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을의 젠지,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

기획기사 | 장민영 기자 | 댓글: 22개 |
많은 이들이 정규 시즌 경기를 바탕으로 롤드컵에 나서는 팀에 기대를 한다. 특히나 올해의 롤챔스 섬머는 네 팀이나 13승을 기록하며 1위 경쟁을 할 정도로 치열했다. 그만큼 강팀이 될만한 후보도 많았다. 최상위권 경쟁을 하는 팀들은 수많은 슈퍼플레이를 선보였고, 팬들 역시 이에 열광하고 다음 경기를 기대하게 된다. 뛰어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내는 화려한 솔로킬, 라인전부터 상대를 '찍어누른다'는 말과 함께 빠른 스노우볼.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간 팀이 주목받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번 롤드컵 선발전 역시 날카로운 '창'과 같은 강팀들이 대거 출전했다.

그런데, 롤드컵으로 향하는 마지막 자리에 많은 예상을 깨고 다시 젠지가 올라갔다. 많은 관계자들이 롤챔스 결승전 경험이 있는 다른 팀을 지목했지만, 결과는 신기하게 뒤집히고 말았다. 정규 시즌 경기력을 봤던 팬들 역시 기대를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했던 팀이 바로 젠지였다. 섬머 2R에서 최상위권 그리핀을 잡고도, 당시 중-하위권에 위치한 SKT T1에게 발목이 잡히는 등 복잡한 성적을 냈으니까. 그리고 다른 세 팀에 비해 압도적인 공격력을 자랑하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젠지는 3년 연속으로 롤드컵 선발전을 돌파했다. 이제는 절대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특히, 올해는 가장 낮은 1차전부터 올라왔기에 더욱 그렇다. 롤드컵 기간이 다가올 때 '필연'을 만들어내는 젠지만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걸어온 길은 다른 팀과 조금 달랐을 뿐이다. 롤드컵 선발전만 되면 강해지는 젠지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방패'를 들 줄 아는 팀
3년 연속 롤드컵 사수한 '젠지'표 방패는?



▲ 쓰러지지 않고 등장하는 '크라운' 리산드라

LoL은 포탑부터 넥서스까지 파괴해야 하는 게임이다. 승리를 위해서는 당연히 공격해야 하고,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수비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공격이 통한다면 문제 될 게 없으니까. 이는 롤챔스 결승전과 롤드컵 선발전에서 뛰어난 기량을 자랑했던 미드 라이너 '페이커-초비-유칼'이 충분히 보여줬다. 이렐리아와 아트록스를 활용한 미드 라인 솔로 킬이 최상위권 간 경기에서 어떤 '눈사태'를 불러오는지를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젠지의 선택은 이렐리아가 아닌 리산드라였다. 2차전 1세트에서 등장해 패배했을 때만 하더라도 '왜 계속 나오냐'는 말들이 나오기도 했다. 홀로 게임을 터뜨리는 다른 미드 챔피언과 존재감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젠지의 선택은 다른 거였지, 틀린 게 아니었다. '크라운'의 리산드라는 뛰어난 상대 미드 라이너의 활약을 확실히 틀어막는 카드였다. '얼음 마녀'라는 챔피언의 이미지에 딱 맞는 역할을 해냈다. 라인 클리어 역시 뛰어나기에 상대가 다른 라인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암살하러 들어오는 이들조차 발이 묶여 헤매는 장면이 나오곤 했다. 캐리력있는 상대를 틀어막는다는 것.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미드 라인에서 생각을 달리한 젠지의 승리법이었다.

'크라운'은 라이즈로 또 다른 능력을 보여줬다. 상대에게 붙잡혀 끊기는 상황이 있더라도 끈질기게 사이드 라인으로 향하곤 했다. 자신들이 유리해지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홀로 1:1을 압도하는 스플릿 푸쉬가 아닌 아군에게 시간을 벌어주면서 젠지에게 기회를 잡을 시간을 벌어줬다. 최근 킬과 함께 빠른 스노우볼, 한타로 대표하는 프로 미드 라이너의 역량과 확실히 다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큐베' 이성진 역시 초반 단계 만큼은 최대한 수비적으로 임했다. 이번 선발전에서 '큐베'는 아트록스로 '도란방패'를 들고 우르곳을 가장 많이 상대했다. 미드로 내려가는 순간, '크라운'을 솔로 킬 내던 '초비'의 아트록스가 다시 나올 수 있기에 매번 선픽으로 상대의 모든 수를 받아내야 했다.

챔피언 특성 역시 그렇다. 초반부터 검을 들면, 잠시 라인전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발전 동안 뛰어난 컨디션을 자랑했던 '큐베'라면 말이다. 하지만 '큐베'와 젠지는 그런 작은 이득에 눈이 멀지 않았다. 팀원을 믿고 라인을 확실히 당겼고, 그 사이에 '하루' 강민승이 인상적인 갱킹으로 봇 라인에 힘을 주는 선택을 했다. 정글러가 한 곳에서 이득을 보면 반대 라인에서는 사려야한다는 '대각선 법칙'이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나아가, '큐베'는 수비로 이득을 챙길 줄 아는 팀원이었다. 그리핀 전에서는 홀로 2인 다이브 역시 깔끔하게 받아치는 명장면을 연출했다. 이건 단순한 슈퍼플레이가 아니었다. 그리핀 운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글러 '타잔'까지 붙잡아두면서 낸 성과이기에 경기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다른 라인에 힘을 주는 팀원들 입장에서 '큐베'의 수비는 큰 힘이 됐다. 봇-미드에서 보다 공격적으로 임하면서 운영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자연스럽게 봇 라인 주도권을 잡은 젠지는 선발전 경기에서 상대보다 많은 드래곤을 챙겼다. 오랫동안 탑 라인에서 홀로 묵묵히 버텨준 '큐베'가 제 역할을 했기에 가능했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젠지는 '큐베-크라운'이 수비적인 플레이를 했기에 다른 곳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팀 게임인 LoL은 프로 단계에서 모든 라인이 상대를 압도할 수 없다. 누군가 사려주고 수비적으로 임해야만, 반대로 다른 곳에서 공격적으로 임할 기회를 갖는다.

팀원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가 최고의 컨디션과 기량으로 상대를 압도할 수 없다. 이번 섬머 스플릿에서 '크라운'은 아쉬운 기량으로 3세트 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번 선발전에 나올지 역시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선발전에서 주전으로 출전하면서 팀의 승리를 만들어냈다. 누군가 공격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팀원을 도와줄 선수도 필요하다. 라인전에서 솔로킬을 낼 수 없을 때, 팀 승리에 필요한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팀원에 대한 젠지의 오랜 고민과 노력이 이번 선발전에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찌를 때를 아는 자
묵직한 젠지 '방패'의 한 방




오래전부터 젠지는 수비적인 팀, 후반 운영과 한타가 강한 팀으로 유명했다. 자신들의 장점을 발휘하기 전에 의외로 무력하게 무너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선발전이 다가올 수록 승리하는 법을 안다는 듯이 완벽한 플레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수비는 물론, 공격에서도 예리함이 더 해졌기에 놀라웠다.

가장 화려한 플레이는 역시 게임 초반에 힘을 숨겨왔던 '큐베'라고 할 수 있다. 포탑을 끼고 상대를 때를 기다렸던 '큐베'가 성장을 마치고 폭발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자신이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순간을 정확하게 잡아낸 것이다. 갱플랭크로 킹존 드래곤X의 봇 듀오와 '운타라' 박의진의 나르를 솔로 킬 장면은 이전까지 타워 주변에서 숨어서 나오지 않던 '큐베'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큐베'가 가장 화려한 장면을 만들기 전까지 과정은 '코어장전-하루'가 만들어갔다. '코어장전' 조용인은 매번 롤드컵이 다가올 때마다 자신을 상징할 만한 챔피언을 만들어간다. 자신이 활용하는 챔피언을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을지 그 끝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올해는 '코어장전'의 알리스타와 라칸이 등장했다. 드래곤과 협곡의 전령, 포블을 앞에 두고 있으면 과감하게 들어가 교전을 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초반 한타는 피한다'는 예전 젠지의 이미지까지 바꿔놓을 만한 알리스타와 라칸 활용이었다.

더 놀라운 점은 '코어장전' 개인의 변화다. 그동안 타릭-브라움-탐 켄치로 '룰러' 박재혁을 살리는 역할을 맡았다면, 이제는 공격적인 플레이로 화려한 변신에 성공했다. 원거리 딜러에서 서포터로 포지션을 바꾼 것에 그치지 않고 색다른 서포터 스타일까지 소화해냈다. 메타와 역할에 맞게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선수, 팀에 필요한 역할을 한 게 바로 '코어장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루' 강민승도 팀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보여줬다. 여전히 날카로운 갱킹으로 미드-봇 라인을 풀어주면서 경기 흐름을 가져온 것. 수비만 할 수 없는 시점에서 '크라운'을 도와 그리핀의 '초비'를 끊는 장면을 연출했다. '초비' 정지훈은 소환사 주문을 정화에서 점화로 바꾸고 다시 한번 이렐리아를 꺼냈다. 하지만 '크라운'이 딜 교환에 성공하자 '하루'가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바로 킬로 연결했다. 상대가 밴픽 단계부터 노렸던 미드 라인 솔로 킬이라는 그림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것이다.

경기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봇 라인 갱킹이었다. '코어장전'의 갱호응과 함께 '하루'의 칼 같은 갱킹이 성공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그리고 성장이 필요한 '룰러'의 자야에게 킬을 선물할 수 있었다. 원거리 딜러 격차는 이때부터 점점 벌어지기 시작해 후반 '룰러'의 캐리에 큰 힘이 됐다.

'하루' 역시 '크라운'처럼 섬머 정규 스플릿 때 주전으로 출전할 기회가 많진 않았다. 하지만 끝까지 함께 한 '하루'는 자신의 장점을 팀에 녹여낼 줄 아는 선수였다. 특히나 초-중반 공격수가 필요했던 젠지에게 큰 힘이 됐다. 게다가, 자신의 약점이었던 후반 운영까지 보완해 흔들리지 않고, 마지막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후반에 홀로 바론 타이밍에 끊기거나 무리한 플레이를 했던 예전과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팀의 장점인 운영을 유지하면서 공격적인 자신의 능력을 더해 롤드컵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젠지는 팀원들이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면서 제 역할을 찾아가는 팀이 됐다. 시즌 중에 아쉬운 경기력이 나오기도 했지만, 마지막 승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젠지의 단단한 수비에 상대가 준비한 변수가 막히기 시작했고, 언제 공격해야 할지 아는 팀으로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올해도 젠지에게 롤드컵이 남았다. 젠지는 조별리그에서도 2패로 올라가 우승까지 해본 경험이 있는 팀이다. 롤드컵에서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kt 롤스터와 아프리카 프릭스가 정규 시즌과 포스트 시즌에서 분명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선발전의 젠지 역시 기세를 가늠할 수 없다. 롤드컵 마지막 주자의 반란. 팀플레이의 완성을 보여주는 젠지의 끝은 어디까지일지, 이제는 한번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 이미지 출처 : 스포티비게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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