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검은사막 스토리 #2 - 연대기 하편

게임뉴스 | 유재우 기자 | 댓글: 14개 |
연대기 상편 마지막 부분에서 칼페온과 발렌시아의 지루한 30년 전쟁은 거대한 모래폭풍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고, 그 후 태풍과 가뭄, 지반침하 등의 잇따른 자연재해로 검은사막 대륙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어지는 연대기 하편에서는 이렇게 변화된 대륙의 이야기부터 유저가 처음 플레이 하기 직전까지의 스토리를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이후 펼쳐질 시리즈에서는 유저가 게임 내에서 직접 맞이하게 될 메인 스토리라인에 관한 내용을 정리할 예정이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모험에 앞서 역사의 마지막 장을 되짚어보도록 하자.

▶검은사막 스토리 #1 - 연대기 상편 바로가기


*공식 홈페이지 역사, NPC 대사 및 지식 등을 참조하여 작성 하였습니다.
*본 스토리 기사는 시리즈물 형태로 연재됩니다.






엘리언력 268년
타리프 마을에서 또 다른 재앙의 징조가 엿보이다


메디아 서부의 주나이드 강을 끼고 있는 작은 마을 '타리프'는 소서러들이 모인 곳으로 대대로 외부의 일에 관심 없는 독자적인 곳이었다. 약 300년 전, 동쪽의 땅에서 이동한 소서러 카르티안이 무리를 이끌고 메디아에 정착했고, 타리프 - 희생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기록했다. 타리프의 규율은 마을을 세운 카르티안이 죽기 전에 남긴 카르티안 서를 토대로 이어졌다.

이 마법서에는 타리프 소서러가 지켜야 할 규범뿐만 아니라 카르티안의 힘이 함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머지않아 카르티안 서는 감당하지 못할 힘이 되고 말았다. 터전을 옮긴 소서러들이 조금씩 힘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르티안 서에 담긴 주술은 너무 강력해서 그것을 습득한 자들은 결국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육체적 또는 정신적 손상을 입기 시작했다.

심지어 카르티안 서는 파기되지도 불타지도 않았다. 이에 따라 마을에서 가장 강한 다음 지도자들은 카르티안 서를 위험한 물건으로 간주하고 책 주변에 결계를 하나씩 더해가는 방법을 썼다. 그렇게 진짜 카르티안 서는 봉인되었고, 후대에게는 위험한 부분을 제외하고 새롭게 작성되었다.




▲ 타리프 마을에서 선생님이 수습 소서러에게 몸을 띄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 카르티안 서의 필사본. 진품은 봉인되어 있다.



엘리언력 270~273년
발렌시아의 성장과 메디아의 대도시 알티노바의 탄생, 그리고 일레즈라의 등장


한편 서대륙과의 지루한 30년 전쟁 이후 발렌시아의 새로운 왕이 된 토르메 네세르는 교양이 넘치는 왕이었다. 그의 통치 아래 발렌시아는 점성술, 천문학, 신학 등이 크게 발달했고, 대사막에 넘치는 흑결정 자원으로 부를 쌓아갔다. 그렇게 발렌시아는 살기 좋고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강국으로 부상했다. 발렌시아 백성들은 과거의 역사는 뒤로한 채 유일신 아알의 뜻에 따라 더 행복한 삶을 찾으며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루다 셴이 이끄는 메디아 상인회 역시 그간 칼페온과 발렌시아 사이에서 축적한 막대한 부를 수도 건설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그렇게 엘리언력 273년, 이렇다 할 중심지가 없었던 메디아에 대도시 알티노바가 탄생했다.

알티노바에 성벽이 둘리자 각지의 상인들과 주민들이 탄성을 자아내며 모여들었다. 그동안 메디아의 골칫덩이였던 야만 종족의 움직임은 뜸해졌다. 알티노바를 제외하곤 주변은 정적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은 메디아 외곽 타리프 마을에서 행해지던 은밀한 움직임을 느끼지 못했다.




▲ 발렌시아는 대사막의 강대국이 되었다.

본래 일레즈라라는 여인은 아혼 키루스 다음 타리프 마을의 지도자로 지목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지도자로 지목된 일레즈라는 검은 돌, 곧 흑결정의 힘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광대한 검은 사막 아래에 진정 무엇이 있는 것인지 궁금해 했다.

그렇게 일레즈라는 점차 사막 너머 심연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고 결국 그녀는 타리프 마을의 규율을 어기고 봉인된 카르티안 서를 탐했다. 일레즈라는 카르티안 서에 적힌 막대한 힘을 습득하면서 치명적인 상처을 입고 말았지만, 가까스로 타리프를 벗어났다. 이후 타리프에서 도망친 일레즈라는 타락한 신을 섬기는 엘릭 신도들을 선동해 야만 종족을 제압하고, 메디아 북부의 끝자락에 탑을 지었다.




▲ 한때 타리프의 지도자였으나 카르티안 서를 탐하고 사라진 일레즈라



▲ 타락한 신을 섬기는 엘릭 신도의 모습



엘리언력 274년
카마실비아와 칼페온의 군사 동맹, 말할 수 없는 카마실비아의 속사정


한편 칼페온의 새로운 왕 가이 세릭은 카마실비아를 두고 ‘자연이 지키는 천연의 요새’라며 감탄했다. 높게 솟은 나무는 자신보다 몇 곱절은 되어 보였고, 거대한 숲은 고요하면서도 살아 숨쉬는 듯 했다. 가이 세릭은 카마실비아가 자랑하는 궁병대를 보며 칼페온군에 부족한 궁술을 보완할 기회라 여겼다.

가이 세릭은 카마실비아에 수 차례 밀사를 보냈고, 결국 오랜 시간동안 문을 닫고 있던 카마실비아는 칼페온과의 군사 동맹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칼페온 남부의 사우닐 요새와 트롤 방어기지에 카마실비아 궁병대가 자리잡았고, 긴잎나무 정찰지 일대에 넬리도르민 성인을 비롯한 여러 사제들이 파견되었다.

이 동맹으로 많은 혜택을 본 것은 당연하게도 칼페온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카마실비아게도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아름다운 낙원을 유지하려 애쓴 카마-그라나의 방침 아래 숨겨져 있었지만, 카마실비아 또한 신단수 카마실브가 힘을 잃은 이후로 점차 내부갈등이 심화되어 골머리를 앓고 있던 중이었다.




▲ 칼페온 사우닐 요새에 파견된 카마실비아 궁병대

엘리언력 235년에 있었던 어둠정령 사건 이후, 신단수 카마실브는 힘을 잃었고 카마실비아는 봉쇄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동안 한 자손이었던 가넬족과 베디르족 또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힘을 다루는 방법과 사상조차 달라졌다.

특히 수도 그라나를 지키는 아케르 근위대에 대적하는 아히브 세력이 나타나면서 갈등은 심화되었다. 아히브 세력은 오직 베디르 종족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카마실브를 태우면서 얻었던 거대한 힘을 잊지 못하고 초자연적인 힘을 갈구하며 카마실브의 소멸이 아히브를 창시한 것이라 주장했다. 그들은 숲과 정령들의 역사에 냉담하고 독선적이며, 오만했다.

이러한 아히브를 보고 카마실비아는 이단이라 칭했고, 오직 베디르로 구성된 아히브를 보며 아히브 뿐만 아니라 베디르 종족 전체를 부정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아히브에 소속되지 않은 베디르들이 중립을 선언하며 갈라져 나왔는데, 그들이 바로 다크나이트들이다. 그렇게 카마실비아의 조직은 아케르 근위대, 레인저, 다크나이트, 아히브로 나뉘었고, 점차 이들 사이의 구심점을 찾기는 어려워져 갔다.




▲ 그라나를 지키는 아케르의 군사 대표 허셀 아제리엘라



엘리언력 275년
뒤늦게 서대륙에 알려진 흑결정의 가치와 불어오는 피바람


서대륙의 케플란과 하이델, 올비아는 국가를 정비하면서 메디아의 중개로 발렌시아와의 교역에 나섰다. 그 동안의 원정으로 부족해진 재정을 메우려면 딱히 방법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칼페온 왕도 엘리언 사제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상단의 교역을 허락했다.

그렇게 원정 이후 10년 만에 다시 찾게 된 메디아는 더 이상 이전의 메디아가 아니었다. 남부는 야만족의 차지였지만 북부는 겹겹이 성곽으로 둘러 쌓여 있었고, 그 위에서 총과 대포로 무장한 병사들이 자신만만하게 상단을 내려보고 있었다. 도시는 활기가 넘쳤으며 굴뚝과 처음 보는 장치들이 즐비했다. 칼페온 상단은 그 이유를 찾아 분주하게 돌아다녔지만, 메디아에서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들은 메디아가 성장한 단서를 검은 사막에 가서야 찾을 수 있었다. 그곳을 발렌시아 병사들이 굳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흑결정이 단순한 땔감용도라면 그렇게 삼엄한 경비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칼페온 상단이 훔치듯 숨겨온 흑결정은 칼페온의 연금술사들 손에 놓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디아의 무기가 강력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전에 마법의 돌 운운한 사제들의 선동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다. 이런 사실은 다른 서대륙 도시 케플란, 하이델, 올비아에도 알려졌다.




▲ 전쟁의 원인이 된 흑결정(검은사막 모바일)

서대륙의 각 국은 본격적으로 흑결정을 찾아 나섰다. 케플란이 먼저 바위산에서 흑결정을 발견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불순물이 많아 단순 연소에 만족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메디아는 이것도 비싸게 사줬다. 철광을 녹이려면 더 높은 열을 내며 오래 타는 흑결정이 흑탄보다 요긴했고 전쟁 후의 발렌시아는 흑결정의 가치를 알고 거래를 금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세렌디아의 늪지에서 발견되었다. 어린 나가의 손에 들린 검은 조약돌이 바로 흑결정이었다. 이것들은 순도가 아주 높아 이를 확인하기 위해 메디아의 상인들이 직접 찾아왔을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칼페온 이었다. 칼페온 왕 가이 세릭은 칼페온 지역을 샅샅이 뒤졌으나 흑결정은 발견되지 않았고, 이대로 가다간 그간 서대륙의 맹주를 자처하던 칼페온이 이류 국가가 되는 것은 자명했다.

결국 칼페온 왕 가이 세릭은 세렌디아의 순도 높은 흑결정을 빼앗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하층민이었다. 검은 죽음, 30년 전쟁, 그리고 겹친 자연 재해와 야만족의 약탈로 지친 이들을 병사로 다시 세우려면 많은 급료를 필요로 했다.

칼페온의 젊은 왕 가이 세릭은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땅에 떨어진 엘리언 교의 위상을 다시 세울 기회라면서 사제들을 설득했다. 또한 상단에게는 메디아 상단과 경쟁할 수 있도록 사병을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다시 흑결정을 두고 전쟁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욕심이 이유였다.




▲ 흑결정을 캐는 케플란 채굴장의 모습



엘리언력 276~278년
흑결정으로 시작된 칼페온과 하이델의 전쟁


칼페온은 세렌디아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케플란을 첫 희생양으로 삼았다. 케플란은 전쟁에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고, 칼페온은 전쟁 없이 케플란을 손쉽게 점령했다. 하지만 하이델은 만만치 않았다.

하이델에는 지난 원정대에서도 이름이 높았던 클리프와 암스트롱이라는 두 용장이 있었다. 칼페온군이 케플란을 지나 세렌디아로 넘어가는 길목인 감시탑에 이르렀지만 그곳에 주둔해 있는 클리프와 암스트롱을 깨지 못했다. 이미 수 차례 전투를 벌였으나, 감시탑은 쉽게 뚫리지 않았다.

결국 칼페온군과 하이델군이 대치한 상황에서 칼페온 왕 가이 세릭은 한 가지 꾀를 냈다. 그는 300명의 정예병사를 뽑아서 발레노스 지역으로 향했다. 발레노스와 세렌디아 평원을 잇고 있는 강을 따라서 하이델 성으로 바로 진격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300명의 정예병은 밤의 어둠을 틈타 빠른 배를 타고 하이델 성으로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 기습공격은 기막히게 성공하여 하이델 성은 허무하게 불타고 말았고, 하이델 성이 타오르자 감시탑 부근에서 칼페온의 공세도 함께 시작됐다.

클리프는 뒤늦게 군대의 일부를 돌려 하이델 성으로 귀환했으나 이미 성은 불타고 칼페온 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후 전령을 통해 가이 세릭이 크루시오 왕을 포로로 잡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하이델 왕 크루시오는 그 전령을 통해 자신은 항복하지 않았으니 나의 목숨을 개의치 말고 결전에 임할 것을 명했다. 이에 왕명을 받은 클리프의 군대가 케플란을 두고 칼페온과 공방전을 벌였고, 암스트롱은 데미 강 계곡을 거슬러 칼페온 평원에 진을 쳤다.




▲ 과거 두 용장이 칼페온을 막아낸 감시탑 터



▲ 클리프는 과거 칼페온군을 막기 위해 감시탑 다리를 끊었다.

엘리언력 277년, 가이 세릭은 케플란의 필승 카드인 중갑 보병을 세워 하이델의 두 용장에게 맞섰다. 그 사이 많은 피가 흘렀고, 이대로라면 전면전 밖에는 없었다. 이 상황에서 설사 칼페온이 승리한다해도 두 용장의 분투에 큰 희생이 뒤따를 것이 뻔했다. 그래서 가이 세릭은 결국 생각을 바꿨다. 애초에 흑결정이 필요한 전쟁이었기에 하이델 왕에게 항복 문서 대신 조약서를 내밀었다.

예고된 엄청난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상황에 하이델 왕 크루시오 도몬가트는 망설였다. 항복이 아니고 조약이라면 언젠가 기회가 다시 찾아올 것이었다. 또한 가이 세릭은 전령을 보내 클리프에게 세 가지 조건으로 왕을 풀어주겠다고 했다. 첫째는 앞으로 감시탑 부근은 물론 대규모 병영을 두지 말 것이며, 둘째는 교역과 외교는 칼페온을 통하고, 셋째는 세렌디아의 흑결정을 칼페온의 소유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 조약은 마침내 이루어졌고 칼페온 파견관들은 조약이 이행되는 상황을 1년 넘게 확인했다. 그렇게 엘리언력 278년, 크루시오 왕은 오랜 포로생활 끝에 하이델로 귀환할 수 있었다. 하이델 사람들은 크루시오를 이해했고, 감시탑 부근 지역을 중립으로 하면서 거처를 서부경비캠프로 옮겨야 했던 클리프와 암스트롱도 왕의 결정을 존중했다.

비겁자라고 수근 댄 이들도 많았지만, 도몬가트는 개의치 않았다. 다만 칼페온의 추출장이 세렌디아의 습지에 들어서는 것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실제로 도몬가트 왕이 병을 앓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그 사이 발레노스의 올비아는 전쟁 없이 칼페온에게 항복하여 칼페온의 직할지가 되었고, 이제 케플란의 채석장과 세렌디아의 추출장에서 채굴된 흑결정은 칼페온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칼페온 왕 가이 세릭의 욕망은 멈추지 않고 부왕 다하드 세릭이 묻혀 있을 검은 사막까지 향했다. 검은 사막만 차지할 수 있다면 대륙 전체를 제패할 수 있을거라 자신했다. 그러나 더 이상 연합은 없었고, 하이델의 조력 없이는 성장한 메디아도 넘을 수 없어 보였다.

따라서 가이 세릭은 대규모 용병을 뽑기로 했다. 문제는 또 전비인데, 이제 막 들어온 흑결정이 쌓이기를 기다릴 인내가 부족했다. 그렇게 가이 세릭은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다. 전비 마련을 위해 백성들에게 전례 없는 세금을 매기고, 엘리언 교단에게도 세금을 물렸다. 또한 상단의 사병은 왕에게 귀속시켰다.




▲ 칼페온에게 넘겨진 세렌디아 추출장



▲ 가이 세릭 정예병의 하이델 성 기습 예상 경로



엘리언력 276년
카마실비아의 분열과 살룬곰의 영토로 도망간 아히브


한편 가장 어린 나이에 여왕의 직위에 오른 브롤리나 오네트는 카마실비아를 휘어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브롤리나는 타고난 가넬의 기운을 가졌고, 자연 교감에서 매우 정교한 실력을 보여 왔다. 더불어 뛰어난 지혜와 기민함을 갖추었으니 여왕이 된 일은 당연했다. 그러나 전쟁은 다른 이야기였다.

카마실비아에서 이단으로 지목받았던 아히브의 오만이 날로 심해졌다. 고리나무 숲을 비롯한 카부아 산 일대에서 수상한 행동을 한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그러자 아케르 근위대가 숲 곳곳에 '베디르 출입 불가 영역'을 세우고 엄격히 통제했다. 그런데 문제는 '베디르'라고 명시한 것에서 터졌다. 이는 아히브의 반발은 물론, 아히브에 속하지 않은 베디르 족인 다크나이트의 분노를 샀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케르는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가넬의 입장을 표명하며 더욱 더 베디르를 몰아세웠다. 아케르근위대는 전쟁이 무섭지 않았다. 가넬의 수에 비하면 그 절반을 조금 넘는 수에 불과한 베디르가 대적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다크나이트는 카마실비아를 떠나기로 했고, 그렇게 다크나이트는 카마실비아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 카마실비아의 여왕, 브롤리나 오네트

다크나이트 세력이 떠나자 아케르는 아히브 토벌에 나설 만큼 더 대담해졌다. 아케르의 공격에 아히브는 패배할 수밖에 없었고 카마실비아 동남부로 달아났다. 그곳은 포악한 살룬곰 종족의 영역이었다. 아히브가 넘어간 그 척박한 길을 아케르는 통과할 수 없었다. 살룬곰은 흉포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였다. 위협적이고 거대한 그림자,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짙푸른 눈동자. 아히브가 그러한 살룬 곰을 끌어들인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날카로운 가시 넝쿨이 솟아난 메마른 땅의 경계에서 아케르는 돌아서야 했다. 그렇게 카마실비아의 숲으로 돌아 온 아케르는 그간의 다툼으로 일그러진 대자연에 집중했다. 신단수 카마실브의 생명을 깨울 방법도 찾아야 했다. 물론 여전히 카마실비아에 남아있는 베디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가넬의 기운이 섞여있거나 스스로 베디르임을 부정해 힘을 봉인한 자들이었다. 아케르도 이런 자들까지 내치진 않았다.

그런데 이런 아히브의 이동에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었다. 무심한 밤, 드리간 국경 인근의 작은 초소가 불타올랐던 것이다. 카마실비아에서 넘어 온 아히브 종족이 살룬 곰의 영토로 넘어가고자 드리간의 국경을 거친 것이다. 아히브와 드리간 자경단의 충돌은 이내 아히브를 추격해 온 카마실비아군에 의해 일단락되었지만, 몇 안 되는 자경단에 의지하고 있던 드리간은 큰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드리간의 자경단을 이끌던 인물, 두르게프는 셰레칸의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군대가 필요하다며 드벤크룬에 군조직을 청했지만, 원로회에서는 자경단을 드벤크룬의 정식 경비대로 승격시키자는 의견을 냈을 뿐 별 다른 조치는 하지 않았다.




▲ 아히브가 쫓겨난 지역, 오딜리타



▲ 오딜리타는 아직 인게임에 구현되지 않았다.



엘리언력 277년
메디아 왕가의 몰락


일레즈라가 타리프 마을에서 사라진지 4년 후, 메디아 지역에 일레즈라의 높은 탑이 지어졌을 때, 폭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전역을 뒤덮었다. 일레즈라는 불완전한 카르티안 서의 일부와 크자카 형상의 흑정령을 다루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인해 메디아 성은 순식간에 일레즈라의 손에 불타올랐다.

이 일로 메디아는 사흘 동안 칠흑 같은 밤을 이어갔는데, 이 사건을 두고 '삼일의 어둠'이라고 일컫는다. 3일동안 태양도, 달도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어둠 속에서 횃불에 의지한 채 모두가 두려움에 떨었다. 대도시 알티노바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어떤 이들은 공격적으로 변했고 어떤 이는 괴성을 지르며 알티노바 밖을 뛰쳐나갔다. 뛰쳐나간 그들의 눈에는 오직 환하게 불타오르는 메디아 성만이 보였다.

메디아의 보잘것 없던 왕정이 무너진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메디아 왕 바리즈 2세가 서거했음에 슬퍼하는 자는 있었지만, 메디아의 막내 왕자가 재앙에서 살아남은 것을 기뻐하는 이는 없었다. 이일 후 일레즈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녀의 정체는 다양한 이야기로 퍼져 소문들만 무성한 채 사그라졌다.




▲ 메디아 왕가가 몰락한 후 지금은 성 안이 텅 비어있다.



엘리언력 280~281년
야만족의 본격적인 알티노바 침범, 칼페온 의회정 탄생


삼일의 어둠이 있은지 3년후, 일레즈라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일레즈라의 이름을 앞세워 알티노바로 스며든 것은 폐철광산 인근에서 넘어온 야만족이다.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검은 망토를 두른 야만족 무리가 알티노바를 차지하겠다며 줄을 그었다. 이러한 야만족의 발길에 메디아 북서쪽 숲 속에 거주하던 포악한 세제크 사냥꾼 집단까지 알티노바로 몰려들었다. 메디아 상인회는 이들 무리를 당장 쫒아낼 수가 없었기에 불편한 공존을 이어가야 했다.

한편 칼페온 하층민들은 가이 세릭의 욕망으로 인해 벌어진 과도한 세금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왕의 꿈은 시대를 거스르지 못하는 것. 검은 죽음으로 오래 전에 봉건제는 몰락했고, 하층민의 인식은 바뀌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했으며, 국가의 부는 교역이 이끄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신분과 상관없이 귀족, 사제, 하층민들은 모두 칼페온 왕의 이러한 독단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결국 칼페온 왕 가이세릭은 결국 한 시종이 건넨 독주로 사망하고 만다. 그러자 온 서대륙이 술렁거렸다. 갓 서른의 젊고 강인했던 그가 왜 갑자기 사망했을까? 괴질 때문에 급사한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지만 사실은 독살이라는 소문이 입을 탔다.




▲ 몰락한 귀족, 안나벨라 벨루치. 칼페온에서 봉건제와 신분은 점차 허물어지고 있었다.

하이델 왕 크루시오는 예상보다 기회가 빨리 왔다고 생각했다. 곧 벌어질 권력 암투에 칼페온이 무력해질 것이었다.크루시오는 서부 캠프의 클리프를 불러들여 눈엣가시였던 조약 폐기를 상의했다. 그러나 클리프는 성급한 대응은 칼페온을 다시 결집하게 만들 수 있다며 일단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런데 둘 간의 대화에 수석 시종 조르다인이 끼었다. 조르다인은 스물 다섯에 시종장이 된 사람으로, 닥치는 대로 마을과 성을 살육하던 칼페온 병사에 의해 가족을 다 잃고 복수를 위해 군에 입대했다. 그러던 와중 전쟁 이후 몸이 불편해진 크루시오를 위해 클리프가 분별력이 뛰어나고 일을 잘 처리하는 조르다인을 시종장으로 추천했던 것이다.

사실 조르다인의 직책은 시종장이 아닌 재상이라 해야 맞다. 하지만 추출장이 들어선 이후 크루시오 왕이 자신은 왕의 책임를 다하지 못했다며 스스로 격하시켜 성주로 부르게 한 후, 직책에 변화가 있었다. 이는 장군 클리프가 대장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하이델의 수석 시종, 조르다인

수석 시종 조르다인은 크루시오와 클리프에게 가이 세릭의 죽음은 왕실 내의 권력 다툼이 아니라 교단과 동조하는 상인 세력이 벌인 일이기에 하이델이 어떻게 나오든 현재의 칼페온은 결집할 구심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크루시오 왕도 조르다인의 주장에 동조하긴 했으나, 우선은 클리프의 말을 따라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칼페온의 혼란은 의외로 급격히 마무리되었다. 칼페온은 각 계급을 대표하는 의원을 선출하며 의회정을 탄생시켰으며, 의회정이 성립한 칼페온은 이전보다 더 강력해졌다. 하지만 조르다인은 이 모습을 보고 크루시오에게 칼페온은 5년 이내에 힘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인 세력이 칼페온을 좌우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고, 이를 제지할 칼페온 교단은 교세 확장에 몰두하다가 재정을 피폐하게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조르다인은 그 시간 동안 하이델은 반드시 강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 세금을 더 거두고 군비를 확충해야한다고 크루시오를 설득했다. 이 말을 들은 크루시오 왕 역시 방치된 하이델 성 재건에 마음을 쓰고 있던 터라 조르다인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 칼페온에 들어선 의회정



엘리언력 282년
발렌시아 왕 사하자드 네세르의 즉위와 움직이는 고대의 힘


한편 발렌시아에서는 지병을 앓던 토르메가 서거한 뒤 그의 첫째 아들인 사하자드 네세르가 왕위에 올라섰다. 토르메의 유언에 따라 그와 이국의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왕자 바르한은 군부를, 셋째 왕자 만메한이 법전을, 그리고 막내 공주 사야가 아알의 경전을 관리하도록 했다. 발렌시아 국민은 안심했고 그런 왕국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평화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둘째 왕자 바르한이 그의 어머니를 통해 사하자드 왕에게 황금 열쇠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천 년의 역사 동안 전해져 온 황금 열쇠는 발렌시아 1대 국왕이 탄생한 장소로 향하는 매개체였다. 대대로 발렌시아 국왕만이 지닐 수 있는, 왕이 지니고 있어야만 하는, 즉 그것이 없다면 왕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는 물건이었다.

멸족했다고 여기던 아크만 무리가 최근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도, 사막을 떠도는 고대 거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진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여겼다. 발렌시아 건국 전설에 얽힌 비밀을 품은 황금 열쇠는 이제 발렌시아 왕국의 균열을 일으키는 매개체가 되려 하고 있었다.



▲ 발렌시아 군부를 다스리는 둘째 왕자 바르한 네세르



엘리언력 283년
하이델 농민들의 반란과 의지의 탑 사건


조르다인의 말에 따라 하이델의 세금이 높아진지 몇 년 후, 결국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 해 흉년이 들었지만 세금은 전혀 줄지 않았던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그간 잠잠하던 야만족들도 흉포해져 그나마 거둘 작물도 많이 없었다.

농민들은 칼페온의 변화(의회정 성립)를 지켜본 터라 농민대표로 알룬디를 하이델 성에 보냈다. 하지만 성주 크루시오 도몬가트는 경고하듯 알룬디를 가뒀고, 고문을 당한 그는 며칠 뒤 중립지에 버려졌다. 그러자 농민들은 이 사실에 분노하며 결국 봉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전쟁을 준비하는 병사들과 농민은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고, 봉기라고는 했으나 병사들이 보이자마자 농민들은 뿔뿔이 흩어지기 바빴다.

그 중 알룬디를 포함해 극렬했던 시위대는 수배령이 내려진 탓에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들은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새 반란의 수괴가 되어 폐성터에 숨어들어야 했다. 이후 살기 힘든 이들이 그곳에 모여들었고, 이는 조르다인이 세금을 더 거둬들일 빌미가 되었다.



▲ 농민군 알룬디와 잔당이 숨어든 폐성터

그런데 엘리언력 283년, 이 해에는 농민봉기 외에도 큰 사건이 더 있었다. 고대 문명을 이룬 검은 돌의 전설을 확인하고 싶은 음흉한 사제들이 검은 돌의 흔적이 서려있는 의지의 탑을 찾은 것이다. 그들은 곧 야만 종족을 몰아세워 제단을 채워 나갔고, 죄 없는 야만의 피를 제물로 쏟아냈다.

그들이 찾아낸 고대 문양이 새겨진 검은 돌 조각들은 서로 맞물리듯 검은 구를 이뤄갔으나, 단 하나의 조각이 부족했다. 결국 사제들과 합세한 한 과학자의 장치에 의해 불완전한 검은 구는 결국 균열을 일으키며 폭발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때는 하필 발렌시아를 오가던 선박이 고마나루에 정박하던 날이었다.

무역의 중간 도시인 고마나루는 언제나 정겨운 분위기였고, 근처 여관에는 무역선을 이끄는 선원들과 대장을 호위할 용병들까지 다양하게 모여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음흉한 사제들이 애타게 찾던 마지막 검은 돌 조각, 태고의 돌은 고마나루를 지나고 있었다. 의지의 탑에서 솟구친 검은 기둥은 공명하듯 태고의 돌을 향해 달려들었고, 검은돌은 이내 타들어가며 고마나루에 있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잔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누군가는 이 사건을 두고 말하길 '어두운 밤을 뚫고 하늘에서 빛이 떨어졌고, 이후 야만족들 가운데 흉포한 것들이 생겨나며 괴물들이 날뛰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심지어 그 날엔 돌도 살아 움직였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이를 의지의 탑 사건이라 부르는데, 과거 고대인들이 의지의 탑을 쌓은 직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 의지의 탑



엘리언력 284년
강력해진 아히브와 카마실비아의 위기


농민봉기와 의지의 탑 사건 등 큰 혼란이 있었을 무렵 요정의 땅, 카마실비아는 이와 반대로 본격적인 대자연의 회복에 돌입했다. 그들은 잠든 카마실브를 깨우기 위해 사제들을 키워냈고, 특별한 수련을 거쳐 성인이 된 카마실브 사제들은 바깥 세상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각지에 있는 정령을 찾아 그 힘을 빌리고 담아냈다. 그렇게 조금씩이지만 신단수 카마실브의 기운은 점점 치유되어 갔다.

그러나 아히브가 메마른 땅으로 달아난지 8년 후인 284년, 어둠이 서린 오딜리타에 아히브의 요새가 지어졌고, 그들이 살룬곰과 결탁해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냈다는 소문이 들렸다. 메말랐던 가시 넝쿨은 살기를 품었고, 척박했던 대지는 아히브의 불빛으로 일렁였다. 카마실비아 초원 동부에 주둔하는 레모리아 감시대는 이러한 아히브를 움직임을 주시하며 경계를 강화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자크 터널을 감시하던 레모리아 대원들이 메마른 땅에서 넘어 온 아히브와 마찰을 빚었다. 라모 계곡에서 가넬과 아히브의 첫 전투가 치뤄졌고, 레모리아 지원군이 여기에 가세했다. 전투는 가까스로 가넬이 승리하였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계속된 싸움에 초원을 지키던 레모리아 군의 절반을 잃었고, 카마실브 사제들이 두자크 터널을 봉쇄하고서야 아히브가 물러섰다. 그들은 이제 예전의 아히브가 아니었다. 카마실비아는 마치 이전의 어둠 정령을 다시 만난 것처럼 두려웠다.

어떻게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아히브의 마수가 뻗칠수록 아케르는 초초해졌다. 카마실브의 복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아히브의 기세라면 평화를 기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히브 분쟁지역을 지키고 있는 가넬의 모습



▲ 카마실비아를 위협하는 오딜리타 지역의 아히브 베어라이더.



엘리언력 285년~현재
벨리아에 모여든 이방인,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카마실비아와 드리간 지역


엘리언력 285년, 발레노스 지역 벨리아 마을에 이방인들이 많아졌다는 소문이 들렸다. 또한 그 다음 해인 286년에는 카마실비아의 위기를 느낀 브롤리나 여왕이 마침내 카마실비아로 통하는 모든 길과 관문을 개방하고 칼페온과 드리간에 전령을 보냈다.

드리간 지역 역시 다급해졌다. 사냥꾼 하나가 밤 사냥을 나섰다가 언덕 위에 펼쳐진 용의 날개를 목격한 것이다. 용이 나타났다는 사냥꾼의 말에 봉화가 오르고 촌장 두르게프는 떨리는 두 손을 부여잡았다. 용을 쓰러트린 셰레칸의 후예들이지만, 실제로 용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작은 군대로는 용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두려움이 앞섰다. 수차례의 회의 끝에 촌장 두르게프는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뛰어난 용병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사냥꾼, 용병, 은퇴 병사 가리지 않았다. ‘싸울 수 있는 자들이라면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라는 문구가 적힌 공고를 각국에 보내며 드리간의 존재를 알렸다.



▲ 어촌 벨리아에 이방인들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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