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C2018] 창발과 통제 사이, 듀랑고가 고민한 '의미 있는 선택'

게임뉴스 | 정필권 기자 | 댓글: 21개 |


▲ 왓스튜디오 양회진 콘텐츠 디자이너

생존과 탐험이야기를 그린 듀랑고. 이 세계에는 동시에 수많은 고난과 갈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동시에 해결 방법은 하나가 아니다. 게임 속에 있는 플레이어는 자신이 상상한 것을 시도하고 시행할 수 있으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게임을 즐긴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에서 모든 활동의 기반은 채집 및 제작을 통해 이루어진다.

왓스튜디오에서 콘텐츠 디자이너를 담당한 양회진 디자이너는 듀랑고의 테스트부터 라이브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보며, 발산과 통제의 중간점을 찾기 위한 시도들을 전달하고자 한다. 특히, 아이템 설계에서 어떻게 변해왔고 어떤 면에서 발산과 통제를 고민했는지를 청중들에게 전했다.

듀랑고의 아이템 시스템은 아이템의 근본적인 형태를 의미하는 원형과 아이템의 특징과 성질을 의미하는 속성으로 이루어진다. 하나의 아이템은 원형과 속성이 합쳐져서 정체성이 결정되는 구조다. 아이템을 제작할 때는 원형과 속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망치를 만든다고 했을 때, 특정한 아이템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속성을 기준으로 전해진다. 예를 들어 손잡이는 막대나 긴 막대 속성이 필요하고 묶을 것에는 끈/긴 끈이, 망치 머리로는 덩어리 속성을 가진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선택한 아이템의 조건에 따라서 돌망치, 뼈망치, 고기망치 등 제작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어떠한 아이템이 가지고 있는 형태인 '원형' 그리고 다양한 특징과 성질인 '속성'은 듀랑고에서 만날 수 있는 독특한 결과물들을 낳는다. 하나의 제작법은 다양한 갈래로 뻗어 나갈 수 있으며, 동시에 같은 아이템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변수가 다양한 시스템은 테스트부터 라이브 서비스 기간을 거치며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이는 양회진 디자이너가 생각한 창발과 통제 사이에서 적절한 지점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 그래서 듀랑고의 좋은 콘텐츠 디자인이란?

무언가를 디자인할 때는 목표를 설정하고 문제를 분석한 다음, 방법을 찾아 실행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을 거친다. 듀랑고 콘텐츠 작업 제안을 받은 강연자는 이와 같은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디자인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디자인의 시작으로 '무엇이 좋은 듀랑고 콘텐츠인가?'를 고민했다.

듀랑고의 콘텐츠 디자인은 '할 수 있는 게 많으면서도 복잡하지 않게'. 그리고 '자유롭게 발산하면서도 디자이너의 의도 안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계획해야만 했다. 상반되는 무언가를 동시에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게임에서의 창발과 통제 요소를 살펴보기도 했고, 둘 모두가 '즐거운 경험을 위한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듀랑고는 창발과 통제 중에서 어떤 부분에 힘을 쏟아야만 했을까. 이 질문에 이은석 디렉터는 이렇게 대답했다. "둘 다"라고. 그래서 강연자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과제를 마주하게 됐다. 하지만 최종적인 목표는 생각보다 금방 도출됐다. 듀랑고의 콘텐츠 디자인은 창발과 통제라는 측면에서, 크게 세 가지로 설정할 수 있었다.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의도 안에서 창발적인 결과가 나와야 한다.
지속적으로 반복될 수 있어야 한다.



▲ He said "둘 다"

이와 같은 목표를 기저에 두고, 듀랑고의 테스트 과정을 돌이켜보자. 듀랑고의 FGT는 발산의 과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같은 제작법이라도 재료에 따라서 다른 제작품이 나왔다. 야생의 가리개 제작에 나뭇잎을 넣으면 나뭇잎 옷이, 가죽을 넣으면 가죽 옷이 나오는 형태로 설계됐다. 조립과 제작이 별개로 있었기에 같은 완성품을 만드는 데에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또한, 아이템이 가진 속성과 조건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졌다. 심지어 재료로 사용한 아이템의 속성이 변화한다면, 제작물에 다양한 속성이 붙기도 했다. FGT는 조건에 따라서 발산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다양했다. 자유로운 콘텐츠 배치가 있었으며, 가죽장화를 삶아 먹을 수도 있는 등 다양한 결과물이 나오던 시기였다.



▲ 발산 그 자체였던 FGT

하지만 한계점은 명확했다. 일단 콘텐츠 규칙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창발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어디까지 변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이것저것 변할 수 있는 것은 많지만, 수집이나 성장 등 핵심적인 할 거리는 부족했다. 게다가 제약 및 강제 요소가 적어 콘텐츠의 수명이 짧다는 한계도 보였다.

FGT에서 파악된 한계점은 이후 진행된 3차 LBT에서 보강하려 했다. 3차 LBT에서는 '콘텐츠 수명을 길게' 그리고 '콘텐츠에 큰 규칙을 만들어 발산을 잡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이를 위해 재료 단계를 나눴다. 재료를 수직적 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는 가공과 제작을 통해서 성장하는 형태로 설계했다.

고급 제작일수록 상위 단계 재료만 받을 수 있도록 제한을 뒀다. 처음에는 생가죽을 요구하다가 건조 가죽을 거치고, 마지막에는 무두질된 가죽을 사용하는 형태로 꾸려졌다. 상위 재료마다 가공을 해야 하므로, 가죽 말리기와 같이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맡김 제작'을 적극 활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플레어는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기 시작했다. 시간, 재료, 도구, 건설 등 모든 면에서 이전보다 많은 자원을 소비했고 요구하게 됐다. 여기에 맡김 제작으로 인하여 공간을 본격적으로 소비하게 할 수 있었다. 이는 듀랑고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소라는 자원을 소비할 수 있는 방향을 확인했다는 의미기도 했다. 유저들은 더 많은 제작을 위해 가마와 작업대가 필요했고, 빠른 생산을 위해서 공간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 공간을 하나의 자원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에도 고민할 부분들은 남아있었다. 제작에 필요한 아이템이 세분된 것은 좋은 선택이었지만, 각 제작법에 재료를 얼마나 요구하게 할지가 고민거리였다. 비슷한 성능의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로 들어가는 서로 다른 아이템의 가치와 제작비용이 비슷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이는 결국 아이템의 가치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발상으로 이어진다. 쉽게 얻을 수 있는 나뭇가지와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는 다리뼈와 가치는 분명히 차이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복잡한 듀랑고에서 가치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노력값'이라는 개념을 적용했다.



▲ 노력값은 아이템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노력값은 채집부터 제작까지 소모되는 모든 노력을 하나의 값으로 치환한 것이다. 노력값을 사용하면 제작품의 제작 비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제작까지 들어가는 모든 노력값을 기반으로 제작 비용을 개선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이후 노력값은 아이템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는다.

3차 LBT는 개선 과정을 통해서 콘텐츠 소모속도가 매우 줄어들었다. 아이템 제작과 관련한 공략이 유저들 사이에서 공유되었으며, 실제로 만들기 어려워졌지만, 보람과 뿌듯함이 있다는 의견도 받았다. 하지만 특정 아이템(아마 줄기)을 매우 많이 요구한다는 단점도 존재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아이템 제작 가치를 파악하는 것은 노력값 만으로는 파악이 어려운 면이 있었다. 같은 노력값이라도 특정 제작품에 많은 시간이 들어가서 어려워하는 면이 있었다. '개선손잡이'와 같은 노력값이 설정되었음에도 더 손이 많이 가는 아이템이 존재했다. 덜 중요한 것이 복잡한 과정을 거칠수록 유저들의 불쾌감은 커지고 게임에 대한 몰입도가 깨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외에도 플레이어가 의미 있는 선택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견됐다. 규칙을 만들었지만, 선택할 수 있는 요소가 약했다. 누가 만들더라도 같은 능력치의 결과물을 획득했다. 플레이어의 선택은 제한되고 결과물에 개입할 수 있는 요소는 줄었다. 게임은 단조롭게 되고 창발보다는 통제가 더 커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 개선손잡이를 만들다가 몰입이 깨지는 경우도 나왔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CBT에서는 문제점을 보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플레이어가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선택에 따라 아이템이 개선되도록 구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 단순하지만 큰 그림을 세웠다. 재료부터 개조까지 플레이어가 전부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재료를 다양화하는 물론, 가공법과 제작법, 완성품에 변화를 주는 개조법을 이전과 달리 다양하게 설계했다.



▲ 선택은 다양화에서 온다

재료 다양화는 특정 재료에 직접적인 효과를 주자는 발상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럴 경우,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응하여 직접적인 개성을 줄 수 없었다. 공격력이 증가하는 '랩터다리뼈'가 있다면, 무기를 만들면 공격력 옵션을 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제작대나 조리대를 만들었을 때에도 공격력 증가 옵션을 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따라서 강연자는 '속성 매트릭스'라는 개념을 선택했다. 이는 제작 방법에 따라서 제작품이 다양한 효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벼움 속성을 가진 재료로 무기를 제작한다면 정확도 증가 옵션을, 의상을 만든다면 회피 증가 옵션을 획득하는 식이다. 재료 상태의 발현하지 않은 것을 잠재속성, 제작품에서 도출되는 속성을 성능 속성으로 명명했다.




이처럼 잠재 속성과 성능 속성은 이전까지 고유 특징이 없었던 자연물에 개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유저들이 필요한 자연물과 자원을 선택할 수 있게 했게 기획했다. 가공법과 제작법도 다양화됐다. 제작 방법에 따라 속성이 달라졌다. 무두질을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속성이 달라졌고 결과적으로 유저들이 원하는 가공법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최종 제작에 영향을 주는 개조도 마찬가지다. 유저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을 늘리는 것으로 개선하고자 했다.

채집과 제작 전반에 걸쳐서 다양성을 늘렸던 CBT였지만, 정답이 하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선택에 집중하면서 사냥과 채집이 활성화되었고, 제작자의 선택에 따라서 개성 있는 아이템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효율이 높은 특정 아이템에 치중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선택지는 늘었지만, 정답에 가까운 것이 존재했다. 그래서 이를 획득하기 위한 반복적인 재료 수집이 생겨났다.

이외에도 다른 부분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낳기도 했다. 선택지는 많아졌지만, 가공을 거치며 얻는 변화값이 고정된다는 문제였다. 이는 곧 플레이어가 시도하지 않아도 최종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결과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에 제작을 하더라도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CBT 이후 파악한 한계들은 라이브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한 번의 변화를 더 거친다. 라이브 서비스 단계에서의 디자인 목표는 '예상치 못하는 즐거운 기대를 제공하자'로 정했다. 단순하고 강한 목표였다. 그리고 확정 보상 비율이 90%에 이르던 듀랑고에 무작위 보상을 추가하기로 한다. 완전한 확정 보상은 게임을 숙제처럼 만들고, 무작위 보상은 성취감을 빼앗는다. 두 보상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듀랑고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무작위 보상으로 도입한 것은 자연물을 채집할 때 무작위로 부여되는 '잠재속성'이었다. 잠재속성은 채집으로 결과물을 얻을 때, 확률적으로 무작위로 등장하는 것들을 의미한다. 뽀족함, 속이 꽉참, 신선함 등 확률적으로 등장하는 잠재속성을 통해 채집에 대한 기대와 즐거움을 만들 수 있었다. 반복 채집을 하더라도 확률적으로 좋은 재료가 나오니, 기대를 줄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다음으로 추가한 것은 희귀속성이다. 희귀속성은 특정 능력치에 보너스를 주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옵션을 제공하는 형태다. 재료가 변하면서 다양한 조합의 기회가 생겼고, 제작이 완료되는 순간까지 결과물에 대한 기대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단순히 공격력 증가가 아니라 독특한 발동효과 였기에 희귀한 효과 간에 시너지 등 재미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 차라리 독살 스킬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 희귀속성은 제작의 즐거움에 영향을 미쳤다


■ 그럼 듀랑고의 콘텐츠는 '완성' 되었나요?

그렇다면 듀랑고의 콘텐츠는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강연자는 이와 같은 질문에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설명이다. 테스트부터 라이브까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게임이 할 건 많은데 할 게 없다'는 평이 나오는 것이 콘텐츠 디자인을 담당한 강연자에게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기도 하다.




듀랑고는 라이브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도 계속해서 발전 중이다. 앞으로 듀랑고 콘텐츠는 크게 두 방향으로 발전할 예정이다. 신규 속성과 신규 제작법, 농사와 요리 개편, 전투 개선들을 담은 '기존 콘텐츠 보강'이라는 틀이 첫 번째다. 그리고 동물 교배, 도감, 신규 군계, 그리고 스토리팩을 포함한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일 계획이다.

또한 지금까지 발전해 왔던 대로 창발과 통제 사이에서 중간점을 찾고자 한다. 둘 사이의 중간점을 찾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 창발과 통제는 하나의 축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거나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두 개념 모두를 동시에 성장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강연자는 강연의 마지막 '창발과 통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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