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리코 스포츠 이예랑 대표 "선수가 보호받지 못하는 리그는 성공할 수 없다"

인터뷰 | 김홍제, 심영보, 남기백 기자 | 댓글: 38개 |




에이전트의 전설적인 인물인 '스캇 보라스'는 세계 최대의 야구 리그인 미국 MLB를 좌지우지한다. 이적 시즌이 시작되면 스캇 보라스에 의해 다음 시즌의 구도가 결정 날 정도다. 오죽하면, USA TODAY는 MLB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위로 선정한 적도 있다. 선수도, 감독도 아닌 에이전트가 MLB 영향력 5위다. 국내에는 류현진 선수가 스캇 보라스와 계약을 맺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만큼 에이전트의 역할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스캇 보라스는 선수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천사지만, 구단에는 악마 그 자체로 불린다. 공공의 적인 셈이다. 덕분에 그에 대한 평가에 호불호가 갈리긴 하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선수의 몸값을 올리고, 선수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임은 틀림 없다.

시장 규모가 커지고, 리그가 점점 체계적으로 변해가면 에이전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바뀐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축구, 야구, 농구, 개인 종목 등 다양한 곳에서 에이전트가 생겨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야구를 중심으로 빠르게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는 리코 스포츠 에이전시는 최근 e스포츠에도 관심을 가졌다.

리코 스포츠 에이전시 이예랑 대표는 '선수가 보호받지 못하는 리그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직업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다. 정통 스포츠에서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곳에서 바라본 e스포츠는 어떨까. e스포츠에도 올바른 에이전시들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고 있는 지금, 리코 스포츠 에이전시 이예랑 대표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Q. 먼저 리코 스포츠 에이전시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프로 스포츠 선수 전문 에이전시 회사다. 마케팅도 마케팅인데, 선수 에이전시 계약에 특화되어 있다. 현재 8~90명의 프로 스포츠 선수와 계약이 되어 있으며, 종목은 프로 야구, 프로 축구, 골프, 개인종목(리듬체조, 쇼트트랙 등)으로 다양하다. 가장 많은 선수를 보유한 종목은 야구다.


Q. 우리들이 알만한 스포츠 스타는 누가 있나?

아무래도 야구가 주력이다 보니 야구 선수들과 계약이 가장 많다. 가장 알려진 선수로는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김현수 선수다. 김현수 선수가 메이저 리그에 진출할 때 특약 조항으로 마이너 리그 거부 조항을 넣었는데, 당시 이게 화제였다. 그리고 작년에는 한국 프로 야구 FA 시장에서 약 50%의 금액에 달하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현재 나의 경우, MLB와 KBO에서 공인된 자격증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MLB의 경우 필기 시험이 생긴지 오래되지 않았다. 원래는 에이전트가 선수 40인 이상을 보유하고, 돈만 내면 가능했는데, 이제는 시험을 통해서 합격해야만 공인 에이전트라고 말할 수 있다.


Q.선수들의 계약 외에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에이전트의 이미지는 계약을 성사시켜주는 사람인데, 사실 계약은 우리가 하는 일 중 가장 마지막 단계일 뿐이다. '페이커' 이상혁 선수로 예를 들면, 현재 '페이커' 선수의 몸값이 측정되기까지의 수많은 과정이 있지 않았겠나. 우리는 그 가치를 옆에서 항상 도와주는 일을 한다. 간단히 말하면 그 선수의 가치를 높여주는 거다. 선수와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고, 언제나 선수의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모든 경쟁 스포츠가 마찬가지겠지만, 빛을 보지 못하는 선수가 태반이다. 하지만, 그런 선수들도 분명 도움을 받아야 할 부분들이 있었을 거고,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면 선수 생활을 조금 더 오래 하거나 더 나은 상황에서 선수 생활에 집중할 수 있다.





Q. 통상적으로 에이전트는 선수가 계약을 체결할 때 수수료를 받는다. 보통 흔히 말하는 정통 스포츠에서 에이전트의 수수료는 어느 정도로 측정되고 있나?

종목마다 다르긴 하지만, 팀 스포츠는 대부분 5~10%다. 현재 KBO는 5%를 넘기지 않는 것을 권고사항으로 내세우고 있고, 해외 선수냐 국내 선수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대부분이 5% 선에서 왔다 갔다 한다.


Q. 계약서에 어느 정도의 세밀한 부분까지 표기되는지 궁금한데.

선수 트레이드가 되면 선수의 집 이사 금액, 비행기 금액, 등등 정말 세세한 모든 걸 리그 규정으로 명시해 놨다. 종목과 제도에 따라 상이하다. 일단 드래프트 제도는 어떤 선수도 본인 선택에 의해 팀을 고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같은 룰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리그 자체에서 통일된 계약서, 룰이 아주 자세히 적혀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좀 특이한 일이 있었다. 트레이드의 경우 KBO와 MLB 두 리그 모두 정해진 이사 비용을 선수에게 지불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MLB의 경우 선수가 트레이드전 살고 있던 거주지에 대해 구단에서 처리를 해주고 있다.

국내 한 선수는 전세자금을 대출 받아서 살고 있었는데, 트레이드가 되면서 새로운 곳으로 거주지를 옮겨야 했다. 그런데 이미 받아놓은 전세자금 대출이 묶여 있어서 한동안 월세살이를 했다.

아직 e스포츠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나라와 나라의 이적이 가능한 건 피파 같기도 한데, 다른 부분에서는 NBA와 비슷한 면도 많다.


Q. 프로 스포츠에서 표준 계약서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

야구의 경우에는 표준 계약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조건 따라야 한다. 대신, 특약 조항을 넣을 수 있다. 표준 계약서를 바탕으로 거기에 있는 내용을 수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KBO의 경우에도 작년부터 모든 옵션을 기재하는 조항을 새롭게 만들었다. 다만, 여기서 추가할 수 있는 특약 조항이란, 표준 계약에서 외의 선수 개인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표준 계약서에 반대되는 내용은 절대 넣을 수 없다. 표준 계약서 자체가 대중들에게 공개되어 있기도 하다.

앞서 얘기했다시피 e스포츠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라서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라이엇이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선수에게 통일된 표준 계약서가 필요하다. 현재 여러 가지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른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걸 감안해도 사실 이 짧은 기간에 수십년의 시행착오를 겪은 정통 스포츠에 비하면 빠르게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Q. 프로 스포츠에서 팀이 일방적인 계약해지 가능한 경우가 있을까?

반대로 여쭤보고 싶다. 직장인들이 일방적인 해고를 당하는 경우는 뭐가 있을까? 메이저 리그의 경우 선수를 근로자로 보기도 한다. 보험도 다 적용되고, 방출을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연봉은 보장받는다. 선수가 보호받지 못하는 리그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선수와 계약할 때도 항상 하는 말인데 선수가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할 때는 언제든지 선수가 마음대로 나갈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내 스스로의 철학이기도 하고, 내가 일하는 데 있어서 찝찝한 부분이 있다면 만족이 되지 않는다.


Q. 그렇다면 리코 스포츠 에이전시는 e스포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사실 최근에 e스포츠 부서를 새롭게 신설했다. 채용을 하고 있기도 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알아나갈 생각이다. 직접 e스포츠판에 들어가서 해보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잘 아는 분야가 아니라서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야구도 마찬가지였다.

책임감이 되게 큰 편이라 더 조심하고, 그래서 더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단계를 차례 차례 밟아 나가면서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 그래도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야구 쪽에서의 노하우가 있으니 그걸 바탕으로 e스포츠에서도 잘해보고 싶다.


Q. 현재 젠지 소속의 오버워치 선수 '우햘' 성승현이 소속되어 있다.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선수 어머니께서 먼저 연락이 왔다. 당시에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잘 몰라서 고민이 많이 됐다. 그리고 다른 스포츠의 경우 종목마다 연봉이 다른데, MLB는 최저연봉 선수들을 에이전시가 잘 받지 않는 경향이 있다. KBO는 이번에 최저 연봉이 3,000만 원으로 조금 오르긴 했다.

아무튼,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고민을 많이 하다가 우연치 않게 e스포츠 선수들 계약서를 본 적이 있는데, 몇몇 일부 계약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들이 많더라. 그래서 뭔가 내 노하우를 바탕으로 어린 선수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Q. 리코 스포츠 에이전시 대표로서 에이전트의 기본 덕목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직업이든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은데,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정직함'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선수들과 관계에 있어서 모호한 말이나 과장된 이야기로 선수를 현혹시키거나 혼란을 줘서는 안 된다. e스포츠는 특히 선수들이 더 어리지 않나.

김현수 선수의 경우도 처음 만날 날에 계약하자고 하더라. 오히려 내가 뜯어말렸다(웃음). 한 번만이라도 더 생각해 보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딱 한 마디 하더라. 거짓말만 하지 말아 달라고. 그 약속은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다. 선수와 신뢰를 쌓는 게 정말 중요하다. 계약 시즌에만 스킨십이 있는 게 아니라 평소에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계약 시즌에는 선수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을 제시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그리고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해당 리그의 규정, 다른 리그의 규정, 선수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 계약서는 어떻게 쓰는지, 등등 산더미처럼 많다. 가끔씩 에이전트를 하고 싶어 하는 지망생들이 '선수들을 위해서 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선수들을 위해 뭘 어떻게 해주고 싶냐고 되물었을 때 대답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야구 선수들이 신는 스파이크나 배트, 글러브를 만드는 브랜드는 몇 개가 있는지, 어떤 브랜드를 선호하는지, 등등 당연한 것들인데, 사소하게 생각해 이런 부분을 놓치면 안 된다. 우리 선수에 대해 가족보다 많이 아는, 선수 덕후가 돼야 한다.


Q. 에이전시로 활동하면서 겪었던 고충도 꽤 많았을 것 같다.

가장 힘든 경우는 내 선수가 슬럼프에 빠졌는데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때 정말 힘들다. 슬럼프라는 게 정확한 원인을 찾기도 힘들고. 그래도 그때마다 항상 선수들에게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라'고 주문한다. 자신만의 루틴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슬럼프에 빠질 확률도 확실히 낮다.

우리 소속 선수 중에 홍진주라는 골프 선수가 있다. 이 선수는 출산 후에 우승도 차지할 정도로 굉장히 인지도가 있는 선수인데, 올해 시드권을 잃고, 2부 투어를 뛰었다. 그런데, 이를 다 극복하고 내년부터 다시 1부 투어에서 활동한다. 나이가 38세다. e스포츠 선수들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 중 하나가 어린 선수들이 은퇴가 너무 빠른 것 같다는 거였다. 시작부터 한계점을 정해놓는 선수들도 많은 것 같고, 좋은 계약을 따주는 것은 에이전트로서 당연한 일이고, 선수와 함께 성장하고 답답할 때 선수의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에이전트가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한다.

e스포츠의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나 아직 NBA나 MLB에 비하면 아직 어마어마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도 훌륭한 선수들이 한국에 많고, e스포츠 종주국이라면 시장을 주도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변화에 앞장설 수 있다고 믿고, 무엇보다 선수 퀄리티가 뛰어나지 않나. 당장의 돈이 될 것인지를 보기보다는 시장을 키워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는 게 맞다. 어느 분야든 독점은 불가능하며, 함께 시너지를 내면서 좋은 시장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