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던전을 찾아서' 개발일지 - 약이 없는 병, 대작병은 어떻게 예방할까?

게임뉴스 | 윤홍만 기자 |



1인 개발이든 회사에서 팀으로 개발하든 개발자에게 한 번쯤은 찾아온다는 약도 없는 병이 있다. 바로, 대작병이다. 도대체 대작병이 뭐길래 개발자라면 꼭 한 번쯤 이 병에 걸리게 되는 걸까?

※ 대작병 : 본인의 현재 상황으론 만들기에 규모가 너무 큰 게임 or 본인의 현재 역량을 넘어서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지는 현상

다행히 대작병은 자연스럽게 완치할 수 있지만 그래도 껄끄러운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작병을 미연에 예방할 순 없을까? 금일(26일), NDC 강연장에서는 문틈의 지국환 대표가 자신이 발견한 예방법을 설파하기 위해 강단에 섰다. 과연 그가 찾아낸 예방법은 뭘까? 잊을만하면 찾아온다는 대작병을 예방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 예방법을 설파하는 문틈 지국환 대표



■ 무슨 약을 하셨길래 예방법을 설파할 생각을 하신 거예요?





지국환 대표. 그는 왜 대작병 예방법을 설파할 생각을 한 걸까? 모든 건 '던전을 찾아서' 프로젝트의 시작과 함께 찾아왔다.

"'던전을 찾아서'는 전작인 '던전999F'에서 파생된 게임인데요. 단순한 게임인데도 이상하게 사람들이 좋아해 줬어요. 정말 다행이었죠. '던전999F'는 간단히 분류하자면 전투가 90%, 전투 외 레벨업이나 스킬을 익히는 부분이 10% 정도인 게임이었어요"

전투가 90%였던 만큼, 지국환 대표는 유저들이 전투를 즐겨줬으면 했다. 하지만 유저들의 반응은 달랐다. 모바일에선 직접 조작하기 귀찮으니 자동전투가 가능하게 해달라는 얘기가 많았다. 유저들은 레벨업, 아이템 구입 같은 전투 외 요소에만 집중하길 원했다.



▲ 유저가 원한다면 어떻게 한다?

유저들이 이렇게 원하다면 반대로 전투를 10%로, 전투외 요소를 90%로 하는 게임을 만들면 어떨까. 그런 고민 끝에 지국환 대표는 '던전을 찾아서'의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입기획이라고 하는데요.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폭발했어요. 그냥 아이디어만 구상한 거였으니 브레이크가 없었죠. 그러다 정신을 차리니 이걸 언제 다 만드나 싶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내가 걸리면 약도 없다는 대작병에 걸렸구나 하고요"



▲ 아이디어가 폭!발! ...하지만



▲ 의사 양반 이게 무슨 말이오! 내가 대작병이라니!

대작병은 본인의 현재 상황으론 만들기에 규모가 너무 큰 게임이나 본인의 현재 역량을 넘어서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지는 현상으로 개발자라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온다. 그렇다면 대작병은 도대체 왜 걸리는 걸까? 지국환 대표는 3가지 케이스로 대작병에 걸리는 사례를 설명했다.

"첫 번째는 게임이 망할 경우에요. 게임이 망했으니 어떻게 하겠어요? 다음에는 망하지 않게 게임의 스케일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하죠. 두 번째는 게임이 성공했을 때에요. 성공했으면 다음은 자신감을 갖고 더 크게 성공하고 싶어서 게임의 스케일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하죠. 마지막으로는 어정쩡할 때에요. 망하지도 성공하지도 않았으니 성공하기 위해선 게임의 스케일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결국, 어떻게 해도 대작병은 찾아옵니다"



▲ 망해도 성공해도 어정쩡해도 대작병은 찾아옵니다 뭐 어떻게 하란 거야 그럼....

이런 대작병이 특히 무서운 건 개인 개발자가 아닌 팀 개발을 할 때, 팀원 중 한 명이 걸리게 되면 주변에 대작병을 전염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작병을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할까?

"답은 간단해요. 개발하지 않으면 돼요. 하지만 이딴 소리나 들으러 오신 건 아니겠죠. 자, 그럼 본격적으로 대작병을 빠르게 예방, 해결하는 방법을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대작병을 방지하는 방법 A to Z





대작병을 막는 방법 첫 번째는 바로 자신이 대작병에 걸려 만들려고 하는 게임이 똥인지 된장인지 침착하게 구분하는 거다. 오랫동안 개발을 했는데 아무리 봐도 망할 게임이라면 시간과 노력 모두를 날리게 될 테니 그 전에 그 게임이 어떨지 미리 알아보는 게 좋다. 하지만 미래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바로, 프로토타입을 개발하면 된다.

"저의 경우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 '하스스톤'이 한창 인기를 얻고 있어서 카드시스템과 제가 예전에 좋아했던 '주사위의 잔영'의 콘셉트를 따와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봤습니다. 그런데 만들다 보니 프로토타입이라는 본래의 목적에 비해 좀 크게 만들었어요. 4개월이 지났고, 더 치명적인 건 재미도 없었어요. 이걸 냈다간 100% '주사위의 잔영' 표절이라고 돌 맞을 정도였죠"



▲ 프로토타입을 4개월 동안 만들지는 말자

비록 지국환 대표는 프토토타입을 너무 오래 만드는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 덕에 깨달은 것도 있었다.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는 게임의 핵심 요소만 만들어서 재미를 빠르게 검증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가 프로토타입 개발하는 데 목표로 한 시간은 4주. 적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게임에 대해 검증하긴 충분한 기간이다. 그런데 만약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는데 재미가 없다면 어떻게 할까? 답은 하나다. 그 프로토타입은 빨리 폐기해야 한다. 괜히 그걸 안고 가봐야 재밌게 만들 수도 없고 미련만 남는다.




만약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는데 꽤 재밌다면 이제는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가야 한다. 사실 이때도 개발자는 고민에 빠진다. 쉬운 것과 어려운 것 중 어느 걸 먼저 만들지부터 재미있는 콘텐츠와 그렇지 않은 콘텐츠 중 어느 쪽이 우선순위가 되는 등이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와 만들기 쉬운 것 이런 걸 다 떠나 게임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먼저 만드는 게 좋습니다. '던전을 찾아서'의 경우 화면을 터치해 주인공을 이동시켜 화면에 있는 다양한 물건들과 인터랙션하는 걸 목표로 했는데요. 이걸 풀어쓰면 첫 번째로는 이동하는 주인공이 필요했고, 두 번째는 간단한 게임 배경이 세 번째로는 인터랙션을 위한 간단한 UI가 필요했습니다"




대작병에 걸려 처음부터 많은 양을 개발하면 금세 일에 파묻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우선 개발하려는 게임이 게임답게 보이게 하는 게 좋다. 이렇게 기본적인 형태를 잡으면 의욕이 상승하고 문제점을 발견하기도 쉬우며 자연스레 다음 단계는 어떻게 나아가야 좋은지 등을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계속 개발을 하면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는 만큼, 트렐로같은 일정관리로 해야 할 일 등을 구분하는 게 좋다. 처음에는 괜찮지만 계속 작업을 하면 뭘 해야 하고, 어떤 걸 끝냈는지 확인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 대작병 예방을 위해선 일정관리 툴 사용은 권장이 아닌 필수

하지만 일정관리 툴을 쓰면서도 방심하면 안 된다. 개발을 하다 보면 전혀 뜬금없는 내용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가 개발해야 할 콘텐츠에 대한 리스트인데요. 매번 다양한 던전들이 등장해야 하고, 수많은 아이템을 수집하며, 여러 종류의 스킬을 키울 수 있도록 기획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다양한, 수많은, 여러 종류라는 게 수치로는 난해한 부분이었던 거죠. 제가 기획했음에도 몇 종류의 던전을 만들고 몇 개의 아이템을 만들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힐 정도였어요."



▲ 신이시여 제가 뭘 기획한 거죠?

그래도 기획을 했으니 무조건 제쳐놓을 수도 없었다. 우선 지국환 대표는 스테이지를 만드는 작업부터 착수했다. 하지만 고된 작업 끝에 하나의 스테이지를 만들고 테스트를 했는데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적당히 재밌는 스테이지를 만드는데 3일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면 100개의 스테이지를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단순 계산을 한다고 해도 최소 300일, 실제 중간에 또 수정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300일 + @의 시간이 소모된다. 결국 맵을 자동으로 만드는 기능을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링컨 대통령은 '나에게 여덟시간을 주고 나무를 자르라고 한다면, 나는 도끼 가는데에 여섯시간을 쓸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무작정 나무를 자르지 말고 나무를 빨리 자르기 위한 준비를 한다는 얘기죠. 저도 그렇게 했어요. 나에게 시간을 준다면 맵을 일일이 만들지 않고, 맵 에디터를 만들겠다 하고요"

만약 스테이지 1개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3일에서 3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100개라면 300일에서 300시간으로 대폭 감소하게 된다. 우선 스테이지를 만들 때 들어가는 요소들을 분석해 수치만 넣으면 자동으로 만드는 맵 에디터를 지국환 대표는 구상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는 맵 에디터를 만들 줄 몰랐다는 거다. 결국 그는 정보의 바다 유튜브로 몸을 던졌다.

"그렇게 유튜브를 통해 자동으로 맵을 만드는 맵에디터 기능을 익혔어요. 근데 문제가 있었죠. 유튜브에서는 텍스쳐 기반의 타일맵에디터만 있다는 거였어요. 전 오브젝트기반의 타일맵에디터가 필요했는데 말이죠. 결국, 싸구려 지식을 총동원해 어떻게든 개량했어요. 사실 혼자 개발한 거였으니 저만 어떻게든 쓸 수 있으면 됐거든요.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2개월이나 지났더라고요. 시간을 꽤 썼는데 그래도 맵을 만드는데 들일 노가다를 줄일 수 있었으니 이득이었죠"



▲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노가다가 줄어 결과적으로는 의욕이 상승했다

이렇게 맵에디터 구현에 대한 문제를 극복했지만, 아직 남아있는 작업이 있었다. 바로 수많은 아이템과 여러 종류의 스킬은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아이템이 한두 개라면 코딩을 할 때 직접 입력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 수가 많다면 수백 개의 능력치를 일일이 넣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효율도 낮다. 마침내 테이블을 사용할 때가 온 것이다.




사실 테이블을 짜기 전까지만 해도 '던전을 찾아서'의 아이템 능력치는 중구난방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예를 들어 민첩성과 날렵함처럼 실제로는 같지만 용어가 다른 게 대표적이었다. 우선 지국환 대표는 이런 아이템 용어의 기준을 정해서 테이블로 만들었다.

"이렇게 능력치의 기준을 정하니 관리하기 편했어요. 참고로 전 테이블을 구글 시트로 작업했는데 1인 개발이다 보니 돌아다니거나 카페에 간다거나 할 때 언제 어디서든 테이블에 접속하기 편하단 장점이 있었어요"







이처럼 테이블은 초반에 만드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만들면 작업할 때 효율이 좋다. 하지만 지국환 대표는 테이블에 심취하지는 말라고 조언했다.




앞서 일정관리 툴로 트렐로 이용은 권장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거기에 꼼꼼히 적는다면 더할 나위 없다. 처음에 기록할 때 대충 키워드만 넣는다면 다음에 볼 때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개발은 시간과의 싸움인 만큼, 언제 어느 때 보더라도 바로 생각나도록 키워드를 적는 게 중요하다.

"저의 경우 어느 날 빌드 파일의 무게가 20메가가 증가한 적이 있었어요. 왜 증가했을 때 작업로그를 살펴보니 BGM 작업을 했단 걸 알 수 있었죠. 아시다시피 모바일 게임에서 용량 관리는 중요한 문제인데 만약 꼼꼼히 기록하지 않았다면 헤맸을지도 모르는 부분이었습니다"




이제 개발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면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개발 초기에 해당하는 이야기인데 사소한 부분은 완벽하게, 중요한 부분은 대충대충 만드는 게 좋다. 개발하다 보면 생각보다 사소한 것들이 많다. 스킬 아이콘 같은 게 대표적으로, 이런 것들은 신경을 쓴다면 계속 신경 쓰게 된다. 문제는 이런 게 다 개발 시간을 잡아먹는 부분이란 거다. 이런 것들은 사소한 만큼 하나로 빨리 정해버리고 신경 쓰지 않는 게 좋다고 지국환 대표는 말했다.



▲ UI 같은 건 한 번에 만들지 말고 여러 번에 걸쳐 만드는 게 좋다

"UI 같은 건 중요해서 엄청 고민할 거에요.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면 또 마음에 안 들어서 바꾸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중요하면서 신경 쓰이는 것들은 한 번에 하지 말고 짧게 여러 번에 걸쳐 만드는 게 오히려 좋습니다"




대작병에 걸리는 걸 막기 위한 마지막 방법, 그건 바로 멘탈관리법이다. 사실 세상에 존재하긴 하는지 궁금한 것들이지만 멘탈관리만큼 중요한 게 또 없다. 대작병에 걸리면 대작을 만들 거니까 매일 밤을 새운다든가 조금도 쉬지 않고 개발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이런 무리한 크런치는 번아웃을 부른다. 문제는 번아웃 자체보다는 그 후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부분이다.

"사실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순 없어요. 그러니 저는 스트레스를 줄인다거나 없애기 위한 노력보다는 차라리 반대로 본인이 즐거워지는 방법을 찾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사실 개발은 재미없거든요. 그러니 개발 외의 일상에 즐거움을 찾는 게 좋습니다"



▲ 무리한 크런치로 번아웃에 빠지기보단 잠깐 개발에서 눈을 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던전을 찾아서' 개발일지를 공개하며 대작병을 예방하는 방법들을 설파한 문틈의 지국환 대표는 끝으로 "제 방법이 모두에게 통용되는 방법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1인 개발을 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싶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대작병을 극복해 재밌는 게임을 만들길 바랍니다"라며 강연을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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