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K 스프링] 경험 많은 프로, 변화에 내놓은 그들의 답

게임뉴스 | 장민영 기자 | 댓글: 12개 |



최근 몇 개월 사이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많은 프로게이머들이 은퇴를 선언했다. 몇몇 전 프로게이머는 활동 후반부에 자신의 주변 분위기를 "싸늘했다"고 표현했다. 평상시에 잘하다가도 한 번이라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나이가 들어 프로게이머로 활약하기 힘들다는 시선 속에 살아야 한다고. 주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기 위한 다리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나이로 자신의 가능성마저 재단하는 경우도 있었다. 힘든 시선 속에서 자신의 은퇴를 인정해야 했고, 그런 인식이 맞는 것처럼 하나둘 프로 씬을 떠나갔다.

그런데 새 시즌을 맞이한 2021 LCK에서 최근 흐름과 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망한 챌린저스-아카데미 출신 선수들이 올라오는 현 LCK에서 경력 많은 프로게이머들의 힘이 느껴졌다. 타 스포츠에 비해 상대적으로 프로 경력이 짧은 e스포츠에서 1995-96-97년생의 나이는 적다고 볼 수 없다. 그런 선수들이 15일 진행한 LCK 경기에서 인상적인 경기력과 말을 남겼다. 킹존 드래곤X 출신의 탑 라이너 '칸-라스칼', 그리고 T1의 '페이커' 이상혁까지. 한때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피지컬로 승부를 보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덧 노련함까지 갖췄다.

경험에서 나오는 이들의 능력은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잘 드러났다. 신 챔피언 요네의 LCK 등장하기 시작했고, 최근 버프와 함께 나르가 탑 라인에서 다시 떠올랐다. 아직 많은 팀들이 잘하는 요네를 상대하는 법이나 나르 활용에 익숙하지 않은 시기에 이들의 대처는 남달랐다.

탑 라이너 '라스칼-칸'은 15일 경기에서 상대보다 몇 수를 더 내다보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젠지 e스포츠의 '라스칼' 김광희는 퀸-레넥톤, 나르-카밀의 라인전을 시기마다 누가 유리한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극 초반부터 중반, 후반 운영 단계까지 세세하게 나눠 자신이 유리한 타이밍 언제이며, 해줘야 할 플레이가 무엇인지에 관해 뚜렷한 인터뷰 답변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이론상으로 아는 것을 넘어 많은 실전 경험을 토대로 쌓은 실력은 경기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 라인 주도권 위해 목숨 걸고 적진에 와드한 '칸'

DWG KIA '칸' 김동하는 떠오르는 나르에 관해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선수다. 제이스 외에 뚜렷한 나르 대처법이 나오지 않은 상황. '칸'은 갱플랭크를 꺼내는 다른 수를 뒀다. 최근 KeSPA컵에 나왔던 갱플랭크들이 손쉽게 상대에게 공략당했음에도 '칸'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구도를 완성하기 위해 조건을 하나씩 완성해나갔다. 시작부터 적진으로 향해 와드를 설치해 상대 정글러 동선을 확인하더니 무자비한 라인전을 펼쳤다. 해당 라인전은 피지컬 싸움보다 과감하게 딜 교환을 할 수 있는 구도를 '칸'이 스스로 찾아낸 것이 중요해 보인다.

'칸'이 찾은 대처법은 이전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에겐 킹존 드래곤X 시절에 경험한 갱플랭크-나르 구도가 다른 선수들보다 익숙했다. "경험이 있다 보니 내가 언제 이길 수 있는지 잘 안다. 젊은 친구들은 피지컬이 뛰어나지만, 그에 비해 경험이 적다. 그런 점을 이용하기도 했다. 갱플랭크가 옛날부터 주류 픽이었던 적은 없다. 상황이 나오면 쓰기에 연차가 많이 쌓인 선수가 잘 활용한다"며 경험 많은 프로게이머의 장점을 내세웠다.

T1 '페이커' 이상혁이 아지르로 요네를 상대하는 모습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쇼메이커-쵸비'와 같은 정상급 미드가 활용하는 요네는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명확한 답이 서지 않았다. 슈퍼플레이와 함께 한타에서 나오는 변수를 막기 힘들기에 그렇다. 그런 요네를 상대로 '페이커'는 아지르로 맞불을 놓았다. 한타 변수하면 빠지지 않는 아지르의 '황제의 진영'으로 후퇴하는 상대를 쓸어담은 것이다. 이는 이번 시즌 T1이 보여준 한타 화력 조합에 필요한 역할이었다. 난전 속에서도 펜타-쿼드라 킬을 뽑아먹는 '구마유시' 이민형이라는 T1의 새 병기에게 아지르 플레이는 큰 힘이 됐다.



'칸-페이커'의 선택이 더 대단한 이유는 경험에서 나온 그들의 확신 때문이었다. 갱플랭크와 아지르는 프리시즌 패치 이후 솔로 랭크에서 외면받는 챔피언이었다. 갱플랭크 승률이 최근 조금 오르긴 했지만, 아지르는 여전히 최하위에 머물고 있기에 이를 잘 알 수 있다. KeSPA컵에서도 이렇다할 존재감을 뽐내지 못하는 픽이었음에도 두 선수는 자신들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가기에 최적의 픽으로 갱플랭크-아지르, 오래된 두 챔피언을 골랐다. 경험에서 나온 남다른 해석으로 변화에 남들과 다른 답을 제시할 수 있는 두 선수였다.

아쉽게도 그런 '칸'과 '페이커'의 대결에서 승자는 한 명밖에 나올 수 없었다. 그렇지만 승패를 떠나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중요한 경기에 내세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런 시도가 있기에 신인들이 올라오는 LCK 판이 다양한 구도 속에서 성장할 수 있다. 밴픽이나 플레이상 아쉬움은 고쳐나가면 된다. 앞으로도 꾸준히 업데이트가 이뤄질 LoL이기에 경험 많은 이들이 제시할 해답의 빈 자리는 남아 있다.

어느덧 나이가 찬 세 선수에게도 경력-은퇴라는 단어가 따라올 수 있는 시기가 왔다. 이에 '라스칼'은 아직은 아니라고 완강히 거부했다. "2020 시즌이 끝나고 많은 프로게이머 형들이 은퇴하는 모습을 봤다. 그런데 나이가 많은 프로게이머들이 은퇴할 때 차가운 대우를 받더라. 올해 내가 잘해서 나이 많은 프로게이머에 관한 인식을 바꾸고 싶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생각이다"고 말한 만큼 자신의 한계를 두지 않겠다는 각오다. LCK 초반부임에도 이들의 각오는 15일 경기에서 충분히 느껴졌다.

그리고 언젠가는 오랜 프로 활동 후 은퇴식 날에도 경기를 지배한 NBA 드웨인 웨이드 같은 선수가 e스포츠에도 나왔으면 한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