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불가능은 없다! 진정한 '도전 정신'을 보여준 MVP

칼럼 | 신동근 기자 | 댓글: 51개 |
도전.

멋진 말이지만 전반적인 한국 e스포츠 생태계를 살펴볼 때 가장 결여된 부분이다. 기업의 투자는 '실패의 위험이 없고 안전이 보장되어있는' 종목에만 집중되며, 그에 따라 레드 오션인 종목은 더더욱 포화 상태가 되고 그 외의 종목은 철저하게 버림받는다. 한국에는 과거 스타크래프트1이나 현재 LoL과 같은 단 하나의 1위 종목, 그 외에 게임 아이템이나 캐쉬를 내세워 관객을 끌어모으는 명목 상의 e스포츠만이 있을 뿐이다.

한국 e스포츠에서 팀을 만들기 위해선 기업의 투자에 대부분을 의존하기 때문에 기업이 투자를 꺼리는 종목에는 프로 팀도 생기지 않는다. 과거 프라임리그 맵 조작 사태 이후 워크래프트3가 그렇게 사라졌고 현재에도 프나틱, C9, EG 등 세계적인 팀들이 카운터 스트라이크:글로벌 오펜시브(이하 CS:GO)나 도타2, 하스스톤 프로 팀을 만들고 세계 대회를 휩쓸 때 한국에는 그 어느 종목의 프로 팀도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예외도 있으니 바로 MVP다. MVP는 기존의 한국 e스포츠 팀처럼 기업 후원 방식이 아니라 해외 구단처럼 클럽 형식의 팀을 만들어 네이밍 스폰을 받는 형태의 팀이다. 모기업이 따로 있는 팀이 아니기 때문에 MVP는 한국의 타 팀들과 달리 원하는 종목에 투자를 할 수 있다. 그렇게 MVP는 LoL을 제외하고도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을 육성하면서 한국에서 소외된 종목의 프로 팀을 창단했다.




MVP가 뛰어든 종목에서 그들의 행보를 보면 초반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LoL에서 MVP 레드, 블루, 화이트 3팀을 돌리던 시절, MVP의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MVP 레드는 롤챔스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했으며, MVP 블루는 2012-2013 올림푸스 챔피언스 윈터에서 아마추어 팀인 GSG를 제외하면 모든 팀에게 패배를 당했고 MVP 화이트는 8강까지 진출했지만 나진 소드를 넘지 못해 무너졌다.

그러나 MVP 화이트는 MVP 오존으로 팀명을 바꾼 뒤 '마타' 조세형과 '다데' 배어진을 영입해 바로 다음 시즌인 2013 올림푸스 챔피언스 스프링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우승을 하는 쾌거를 이뤘다. 기업 팀도 아닌데다, 사실상 신인이나 다름없는 팀이 3:0으로 최강이었던 CJ 블레이즈를 꺾은 것이다.

MVP는 좋은 성적을 낸 LoL에만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종목에도 손을 뻗었다. 도타2 EOT 소속이던 선수들 중 일부를 영입해 MVP 팀을 창단하고 이후 fOu의 선수들까지 영입하면서 당시 한국에서 막 태동하던 도타2에 투자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 역시 순탄치는 않았다. 도타2의 전신이던 도타 올스타즈 시절, 전 세계가 도타 올스타즈 프로 대회를 진행한 덕에 해외 선수들은 수 년간의 경험이 쌓여 있었지만 도타 올스타즈 대회가 전무했던 한국은 시작부터 너무나 뒤처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도타2와 MVP 피닉스는 동남아의 2, 3군 팀들에게도 속절없이 무너지는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다.




MVP 피닉스는 한참 동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지만 엔트리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디 인터내셔널4(The International4, 이하 TI) 와일드카드전 진출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MVP 피닉스는 다양한 해외 대회에 참가하면서 실력을 쌓았고, 2015년 봄에 펼쳐진 도타2 아시아 챔피언십(이하 DAC)에서 처절한 실패를 겪은 뒤 팀 리빌딩을 단행했다. TI5가 불과 6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 기존의 선수들을 MVP 피닉스, MVP 핫식스로 나눈 뒤 추가 영입을 하면서 전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보였으나 MVP 핫식스는 TI5 본선 직행, MVP 피닉스는 와일드카드전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특히 MVP 피닉스는 TI5 8강까지 진출, 한화로 10억 원에 가까운 상금을 벌어들였다.

2015년부터 도타2 퍼블리싱을 담당하던 넥슨이 사실상 손을 놓아버렸고, TI5가 끝난 뒤 팀을 떠나는 선수들도 생기면서 MVP는 다시 힘든 시기를 겪게 됐다. 리빌딩을 진행했지만 초반에는 합이 잘 맞지 않아 대회 성적도 좋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넥슨이 완전히 손을 뗀 데다가 한국 서버도 없어지면서 선수들의 연습 환경은 최악이 됐다.

그러나 MVP 피닉스는 이번 중국 상하이에서 펼쳐진 상하이 메이저에서 세계의 초강팀들을 줄줄이 꺾으면서 돌풍의 핵이 됐고, 그 결과 대회 4위라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냈다. 대회 시작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국내 팬들조차 큰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MVP 피닉스는 성적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입증했다. 서버도 없고, 자신들을 제외하면 다른 프로 팀 하나 없는 나라에서 홀로 고군분투해 거둔 성적이기에 MVP 피닉스의 결과는 더더욱 빛난다. 눈앞의 성적, 당장의 환경에만 연연하지 않고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투자를 한 MVP의 결정이 옳았음이 증명된 것이다.



▲ MVP 피닉스의 엄청난 선전은 만화로도 그려졌다 (출처 : Nerfnow.com)

MVP는 도타2 뿐만 아니라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하 히어로즈), 스타크래프트2, CS:GO 팀을 운영 중이며 최근에는 LoL 팀을 다시 만들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2에서는 아직 뚜렷한 성적을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히어로즈에서는 MVP 블랙이 그야말로 패왕으로 군림하며 1위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고, LoL 팀 역시 챌린저스 리그를 휩쓸며 차기 시즌 롤챔스 입성을 노리고 있다.

특히 CS:GO는 도타2와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찬밥 취급을 받는 종목이다. MVP는 편선호 코치를 영입하면서 MVP 프로젝트 팀을 창단했고, 국내에 연습 상대 하나 없는 CS:GO 환경을 극복하면서 딩잇 동아시아 인비테이셔널 시즌2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이 1,700달러(한화 약 200만 원)에 불과한 소규모 대회였지만 한국 CS:GO의 척박한 환경에서 이런 결과를 냈다는 것 자체가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다.



기업 팀처럼 안정적인 연봉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대회 성적에 따라 생존이 갈리는 등 MVP가 선택한 길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다. 그렇기에 다른 모든 국내 팀은 가시밭길을 걷는 대신 안전한 울타리 안에 남는 것을 택했지만 MVP는 달랐다.

1위를 제외한 다른 모든 종목이 고사당하는 한국 e스포츠 환경에서 타 종목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은 어찌보면 무모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실패할 때엔 조롱과 비웃음만이 돌아올 뿐이고, 성공한다 하더라도 이를 알아주는 이는 얼마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MVP는 더 넓은 글로벌 e스포츠를 목표로 삼고 당장의 힘든 시간을 감내하기로 결정했고, 이제는 어느 정도 보상을 받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MVP는 과거 롤챔스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하면서 국내 LoL 팬들을 놀라게 하더니 히어로즈에서는 독보적인 1위 자리를 공고히 했고, 도타2 상하이 메이저에서 4위를 기록하면서 전 세계를 경악케했으며 CS:GO 또한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그 어떤 국내 팀보다 투철한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MVP의 여정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어쩌면 세계 3대 e스포츠인 LoL, 도타2, CS:GO 모두에서 MVP의 팀 로고를 볼 수 있는 날이 마냥 꿈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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