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제는 다 후회 없는 추억- '류' 류상욱의 마지막 인터뷰

인터뷰 | 장다솔, 석준규 기자 | 댓글: 50개 |




'류' 류상욱'은 LCK 초창기 시절 미드 라이너로서 큰 역사를 기록한 인물 중 하나다. KT 불리츠로 LCK 커리어를 시작한 '류'는 '앰비션', '막눈', '쏭' 등 막강했던 당시 미드 라이너들을 상대로 강한 인상을 남겨주며, 한 때는 '배부른 류'라는 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론 '페이커'와의 악연(?)도 있었지만. 이렇게 쓰다보니 벌써 참 오래 전 이야기 같다.

인벤 글로벌은 한국에 돌아온 '류'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그냥 이야기만 들은 것은 아니다. 군 입대를 앞둔 그의 조용한 은퇴 인터뷰였다. LCK의 질풍같던 한 시대에 크나큰 족적을 남겼고, 이후 유럽과 미국을 다니며 굴곡 많은 커리어를 쌓아온 그. 그런 그의 은퇴, 특히나 이러한 조용한 은퇴는 기자는 물론 LCK의 올드 팬들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을 듯 하다.

앞에 앉아 있는 '류'의 얼굴을 보자니, 세월은 부쩍 흘렀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듯 하다. 한결같은 표정(-_-)을 한 '류'. 현역 선수로서의 마지막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잘 있었나? 한국엔 언제 돌아왔나?

작년 100시브즈와 계약이 종료되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잘 지냈는데, 엄청 심심해서… (웃음) 편하게 지냈다.


스트리밍 같은 것도 전혀 안 하고 있나?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 혼자 게임만 했다. (웃음)


다른 선수들처럼 '은퇴합니다' 라고 말도 못했다. 은퇴...인건가?

그렇다. 원래 작년 12월까지는 선수로서 팀을 구하려 했는데 오퍼가 없더라. 코치 쪽으로는 제의가 꽤 많이 왔다. 코치로 갈까 했다가 어차피 곧 군대에 가야 하니까, 다녀와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원래 7월에 가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늦어졌다. 곧 간다.

그래도 군대 가기 전에 소셜 미디어에는 한마디 쓰려고 했다. 내가 원래 소셜 미디어를 잘 안 해서…


이번에 유독 입대하는 관계자들이 많다. 본인도 그렇고. 함께 활동했던 선수들이 하나둘 입대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아 나도 빨리 가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든다. 다들 가버려서… 특히 KT에서 예전에 함께 했던 형들도 갔고, '인섹'도 갔고. 나도 빨리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듀크'도 나의 입대 후 바로 다음 주에 간다고 들었다. 미루는 것도 힘들다.


'스코어'나 먼저 입대했던 선배(?)들과는 얘기 나눴나?

저번에 전화 한번 했는데, 별말 없이 '힘내라'고 하더라. 정말 힘내라는 말밖에 할 게 없다고(웃음). 편지 한 통 정도는 써준다더라. 밥도 열심히 만들고 있는 것 같더라.


LoL 선수들이 입대하면 선임들과도 그렇고 게임 얘기를 많이 할 것 같은데, 어떨 것 같은가?

그렇게 자주는 아니고 가끔 물어본다더라. 사실 나는 좀 걱정인 건, 제드 1대1 하자고 할까 봐… 좀 걱정이다(웃음).


사실 인터뷰 뒤쪽에 그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말이 나온 김에 한번 얘기를 해 보자. 본인이 커리어도 길고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했으니 인지도가 높지만... 사실 가장 잘 알려진 건 '그 장면'인데, 지금은 어떤 느낌인가?

처음에는 좀 짜증 났다. 나중에 가니까 별생각이 안 들더라. 특히 내가 해외에서 오래 활동하다 보니 한국 팬들과 자주 얘기하는 편은 아니게 되어서… 나중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게는 안 좋은 장면이지만, 그런 장면으로라도 한국 팬들이 기억을 해주니까(웃음).



▲ 굳이 영상을 넣진 않겠다. 그런데 왜 재생이 되는 것 같을까...



'인섹'이 방송에서 한번 언급했더라. 본인이 쉔 궁 타지 말라고 했다고. 혹시 기억나는 만큼 설명해줄 수 있나?

정말 기억이 잘 안 난다. 솔직히 타지 말라고 했던 것 같진 않고 (웃음), '잡은 것 같은데?' 라고 했던 것 같다. (인섹이 그렇게 얘기한 방송 못 봤나?) 봤다. '그 XX가 타지 말라고 했다'고 말한 거 봤다(웃음).


한국에선 거리에서 팬들이 알아보거나 하나?

진짜 한두 명 정도 알아보더라. 사실 알아보는 게 더 신기하다. 한국 돌아와서 딱 두 명 있었던 것 같다.


커리어를 돌아보자. 크게 LCK 시절, EU LCS 시절, (NA)LCS 시절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 프로게이머를 어떻게 시작하게 된건가?


원래는 LoL 이전에 ‘카오스’를 했었다. 그러다가 스타테일에서 팀을 만든다고 해서 (김)정균이 형이 다섯 명 멤버를 만들어서 갔던 것 같다. 난 그래서 정균이 형에게 고맙다. 그때 레벨 30도 안 됐던 기억이다.



▲ 스타테일 입단 전, 카오스 선수 시절의 모습. 가장 우측이 '류'다


'꼬마'감독과는 카오스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나?

사실 그때는 그렇게 안 친했던 것 같다.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 당시 '스코어'와 '마파'였나?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프로게이머가 되고 나니 기분이 어땠나?

그 때 게임을 엄청 좋아했었다. 프로게이머 되는 것도 신기했고, 되고 나니 돈을 받으면서 게임을 한다는 것이 기분도 좋았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걸 하니까 정말 좋았다.


KT에서 활약한 이후 유럽으로 갔다. 애초에 유럽행을 결정했던 이유가 뭐였을까?

KT를 나간 뒤 군대에 가려고 했었다. 근데 그냥 가기엔 조금 억울했고, 그 당시 선수들이 해외로 많이 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한번 해외에서 해 보고 싶었고, 새로운 경험도 해보고 싶었고, 영어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갔다.


유럽에서는 어땠나? 처음에 성적이 그리 좋진 않았다.

처음에는 진짜 정말 힘들었다. 의사소통도 안 됐다. 영어도 원래 못 했지만, 발음도 내가 듣던 것과 달랐다. 그래도 익숙해지고 친해지다 보니 성적도 나왔던 것 같다.


유럽에서는 2연속 롤드컵 진출에 16년도에는 4강까지 갔다. 의사소통이 나아지고 친해지니 가능했던 걸까?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의사소통도 좋아졌고, 친해졌다. 그 외에도 정말 열심히 했다. 아주 가끔 당시 팀원들과 연락한다.


4강 진출 후 바로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으로 넘어간 이유는?

그 때 아마 계약 끝나고 다른 팀들을 찾아보다가 조건이 좋은 쪽으로 갔다. 생활하기 편한 쪽이기도 했고, 미국에서도 살아 보고 싶었다. 유럽에 있을 당시 미국의 풍경이 참 좋다고 들었다.



▲ "풍경이 좋구나~"


그렇게 피닉스1에 있었다가 100시브즈로 옮겼다. 그 과정은 어땠나?

'프롤리'가 있었다. H2K 팀에서 함께 했던 코치였는데, 그 사람이 100시브즈에 있었다.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모든 면에서 좋았다. 익숙한 사람들, '프롤리', '메테오스', '썸데이'가 있었으니 편했다. 실력으로도 좋은 선수들이니까.


커리어의 거의 절반을 '프롤리'와 함께 했더라.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냥 열심히 하고, 좋은 코치다. 성격도 좋고. 열심히 할 때는 열심히 하고, 재밌을 때는 재밌게 해주고. 거의 4, 5년 같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100 시브즈에서도 롤드컵에 진출했다.

솔직히 섬머 시즌에는 잘 못했는데, 다른 팀들이 더 못했던 느낌이다. 우리가 2위를 하긴 했지만, 좀 안 좋은 일이 있었다. 멤버도 바뀌고… 그렇게 잘했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스프링 시즌까지는 잘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안 좋은 일들이 겹쳐서 안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운 좋게 다른 팀들이 부진해서 상대적으로 결과는 잘 나왔다.





그러고 나서 코치로 전환했고, '뱅'이 넘어왔다. 그런데 코치 전환을 했다가 다시 선수도 했고… 아카데미도 갔고. 다사다난했다.

'뱅'이 넘어올 당시 내가 코치로 전환하는 게 확정된 상황이었다. 좀 웃겼다. 코치를 하다가 상황이 안 좋아서 선수로 복귀했다가, 다시 아카데미로 갔다가… '이런 상황도 생기는구나' 하고 그 당시에도 그냥 웃었다.


커리어가 길고 굴곡도 많았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좀 있었는데.

그게 가장 아쉽다. 한국에서의 결승도 아쉽고, 유럽에서도 결승 갈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북미에서도 우승 못한 것도 아쉽고.


우승을 한 번이라도 하고 싶어서 다른 지역에 가면서라도 도전을 계속한 건가?

그런 생각이 분명 있었다. ‘진짜 제발 우승 한 번만 하자’ 이런 생각이 있었는데, 안되더라(웃음). 분명 다 할 수 있었는데 아쉽게 다 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쉬웠던 결승전이 언제였을까?

아무래도 한국에서였다. 그 때 이겼어야 했는데(웃음). 다 아쉽지만 아무래도 LCK에서가 가장 아쉽다. 우리가 두 게임을 선취했었는데, 뒷경기들을 다 졌다. 우리가 멘탈만 안 흔들렸어도 이겼을 것 같다. 거의 다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긴장되었다. 뭐, 결과적으론 졌다.


얘기하다 보니 엄청 밝은 이미지인 것 같다. 웃음도 참 많고. 늘 이렇게 긍정적인 편인가?

그렇게까지는 아니다. 피드백할 때는 웃음기 싹 빼고 진지하게 간다.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선수들을 만났다. 지역별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나 관계자 등이 있다면?

안 좋은 쪽으로는 좀 많다(웃음). 그건 말할 수 없고, 그래도 재미있었던 사람이 있다면, 유럽에 '반데르'라는 서포터가 있다. 당시 게임할 때 친했고, 성격이 참 재미있었다. 왜 주변에 다 같이 놀리는 친구 하나씩은 있지 않나? 그런 분위기로 잘 받아줬다.

미국에서는 '아프로무'. 그러고보면 서포터들과 친했던 것 같다. '아프로무'는 말하는 것 자체가 너무 웃겼다. 팀 내에서 분위기를 잘 잡아줬고, 기억에 잘 남았다.

KT에서는 아무래도 '스코어' 형? 그래도 LCK에서는 다 친했다. '스코어'가 그래도 가장 마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선수였다. 이야기를 하면 잘 들어준다. 들어주긴 잘하지만 사실 답은 잘 안 줬는데(웃음).





미국에서 '애로우', '썸데이'와도 여행 다니고 했지 않나?

셋이 먹으러 엄청 다녔고 놀러도 많이 갔다. 다른 한국인 선수들과는 그렇게 친한 편은 아니었다. 다른 선수들과도 만났었는데 쉽게 안 친해지더라. '썸데이', '애로우'와 만나면 셋 다 결정 장애가 생기는 편이다. 그나마 (김)찬호가 짜증을 내면서 '가자!' 이러고 리드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전부터 오래 알던 사이라, 타지에서 서로 의지가 많이 됐던 것 같다.


본인 커리어를 요약하자면 어떤 커리어였다고 할 수 있을까?

그냥 후회가 남는 커리어. 왜 한 번도 우승을 못 했을까. 7, 8년 정도의 커리어에서… 우승은 한 번도… 만족 못 하는 커리어인 것 같다. 내가 4강을 그렇게 많이 갔는데, 어떻게 한 번도 못 뚫었을까 싶은 후회가 많이 남는다.


무대가 커지면 긴장하거나 하진 않았나?

나는 딱히 그랬단 생각은 안 하는데, 주변에서 그렇게 말하더라. 내가 긴장하는 것 같다고. 나는 정말 그런 생각이 안 들었는데, 내 플레이에 그게 보이나 보더라. 뭐 그렇다고 나 때문에 졌다는 건 아니다(웃음).


군대를 이제 곧 가는데, 돌아온 후에 다시 이스포츠로 복귀할 것 같은가?


그렇다. 돌아오면 코치로 해 보고 싶다. 그런데 1년 반이나 지나야 하니…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코치로 가고 싶다. 군대를 다녀오면 할 수 있는 게 코치밖에 없지 않나. 코치가 돼서 꼭 우승… 해 보고 싶다(웃음). 한번을 못 해서...


코치로서 선수들 가르치는 것에 대해 재미나 보람이 있나?

내가 선수일 때도 가르치는 걸 좋아하긴 했다. 피드백할 때도 내가 많이 주도했다. 근데 코치를 했을 때는 그렇게 잘했던 것 같지는 않다. 성적 보면 알지 않나?





본인은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그냥 꾸준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분명 우승 커리어가 없는 건 아쉽지만, 꾸준했던 선수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본인에게 LoL은 어떤 게임인가?

정말 고마운 게임이다. 프로게이머도 하게 해줬고, 재미있었고. 만족스럽진 않지만, 특별히 후회도 없다. 고마운 게임이다.


본인을 프로게이머로 만들어준 챔피언이 있다면?

아리. 아리가 그 당시 재미있었고 성적도 잘 나왔고 강했다. 그리고 제드…(웃음) 르블랑, 트위스티드 페이트 정도가 있겠다. 한국에서는 아리와 오리아나를 잘했던 기억이 있다. 유럽에서는 아리, 피즈, 르블랑. 북미에서는 기억나는 게 코르키다. 북미에서는 이기려면 코르키 같은 챔피언을 하는 게 좋았다. 많이 나오던 구도가 코르키와 아지르였다. 아지르를 참 싫어하는데, 코르키가 아지르를 상대하기 좋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봤을 때, 프로게이머를 함으로써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 예를 들면 학창 시절 등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나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정말 좋아하는 게임을 하며 살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었고, 세상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 만났고, 세계 각지도 가 봤다. 내가 음식도 참 좋아하는데, 세계에서 정말 다양한 음식도 먹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기존의 친구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는 거다.


그래도 올해 한국에 돌아와서 친구들은 많이 만났겠다.

계속 연락 유지하고 있는 친구들은 다 만났다. 같이 여행도 갔다.


그 친구들은 다 제대한 상황 아닌가? 엄청 놀리겠다.


(웃음)그렇다. 다들 취업 준비하더라.


활동하는 동안 또 특이했던 에피소드가 있을까?

좋은 이야기보다 안 좋은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다. 해당 선수한테 안 좋은 영향이 있을까 봐 익명으로 말하겠다. 지역도 익명으로 하겠다. 같이 생활하다가 선수들끼리 싸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한 선수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하더라. 당시 대회를 앞두고 있었는데… 컴퓨터를 갑자기 해체하더니 자기 방으로 가지고 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물론 안 좋은 쪽으로 남은 경기는 제드(웃음). 좋은 쪽으로는 CJ 블레이즈와 프로스트를 차례대로 이겼을 때다. 그들이 정말 강팀이었다. 아마 그 때 처음으로 결승을 갔다. 강팀을 플레이오프에서 이겼다는 게 정말 좋았다.


슬슬 마무리해야겠다. 지금까지 사랑해주신 팬분들께 남길 말이 있나?

그래도 오랜 커리어였는데, 팬분들 정말 고맙다. 옛날에 만든 디스코드 채널에 매일같이 들어와서 이모티콘을 매일같이 남겨주고 가더라(웃음). 정말 감사하다. 정작 나는 채팅창으로 거의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이렇게 올려주는 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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