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닌텐도 스위치, 소규모 개발사에 '금광'이 될까?

기획기사 | 정필권 기자 | 댓글: 34개 |



"금이다! 아메리칸 강에서 금이 발견됐다! (Gold! Gold from the American River!)"

역사상 가장 유명한 외침을 남긴 새뮤얼 브래넌의 말은 전 미국으로 전파되어 골드 러시를 촉발시켰다. 많은 이들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고, 급성장의 시기를 맞았다. 도로 및 철도와 같은 사회간접자본들이 확보되면서 서부의 작은 개척지가 하나의 주로 승격되기까지 했다. 모두가 일확천금의 꿈을 달성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1848년부터 몇 년간, 황금을 위해 이동한 사람들은 부푼 꿈을 가지고 캘리포니아에 발을 내디뎠다. 새로운 지역에서 거둘 수 있는 막대한 부에 대한 기대감은 많은 이들의 참여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출시하여 전 세계적으로 물량 부족에 시달리는 콘솔 기기, '닌텐도 스위치'에서도 골드 러시와 유사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스위치의 판매량이 호조를 보이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린 셈이다. 충분한 가능성을 보인 시장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큰 혜택을 본 것은 소규모 · 인디게임 개발사들이었다. 얼마만큼의 매출을 기록했느냐를 떠나, 기존 플랫폼보다 더 많은 판매량과 수익을 올렸다. 대규모 마케팅을 진행할 수 없는 이들에게 있어서 스위치에서의 매출은 그야말로 '금광'과도 같았으리라.





닌텐도가 달라졌어요 - 금광을 만들다

닌텐도 스위치가 처음부터 '금광'으로 기대받았던 것은 아니다. 스위치 출시 이전, 닌텐도의 주가는 연일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전 세대 콘솔 기기인 Wii U는 1,500만 대도 판매하지 못하고 생산이 중단됐다. 7년 연속으로 매출액이 감소하던, 그런 시기였다.

'망유'라는 조롱 섞인 별명이 생긴 Wii U는 처참한 판매량과 더불어 서드파티에게 완전히 외면받은 기기였다. 서드파티 지원은 전멸 수준에 가까웠고, 내장 하드 드라이브의 부재와 별도의 스크린을 사용한 조작계 등 개발을 위한 애로사항들이 산재했다. 일부 게임들은 Wii U 판에만 DLC를 제공하지 않거나 아예 출시조차 하지 않았다. 하드웨어의 낮은 성능. 그리고 지원책의 부재는 대다수 서드파티가 닌텐도를 떠나게 한 계기가 됐다.



▲ 복합적인 문제로 개발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외면받았던 'Wii U'

하지만 닌텐도는 스위치의 출시를 준비하며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지난 2월 18일 일본 오사카에서 진행된 'GAME CREATORS CONFERENCE 2017'의 세션을 통해 출시를 앞두고 서드파티와 개인개발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함을 알렸다. 2016년 7월, 법인이 없는 개인 개발자에게 '닌텐도 개발자 포털'을 오픈한 것의 연장선이었다.

이날 닌텐도 측은 인디 및 소규모 개발자들에게 있어서 긍정적인 정보들을 공개했다. 닌텐도 스위치의 SDK가 인디 및 소규모 개발자들에게는 5만엔 정도의 가격으로 제공될 것임을 알렸다. 다른 콘솔 기기의 SDK가 2,500달러 정도임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여기에 세션을 통해서 캡콤의 자체 엔진 이식에 들어간 인적·시간적 코스트가 3DS, Wii U의 1/5 이하로 줄어들었다고도 설명했다. 기술적인 지원은 물론이고 PC 에뮬레이션 환경 등에서 이전보다 나아졌다.

대부분의 타이틀이 카트리지 형태로 유통하던 것에서 온라인으로 판매 구조가 넘어가기도 했다. 국가코드 삭제는 이를 위한 포석이었다. 게임 구매를 위한 결제는 간편해졌고, 신용카드는 물론이고 페이팔을 통한 결제까지 지원하면서 국적에 구애받지 않는 결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이전 콘솔 기기에서 다운로드 구매, 개인 개발자들의 개발과 출시 등 모든 면에서 폐쇄적이었던 모습을 보여줬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닌텐도의 이러한 변화는 결과적으로 다수의 인디게임이 스위치로 포팅 및 출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기기의 인기를 실증하기 전부터 말이다.

▲ 닌텐도가 기기 출시 전에 인디게임 쇼케이스를 진행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개발자의 입장에서 - 스위치의 매력은?

닌텐도가 보여주던 제도 및 기기에서의 보수적인 면이 개선되면서 많은 수의 인디게임들이 스위치로 출시됐다. 이미 스팀을 통해서 발매됐다고 하더라도 스위치로 재출시하는 게임도 있었고, 모바일로 출시한 게임을 그대로 스위치로 옮긴 사례도 있었다. 새로운 콘솔 기기란 장점과 함께, 적어도 소규모 및 인디 게임들에 있어서 하나의 가능성으로 판단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개발자들에게 스위치의 어떤 점들이 매력적으로 다가갔을까?

첫 번째로, 개발 과정의 애로사항이 사라졌다는 점이 크다. 스위치 출시 이전부터 개인 개발자들에게 닌텐도 개발자 포탈을 개방했으나, 이렇다 할 움직임이 있었다 보기는 어렵다. 기기의 성능도 발목을 잡았지만, 닌텐도 콘솔 기기의 독특함이 더 큰 문제였다.

3DS의 경우 두 개의 화면을 가지고 있었고, 여기에 3D화면까지 보유한 독특한 정체성이 있는 기기다. 덕분에 독특한 게임들이 등장할 수 있었지만, 3DS에 기존 게임을 옮겨 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기존 게임의 그래픽을 기기 성능에 맞게 낮춰야 했고, 두 개로 나뉜 화면에 맞게 UI도 재배치해야만 했다. 인력이 많다면야 상관이 없는 문제였겠지만, 소규모 및 인디 개발사에 있어서는 큰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다.



▲ 드래곤퀘스트11처럼, 내용은 같아도 '다른 게임'을 만들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이유는 변화한 개발 환경에 적극 대응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규모 개발사의 개발 환경은 유니티와 언리얼 엔진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고, 스위치에는 이를 지원하기 위한 기술적인 제반 사항을 사전에 갖춰뒀다. 엔비디아의 그래픽 기술과 게임 엔진의 지원을 시작한 것은 물론, 결과적으로 타 기종에서 유통되던 게임을 신속하게 이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게임엔진의 적극적인 지원은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던 업체들이 스위치를 눈여겨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유료 모바일 게임을 개발해온 '레이아크'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레이아크는 리듬게임 'VOEZ'를 스위치 출시와 함께 e-샵에 등록했다. 버튼 조작은 지원하지 않는 모바일 버전 그대로였으나, 터치 패널 조작을 지원하기에 큰 문제 없이 출시할 수 있었다.



▲ 텐센트는 'Arena of Valor (전설대전)'을 스위치로 내놓기도 했다.

세 번째로 국가 코드의 삭제, DL 구매가 활성화되었다는 점이다. 국가마다 정책이 다르고, 가격 책정이 다르므로 역수입을 막기 위해 닌텐도는 국가코드를 고수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이 해제되면서 한 국가의 마켓만 출시해도 게임을 판매할 가능성이 생겼다. 게임을 등록하고 판매하는 개발자 정책 자체가 스팀 급으로 자유로워 졌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이다.

또한, DL 구매 활성화로 게임 가격 상승의 요인이 되는 카트리지에 얽매일 필요도 사라졌다. 인디게임을 구매하려는 유저들의 구매는 한결 쉬워졌고, 대부분 예상을 뛰어넘는 판매량이 기록된다. 심지어 북미 등에서는 DL 판매뿐만 아니라 인디 게임의 패키지가 출시되고,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신규 콘솔 기기이기에 판매 및 노출에서의 이점을 가진다. 이는 기존 플랫폼으로 출시되는 수많은 게임과 경쟁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하며, 자사 게임의 노출도를 늘리는 것을 의미한다. 스위치 출시 시점인 3월에는 인디게임이라도 e-샵 내부에 장시간 노출되기도 했다. 스팀에서 하루에도 수십 개의 게임이 출시되고 어느 순간 잊혀지는 것과 비교한다면, 많은 노출을 보장하는 셈이었다. 닌텐도 측에서도 닌디(Nintendo + Indie Game) 쇼케이스를 꾸준히 진행하며 외부적으로도 홍보를 지속했다.

▲ 지난 8월 30일 '닌디' 쇼케이스 영상.


플레이어에게 인디게임이란? - 퍼스트 사이의 목마름

개발자들에게 있어서 스위치로의 출시는 꽤 많은 판매량을 보장하는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출시 3개월여 만에 500만 대 가까이 판매하면서 충분한 시장이 형성되었고, 인디 게임에 있어 충분한 메리트를 갖는 콘솔로 자리 잡았다. 유저들은 AAA급 게임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구매하고 있으며, 이는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닌텐도 스위치 사용자들이 인디게임을 꾸준히 구매하는 데에는 기기 출시 초, 할 수 있는 게임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 크다. 초반 기기 판매량을 견인했던 것이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과 '스플래툰2' 같은 퍼스트 파티 게임이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퍼스트 파티 게임 출시 간격이 1개월에서 2개월 정도로 긴 편이었다. 게임의 완성도를 차치하더라도 사이를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 '야생의 숨결'은 정말 잘 만든 게임이다. 하지만 이것만 하기에는...?

텀이 긴 퍼스트 파티 게임들 속에서 인디게임은 살짝 모자란 라인업을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기기 판매량의 견인은 퍼스트 파티가 이끌고, 형성된 시장 내에서 인디게임이 판매되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 최근 몇 년간 성공적으로 시장에 선보인 인디게임이 많아졌던 만큼, 유저들의 인식도 AAA급 게임만 바라보는 것도 아니었다. 게임의 완성도와 재미만 보장된다면, 그래픽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판매됐다. 가격도 퍼스트 파티 게임들과 비교하면 1/3 수준이었다.

또한, 스위치의 기기적인 특성이 판매에 한 몫을 거들었다. 거치와 휴대를 오갈 수 있으며, 기기의 스펙은 적당히 뛰어났다는 점이다. 뛰어난 기기 성능을 요구하지 않는 만큼, 언제 어디서나 플레이할 수 있는 휴대기기에서는 인디게임이 나름의 메리트를 갖게 된다. 인디게임의 그래픽을 표현하기에도 스위치의 스펙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가볍게 이동하며 게임을 즐기기에는 인디게임이 최적의 선택이 될 수 있었다.



▲ 이동 중에 가볍게 플레이하기에는 인디게임이 어울리는 면도 있다.

'골드 러시'가 맞을까? - 플랫폼의 성장과 생태계

'왜 스위치로 인디 개발자들이 몰려가고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잘 팔리고 기존 플랫폼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7일 스위치 e-샵에 출시한 뉴로보이더(NeuroVoider)의 개발자 토마스 알텐부르거 (Thomas Altenburger)는 자신의 SNS를 통해 "구체적인 수치는 밝힐 수 없으나, 스위치 출시 1개월 동안의 판매량이 스팀 전체 판매량과 비슷하다"고 알린 바 있다. 다양한 기종으로 출시됐던 '원더보이: 드래곤즈 트랩'의 개발자 또한 닌텐도 스위치 버전이 Xbox One과 PS4, PC를 합친 것보다 많은 매출을 기록했다고도 알리기도 했다.

스위치에서의 높은 판매량은 출시가 얼마 되지 않은 게임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셔블 나이트(Shovel Knight)의 개발사 Yacht Club은 해외 언론을 통해 모든 플랫폼 중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출시 이후 3년 가까이 지난 게임임을 생각해 본다면, 놀라운 수치다.



▲ 스위치 출시 1개월 만에 스팀 18개월 만큼 팔린 '뉴로보이더'

신규 플랫폼이라는 배경과 AAA급 타이틀이 많지 않은 상태임을 고려하더라도, 현재 닌텐도 스위치로 출시되는 인디게임의 미래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몇몇 개발자는 이를 두고 '골드 러시'에 비유하며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고 반길 정도다. 그렇다면 닌텐도에게는 '지금 같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지금의 긍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도 닌텐도에게 있어서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소규모 개발사가 스위치 출시를 통해 성장하게 된다면, 이후에도 탄탄한 서드파티로의 참여를 기대해봄 직하다. 그렇기에 닌텐도는 인디게임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쳤다. Wii U의 처참한 실패를 넘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모습이다.

출시 후 3개월 판매량 470만 대를 기록한 닌텐도 스위치. 닌텐도의 정책 변화는 AAA급 게임이 아니더라도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물론, 앞으로 나아갈 길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와 지원책이 유지될 수 있다면, 스위치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개발사를 성장시키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골드 러시 시기에 투자됐던 사회간접자본이 지역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졌듯 말이다.



▲ 북미 e-샵의 판매량 순위 절반 정도는 인디게임이 차지한다. 그만큼 잘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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