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C2017] 이장주 박사, '갓겜'과 '망겜'사이에 심리학이 있다

게임뉴스 | 박광석,이시훈 기자 | 댓글: 60개 |


▲ 이장주 박사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이장주 박사는 현재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사회문화심리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디지털시대, 기술을 넘어선 사람의 행복'을 테마로 게임과 e스포츠를 비롯해 디지털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장주 박사는 게임을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재조명했다. 게이머는 게임 외에 다른 즐길 것들이 있음에도 재미를 느끼기 위해 게임을 한다. 게임의 어떤 점 때문에 게이머가 게임을 하는 것일까? 이장주 소장은 이 화두에 대해 공유하고, 강연을 통해 게임에 대한 더욱 다각적인 시각을 제시했다.

※ 내용 전달 및 편집의 용이성을 위해 이장주 박사의 시점에서 서술합니다.


■ 의식, 무의식, 비의식 - 게임을 하는 동안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서

⊙ 경험의 층위 : 의식의 구조와 기능

우리는 무언가를 경험할 때 하나 이상의 복합적인 경험을 한다. 그때, 의식의 뇌와 무의식의 뇌, 그리고 비의식의 뇌가 동시에 작동한다. '무의식의 뇌'는 오래된 경험을 저장하는 부분으로, 이를 통해서 경험한 것들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TV 광고를 볼 때,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비의식의 뇌'는 생존과 관련된 것으로, 의식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우리의 사고방식과 감정에 큰 영향을 준다.

동공의 반응을 보면 심리적 에너지의 반영을 쉽게 볼 수 있다. 동공이 커지면 흥미로운 정보가 뇌에 들어왔다는 것을 뜻하고, 동공이 닫히면 정보의 접근을 뇌가 원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작용은 우리의 의식이 작용하기 전에 순간적으로 이뤄진다. 의식적인 프로세스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말이다.




게임을 처음 볼 때 우리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이 게임이 재미있을지 없을지 빠르게 판단한다. 왜 재미있는지 재미없는지 이유를 생각할 때 비로소 의식이 시작되며, 이때의 평가는 실제 원인을 고려하지 않은 작화증(confabulation) 수준의 분석이 되기도 한다.

논지는 유저가 이러한 분석을 어느정도 걸러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이 끝나고 분석적으로 접근해서 게임의 재미를 평가하는 것보다 유저가 게임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 변화, 동공의 반응 등을 보고 게임에 흥미를 느꼈는지 판단하는 것이 더 정확할 때도 있다.

실제로 게임만큼 비의식의 뇌를 많이 사용하는 분야는 드물다. 우리는 보통 게임을 할 때, 분석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게임을 왜 하는가?' 라는 의식 차원에서의 질문은 의미가 없다. 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향유 콘텐츠는 우리 마음속에 무의식적으로 녹아 있는 갈등이나 응어리를 녹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혹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게임을 하는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있다. 그들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자는 등 다양한 행동을 한다. 이러한 행동은 모두 의식을 전환·유지하기 위한, 게임과 같은 맥락의 무의식, 비의식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게임을 왜 하느냐?'라는 질문은 잘못됐다. 게임을 의식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개발사의 속사정이나 그래픽, 스토리 같은 것은 의식적인 이유일 뿐, '그냥. 재밌으니까' 게임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게임을 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질문은 이런 것이다. "그래. 게임을 하고 나서 스트레스가 좀 풀렸니?"




⊙ 게임과 유사한 일상적인 의식전환 경험들

게임과 유사한 일상적인 의식 전환 행위라고 할 수 있는 '쇼핑'을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의 사람은 쓸 돈이 없을 뿐, 돈을 소비하는 것을 좋아한다. 때문에 의식의 뇌는 쇼핑 전에 돈을 최대한 적게 쓸 수 있도록 계획하는데, 막상 쇼핑을 시작하면 신선한 과일의 향기, 파격적인 할인 표시를 접한 무의식·비의식의 뇌가 더 강한 힘으로 그것을 방해한다.

또한, 극장과 공연장에서 만나는 경험도 의식 전환과 관계가 있다. 사람들은 재미를 느끼고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극장과 공연장을 찾는다. 이때도 우리는 공연이나 영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공연장의 분위기, 팝콘 냄새 등 시각, 후각, 청각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무의식, 비의식적인 영향을 받는다. 자신이 소위 말하는 '막귀'라고 할지라도, 비싼 돈을 내고 대형 공연장에 들어가면 그 분위기 자체에 압도되어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것을 바로 '몰입'이라고 한다. 나와 새로운 세상이 접촉할 때, 우리는 몰입을 느낀다. 쉬운 이해를 위해 '나'와 '이성'의 만남을 떠올려보자. 내가 나의 손을 만지면 큰 감흥이 없지만, '나'와 평소에 관심이 있던 '이성'이 접촉했을 때는 엄청난 몰입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몰입은 성관계나 음악의 연주, 경기에서의 승리, 종교 집회 등 다양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평소 즐기는 게임에서 이른바 '캐리'를 했을 때 느끼게 되는 쾌감도 위와 같은 맥락의 경험이다.




⊙ 게이머들의 비의식적 경험들

유저들에게 있어 세상 속 중심이 될 수 있는 게임은 안정감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저는 게임에 몰입하면서 다양한 무의식적 욕구를 충족하게 되는데, 마우스를 잡고, 터치를 하는 등의 일련의 과정도 이에 해당한다. 또한, 게임을 하면서 유저는 무의식적으로 '환대'를 받고 싶어한다. 게임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내가 그 세상 속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유저는 영웅이 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게임을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영웅은 의로운 일을 하고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게임은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죽음의 경험을 대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왕이면 멋진 죽음, 그리고 이러한 죽음을 미리 연습하고 싶다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생각이 우리를 게임으로 이끌게 된다.


⊙ 더 나은 비의식적 경험을 위한 고려 사항

하지만 게임 속에서도 쉽게 주어지는 것은 없다.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투자하거나 '과금'을 해야 한다. 현실에서 받은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게임을 했더니, 이제는 게임 속에서도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더 나은 비의식적 경험을 위해서는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할까?



첫 번째는 '로딩화면'이다. 로딩은 게임을 충분히 경험하는 데 필요한 사전 준비 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로딩은 형식적인 이벤트 안내로 가득 차있는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한다는 정보는 겉으로 봤을 때 유익해 보일 수 있지만, 비의식의 단계에서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원치 않는 정보는 강요'라는 점이다. 유저는 게임 속의 중심이자 왕이 된듯한 느낌을 얻기 위해 게임을 하는데, 이때 날아오는 불필요한 정보들은 강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러한 불필요한 정보들은 그 가치 여부를 떠나 '스팸메일'에 지나지 않는다.

게임 속 '뽑기'도 마찬가지다. 유저는 뽑기를 하면서 '나는 운이 있어'라는 것을 느끼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절대 녹록지 않다. 하지만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뽑기를 없애라고 원망하는 것보다 '뽑기'의 의미를 인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고 통제할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막상 없애고 나면 결국 또 다른 형태의 과금 유도 방식이 등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죽음'이다. 게임 속 죽음에 충분한 의미를 부여할 경우, 비의식적 경험의 백미,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현자타임'이 찾아온다. 오르가즘 이후에 찾아오는 '현자타임'이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비슷한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이처럼 유저의 게임 플레이와 죽음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비의식적 충족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게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로딩화면이 중요했던 것처럼, 엔딩도 그만큼 중요한 요소다. '다음 시작과의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는 엔딩은 매번 다시 찾게 되는 단골가게처럼 유저에게 좋은 기억으로 오래 남는 놓칠 수 없는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좋은 플레이를 보여준 유저에게 MVP를 부여하거나, 이전보다 부족한 성적일 때는 다음엔 더 잘할 수 있다고 피드백을 주며 마무리하는 방식이 기억에 남는 마무리를 위한 장치의 예다.


⊙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들이 게이머를 흔든다



투명한 색깔의 '크리스탈 콜라'와 몸에 좋은 '한약 맛 햄버거'의 이미지에 거부감이 생기듯, 우리의 무의식·비의식의 뇌는 큰 변화보다 안정적인 것을 선호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모바일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바일 게임 '소녀전선'이 과금의 방향성과 같은 작은 차이만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망겜'이라고 불리는 게임들이 유저들에게 더욱 친화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유저들이 반복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무의식·비의식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 게임의 혁신이란 '유저의 비의식을 공략하는 것'이다.

심리학으로 '갓겜'을 만들 수는 없지만 '망겜'이 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은 가능하다. 강연을 통해 소개한 심리학의 요소를 활용해서 '망겜'을 줄이고, 앞으로 더 많은 '갓겜'들이 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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