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취감은 상실감에 기반한다! '항아리 게임' 개발자 베넷 포디

인터뷰 | 원동현 기자 | 댓글: 70개 |

게임이란 건 생각보다 굉장히 심오한 분야입니다. 단순히 화려한 그래픽에 좋은 스토리가 전부가 아니죠. 그 속엔 수많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숨어있고, 또 그 이면에는 '게임'의 본질이 숨어있습니다.

보통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게임을 한다고 말하지만, 게임이란 단순히 '카타르시스'만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과정을 보다 복잡하고 철저하게 색을 입혀 일련의 과정으로 재탄생시킨 것을 게임이라 할 수 있겠죠.

최근 한국을 강타한 'Getting over it'은 그런 의미에서 참 독특한 성격을 보여줍니다. 좋은 그래픽도, 스토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얼핏 보기엔 그저 웃긴 게임이죠. 가끔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어려워 스트레스도 받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한 줄기 맥락이 보입니다.

사람들을 좌절시키고 상처 주기 위해 만들었다는 'Getting over it', 일명 '항아리 게임'. 그 속에 담긴 개발자의 이념을 인벤에서 서면 인터뷰를 통해 소개해드립니다.








Q. 안녕하세요.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간단히 자신의 경력에 대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베넷 포디(Bennett Foddy)라고 합니다. 저는 현재 뉴욕에 소재한 NYU에서 게임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 명의 게임의 디자이너로서도 활동 중입니다. 아마 'Getting over it' 이전에 가장 잘 알려진 제 게임은 브라우저 게임인 'QWOP'일 겁니다. 그 이전에는 옥스포드랑 프린스턴에서 철학자로 지낸 바 있습니다.



▲ 과거 많은 게이머에게 좌절감을 안겨준 QWOP

Q. 'Getting over it'을 개발하게 된 계기나 배경은 무엇인가요?

저는 두 가지 게임에 영감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로는 2002년에 출시된 무료 게임 '섹시 하이킹(Sexy Hiking)'이었죠. '게임에 관한 게임'을 만들었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Davey Wreden이 최근 개발한 인디게임 '더 비기너스 가이드(The beginner's guide)'였어요. 그 게임에선 작가가 나레이터로 등장하여 게임 속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설명을 해줍니다. 그 두 게임을 같이 섞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 베넷 포디가 영감을 받은 두 게임

Q. 상당히 특이한 느낌의 디자인과 설정이 인상적입니다. 어떻게 이런 캐릭터와 플레이 스타일을 떠올리셨나요?

'망치로 등반한다'는 가장 기초적인 룰은 앞서 말한 섹시 하이킹에서 영감을 받은 부분입니다. 캐릭터 디자인은 솔직히 게임 전반의 흐름에 맞추다 보니 탄생했어요. 망치로 등반을 해야 할 테니 당연히 힘이 강해야 할 테고, 다리는 쓰면 안될 테니 다리는 '어디론가 사라져야' 했죠. 몇몇 다른 디자인을 생각도 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리가 보호되지 않은 상태면 이상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의 '항아리'를 씌우게 된 거죠.

Q. Getting over it이 현재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수많은 스트리머들이 앞다퉈 방송을 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이러한 열풍을 예감 하셨나요?

진짜 전혀 예상 못 했습니다! 어느 날 험블 번들(Humble Bundle) 측에서 제게 '마우스'와 'PC'로만 할 수 있으면서도 플레이어 입장에서 굉장히 흥미로울 게임을 개발해달라 부탁했어요. 게다가 기괴한 느낌의 게임이면 금상첨화라고 했죠. 그래서 '비상업적'이고, '불친절한' 게임을 만들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을 했어요. 솔직히 2,000명 정도가 플레이할 줄 알았는데 제 예상을 한참 넘어섰습니다.

Q. 중간중간 튜토리얼 구간으로 돌아가게 되는 요소들이 화제입니다. 특히 실수로 건드리는 순간 후반부에서 튜토리얼 구간으로 직행하는 '뱀'이 유명한데, 이러한 '스트레스' 요인이 게임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나요?

개인적으로 방송 스트리머들이 스네이크 앞에서 멈춰 서는 걸 볼 때마다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저는 몇 시간에 걸쳐 간신히 그 높이에 도달했을 플레이어들에게 딜레마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이 아이디어는 고전 보드게임인 '뱀과 사다리'에서 나왔죠. 이게 한국에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주로 즐겨하는 보드게임입니다. 끝자락에서 시작점까지 한 번에 떨어질 수 있는 장치가 있는 게임이죠.



▲ 출처 : codepumpkin.com

Q. 게임 속에서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게임 진행 중에 자신의 진행 상황을 유지할 수 없도록 하는 게임은 흔치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성취감이란 자신이 잃어버릴 것이 있는 상황, 즉 잠재적인 상실감에 기반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형태는 스토리에 집중해야 할 RPG나 AAA 슈터 장르에는 어울리지 않죠. 하지만, 말 그대로 실력만을 측정하는 게임들은 이런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Q. 'Getting over it'의 가장 큰 '재미'는 결말과 과정, 어떤 쪽에 집중되어있다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으로, 'Getting over it'의 가장 큰 '재미'는 등반을 하며 얻는 매 순간의 즐거움과 끊임없이 덮쳐오는 상실감의 공포, 이 두 가지의 '조합'이라 생각합니다.

▲ 출처 : Tomasz Igla

Q. 'Getting over it' 뿐만 아니라 'QWOP' 등 대부분의 게임이 실험적인 성격을 보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게임'의 가치와 '게임'을 통해 알고자 하는 연구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저는 4살부터 시작해서 정말 많은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해왔습니다. 저는 아직도 잘 만든(well-made)게임들을 참 좋아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반복될 수록 게임에 대한 두근거림과 신선한 감정이 줄어간다는 걸 느꼈어요. 더 이상 새롭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흥미를 느끼기가 어려웠죠.

연구적 의미에 대해 말하자면, 진짜 실험은 게임의 메커니즘 속에 있지 않습니다. 게임의 '밖'에 존재하죠. 개인적으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가장 흥미로운 게임 관련 실험들은 게임 메커니즘보다는 문화적 요소에 집중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Q. 게임 중독에 관한 연구를 하시는 걸로 유명합니다. 한국은 게임 중독과 관련해 정부 단위의 논쟁이 이루어지는 국가인데요. 수년간 이 부분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저는 그저 사람들이 '게임 중독'이란 주제를 다룰 때, '사람'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치 그들이 게임을 억지로 하는 로봇인 것처럼 말이죠.

일단 제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중독성 있는 활동을 추구합니다. 왜냐하면 '재미'있으니까요. 사람이란 결국 자신에게 즐거운 활동을 찾아다니게 되죠. 저는 이런 '즐거움'을 피한다는 게 중독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가끔은 게임을 하면서 자신을 잠깐 잊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자제력을 길러야 하겠죠.

Q. 게임의 난이도나 반응에서 오는 중독성 외에 다른 부분에서 다가오는 중독성이 큰 논쟁거리입니다. 실제로 한국이나 일본은 게임 내 BM 중 하나인 '뽑기' 요소가 강력한 중독성을 부르고 있다고 보고, 실제 이를 제재하는 분위기도 강하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단 저는 가챠, 루트 박스(loot box)(이하 '랜덤 박스') 같은 요소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이게 중독성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성인들은 논외로 치더라도, 이것들은 아이들에게 도박 습관을 심어줄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물건이기 때문이죠.

제가 랜덤 박스를 싫어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러한 물건들은 게임의 '속도'를 낮춥니다. 즐거움을 의도적으로 뒤로 미루는 거죠. 무슨 뜻이냐면, 게임을 접한 첫 10시간을 고의적으로 답답하고 재미없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야 랜덤 박스를 통해 상품을 얻었을 때 기쁘니까요.

그리고 더욱 중요한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게임에는 어느 정도 '정석적인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게임을 하는 모두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스포츠를 예로 들어보자면, 사람들은 모두 같은 필드 내에서 달리며 같은 공을 차게 됩니다. 책을 읽는다면 어떨까요? 마찬가지로 같은 책이라면 누가 읽어도 같은 텍스트를 읽게 되죠. 그리고 같은 책을 읽은 사람끼리 모여 그 경험에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게임들이 과도하게 사용하는 '부가적 경제 요소' 때문에 최근 사람들은 '같은 게임이지만 다른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요소가 게임의 순수성을 망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전 게임을 예술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예술가도 자신의 작품에 랜덤 박스를 넣진 않죠.

Q. 앞으로의 개발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글쎄요, 현재는 별 계획이 없습니다. 'Getting over it'도 아직 제대로 안 올라간 상황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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