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베테랑'이란 무엇인가, T1 '페이커' 이상혁

인터뷰 | 유희은, 남기백 기자 | 댓글: 150개 |



'베테랑'이란 무엇인가. 한 분야에 오래 종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그것은 매일 출석 보상을 받듯 쌓아가는 연차가 아니라, 숙련도와 커리어 그리고 일에 대한 마인드를 겸비한 이를 일컫는 말일 것이다.

25살. 보통 사람이라면 갓 사회생활을 시작할 나이인 '페이커'는 어느덧 이 분야의 최고 '베테랑'이 되었다. 데뷔 초 상대를 솔로 킬 내고 환하게 웃던 SKT T1의 막내에서 이제는 수많은 우승컵을 넘어 공중파까지 진출, e스포츠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오른 이유가 단지 실력 하나만은 아니다.

18년도 이후 밖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내면을 바라보는 데 집중했다는 '페이커' 이상혁.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아마추어에게, 그리고 이제 첫걸음을 내딛는 사회초년생에게 그가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베테랑'으로서의 마인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 SKT T1의 막내에서 어느덧 팀 내 기둥, T1이라는 브랜드의 얼굴이 되었다. 지금까지 프로게이머 생활은 전반적으로 어땠던 것 같나?

프로 생활을 오래 했다. 이젠 익숙하고 편한 느낌이다.


- 데뷔 시절 영상을 돌아보면 상대를 솔로 킬 내고 좋아하거나, 인터뷰에서 잘 대답하지 못하던 모습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이젠 공중파 및 다양한 매체에 출연해서 유려하게 말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론 좀 놀랍더라. 스스로는 어떤가?

인터뷰나 대외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자연스레 말이 늘었다. 다른 사람을 보면서 배우기도 했고 또 스스로 어떻게 하면 더 좋게 보일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더 나아진 것 같다.


- 수많은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기에 유독 승리와 패배 그리고 경기 출전의 여부에 대한 집중을 받고 있다. '베테랑'이 된 후의 '승리'는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 신인 시절엔 승리가 그저 자신의 '성취'였다면 지금은 '쟁취'가 된 것 같은데.

사실 승리에 대한 의미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승리에 대한 의미가 달라지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여전히 승리하는 것이 기쁘고 만족스럽다.





- 패배나 실패를 받아들이는 마음은 신인 시절과 어떻게 차이가 있나? 그것들을 털고 일어나는 자세에 대한 것도 궁금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패배가 있어야 승리가 있는 거더라. 매번 이기기만 할 순 없다. 이런 패배 과정에서 빨리 딛고 일어나 다음에 더 발전할 부분을 찾는 것이 많이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예전엔 단순히 승패에만 연연했다면 지금은 승패 과정에 더 발전할 수 있는 여력이 있나 없나 살펴보는 것이 습관이 됐다.

어떤 성공한 사람이라도 실패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패배도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고 생각한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 위의 질문과 비슷한 맥락으로 T1의 섬머는, 그리고 '페이커'의 섬머는 어땠나? 팀 적으로는 롤드컵에 진출하지 못했고, 스스로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시간도 더러 있었다.

이번 섬머 시즌의 경우에는 팀 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즌이었는데 그만큼 이번 섬머 시즌 끝나고 나서 느낀 점도 많았고 개선해야 할 부분도 명확하게 보였다. 오히려 이런 실패들이 다음 시즌들에 더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한다.


- 이번 시즌을 스스로 슬럼프라고 생각하나?

나는 나 스스로 이번 시즌을 전혀 슬럼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선발전 끝나고 나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니 그런 얘기가 많아서 의외였다. 올해의 마지막 경기가 끝났을 때 아쉬운 점은 많았지만, 내년엔 더 잘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 모든 분야에서 '베테랑'이라고 일컫는 이들은 대개 짧게든 길게든 슬럼프를 겪곤 한다. '페이커' 역시 마찬가지였을 거고. 그 순간에 있어 평정을 찾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나?

슬럼프라는 게... 가끔 올 때가 있긴 한데, 그러한 슬럼프들이 사실 그렇게 큰 게 아니다. 어차피 지나가는 일들이다. 물론 당시엔 힘들고 헤어날 수 없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최대한 문제점을 찾아 스스로 고치려는 태도만 있다면 충분히 지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LoL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이기에 비판이 아닌 이유 없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드디어 T1은 법적 대응을 하기로 공표했다. 비난에 대한 본인만의 대처가 있을까?

예전엔 그러한 비난에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작년과 올해 들어서 멘탈을 관리하는 노하우와 비난 같은 것들을 잘 넘기는 방법이 생겼다. 이젠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서는 영향을 별로 받고 있지 않다.


- '나를 믿는다'는 것이란?

예전부터 독서를 하면서 책의 글귀들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하고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기도 했다. 굳이 독서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자신만의 습관 하나가 있는 것이 중요한 거 같다. 예를 들어 상담을 받는다든지 말이다. 이러한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관리하는 법을 많이 배워 현재 평정심을 찾는 데 큰 도움을 받고 있다.


- 꽤 담담한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외부 반응을 보며 상처를 받곤 했나 보다.

외부 반응에 대해서 상처를 받는 것도 있었지만, 스스로 성적이 안 나오거나 결과가 안 좋을 때도 역시 힘들었다. 지금은 이 모든 커리어들이 하나의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크게 개의치 않고 있다.





- 프로게이머로서 자신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인가?

나를 지탱하는 힘은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을 믿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올곧게 나아가는 것. 그게 나의 가장 큰 지탱점이 아닐까 싶고, 또한 나를 응원해주시는 팬분들과 주변 사람들... 그런 분들이 나의 보조 바퀴 같은 역할을 해주는 느낌이다.


- '페이커'에게 팬이란 어떤 의미인가.

처음엔 팬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공한 거라 생각했었다. 그저 단순히 팬들이 있으니까 더 좋고 재밌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팬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힘을 낼 수 있다. 내 인생의 조력자 같다.

사람이라는 게 젊을 때는 화려하고 북적한 걸 좋아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좀 더 소수의 사람과 교류하면서 자신만의 울타리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나.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뭐, 대충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그걸 떠나서 그냥 팬에 대한 깊은 의미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 100살처럼 말한다.

인생 2회 차다(웃음).


- 성공을 떠나 프로게이머로서 만족스러운 마무리를 하기 위해 더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부지런하게 생활하는 것이다.





- e스포츠의 '베테랑'으로서,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떤 한 분야에 발을 내딛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독서를 권유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 나는 실패로부터 인생의 교훈을 얻는다. 그리고 실패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많이 한다. 그런데 그 실패가 어디에 가장 많이 나와 있냐면 바로 책이다. TV나 유튜브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한 사람이 어떤 직업에 처음으로 종사하게 되어 아래에서부터 올라가는 일을 한다면 분명 많은 실패를 겪을 것이다. 독서를 통해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비교적 덜 어렵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얘기를 듣다 보니 내면이 정말 단단해진 거 같다. 이렇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나.

18년도 이후부터인 거 같다. 18년도에 부진을 겪으면서 스스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때부터 외부에 신경 쓰기보다는 스스로를 많이 바라보게 되면서 이러한 내면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 마지막 질문이다. '페이커'를 뛰어넘는 신인은 나올 수 있나?

지금까지의 인간의 역사를 봐도 절대 불멸한 건 없기 때문에 언젠간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의 커리어를 뛰어넘는 신인이 등장하더라도 초연할 거 같다. 그건 순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프로 생활하는 동안엔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나는 아직도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기에 별로 그런 것에 대해선 걱정되지 않는다. 스스로의 발전에만 집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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