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술을 섞고 삶을 바꿔줄 시간" - 사이버펑크 바텐더 액션: VA-11 Hall-A

리뷰 | 양영석 기자 | 댓글: 30개 |




⊙개발사: Sukeban Games ⊙장르: 비주얼노벨 ⊙플랫폼: PC(steam) ⊙출시: 2016.06.21


"VA-11 Hall-A"

BTC 바 프랜차이즈 인증번호 VA-11의 Hall-A. 읽기가 좀 불편하고 꽤 요란하죠? 그대로 부르면 발음이 꼬이기 일쑤라, 사람들을 편하게 '발할라'라고 부릅니다. 오늘 소개할 게임의 배경이자 게임의 이름이기도 하죠.

'발할라'는 간단히 말해서 '비주얼노벨'로 분류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혹시나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정작 게임(이자 교육용 앱)을 만든 한국에는 뒤늦게 출시됐던 모바일 게임 '바 오아시스'를 해보신 분은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술'보다는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좀 더 다른 부분이겠죠. 이전에도 스트리머들도 꽤 많이 플레이한 편이라서 방송을 통해 이 게임을 접한 분도 있을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좀 눈여겨보던 인디 게임입니다. 다른 게임들을 하느라 우선순위가 좀 밀리긴 했지만, 이번 여름에는 이 게임을 마침내 찜 목록에서 지울 수 있었죠. 공식 한국어화가 된 게임은 아니지만 유저 패치로 한국어화가 가능합니다.

※ 게임 내 대화에 비속어가 많은 편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게임 플레이를 볼 수 있는 공식 트레일러 영상.

이 게임은 엄밀히 따지자면 신선한 시스템이 있거나 독특한 시도를 한 게임은 아닙니다. 선택지는 주인공이자 바텐더인 질이 만드는 술과 몇 가지 행동으로 결정되는 방식입니다. 대신 등장인물들이 꽤 다양하고 제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눈에 띄죠.

그리고, 이 게임의 시대와 공간적 배경이 아주 독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기 207X년, 모든 이들이 행동을 감시당하는 '나노머신'에 감염된 글리치 시티에 위치한 작은 바. 글리치 시티는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인간뿐 아니라 진보한 로봇이라고 할 수 있는 '릴림'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사는 도시입니다.

릴림이란 쉽게 말해 인간과 동등한 '자아'를 가진 로봇입니다. 이 시대에는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로봇의 3원칙"은 구닥다리라서 폐기된 지 오래고, 릴림들은 인간과 비슷한 환경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모델들이 만들어져 글리치 시티에 투입됩니다. 글리치 시티는 이런 '릴림'이라는 존재들이 인간 사회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무대랄까요.



다양한 손님들의 주문에 맞춰 술을 내주면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재료를 섞고, 흔들면 술이 완성됩니다.(출처 : Wikia)



술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 만큼, 손님도 다양합니다.

환경이 독특한 도시인 만큼, 발할라에는 다양한 손님들이 방문합니다. 신문사의 편집장, 해커, 용병, 배달부, 군인, 탐정, 성노동자, 수의사, 드라이버, 인기 스트리머 등등. 아, 그리고 시바견과 웰시코기들도 손님으로 찾아옵니다. 개들이 특수한 아이템(?)을 달아서 인간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거든요. 심지어 바 앞에서 자판기랑 대화하다 잘못하면 전기 충격을 당하기도 하는 독특한 곳이죠.

손님들이 찾아오게 된 이유도 제각각, 그리고 사연도 제각각입니다. 서로 이야기하는 관점은 다르지만 그걸 받아주고 대화하는 건 언제나 주인공인 '질'의 몫입니다. 발할라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이 '대화'에서 나옵니다.

근미래의 환경, 그리고 인간과 릴림이 공존하고 동물들과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지만 모든 행동이 감시당하는 세상. 인종 차별과 견종(?) 차별, 직장 상사와의 트러블과 파트너사와의 문제, 연인과의 다툼. 비틀어진 가족 관계와 저널리즘의 방향, 그리고 성노동자의 위험한 환경과 인식, 고뇌와 선을 넘나드는 성적 취향들. 동성애, 트라우마,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과거의 잘못과 후회, 부패한 집단 속에 정의로운 개인, 자신을 숨기려는 사람과 자신을 더 알리고 싶은 사람. 히키코모리, 악성 댓글과 스레드 등등.






소소한 연출들도 있어서 대화에 몰입하기 쉽습니다.

이런 주제들은 환경만 살짝 바꿔서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대부분의 주제는 쉽게 해답을 내릴 수도 없고, 사람마다 겪은 환경에 따라서 서로 다른 해답을 내놓을 수도 있는 주제죠. 손님들은 이런 주제들을 자신의 '경험'으로 이야기합니다.

발할라는 이런 주제들을 개성 있는 '캐릭터'로 풀어냈습니다.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저속하게. 따뜻한 대화로 주제를 풀기도 하지만 보는 사람이 짜증 날 정도로 기분 나쁜 대화도 있죠. 주제는 무거울지라도, 풀어내는 방식이 다양해 게임 자체는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질이나 손님들의 한 마디가 속 시원할 때도 있고 답답하고 불쾌할 때도 있지만 중간중간 개그를 통해 적절한 분위기 전환과 환기가 이뤄집니다. 좀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할 땐 질의 휴식시간이나 질의 집에서 대화가 더 진행되기도 하죠.

이외에도 질이 손님에게 건네는 술에 따라서 대화의 방향이 바뀌기도 하고, 새로운 손님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손님이 술을 직접 주문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힌트만 줄 때도 있고요. 질이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집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다양한 사회 의견도 볼 수 있습니다.






대화에는 언제나 술이 빠지지 않아요. 휴식시간은 담배가 함께 하고요.

발할라는 시스템이 혁신적인 게임은 아닙니다. 거칠지만 깊이 있고 핵심을 꿰뚫는 대화가 게임의 분위기를 휘어잡고, 개성 넘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서사 중심의 게임이죠. 여기에 추가로, 매력적으로 잘 뽑아낸 2D 도트 그래픽과 사운드는 훌륭합니다. 특히, 바의 음악으로 지정할 수 있는 다양한 사운드가 참 매력적입니다.

깊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유저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은 게임입니다. 엔딩 후의 각 손님들의 후일담 형식도 볼 수 있고, 주인공의 뒷이야기도 더 알 수 있습니다. 게임의 여운도 적당히 잔잔한 편이고요. 개인적으로는 찝찝함보다는 안도감과 뿌듯함, 개운함이 남는 게임이었습니다.

만약 발할라를 플레이하길 계획이시라면, 플레이할 때는 천천히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와 과자를 챙기는 걸 추천드립니다. 정말, 제대로 즐기는 법을 잘 알고 있고 안내까지 친절한 게임입니다.



들을 음악을 자유롭게 지정할 수 있습니다.



추상적인 주문도 있죠. 친구를 기리기 위해 만든 술이라...?






편안하게 마실 것과 과자를 들고 즐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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