은 겨우 재앙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엘리언력 267년, 원정대를 묻은 폭풍은 사막의 부락들을 쓸었고, 해일이 바닷가 마을과 정박한 거의 모든 배를 삼켰다. 고원 지대에는 폭우로 땅이 쓸렸고, 태풍은 지도를 바꿔놨다. 사막 너머 열대 지역에서도 가뭄으로 땅이 갈라졌다. 계속되는 재해는 세상을 변하게 했다.

포건은 나가를 밀어내고 세렌디아의 늪지에 자리를 잡았다. 오크와 오우거의 대 이동도 있었다. 메디아 남부에는 다양한 야만이 모여 부락을 형성했다. 원정대의 몰락으로 방비가 소홀한 틈을 타 터전을 잃은 거의 모든 야만족들이 피해가 덜한 내륙으로 몰려들었다.

곧 약탈이 줄을 이었다. 소통이 단절되고 혼란이 커졌다. 사람과 교류가 없던 종족들이 뒤섞이면서 오랜 전부터 구획된 삶의 영역은 의도치 않게 허물어져버렸다. 교류가 없던 긴 시간은 사람과 야만의 대화를 어렵게 했다. 설사 당장 말이 통했다고 해도 살려는 것보다 정당한 이유와 입장을 댈 수 있었을까? 사람과 야만이 다시 한 땅에 어우러졌고, 그사이 연합도 원정도 지난 일이 되었다.




▲ 현재 메디아의 철광산은 대 재해 이후 넘어온 사우닐, 쿠루토 족 등에게 점령당했다.



▲ 알티노바 도시 한 구석 음침한 곳엔 정체모를 야만족 주둔군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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