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자유가 뭐라고 생각해, Reader? '파이어' 리뷰

리뷰 | 허재민 기자 | 댓글: 10개 |

배스천, 트랜지스터의 슈퍼자이언트 게임즈가 돌아왔다. 여전히 아름다운 세계를 가지고서.

지난 7월 출시된 '파이어(Pyre)'는 슈퍼자이언트 게임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손으로 직접 그린 아름다운 아트와 그에 걸맞은 사운드 트랙, 연출과 몰입감 있는 게임 플레이까지. 전작 배스천과 트랜지스터를 통해 슈퍼자이언트 게임즈는 고퀄리티 인디게임 개발사의 면모와 그들만의 특색을 보여주었다.

슈퍼자이언트 게임즈는 12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팀이다. 첫 작품 배스천은 7명으로 시작했으며, 지금은 12명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앞으로도 소규모를 유지할 생각이라고 한다. 배스천을 개발할 당시에는 애니메이터도 없었다고.

개인적으로 전작을 정말 재밌게 플레이했던 만큼 사전 구매가 뜨자마자 사놓고 손꼽아 기다렸다. 이번에는 어떤 세계를 그들이 보여줄지, 어떤 음악으로 감상에 젖게 만들어줄지 기대가 되었다. 영어는 여전히 어렵겠지만 뭐 어떤가. 원래 뭐든 마음의 눈으로 보면 이해가 되는 법이다.


아름다운 유배지, 다운사이드
아트와 음악이 이루는 세계관





다운사이드에 온 것을 환영한다, 낯선이여

역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름다운 아트워크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수작업으로 그린 2D 그래픽에, 이번에는 연극 무대에 여러 판넬이 나타나는 것처럼 꾸며져 있어 색다른 느낌을 준다. 2D지만 3D인것처럼 보이도록 만든 전작에 비해 그대로 평면적인 그림들을 이용했지만, 화려한 색감에서부터 다양한 이펙트가 시선을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전작에 비해 뜯어보는 재미는 조금 덜할 수는 있다. 직접 움직여서 이곳저곳을 탐험하는 어드벤처는 아니기 때문. 물론 비행선으로 변화하면서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는 있지만 대부분 스팟을 통해 이동하고 스토리가 진행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더욱 화려해진 색감 덕분에 화면 하나하나가 그림 같은 풍경을 보여주며, '이건 작품이다' 라는 느낌을 확실하게 전달했다. 배스천이 따뜻한 동화 같은 느낌, 트랜지스더가 우울하지만 화려한 도심의 풍경을 담았다면 파이어는 비현실적인 이세계를 마음껏 꾸며낸다.

▲자유롭게 비행도 가능해진다!

이는 배경뿐만 아니라 캐릭터 디자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인간형인 헤드윈이야 그렇다 치지만, 구부러진 거대한 뿔을 가진 '조다리엘'이나 날개를 가진 파미사, 눈이 하나밖에 없는 길먼 경까지. 이번 작품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을 만들어내고자 했다는 개발사의 의지가 느껴진다.

"우리가 이 게임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것은, 훨씬 많은 캐릭터와, 넓은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따라서 유저가 그들을 알아가고, 그들의 스토리를 알아가고, 그들 각각의 여정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도록 이요."
-그렉 카사빈(Greg Kasavin) 디렉터




▲조다리엘, 파미사, 길먼 경



자유를 위한 투쟁, 고대 시합
간단하지만 전략적인 스포츠



이번엔 패배하길 바랄게, Reader. 그럼 게임을 시작하지.

게임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의식은 '고대 시합'이다. 다운사이드로 추방당한 주인공과 다른 인물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는 의식의 책에 따라 고대 시합을 치러야 한다. 3대3 길거리 농구, 미식축구와 비슷한 '고대 게임'은 오브(orb)를 들어 적의 골대인 장작(pyre)에 넣으면 되는 게임이다. 캐릭터마다 범위가 다른 '오라'가 있어 여기에 닿으면 잠시동안 소멸하며, 차지를 통해 공격할 수도 있다.

시작하기 전에 캐릭터를 3개 골라 누구를 출전시킬지 정할 수 있는데, 캐릭터마다 능력이나 속도, 오라의 넓이, 공격 범위, 골을 넣었을 때 얻는 점수가 다르므로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조다리엘은 덩치만큼 오라 넓이가 넓고 속도는 느린 캐릭터다. 그만큼 초반에 수비수로 쓰기에 좋다. 공격 범위도 넓기 때문에 적이 라인을 뚫고 본진에 가까워졌을 때 빠르게 턴을 조다리엘로 넘겨 공격하기도. 반대로 오라 범위는 작고 속도가 빠른 루키는 공격수로 쓰기 편하다.



▲누구를 데려갈지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조다리엘은 수비수, 루키는 공격수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게임의 묘미다. 마스터리를 통해 능력을 높이면 충분히 조다리엘도 공격수로 쓸 수 있고 그만큼 얻는 점수도 크다. 움직임이 느려서 초반엔 거의 활용을 못 했지만 조다리엘의 매력을 이용하면서 점수를 묵직하게 얻어오는 재미가 있다.



▲마스터리에 따라 스테미나 회복 속도나, 이동 속도가 빨라지기도 한다

전략뿐만 아니라 컨트롤도 요구하는 편이다. 한 번에 한 캐릭터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타이밍에 컨트롤할 캐릭터를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고, 오브를 들고 있는 캐릭터는 공격스킬을 쓸 수 없으므로 다른 캐릭터에게 패스하거나 협동하는 플레이가 필요하다.

또 한가지, 경기를 진행하는 중간마다 실시간 중계를 해주는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계속 나의 패배를 바라는 듯한 비꼼이 투지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대전도 가능하다. 하지만 온라인 PVP는 아니다.

▲초반 플레이 영상



자유라는 것은 선택
게임 오버가 없는 스토리, 분기별로 다양해지는 전개




▲너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Reader, 너의 선택을 존중할게.

게임이기는 하지만 사실 파이어는 비주얼 노벨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스토리 중심으로 진행된다. 등장인물들은 커먼웰스에서 잘못을 저질러 다운사이드로 추방당한 자들로, 다시 커먼웰스로 돌아가 자유를 되찾고자 한다.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는 '의식의 책'에 따라 고대 시합을 치러야 하는데, 이 의식의 책을 읽을 줄 아는 '읽는자(Reader)'가 플레이어. 추방자들을 고대 경기를 통해 한 명씩 자유로 인도해야 한다는 임무를 가지고 시작된다.

플레이어가 별을 보고 길을 찾으면 그곳에서 고대 시합이 이루어지는데, 그 외에도 다양한 선택지가 등장한다. 어떤 길을 통해서 목적지로 갈 것인지, 누구의 의견을 따를 것인지. 심지어 초반에 등장하는 달에 닿은 아이, '?ae'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까지 플레이어다. '?'에는 다양한 자음이 들어갈 수 있는데 이름이 너무 많아서 기억이 안 난다고. 왠지 양 같아 보여서 메에에 운다는 느낌으로 '메이(Mae)'라고 지어줬다.



▲Shae도 좋았지만 모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떠올라서 패스



▲이동 경로에 따라 버프나 좋은 아이템을 얻기도 하고, 오히려 피해를 보기도 한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게임 오버가 없다는 점. 중간중간 플레이해야 하는 고대 경기에서 패배하더라도 게임 오버가 되지는 않으며, 패배하면 패배한 대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유저는 죽음을 통해 게임을 재시작하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 안에서 배워간다. 어떤 길로 갈지, 누구를 경기에 내보낼지 선택할 때도 잘못된 선택이라는 게 없고 패널티가 생기거나 이득을 취하면서 모험을 계속하게 된다.

"죽음이란 것은, 거기선 배울 수 없어야 한다는 거에요. 하지만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캐릭터가 죽을 때마다 재 시작하고, 스토리와 관계없이 '배워'가죠"
-그렉 카사빈 디렉터


특히 전작 트랜지스터가 다회차 플레이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유저들의 아쉬움이 있었던 만큼 파이어의 이런 여러 분기에 따라 달라지는 스토리는 메리트가 있다. 왜, 분기가 중요한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꼭 다른 선택지에 뒤를 돌아보게 되지 않는가. 그만큼 스토리 전개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다시 플레이해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누구를 순차적으로 자유롭게 할 것인가를 정해야 하는데, 한 명씩 보낼 때마다 고대 시합에 출전할 수 있는 선수가 줄어드는 것이니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 잘 키운 선수 하나 보낼 때마다 아까울 따름.



▲아아, 그는 갔습니다...



기대했던 것 만큼, 하지만 그만큼
아쉬웠던 점, 하지만 새로운 도전





파이어는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아트워크나 사운드, 스토리는 탄탄하지만 비주얼 노벨에 가까운 게임 구성에 호불호가 확실히 갈린다. 고대 경기가 있기는 하지만 말했듯이 경기에서 패배한다고 해도 게임 오버가 되지 않으니 자유로 인도하는 데에 있어서 핸디캡은 되겠지만 게임 오버라는 큰 리스크를 가지고 플레이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게 다가온다.

또한, 전작의 장르가 액션 RPG였던 만큼 액션을 기대하고 있었던 팬들에게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 레벨업, 다양한 스킬트리와 조합, 스킬창 구성에 따라 달라지는 플레이가 묘미였던 만큼 비주얼 노벨과 스포츠게임이라고 볼 수 있는 파이어는 새롭기도 하고 다소 캐주얼하다.

분명 고대 경기는 게임에 있어서 중요하고 '게임적'인 요소지만 다소 게임 전반적으로 그 비중이 아쉽다. 3대3 경기가 호흡이 빠르고 짧은 이유도 있고, 플레이할 캐릭터만 달라질 뿐 룰은 변하지 않으니까. 물론 한 명씩 캐릭터를 해방시키면서 전략적으로 인원 배치를 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지며 난이도 설정도 가능하긴 하지만 말이다.

확실히 스포츠 게임과 스토리텔링, 선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파이어는 유저마다 호불호가 갈릴만하다. 슈퍼자이언트 게임즈의 그렉 카사빈 디렉터는 신작 파이어에 대해 "우리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걸 만들려고 하지는 않아요. 전 우리의 게임들은 아주 확실한 색을 띠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며, 이번 작품은 새로운 시도라고 이야기했다.

"우리 게임의 유저들은 모두 새로운 걸 시도해보려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렉 카사빈


확실히 우리는 모두 '새로운 것'을 시도할 준비는 되어있다. 영어가 좀 어려우면 어떻고 글이 너무 많으면 어떤가. 새로운 게임에 대해 유저는 이미 오픈 마인드다.



▲마지막은 귀여운 티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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