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C#14] SOMI 개발자, "정치적 매체로서의 게임, 결국에는 현실에서 시작한다"

게임뉴스 | 정필권 기자 | 댓글: 9개 |



작년, SOMI가 출시한 게임 '레플리카(Replica)'는 시대적인 상황과 맞물려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레플리카는 플레이어가 휴대전화 하나만을 가지고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은 독특한 게임이다. 게임 안에는 12개의 엔딩이 들어있고 정부기관의 대규모 감시체제, 파시즘, 언론통제와 개인의 훔쳐보기 본능, 죄수의 딜레마 등 다양한 것들을 다룬다. 이 게임의 독특한 메시지는 개발자인 SOMI를 '정치적인 게임'을 만든 개발자로 자리 잡게 했다.

BIC 2017 컨퍼런스 키노트를 맡게 된 SOMI 개발자는, 정치적 매체로서의 게임이라는 주제를 통해 '게임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자 했는가?' 그리고 '플레이어가 어떤 영향을 얻었고 레플리카에 어떤 정치적인 영향을 주었나'를 강연을 통해 전달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 정치적인 게임, 결국 '현실'로부터 시작한다 - 테러방지법과 리틀브라더

강연자는 정치적인 게임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게임은 나의 이야기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에는 개인적인 경험과 시대상황이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게임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저자 또한 개인의 경험과 시대상황이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SOMI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먼저 언급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레플리카가 만들어질 시점의 국내 상황, 영향을 미쳤던 현실과 법안들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전달하고자 했다.

레플리카가 만들어질 무렵, 강연자의 나라는 인형사가 정부기관을 꾸리고 지배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인형사는 꼭두각시에게 지시를 했다. "예술 문화 계열에서의 좌편향이 문제다"라고. 그래서 정부기관과 정책을 비판하거나 야권인사를 지지한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어,심각한 손해와 탄압, 억압을 받게 됐던 시기였다. 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는 티켓을 거둬가기도 했으며, TV에서는 정치적인 코미디가 사라졌다. 사회 전반적으로 정부나 집권여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금기시되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당시 여당은 테러방지법을 발의했다. 국가 정보기관이 개인의 사상, 신념, 위치 정보 기록까지 수집하고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주는 법안이었다. 당시 야당은 해당 법안의 내용 자체가 개인에 대한 억압이자, 정치적인 폭압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를 이어나갔다.

이 과정에서 192시간을 기록한 필리버스터를 감행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테러방지법을 막는 것은 실패했고, 법안은 통과됐다. 하지만 필리버스터 현장에서 야당 의원이 읽었던 책의 내용이 게임 제작에 영향을 줬다. '리틀브라더'라는 소설의 내용이 당시 현실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리틀브라더는 국토안보부의 힘이 막강해진 시점, 전체주의과 대규모 감시체제로 폭압이 시작된 디스토피아적 근 미래를 그린다. 소설에서는 한 소년을 테러 위험인물로 지목하고, 소년이 고문과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정부와 싸우는 모습을 묘사한다. 해당 소설의 내용은 SOMI 개발자에게 있어 참담하게 다가왔던 것이었다. 자신이 거주 중인 나라의 현실이 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소설 속 현실이 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의 현실인 곳이 대한민국"이라고 소설을 평가한 영화사 대표의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누군가는 10시간이 넘도록 테러방지법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했다. 작가들은 글로, 화가는 그림으로, 음악가는 노래로 법안의 위험성을 전달했다. 그렇다면 게임작가인 자신이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렇게 '레플리카''의 메인 스토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레플리카의 주인공은 이미 감금당해 있는 상황. 친구의 휴대폰을 가지고 플레이어는 친구의 테러혐의점을 찾아야 한다. 친구가 페이스북에서 적은 댓글, 좋아요 흔적, 티셔츠, 문자 송수신 기록이 모두 테러법이라는 증거가 된다. 억압과 감금이 자행되는 상황에서 플레이어는 선택을 하게 된다. 친구를 테러범으로 만들거나, 정부기관에 압박에 맞서면서 스스로 테러임을 자인해야 한다.

레플리카를 만들면서 강연자는 '게임의 장점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됐다. 어떠한 콘텐츠에 개발자가 의도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플레이어에게 도전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플레이어는 선택의 결과에 대해 중압감과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게임 속의 상황과 인물의 고뇌를 고민하게 되고, 플레이어가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됐을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래서 SOMI는 레플리카 안에서 플레이어들이 고뇌와 선택을 하도록 했다. 플레이어는 지시에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인물로 지목된 친구의 어머니에게 전화하거나, 사회고발 기자에게 전화할 수 있고 때로는 옆방 친구와 블루투스로 교신할 수도 있다. 이런 과정과 윤리적 선택을 통해서 플레이어가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기를 바랐다. 한 번이라도 유저에게 이러한 감정을 느끼게 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 또 다른 현실반영 - 국정교과서와 파시즘

레플리카에 영향을 준 현실은 테러방지법과 리틀브라더 만이 아니었다. 강연자는 개발 과정에서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법치주의를 가장하고 개인의 사상과 신념을 통제하는 사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대표적인 사건이 국가 정보기관의 해킹 프로그램 구매 논란이었다. 리틀브라더의 서문에도 언급될 정도의 사건이었지만, 국내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시 언론은 정부 비판 기능을 상실한 상황이었고, 국가 기관에서는 국내가 아닌 국외 감시용으로 사용했다고 말하며 사건은 일단락됐다.

해당 사건에서 보여줬던 국가 기관의 감시와 비판을 잃어버린 언론의 모습. SOMI는 이런 현실을 게임에 최대한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레플리카 속에 당시 보도내용을 실제로 넣었다. 댓글 또한 실제 댓글 그대로다. 문제는 실제 상황과 반응을 넣었음에도, 게임에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국정교과서 논란도 게임에서 활용했다. 당시 현실에서 국정교과서를 추진한 정부와 여당은 당시 역사교과서의 99.95%가 좌편향 되어있고, 국정교과서 제작에 반대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볼 수 없다고도 발언한 바 있다. 게임에서는 국정교과서와 관련된 현실이 플레이어와 친구들이 '파시즘'이라는 단어를 교육받지 않았다는 것을 언급하며 게임에 녹여내고자 했다.

페이스북 좋아요를 눌렀다는 이유로 위험인물로 지목되는 게임상의 모습도 당시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들을 넣어놓은 것이다. 이러한 게임상의 설정을 본 플레이어들은 리뷰를 통해 '너무 과장됐다. 유치하다"와 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겐 통렬한 현실이었으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싸구려 디스토피아에 나올 만한 내용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 판사님 이건 저희 고양이가... 읍읍... - 출시 이후의 반응

레플리카의 한국어 버전이 나오고 반응을 얻으면서 '좌빨게임'이라는 반응이 모 커뮤니티를 통해서 터져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만든XX 뭐하는 놈인지 알고 싶다'는 반응도 나왔다. SOMI 개발자는 해당 글을 읽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신상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삭제했다고 회고했다. 한국어 버전을 만들면서 반응은 예상했으나, 실제로 접했을 때의 느낌은 매우 달랐다. 신상에 관련된 정보를 삭제할 정도로 두려움을 느꼈다.




스팀 리뷰에서는 '판사님 이건 저희 고양이가 했어요. 읍읍...'같이 일종의 밈을 이용한 반응들이 주를 이뤘다. 단순히 유행하는 농담을 적은 것이라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한 시대에서 유행하는 농담에는 당시 대중의 잠재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농담 속에 들어있다는 해석을 해볼 수 있다.

판매는 주로 중국과 대한민국에서 압도적인 판매량을 기록했다. 정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중국 매출이 높은 수치를 기록할 것이라곤 상상을 못했다. 그렇기에 더욱 놀라움을 남겼던 수치였다. 터키에서는 팬사이트를 만들어서 게임을 홍보하고 유저 스스로 게임을 알리기도 했다.




각국마다 가진 반응의 차이는 결국, 누군가에게는 '싸구려 만화에서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게는 통렬한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하였다. 결국, 개인이 처한 상황과 경험을 다르지만, 공감 가능한 지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공감점을 게임이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서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게임 출시 이후 사회적으로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촛불집회, 탄핵, 블랙리스트 관련자의 구속. 그리고 새로운 정부의 수립까지 이루어졌다. 특히, 대통령탄핵 날에는 레플리카를 무료로 전환하기도 했는데, 트위터 트렌드에서 대통령 탄핵과 관계 없는 레플리카가 실시간 트렌드에 랭크 되기도 했다. 유저들은 레플리카를 탄핵의 축배로 생각하고 있었다.

SOMI 개발자는 이를 보며 "격동의 역사 현장에서 레플리카가 정치와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며 당시를 추억했다. 자신의 사상을 담은 게임이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게임을 정치적 매체로 전환시켰다.






▲ SOMI, " 어떻게 창작되었냐를 설명드린 것이지
정부 정책을 부정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평범한 애국자입니다."



■ 작가의 관점을 보여주는 것 - 정치적 매체로서의 게임 제작

그렇다면 정치적 매체로서의 게임이 갖는 의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정치적이라는 단어는 광의의 표현으로 '개인 또는 집단 간의 상호작용과 그 사이에 내포된 권력에 관한 이야기'를 의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게임은 정치적 매체로서의 게임이라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SOMI는 정치적 게임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작가가 작품을 통해 사회와 민족, 인간의 문제에 대한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 정치적인 게임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게임은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가장 적절한 수단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사실, 강연자는 레플리카의 다음 게임으로 정치와는 관련이 없는 게임을 제작하려 했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바라보며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게 개발한 것이 '리갈던전'이다. 개발자 스스로 '재미없는 게임'이자 '수사서류 작성 격무 시뮬레이션' 이라고 소개한 리갈던전은 일부러 지루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지루한 게임을 좋아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로 지루한 게임이 유저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리갈던전에서 플레이어는 경찰 서류를 작성하게 되며, 판례를 검토하고 적용 법조를 찾아 사람을 기소할지 아닐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판단의 올바름보다는 성과를 위한 서류처리에 주력하게 된다.

강연자는 이를 통해 경찰이 "성과주의에 집착하는 문제가 대두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기대의 말을 남겼다. 승진과 월급의 주된 원인이 되는 성과 점수. 상명하복의 조직에서 개인이 받은 점수는 그가 얼마나 국가와 조직에 충성하고 헌신하고 있다는 척도로 작용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실질적인 범죄 예방에 관심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는 메시지를 플레이어에게 던지고자 했다.

플레이어가 거치는 여러 선택 속에서 법과 현실의 괴리감, 플레이어의 도덕적·합리적 선택의 결과를 통해 죄책감과 책임감을 전달하고자 만들었다. 정치적인 메시지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현실과 플레이어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SOMI가 게임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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