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C#5] 오범수 대표, "타협해 버리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인터뷰 | 이현수 기자 | 댓글: 5개 |


▲ 산배 오범수 대표

오범수 대표의 '로스트케이브'는 작년 게임창조오디션에서 2등을 차지했다. VR 1인 개발자의 대명사가 된 한대훈 대표에게 밀려 내심 아쉬울 법도 하지만, '관객평가 1위'라는 훈장을 달았다.

좋은 평가를 등에 업고 계획대로 2017년에 게임을 출시해도 됐지만, 그의 '게임을 보는 눈'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더 좋은 VR 경험을 위해 기존 3인칭 시점을 1인칭으로 맞게 수정하고 컨트롤러도 VR 전용 컨트롤러로 변경했다. 오범수 대표는 작년과는 또 다른 게임이 된 '로스트케이브'를 들고 3번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이하 BIC)를 맞이한다.



로스트케이브 : 1인 개발 VR 1인칭 어드벤처


‘로스트 케이브’는 장애물을 넘고 퍼즐을 해결하면서 동굴을 탐험하는 어드벤처 VR 게임이다. 보물을 찾아 동굴에 들어간 2명의 주인공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들과 마주치게 된다. 플레이어는 두 명의 주인공을 각각 움직여 탐험한다. 스테이지별로 콘텐츠를 추가해 난이도는 점차 어려워진다. 바닥에 떨어진 사다리를 움직이거나 바닥에 있는 타일을 밟아 끊어진 다리를 연결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다.



확 바꾼 로스트케이브: "게이머의 눈을 가지고 있어서..."

VR 하면 흔히 체험과 놀라움으로만 접근을 하려고 하는데 '로스트 케이브'에는 여타 다른 VR 게임과 다른 '감성'이 있는 것 같다.

= 게임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을 때 VR 게임은 대부분 체험형 게임이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말 그대로 가상현실만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진득하게 즐길만한 게임이 없었다. 과거 일본 RPG처럼 진득하게 붙잡고 할만한 게임을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시작한 게 '로스트 케이브다'

단순 체험형 게임에서 벗어나 스토리가 제대로 들어가 있는 게임으로 올드게이머의 감성을 자극하고 싶었다.

지금은 조금 바뀌기는 했지만. VR 게임임에도 3인칭 시점으로 개발한 이유가 바로 과거 JRPG와 유사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다. 레버를 당기면 레버를 당기는 모습을 보고 거기에 맞춰 상호작용하는 모습들. 지금은 VR 느낌을 좀 더 주고자 1인칭과 3인칭을 적절히 섞어 중간선 정도에서 타협한 상태다.

사실, 지금도 최고의 포인트를 잡았다고는 할 수 없다. 최고의 방법으로 끼어맞춘 것도 있고... 하지만 찾은 방법 중에서는 제일 결과가 좋은 것 같다. 사용자의 몰입도를 해칠만한 요소를 제거하고자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UI도 구현했다. 1인칭 시점으로 들어갔을 때 "아, 내가 지금 이런 걸 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




3인칭에서 1인칭으로 시점 변경을 결심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언뜻 생각해도 작업해야 할 것들이 무수히 떠오른다. 게다가 게임창조오디션에서 관객 평가 1위를 했던 작품 아닌가!

= 본래 3인칭 시점에서 게임 패드를 통해 즐기는 어드벤처 VR이었다. 그런데 게임을 즐긴 유저들이 "이럴 거면 굳이 VR로 해야 하나?"라는 피드백을 줬다. 고민해보니 역시 VR 하면 1인칭이 어울렸다.

처음에 JRPG와 같은 느낌을 전달하고 싶어서 3인칭을 선택했다. 그리고 동굴이라는 어두운 배경과, 위압감 있는 몬스터, 압도적인 이펙트 등으로 VR 특징을 살리려 했지만, 결과적으론 크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서 뒤집어엎었다. 네 번째 버전이다. 작년 말이었나, 다시는 갈아엎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만들었다. 초심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가 있는 것을 그대로 놔두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갈아엎는 게 생활이다. 지금까지 출시한 게임들도 절반은 갈아엎은 다음에 출시된 작품들이다.

개발자이자 게임을 무척 좋아하는 게이머이기 때문에 '게임을 보는 눈'은 높다. 하하하. 당연히 개발하다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보이고 이를 가만두지 못하는 성격이다. 어떤 문제를 발견했는데 해결이 쉽지 않다 싶으면 갈아엎는다.

어중간하면 나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내 게임을 즐겨줄 사람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우선 내가 만족을 해야 팔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아직도 개발하고 있다. 하...




시점 변화로 시선 처리하는 방식도 신경 썼을 것 같다. 레퍼런스가 적어 콘텐츠 창작자들 사이에서 VR 시선 처리에 대한 어려움이 큰데 이를 어떻게 해결했나.

= VR에서 시선을 유도하는 방법은 총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소리로 인지시키고 두 번째는 이펙트로 인지시키는 거다. 그리고 세 번째가 시선을 직접 옮기게 하는 작업인데 로스트케이브는 아직 거기까지 작업을 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쾅'하는 효과음을 시선 밖에서 내면 대부분 게이머들은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소리를 내고 빛이 반짝하는 등의 연출을 추가하면 그때야 조금 시선을 돌린다. 종국에는 게임 내 캐릭터가 놀라면서 사운드, 이펙트와 함께 제작자가 원하는 곳으로 시선을 보내면 그때야 HMD가 함께 움직인다.

'로스트케이브'의 시선 처리에 대해 고민하던 중 만화책을 봤는데 여기서 정말 많은 걸 깨닫고 배웠다. 만화는 컷마다 독자가 의식하지 못하게 아주 자연스럽게 시선의 흐름을 처리한다.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사건 순서에 따라 시선이 움직이게 돼 있다.

시선의 흐름을 위해서 각도, 시선, 이펙트 심지어 말풍선까지 다양한 도구가 들어감을 알게 됐다. 영화 역시 시선을 처리하는 방식이 있었다. 이제는 직업병인지, 만화를 봐도 영화를 봐도 "아 이렇게 연출하는구나!"라는 생각만 한다. 갈수록 콘텐츠를 콘텐츠로 즐기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하하하.


본래 2017년 출시를 목표로 했는데, 시점과 컨트롤러 변경 덕분에 출시가 미뤄졌다. 일정에 대한 아쉬움이나 지금까지 공들여 만든 작업물이 아깝지는 않나.

=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3인칭을 고집하려면 앞서 말한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경계는 아트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럴 환경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고민 끝에 결국 VR 느낌을 최고로 전달하는 건 '1인칭'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거다.

어쩌면 팀원이 있었다면 3인칭 시점으로 계속 진행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규모 개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한계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파악을 못 하면 일정만 늘어진다. 자신의 실력 안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내 능력 이상의 것을 바로 포기했던 거다.

물론, 이제는 그만 엎을 거다. 하하하. 현재 약 70% 정도 만든 것 같다.



1인 개발: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해버리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프로그래머 출신인데 분위기가 독특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분위기를 표현할 때 어떤 면을 가장 많이 생각하나.

= 프로그래머 출신이라 아트에 대해서는 정말 하나도 몰랐다. 딤라이트를 개발할 때 유튜브를 보고 배우면서 이래저래 여러 시도를 해본 게 많은 도움이 됐다. 그때는 에셋이 있는지도 모를 때라 무작정 그리고 연습하던 시절이라...

그런데 문제는 내가 열혈 게이머라는 점이다. 좋은 게임을 많이 하다 보니 눈만 높아졌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개발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라도 게임을 보는 눈은 확실해서 좋은 작품 나쁜 작품 기가 막히게 골라내는 거. 나도 그렇다.

그래서 개발할 때 가장 믿는 건 바로 내 '눈'이다. 어떤 포인트를 가지고 구현하기보다는 마구잡이로 구현해 놓고 확인 후에 추가하거나 뜯어고치는 작업을 반복한다. 원하는 컨셉이 나올 때까지 수없이 반복한다.

아트를 잘하는 사람들은 원화 단계에서부터 분위기를 제대로 잡고 들어가는데 나는 실력이 안돼서 좀 아쉽다. 그래서 이렇게 만들었다가 부수는 방식이 잘 맞는 것 같다. 내 시행착오의 원흉이랄까. 그래픽은 딱 보면 좋은지 안 좋은지, 느낌이 있는지 느낌이 없는지 바로 안다. 그래서 만족할 때까지 뜯어 고쳐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냥 그 단계에서 멈춰서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지금 아쉬운 건 나만의 색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까지 해결하려면 아트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 앞으로 두어 개의 게임을 더 만들다 보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그래서 아트 이해도가 높은 한대훈님 같은 사람이 부럽다.




가끔 혼자 만들면서 힘들거나 지치지는 않나? 나는 온종일 작업실에 있으라면 너무 힘들 것 같은데...

= 하루에 12시간에서 16시간 정도 작업을 진행한다. 인디 개발자, 소규모 개발자들 네트워킹 파티 같은 경우가 아니면 외부 활동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외향적이지 않아서... 계속 작업한다고 보면 된다.

1인 개발자들은 취미와 일이 겹치는 일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생활을 이겨내기 힘들다. 남들이 일하고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처럼 취미가 곧 일이다. 멘탈이 좀 깨져나가서 그렇지 하하하, 할만하다. 어차피 게임을 하면서도 수없이 깨지는 게 멘탈이잖나. 그래도 정신없이 게임을 하고. 취미와 일의 경계가 없으니까 일을 계속하게 된다.


혼자 개발하니까 마일스톤 관리 같은 게 더 중요할 것 같다.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 보면 알잖나. 전혀 관리 안 되고 있는 거... 하하하, 처음에는 6개월 안에 끝내는 게 목표였다. 그렇게 1년이 되고 1년 6개월이 되고...

보통은 BIC와 같은 행사를 기준으로 일정을 측정한다. 그런데 혼자서 일정을 완벽하게 지키기는 쉽지 않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거라...하하...

그래도 '자기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 것'이라는 인디게임의 기본을 지키고 있어서 만족한다. 문제는 혼자 만들다 보니 매몰 문제를 항상 안고 있다.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걸 제대로 만들었는지 아니면 중구난방이 됐는지 잘 확인이 안 된다.

그럴 때는 한 발짝 물러나서 봐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혼자 개발에 집중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져 전체적으로 살피는 작업을 하기 힘들어진다. 예전에 회사에 다닐 때 디렉터로 근무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당시 아티스트,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등과 함께 작업하면서 한 발짝 뒤에서 봤던 경험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 그의 일터이자 취미공간

로스트케이브 영상기사에 “인간의 기술력은 대단하다. 존경해야 함, 저런 인재는 어마어마한 큰 대기업에서 데려가야 할 텐데”라는 댓글이 달렸다. 대기업에 들어가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나?

= 회사 가기 싫어서 이러고 있는 건데? 하하하, AAA급 게임을 좋아하니까 그거만큼은 아니더라도 발끝에 닿는 게임이라도 만들고 싶고 지금 만들고 있는 게 매우 좋다. 흔히 올드게이머들이 말하는 '게임다운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것도 너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사람이 많으면 AAA급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은 있는데, 팀 관리가 보통 일이 아니다 보니 쉬운 일은 아니다. 대기업은 아니더라도 팀을 이뤄보고 싶기는 하다. 표현하고 싶은 게 100%라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20~30%밖에 안 되니까 아쉽다.



3년 개근 BIC: "정말 소규모 개발자들에게는 최고인 것 같다"

VR 시장의 성장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오랜 시간 공을 들여서 만들었는데 매출에 대해 걱정이 되지는 않나?

= 1인 개발자의 장점 중의 하나 아닐까. 만들고 싶은 게 VR 게임이었으니까 만들고 있는 거다. 게다가 나는 1인 개발이라 욕심을 크게 내지 않아도 유지가 된다. VR 게임을 계속해서 제작하는 회사가 드문 게 매출이 적기 때문에 유지를 못 해서다. 나는 직원 유지할 필요가 없으니까 최대한 많은 플랫폼에 선보이는 게 목표다. 지금은 바이브와 오큘러스 대응을 하고 있으며 PS를 통해 중국도 진출하고 싶은데 아직은 그냥 목표일 뿐이다.

VR 콘텐츠 산업은 발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기존 디스플레이와 기본이 다르니까. 그래픽 카드가 처음 나올 때도 지금이랑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 때 그래픽카드는 하드웨어 가속장치가 아니라 하드웨어 감속장치라는 농담도 했었다.

지금은 거품이 빠지는 단계고, 거품이 빠졌음에도 이 정도면 제법 양호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하드웨어적인 문제 즉, 번거로움의 문제만 해결되면 낙관적이라고 본다. 사실, 인디 개발자들이 시장보고 개발하는 건 아니지마는 난 그렇게 보고 있다. 바이브나 오큘러스의 HMD가 3세대에 이르면 대중화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 작년 BIC에서 로스트케이브를 플레이하는 관람객

이번 BIC에서 관람객들이 '로스트케이브'를 하기 위해서 줄을 서야 할만한 이유가 있을까?

= '로스트케이브'는 어드벤처 게임이다. 하나씩 배워가면서 플레이하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일정 시간 동안에 진행되는 시연과는 잘 안 맞을 것 같아 걱정이다. 스테이지를 종합한 BIC전용 빌드를 만들면 그 자리에서 VR의 느낌을 전달할 수는 있지만, 게이머 감성은 전달하지 못할 것 같다.

다른 VR 게임과 다른 진짜 게임과 같은 VR 경험을 전달하고 싶다. 애초에 타겟 게이머 층이 진짜 게임을 원하는 게이머들이니까 단순히 휘두르고 총 쏘면서 '우와 VR!!'이러는 게 아니라 진짜 게이머 '감성'을 전달하고 싶다. 고민이 많다.


BIC에 3년째 개근 중이다. 무엇이 당신을 자꾸 BIC로 끌어당기는가.

= 소규모 개발자가 사람들 앞에서 게임을 시연하고, 기자, 블로거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행사는 거의 없다. 지스타가 있다고는 하지만, 한 칸짜리 부스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많이 떨어진다. 플레이엑스포는 B2B 중심이라 나처럼 게이머를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는 BIC만한 행사가 없다.

직접 게이머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니까 체감이 좋다. 재미도 있었고, 홍보 효과도 이만한 데가 없었고. 다른 데 가서는 묻히는데 여기는 부스사이즈도 다 같고. 정말 소규모 개발자들에게는 최고인 것 같다.

참가자로도 참가하고 싶은데 개발자에게 너무 매력적인 행사라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갈 때마다 억울하다. 하하하. 개발자로서 5년간 BIC에 참가하고 그다음부터는 스폰서로 참가하고 싶다. 그러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할 텐데 말이다. 하하하.

이번에 정말 괜찮은 게임들이 많다. 기대가 한가득 이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같이 즐기고 싶은데 그럼 내 게임은 누가 홍보하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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