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5년 차 프로게이머 '피넛' 한왕호, 전환점에 서다

게임뉴스 | 신연재, 유희은 기자 | 댓글: 42개 |



"가장 큰 이유는 변하고 싶었어요. 나를 감싼 환경이 달라지면 나도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프로게이머로서 게임을 더 잘하고 싶은 건 당연하잖아요. 제 자신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내린 결정이에요."

만 스물 한 살의 5년 차 프로게이머. 여전히 앳된 얼굴이지만, 이제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 된 '피넛' 한왕호의 이야기다. 2019년 11월 22일, '피넛'이 중국의 LGD로 이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5년간 활동했던 LCK를 떠나 LPL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됐다.

사실 2019년은 그에게 참 힘든 시즌이었다. 엄청난 관심과 함께 젠지 e스포츠로 이적했지만, 부진이 그를 덮쳤다. 역대 최악의 폼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고, 팀은 승강전을 겨우 면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회복세를 타긴 했으나, 최종 성적표는 LCK 6위. 작년에 이어 또다시 롤드컵 무대를 밟지 못했다.

"지난 1년은 '부진'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경험해본 시기였어요. 배우기도 많이 배웠고요. 그럴 일은 당연히 없어야겠지만, 부진을 또 겪더라도 덜 힘들 것 같아요. 무엇보다 가장 아쉬운 건 당연히 성적이죠. 팬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너무 커요. 함께 했던 감독님, 코치님, 팀원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요.

젠지가 이번에 새롭게 팀을 꾸렸잖아요. 멤버만 봐도 내년은 정말 좋을 성적 거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든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요? 꼭 좋은 성적 내서 롤드컵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러려면 제가 먼저 잘해내야겠죠(웃음)."





앞서 말했듯, '피넛'은 해외 진출을 프로게이머 인생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5년간 몸담은 LCK를 떠나 전혀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데려다 놓고, 그 새로운 환경에 자극을 받아 변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고.

'피넛'에게 해외 진출은 '언젠가 꼭 해봐야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프로게이머가 된 이상 해외에서도 뛰어봐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고, 이번이 그 생각을 실현할 기회이자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피넛'에게 궁금했던 건 여러 지역 중 왜 LPL을 택했고, 그 많은 팀 중에서 왜 LGD를 선택했냐는 것이었다.

"일단, 젠지와의 계약이 끝나고 나서는 줄곧 해외를 생각했어요. 올해는 한국에서 오퍼가 와도 무조건 해외를 가겠다고 이미 결심을 한 상태여서 한국 팀은 조건 같은 것도 들어보지 않고 다 거절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계약은 속전속결이었던 것 같아요. 11월 18일에 계약 종료가 되고 바로 입단 제의가 들어왔고, 며칠 만에 결정하게 됐어요.

유럽은 생각을 거의 안 했어요. 이미 자국 선수들로도 충분히 성적을 내고 있는 지역이라 굳이 용병을 찾을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북미와 중국 쪽으로 생각을 했었죠. 두 지역 중에 많이 고민을 했는데, LGD가 저를 엄청 원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게 가장 컸던 것 같아요. 또, 제 의견을 많이 존중해줄 수 있는 팀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중국이나 미국이나 지역에 관계없이 LGD라는 팀을 고른 거죠. 솔직히 FA 시즌이 올 때마다 이적 제의를 하는 팀은 많잖아요. 그중에는 굉장히 적극적인 팀도 있고, 아닌 팀도 있어요. 지금까지 매해 새로운 팀에 입단할 때마다 좀 더 적극적이고 강하게 어필을 하는 팀을 선택하곤 했어요. 올해는 개인적으로 성적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게 더 와 닿았던 것 같아요."





프로게이머에게 해외 진출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타지 생활이라는 조건이 필수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문화의 차이부터 시작해 언어, 음식, 생활 환경 등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것들이 굉장히 많고, 때때로 찾아오는 향수병이 발목을 잡기도 한다.

또, 국내 팬들에게 잊혀질 수 있다는 것도 해외 진출을 앞둔 선수들이 느끼는 두려움이다. '피넛'은 앞으로 겪게 될 수도 있는 이런 장애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부딪혀보자. 미리 걱정한다고 바뀔 건 없기 때문이다.

"해외 진출에 대한 두려움은,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없다'에요. 제가 올해 스위스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여행을 통해서 느낀 건 해외에서도 충분히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더 자신감 있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중국어는 아예 못해요. 음식도 당연히 걱정은 되죠. 안 맞으면 고생한다는 이야기가 워낙 많으니까요. 근데, 제가 훠궈를 진짜 좋아하거든요. 중국 가면 훠궈를 많이 먹을 수 있으니까 좋을 것 같아요(웃음). 음식이 정 맞지 않으면, 한식당을 찾아다니면 되는 거기도 하고요.

걱정한다고 바뀔 건 없으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가서 부딪혀 보려고요. 제가 살면서 꼭 마스터 하고 싶은 언어가 영어와 중국어거든요.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젊은 나이잖아요. 새로운 도전과 경험은 언제나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잊혀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떠오른 건데, 잊혀진다는 건 당연히 무서워요. 저는 늘 관심을 받는 직업이잖아요. 이런 질문을 종종 받아요. 나중에 무슨 직업을 가질래. 프로게이머 초반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주변에서 같이 뛰었던 선수들이 하나 둘 은퇴하니까 복잡미묘한 감정이 생기면서 저도 은퇴 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이 관심들 없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잊혀지면 정말 무섭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특히, 올해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팬분들의 관심과 사랑에 더 감사함을 느끼게 됐어요. 다시 한 번 정말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LPL에 가도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피넛'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스타플레이어 중 하나다. 스타플레이어에 대한 팬들의 피드백은 굉장히 빠르다. 잘했을 때는 엄청난 칭찬과 명예가 따라오지만, 반대로 부진할 때는 비판과 도를 넘은 비난이 쏟아지기도 한다. 또, 그 선수와 관련된 여러 종류의 밈도 많이 만들어진다.

올해의 '피넛'도 마찬가지의 것들을 겪었다. 부진했던 스프링 스플릿과 폼을 끌어올린 섬머 스플릿 동안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피넛'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고, '역시 넛신'이라는 최대의 유행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롤러코스터 같은 세간의 평가에 상처를 받았을 법도 하지만, '피넛'은 '재미있다'는 표현으로 그간의 평가와 밈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음, 재미있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는 우려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근데, 저는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밈이라는 게 하나의 재미잖아요. 또, 그런 것들이 저를 열심히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해요.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은 건 당연한 심리니까요. 혹평도 제가 잘했으면 안 생기는 거고. 스프링에서는 채찍질 삼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고, 섬머 때는 힘이 나서 더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나친 비난이나 비방이 아니라면 팬분들이 LoL e스포츠 씬에서 즐길 수 있는 요소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올해 4월에 젠지에서 저와 몇몇 소속 선수들에 대한 악성 게시글로 형사 고소를 진행했어요. 저도 당시에 기사를 통해서 그 사실을 접했는데, 커뮤니티나 기사 댓글을 거의 안 보는 편이라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거든요.

그러다가 최근에 우연히 한 블로그에서 그 사건을 다룬 글을 보게 됐어요. 그때 처음 그분이 저에 대해 어떤 글을 쓰신지를 봤죠. 얼마나 심했길래 팀에서 그런 강경 대응을 했나 싶었는데, 수위가 상당하더라고요. 끝까지 보지도 못했어요. 이 에피소드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이건 모든 선수들이 다 겪고 있는 고충이라고 생각해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요? 올해는 운동이 큰 도움이 됐어요. 제가 SKT T1 시절부터 운동을 시작했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자기 관리의 목적이 더 컸지 스트레스를 풀려고 운동을 하지는 않았거든요.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체력이 달리지 않기 위해 운동을 했으니까요. 근데, 올해 같은 경우는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많이 풀렸던 것 같아요.

저는 주변에 조언을 구하거나, 고민 상담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에요. 궁금한 게 생기면 물어보는 정도죠. 그것도 보통 선수 형들보다는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를 하고요. 근데, 이번 연도에 '프레이' 김종인 형에게 유일하게 조언을 구했었어요.

종인이 형이 복귀 하기 전, 제가 스프링 스플릿에서 한창 부진하고 있었을 때였거든요. 언젠가부터 혼잣말을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경기 전날에 거울을 보면서 '왕호야, 잘 좀 하자' 라고 저를 3인칭으로 지칭하면서요. 종인이 형한테 '형, 나 미친 것 같아' 라면서 말을 했죠(웃음). 그랬더니 종인이 형도 자기도 옛날에 그런 적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럴 수 있는 거구나 싶었죠.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더나아가 LGD 게이밍에서의 2020 시즌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LGD는 LoL e스포츠 초창기 시절부터 명맥을 이어온 유서 깊은 LPL 팀 중 하나다.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2015년 '임프' 구승빈과 '에이콘(현 천주)' 최천주의 영입하며 입소문을 탔다.

2019년은 LGD에게도 힘든 한 해였다. 유일한 한국인 용병 '크레이머' 하종훈이 분전하긴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LPL 스프링 11위, 섬머 14위을 기록했다. 역대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부진을 겪은 LGD는 2020 시즌 도약을 위한 첫걸음으로 오창종 감독과 '피넛'을 영입했다.

LCK에 활동하며 여러 팀을 겪었던 '피넛'에게도 kt 롤스터에서 자리를 지켰던 오창종 감독과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오창종 감독 역시 올해가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 가장 좋지 않은 성적을 받았던 시즌이었다. 다소 직설적으로, 오창종 감독과 한솥밥을 먹게 된 것에 대한 '피넛'의 생각을 물어봤다. 그는 난처한 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솔직한 답변을 이어갔다.

"사실 저도 2019 시즌을 안 좋게 마무리한 입장이라...(웃음)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겪고 느낀 게 아니잖아요. 저는 대외적인 시선이나 평가보다는 직접 경험을 해보고 느낀 바를 믿는 편이에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 현재 가지고 있는 걱정은 전혀 없어요.

계약서에 도장을 찍자마자 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렸어요. 잘 부탁드린다고요. 그 후에는 팀의 내년 로스터나 방향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꾸준히 주고 받고 있어요. LCK에서 많이 뵙고 인사도 자주 드려서 어색한 사이는 아니에요. 아무래도 같은 한국인이니까 타지에 가게 된 상황에서는 든든하죠. LoL판에 워낙 오래 계신 베테랑이시기도 하고요.

'크레이머' 선수도 LCK에서 뛰었다 보니 친분이 어느 정도는 있죠. 엄청 친한 건 아니지만, 대화는 해본 정도? 프로필 촬영장이나 경기장에서 자주 마주쳤으니까요. 팀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하고, 언제 오냐, 언제 간다 이런 얘기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이번에 잠깐 중국에 들어가는데, '크레이머' 선수는 중국 올스타 행사 때문에 자리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LPL에서 뛰는 건 프로게이머로서 저에게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한국에 있을 때도 중국 팀과 스크림을 하긴 하지만, 이제는 LPL이라는 지역 리그 안에서 맞붙게 되는 거잖아요. 스크림을 할 때와 똑같을지 궁금해요. 스크림에서는 진짜 말도 안 되게 호전적으로 싸우거든요. 과연 내가 대회에서 그런 걸 겪게 되면 잘 적응할지, 이런 게 기대가 돼요.

제가 프로게이머로 처음 전성기를 누렸을 때는, 제가 활동한 기간 중에 가장 많이 치고 박고 싸웠던 메타였어요. 그래서 오히려 그 때 느낌을 살리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아직 해보기도 전인데, 자신 없을 것 같다는 건 말도 안 되죠. 자신있다고 말하고 싶고, 잘했으면 좋겠어요. "





끝으로, 그에게 2020 시즌에 대한 각오를 물었다. '피넛'은 현실적인 목표와 최종 목표를 모두 이야기했다. 하위권에 머물렀던 성적을 플레이오프권까지 끌어올리고 싶다는 게 첫 번째였고, 시즌 말미에 롤드컵 한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는 게 두 번째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관심과 응원을 보내준 국내 팬들과 이제는 가까이에서 만나게 될 중국 팬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무래도 거의 최하위권에 있던 팀이라서 일단은 플레이오프를 목표로 삼고 있어요. 우승을 하면 당연히 좋겠지만, 현실적인 목표는 플레이오프권이에요. 당연히 마무리 목표는 롤드컵 한자리를 차지하는 거죠. 중국에서 열리기도 하니까 의미가 깊을 것 같아요. 2020 롤드컵을 엄청 크게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거든요. 꼭 참가하고 싶어요.

팬들께는 늘 그렇듯 정말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지난 5년 동안 항상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셔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할 수 있었고, 더 잘할 수 있는 힘이 됐던 것 같아요. 당분간은 LCK에서 볼 기회가 없을 테지만 다른 활동으로 찾아뵐 수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거에요. 언젠가 한 번은 팬미팅도 꼭 하고 싶어요.

LGD 입단 발표가 나고 해외 팬분들께서도 SNS를 통해서 환영을 해주셨어요. 스트리밍을 할 때나, 글로벌 이벤트에 갈 때마다 정말 많이 응원해주시고 있다고 느꼈었어요. 늘 감사하고, 든든했죠. 이제는 LPL에 뛰면서 그 관심과 사랑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년에는 더 잘하는 모습으로, 더 좋은 성적으로 인사드리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피넛'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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