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올레' 김주성이 회상하는 '더블리프트'의 미담, LCS의 추억

인터뷰 | 석준규, 장다솔 기자 | 댓글: 12개 |




지난 25일(한국 시각), KT A로 데뷔해 LCK를 거쳐 다양한 해외에서 활동해 온, '올레' 김주성이 한국행을 발표했다. 올레는 사실 한국에서 활동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KT라는 팀명과 닉네임이 상업적 하모니를 이뤄내며 유난히 기억에 더 남은 선수이기도 했다.

올레를 북미에서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임모탈스에서 활동하던 시기였다. 유난히 밝은 얼굴로 기자들과 인사를 하고, 팀원들과도 둥글게 둥글게 지내는 것으로 보였던 올레. LCS에서 활동하는 한국 선수들의 영어 선생님으로 유명했던 '소피 안' 선생님 역시 그를 모범생으로 칭할 정도로 올바른 삶을 사는 듯한 사나이였다.

이후 올레는 팀 리퀴드에서 두 번의 LCS 우승과 롤드컵 진출 등 화려한 커리어를 쌓은 뒤, 골든 가디언스와 디그니타스에서 정규 시즌과 아카데미를 옮겨 다녔다. 해외를 다니며 산전수전을 겪는 동안 오느새 얼굴도 구릿빛으로, 수염도 자란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LCS를 추억하고 한국에서의 다음 활약을 기대하는 그는 여전히 전처럼 유쾌하고 총기가 넘쳐 보였다. 임모탈스에서 보았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가 풀어내는 LCS에서의 시간, 그리고 특히 '더블리프트'와 '엑스미디'와의 추억. 머나먼 미국에서 상의 탈의를 하며 방송을 하던 그가, 비로소 주섬주섬 옷을 입으며 호탕하게 풀어내었다. 최근 운동으로 몸매가 좋아져서 좀 벗고 있었다나 뭐라나.








안녕하세요! 올레 선수,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무려 8년 만에 계약서 없는 삶을 살고 있어요. 어느 간섭도 없이 하고 싶은 말 방송에서 다 하고 사니까, 방송이 더 재미있어졌어요. 골든 가디언스에선 코치를 하다가 잘 안되어서 저번 주에 나왔어요. 비자가 올해 말까지 유지된다 해서, 그 때까진 쉬엄쉬엄 방송도 하고 밖에서 놀며 지내려 해요.


북미에서의 3년 반 생활을 이제 마치고 한국 복귀를 발표했죠. 어떤 계기인가요?

아직도 한국에서 선수로서 복귀를 100% 할 수 있다고 보장은 못하겠어요. 저는 한국에서 이제 뭔가 ‘비집고 들어가기’엔 늦은 것 같아 보여요. 솔로 랭크를 다시 잘 해서 10등 안에 든다고 해도, 저보다는 나이 어린 선수들이 활동하는 것이 좋아 보여요.


이번에 (김)배인이가 승강전에서 아깝게 떨어졌고 이젠 방송이나 분석가로 활동하고 있잖아요. ‘마타’도 선수에서 이젠 감독이 되었고요. 저와 동갑인데 말이죠. ‘플레임’ 형도 어느새 연장자가 되었더라고요. 그런 경우들을 보며 ‘내가 한국에서 다시 17시간씩 게임을 하며 지낼 수 있을까’ 긴가민가한 기분이에요. 요새 헬스를 해서 체력도 좋아지긴 했지만요.


선수 현역이 아니더라도 코치로서 활동 가능성도 많지 않나요?

그렇죠. 솔직히 전 한국 가서 배인이의 분석 자리를 빼앗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한데(웃음), 꼭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건 아니고요. 남의 자리를 뺏기보단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천천히 찾아보려 해요. 방송 쪽에서도요. 분석 데스크나 방송에서 저를 불러만 주신다면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클템’ 형만큼이나 말을 잘 할 자신도 있어요.

코치로는… 골든 가디언스에서 1, 2주 정도 코치 활동을 해 봤어요. 그런데 선수였다가 코치가 되어보니 정말 답답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팀에 있던 서포터들이 저보다 게임 점수가 낮았어요. 그래서 제가 아카데미의 서포터에게 ‘스크림을 5시에 끝마치고 나면 제발 정글러와 하루에 한두 판만 게임을 하라’ 고 부탁했는데, 가끔 안 지키니까 더 답답하더라고요. 저는 스크림이 끝나도 새벽까지 게임을 하곤 했는데, 그러긴 커녕 밤 9시까지도 잘 안 하니까… 제가 의욕이 너무 앞서는 건가 싶었어요. 그래도 한국에 가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수들이 의욕이 넘치니까. 치열하고 경쟁하는 걸 좋아하다보니 제게 더 맞을 것 같아요.


북미에서의 시간은 어땠는지 소감을 좀 말씀해 주세요. 가장 첫 1년은 어땠나요?

먼저 임모탈스에 들어갔죠. 그 전에 대만에서 두 번 롤드컵에서 미끄러진 터라, 제가 자리를 잘 잡긴 힘들 거라 생각했어요. 기회가 없을 줄 알았죠. 그런데 운명인지 뭔지, 임모탈스에 들어갈 수 있었죠. 당시 CEO에게 제가 다른 팀의 오퍼도 있다고 이야기를 하며, 그렇지만 돈보다는 커리어를 더 쌓고 싶다는 의사 표현을 했어요. 그랬더니 연봉을 더 크게 부르시더라고요(웃음). 저도 그 자리에서 믿지 않았는데, 바로 제 얼굴 앞으로 계약서를 보여주시더라고요. 손이 벌벌 떨렸어요. 이게 말이 되는 지 실감이 안 났어요. 대만에서보다 연봉을 4배나 더 주니까요. 대만에서도 제가 많이 받는 편이었는데… 돈의 유혹에 넘어가 버렸어요. 지금도 감사드려요.

그리고 ‘코디 선’과 봇 듀오를 이뤘는데, 제가 멘탈이 좀 좋진 않은 상태였고, 코디 선 역시 신인이었어요. 그러다보니 좋은 성적을 내진 못했죠. 그렇게 스프링 시즌을 끝마치고, 운영팀 쪽에서 제게 ‘우리가 ‘와일드터틀’을 데려올 수 있는데, 코디 선을 빼고 와일드터틀과 봇 듀오를 맞추자’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저는 ‘아니다. 내가 대만에서 몇 번 선수로서 포기를 경험해 보니까 마음이 참 안 좋았다. 대신 내가 목숨 걸고 할 테니까 코디 선을 믿고 같이 가자’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서 코디 선과 저는 섬머 시즌에도 함께 할 수 있었고, 그 때부터 갑자기 저와 코디 선의 시너지가 폭발했죠.




그리고 당시에 ‘엑스미디’가 팀에서 오더를 잘 해줬고, 저 역시 팀원들에게 그를 따르라면서 오더를 다 들으니 게임을 많이 이기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같이 처음으로 롤드컵 진출을 이뤄냈죠. 임모탈스에선 정말 행복했어요. 조금만 더 잘 했으면 롤드컵 4강까지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쉽게 졌죠. 북미에서의 첫 해, 임모탈스에서의 한 해는 성공했지만 마무리는 아쉬웠던 해였어요.


통이 큰 임모탈스였군요. 아무래도 다음 해가 또 하이라이트였죠?

임모탈스에서의 생활이 끝나고, 갑자기 팀이 폭발했죠. 저는 엑스미디에게 ‘나는 너와 게임을 계속 함께 하고 싶다’고 자주 아부를 떨었어요. 당시에 엑스미디는 팀 리퀴드의 영입 제안을 받았어요. 그리고 한편 팀 리퀴드는 ‘더블리프트’에게도 제안을 보냈죠. 엑스미디는 팀 리퀴드에 ‘나는 올레와 게임을 하고 싶다’고 말했고, 더블리프트는 제게 ‘나는 너와 함께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널 믿는다’라고 개인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LoL을 처음 할 때 더블리프트의 베인을 봤던 기억이 나는데, 그런 선수와 게임을 한다는 게 비현실적인 기분이었어요. ‘뭐지 이게?’ 싶었죠. 저는 수락했고, 팀 리퀴드에 입단했죠.

입단 후에는 더블리프트에게 구박을 많이 받았어요. ‘나는 너가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왜 이리 못하냐’면서요(웃음). 맨날 까이곤 하니까 멘탈이 나가기 시작했어요. 같이 모여 게임을 해야 하는데,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조차 압박감이 느껴지더라고요. 혼자 쫄아 연습실을 나와 집에서 게임을 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그런 걸 악착같이 이겨내고 플레이오프엔 진출했죠. 그리고 4강전에서 에코 폭스를 이겼는데, 더블리프트의 그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어요. 한참 넷플릭스에서 촬영을 하고 있던 때였던지라, 저는 그 것도 하나의 드라마인 줄 알았어요.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저는 다들 저를 놀리는 줄만 알았어요. 저는 그런 일이 제 주변에서 일어날 줄은 몰랐어요. 처음 경험해보는 기분이라, 제 멘탈도 같이 나갔죠.


하루 쉬고 결승전을 준비하는데, 더블리프트가 팀원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지 말고, 더 친절하게 대해줄 필요도 없다. 늘 하던 대로 하자. 그게 나를 위한 것이다’ 라고 하는데, 그게 정말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정말 남자로서 존경심이 솟아올랐어요. 그 전까진 솔직히 더블리프트가 미웠어요. 그런데 정말… 저라면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그 이후 저도 정말 목숨을 걸고 경기에 임했어요. 더블리프트가 정말 끝까지 이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결승을 3:0으로 이겼고, 만감이 교차했어요. 미국에서 우승을 했다는 성취감도 들었고, 그리고 더블리프트에게 보답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승리 후 그가 저를 안아주니까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드디어 인정받은 느낌이었어요. 그 때 더블리프트가 절 보고 왜 우냐고 물어봤는데, 차마 이유를 말하긴 어려웠어요. Ovilee는 제게 ‘사랑한다는 말을 왜 돌려 하냐’고 뭐라 했죠. 어떻게 말해요 그런 말을(웃음).


이후 MSI에선 어려움을 좀 겪었죠.

MSI에 갔는데, 그 때도 대회 전에 더블리프트에게 엄청나게 까였어요. 둘 다 예민해져 있던 채로 스크림을 하는데, 더블리프트가 제게 ‘너 잔나 진짜 못한다'고 독설을 퍼붓길래 멘탈이 더 나갔죠. 저도 그래서 ‘야, 서브 서포터가 잔나를 세상에서 제일 잘 하는데 쟤랑 해라. 잔나가 쓰레기라 난 못 하겠다'고 따졌어요. 그랬더니 다음 날 바로 교체 출전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뒤에서 경기를 봤는데, 서브 서포터랑 해도 어차피 지더라고요. ‘뭐야, 쟤랑 해도 지는데 왜 나한테만 뭐라 하는거야' 싶었어요.

그리고 팀이 0승 4패를 기록한 이후, 코치님께서 팀원들에게 ‘우린 잃을 게 없다. 끝났다. 이젠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랬더니 제 멘탈이 돌아왔어요. 그 때부터 게임을 하는데 게임이 너무 쉽더라고요. RNG를 상대로도 쉽게 경기를 했고 말이죠. 당시에 자야-라칸이 사기였는데, 저희는 코그모-탐켄치로 밴픽으로 질 수밖에 없던 매치를 후반까지 끌어가기도 했죠. 마지막에 제가 ‘언영아!’ 하면서 무리하지만 않았어도… 아무튼 MSI는 제 멘탈이 괜찮았다면 저희가 우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진심으로요. 제가 멘탈이 좋았다면 경기들 중 8-90%는 이기지 않았을까… 그래서 제가 책임을 많이 느껴요. 이후 섬머 시즌에서는 AD 캐리 메타가 지고, 블라디미르와 신드라가 나오며 게임이 정말 어려워졌어요. 저희는 카이사를 하는데 6렙도 찍기 전에 바텀이 터지고… 힘들었죠. 롤드컵에서도 운이 좀 없었고요.

나중에 롤드컵에 가게 되면, 그 때엔 좀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올해는 바이러스 때문에 격리하는 기간 동안, 제 관리를 정말 많이 했어요. 운동도 하고, 하루에 한 시간씩 명상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게임을 하면 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설령 지더라도 배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런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를 않아요. 마인드가 그렇게 된 상태로 최근에 더블리프트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고맙다. 같이 했을 때 잘 못했어서 미안하다'고요. 그랬더니 더블리프트는 ‘너와 함께 라인에 서서, RNG의 우지를 이겼던 게 자신의 경험 중 최고였다'고 해주더라고요. 저보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같이 또 게임을 하자고 했는데,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 한 마디가 정말 고마웠어요. 제가 항상 미워하던 친구가 알고보니 절 뒤에서 그렇게 생각해줬다는 것을 깨달으니 감동적이었어요.

그리고 코어장전을 데려오기 전에도 더블리프트는 저와 엑스미디를 로스터로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고 했더라고요. 그런 줄은 몰랐어요. 그걸 알게 되고 울었어요. 저는 더블리프트가 저를 쫓아냈다고도 생각했는데 말이죠. 저를 믿어줬던 친구였는데 전 몰랐어요. 이젠 저도 완전히 그의 팬이 되어서 응원하고 있어요. 언젠가 같이 또 팀을 맺게 된다면, 꼭 목숨 걸고 노력해서 롤드컵 트로피를 들게 해주고 싶어요. 같이 할 수 없어도 바이오프로스트와 잘 하길 바라야죠.


LCS에서 가장 힘들었던, 슬펐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두 가지가 기억나네요. 임모탈스에 입단해 스프링 시즌을 치렀을 때, 전 여자 친구와 헤어진 상태였어요. 그래도 멘탈을 가다듬으며 담배도 끊고 열심히 게임을 했는데, 그러던 중 전 여자 친구에게 메시지가 하나 왔어요. 그리고 제가 그걸 실수로 읽어 버렸어요. 자신이 부유한 남자 친구를 만나 세계 여행을 다니고 있고, 잘 나가고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더라고요. 멘탈이 완전히 터져서, 한 달 동안 잘 때마다, 심지어 평소에도 눈물이 났어요. 게임을 하는 도중에도 갑자기 눈물이 났고, 팀원이었던 다르독이 너무 놀라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어요.

두 번째론 더블리프트한테 욕 먹고 MSI에서도 떨어졌던 순간이네요.


당시 실연은 잘 극복했나요? 타지로 가는 선수들이 종종 느끼는 고통일 수 있을텐데...

혼자 행복해지는 법을 배웠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나를 사랑하는 행동’을 해야 하더라고요. 명상을 하고, 씻고, 스킨 케어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하며 근육이 자라는 걸 보고 행복해지는 것을 배웠죠. 그러다보니 이성을 쫓아다니고 싶단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연인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만, 뭔가 바라게 되진 않더라고요.


혼자일 때를 0.5라고 생각하지 말고, 1이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네요.

맞아요. 좋은데요, 책 쓰셔도 되겠는데요? 앞으로 연인을 만나면… 저는 바라는 점이 없어요. 만나면 데이트를 하고, 와인을 마시고,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고 싶어요. 보수적이고 참신한 분과 대화를 하고 싶네요.





그리고 LCS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작년 스프링 우승이죠. 특히 그 때 ‘넷플릭스’에서 영상을 찍고 있었잖아요? 너무 좋았던 게 뭐냐면, 제가 가끔 저를 잘 모르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게 된다면 저를 소개해야 하는데, 그 때 넷플릭스를 딱 켜서 보여주는 거에요. 그러면 ‘너 넷플릭스에 나왔어?’ 하며 놀라곤 해요. 그 영상을 보며 저를 더 알게 되기도 하고요. 그게 제 커리어 상 아주 빛나는 순간이 아닐까 해요.

다른 팀들은 우승을 해도 넷플릭스에서 찍어주진 않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우승을 한 가장 좋은 순간에 찍힌 거니까요. 게다가 더블리프트의 가장 힘든 순간에 제가 옆에 있었다는 게 마음에 들어요. 좋은 말을 많이 해주진 못했지만, 저는 그 때 그를 위해 다른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그 점이 기뻐요.


LCS에서 못 해서 아쉬운 게 있다면요?

저희가 결승전에서 C9을 상대로 3:0 스코어로 완승을 거뒀어요. 그 시절 저는 운동을 조금씩 하고 있었는데요, 사실 전 무대에서 윗옷을 벗고 호날두처럼 ‘호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자신감이 아직 없던 때였어요. 그게 아쉽네요.


한국에 가면 북미에서의 누가 가장 생각날 것 같나요?

엑스미디요. 저의 영혼의 아빠에요. 항상 아빠라 불렀어요. 엑스미디는 제게 뭔가 강요를 한 적이 없어요. 권유를 하죠. 저는 무조건 따랐어요.




한 번은 그를 따라 음악 페스티벌에 간 적이 있어요. 저는 그런 곳에 가본 적이 었어서, 너무 퇴폐적인 곳일까봐 두려움도 있었어요. 그런데 엑스미디가 ‘따라와라, ‘블랙핑크’가 온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블랙핑크 분들의 실물을 처음 봤는데 너무 예쁘시더라고요. 입이 떡 벌어졌어요. 그 날 제 인생이 바뀌었어요. 소리를 지르면서 봤어요. 너무 좋았죠.


영어도 정말 많이 늘었겠어요. ‘소피 안’ 선생님께 영어는 충분히 배워 가나요?

지금 프리 토킹이 다 되긴 하는데, 그래도 어려운 단어는 단어장에 적어가며 외우긴 해요. 은어도 많고요. 같은 뜻이라도 쓰임에 따라 느낌이 다른 경우도 많더라고요.

안 선생님께는 제가 좀 더 배우고 싶었어요. 대학에도 가고 싶어 영어 공부도 많이 하고 숙제도 두 배를 했는데, 갑자기 팀에서 ‘네 영어는 충분해’ 라고 하며 제 수업을 끝내버린 거예요. 옆에서 (이)호종 형만 수업을 계속 받더라고요. 저도 더 배우고 싶었는데. 정말 슬펐어요.


기사 댓글에서 올레의 고등학교 시절 수학 선생님께서 응원의 메시지를 많이 보내주시는 걸 봤어요. 이번 발표를 보시고도 앞길을 응원해 주시더라고요.

정말요? 우와… 뵙고 싶네요. 그 분과 일화가 하나 있어요.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앞에 나와 문제 풀이를 시키셨는데, 저도 문제 풀이와 설명을 했죠. 그런데 그 때 선생님께서 ‘이 반에서는 (김)주성이가 가장 성공할 것 같다' 라고 해주셨어요. 저는 당시 반에서 1등도 아니고, 그럭저럭 ‘OK’ 정도의 학생이었는데 말이죠. 그런 저에게 무조건 가장 성공할 학생이라고 해 주시니… 그러다보니 반에서 저보다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이 기분 상해 하더라고요.


댓글을 캡쳐해 왔는데, 읽어 보시겠어요?




(읽은 후) 아, 선생님~! 아이고, 제가 열심히 해서 제 사인 한 장에 1억 원이 넘는 사람이 되어서 선생님을 부자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미국에서 어떻게 보낼 예정인가요?

사람들을 좀 만나려 해요. 7년 동안 하루에 최소 열두 시간, 열일곱 시간을 목표로 매일 게임을 했어요. 그런데 처음으로 계약서가 없는 신분이 되니 무엇을 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영양제도 먹고, 책도 읽으며 ‘똑똑해진 상태'로 스스로를 만든 다음에 일을 찾으려 해요.


한국에선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요?

방송하는 분들께 초대받아 같이 방송을 해보고 싶어요. 스트리머 ‘우왁굳'님의 팬이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같이 게임을 해보고 싶은 사람이 정말 많아요. ‘침착맨’, ‘앰비션’, ‘플레임’... 그리고 좋은 곳에서 가족들과 가족 사진을 같이 찍고 싶어요.


한국행 발표 후 팬들의 반응은 좀 어떤가요?


먼저 한국 분들의 반응은 잘 모르겠어요. 한국 분들도 절 잘 모르실 거예요. 그래서 저를 알아보실 분들이 많을까 싶어요. 만일 저를 알아봐 주신다면 너무 감사하면서 악수를 청할 것 같아요. 행사에서도 두세 분의 한국인 팬분들을 만나 너무 반가웠던 기억도 나요. 그 때 이현경 아나운서님께서도 제게 너무 좋게 대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있어요. 최근에도 메시지로 안부 인사를 보내드렸는데, 답장은 아직 없네요(웃음). 어쨌든 한국 팬들을 만나면 오랜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요.

북미 팬분들께는 정말 고마워요. 긍정적인 마음을 느끼게 해주셨어요. 최근에 AMA도 했는데, 댓글이 엄청나게 달렸더라고요. 한 세 시간 동안 팬분들의 질문에 답을 했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선수들 중에 누가 제일 아쉬워했나요?

미국에선 막 아쉬워하진 않은 것 같아요. 다들 쿨하거든요. 언젠가 어차피 다시 만날 거라 생각해요. 나중에 만나면 같이 밥이나 먹자고 이야기 나눴어요.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읽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남겨 주세요.

한국 분들껜… 제가 해외 생활을 다양하게 오래 했어서 글로벌한 이야기를 풀 게 정말 많아요. 철학적인 공부도 많이 했기 때문에, 솔로 랭크에서 어떻게 멘탈을 잡는 지 등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말들도 많이 해 드리고 싶어요. 방송이든 뭐든 초대해주시면 여러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

미국 팬분들께는... 저는 지금 미니멀리즘을 배우며 사치품들을 다 버렸어요. 명상을 하며 느낀 건, 제 자신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러 온 사람이라는 것이에요. 제 방송을 키우려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예요. 요즘 모두 힘든데, 제가 마스크를 사든 어떻게든 팬들에게 도움을 드렸으면 좋겠어요. 제 방송 많이 봐 주세요!





(사진: 인벤글로벌, 라이엇게임즈)

코멘트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