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노트①] 나, 나도 중국 갈 거야...! 두통과 함께한 우한의 첫날 밤

기획기사 | 신동근 기자 | 댓글: 26개 |
전혀 생각도 못했던 중국행이었습니다.

원래 예정에도 없었던 일정이었으나, 단기 대회 PGL 2016 섬머의 주최측인 PGL의 지원을 받아 뜻밖의 중국행 비행기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됐죠. 29년 살면서 처음 가 보는 대륙이었기에 기대 반, 걱정 반을 품고 출장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듣자하니 상당수의 중국인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고, 또 치안도 불안정하다고 들었거든요.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리자 그런 쓸데없는 걱정보다 당장의 현실적인 문제가 저를 덮쳤습니다. 한국도 폭염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더웠는데, 비행기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더위와 습기가 밀려온 것이죠. 태어나서 처음 도착한 중국 땅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제가 제일 먼저 꺼낸 말은 욕이었습니다.

숙소로 출발하기 전, 도타2 MVP 피닉스 팀 선수들 및 감독님의 사진을 촬영하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제일 먼저 눈에 띈 우한의 풍경은 건설 중인 아파트, 그리고 더 많은 아파트와 어마어마하게 많은 아파트였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눈대중으로 본 건설 중인 아파트만 1천 동이 넘을 정도로 말이죠. 이 정도면 국가 사업에 가까운 수준일 정도였습니다. 우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아파트가 많으면 1가구 1주택이 아니라 1인 1주택도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 이것은 우한 아파트들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눈에 띈 것은 홍수가 할퀴고 지나간 깊은 상처였습니다. 저희가 출국하기 며칠 전, 우한은 심각한 수준의 홍수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말로만 들었을 때는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되지 않았는데 막상 눈으로 보자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홍수가 지나가고 무더위가 찾아온지 며칠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사방이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3층짜리 주택 건물 중 1층 높이까지 아직도 물이 차올라 있었고, 공원과 산책로는 늪지대가 되었으며 강물이 고가교 턱밑까지 차올랐을 정도였죠. 벌써 상당량의 물이 증발했을 지금 본 것이 이 정도였으니, 홍수 직후엔 과연 이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었을까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 달리는 버스 안이라 많이 찍지는 못했지만, 실상은 이것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그런데 숙소는 대체 언제 나오는 걸까요? 한국에서 중국 우한 공항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이 2시간 30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우한 공항에서 호텔까지 약 3시간이 걸렸습니다. 게다가 컨디션도 좋지 못해 두통을 심하게 앓고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길까지 굉장히 거칠어 가는 내내 버스가 위아래로 요동을 쳤습니다. 도착할 때는 거의 토하기 직전이었죠.

다행히 PGL측에서 잡아준 숙소는 무려 4성에 빛나는 호텔이었습니다. 이렇게 힘든 여정을 거쳐 왔는데 숙소까지 별로였으면 눈물이 쏟아질 뻔했죠. 마침 호텔에 야외 수영장도 있었기 때문에 저는 일이고 뭐고 당장 수영장에 뛰어들 생각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는요.

체크인 및 확인 절차 등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람에 로비에서 또 1시간 가량을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MVP 피닉스 팀은 스폰서 회사의 요청에 따라 먹을거리를 들고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 자기 팀의 포즈를 가만히 살펴보던 '포렙' 이상돈 선수가 "우리 이거 그거 같은데? 상하이에서 촛불 들고 'We are flame!' 하던 거"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순식간에 기억 폭력을 당한 MVP 피닉스 선수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죠. 상하이 메이저 당시 찍었던 흑역사급 소개 영상을 떠올린 저 또한 괜한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 엥? 이거 완전...

마침내 확인 절차가 끝나고 방에서 20분 가량의 아주 짧은 휴식을 취하자,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 됐습니다. PGL에서 이미 한 군데 잡아둔 식당이 있다더군요.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고 하길래 모두들 별 생각 없이 버스에 탔는데, 이것이 함정이 되었습니다.

저와 선수들 모두 극심한 피로를 겪으면서 밥 하나 먹자고 버스에 탄지 어언 40분이 되어서야 식당에 도착할 수 있었죠. 같은 버스에 오른 팀은 총 3개였는데 도타2 한국 팀 MVP 피닉스와 필리핀 팀 미네스키, 그리고 CS:GO 스웨덴 팀 엡실론이었죠. 공교롭게도 외국 팀들만 버스에 탔다가 고생을 하게 되자 선수들은 '해외 팀의 전력을 약화시키려는 계략에 빠졌다'며 음모론을 불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현지 음식에 대해 막연한 편견을 갖고 있던 저는 음식점에서 상상도 하기 힘든 희한한 음식을 주면 어쩌지하는 고민을 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나온 음식은 양고기, 오리고기, 생선 등 매우 멀쩡한 음식이었죠. 딱 한 가지, 오리고기에 형체가 그대로 보존된 튀겨진 오리 머리가 같이 들어있었다는 점을 빼면 말이죠.




머리를 제일 먼저 발견한 '페비' 김용민 선수는 "우리가 얘를 죽이고 먹었어요"라고 하더니 한참 동안 오리 머리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회전판 위에 올려뒀습니다. 비위가 약한 저는 음식을 먹으려고 회전판을 돌리다가 절 똑바로 쳐다보는 오리 머리를 보고 기절초풍을 하면서 당장 내다버리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김용민 선수가 티슈를 주섬주섬 꺼내 그걸로 오리 머리를 감싸고 주머니에 넣으려는 게 아니겠어요? 옆에서 그걸 계속 보던 '큐오' 김선엽 선수가 "뭐하냐, 그걸 왜 챙겨?"라고 쏘아붙이자 김용민 선수는 "이게 우리 TI 부적이 될 거야. 이거 들고 가면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아. 경기 하기 전에 상대 팀한테 선물이라고 속여서 주고 이거 보게 만들어서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거야"라고 답하더군요.

김선엽 선수는 "TI 우승이 아니고 이거 때문에 공항에서 걸려서 TI 참가도 못할걸?"이라며 매우 그럴듯한 말을 꺼냈고, 김용민 선수는 "이거 불쌍하다. 묻어줘야지"하면서 얼음을 이리저리 휘저어 오리 머리를 얼음 속에 묻어버렸습니다. 나중에 설거지하던 주방 직원이 오리 머리를 보고 놀라지 않았길...

우한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극심한 두통, 피로와 함께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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