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K 리뷰] 6연승 T1 승리 공식에 맞서다! 통계로 말할 수 없는 아프리카 플레이

기획기사 | 장민영 기자 | 댓글: 15개 |



거침 없었던 T1의 연승이 6승에서 멈췄다. 그동안 젠지-드래곤X와 같은 최상위권 팀을 상대로도 승리했기에 T1의 1R 독주는 누구도 막지 못할 것 같았다. 불리하게 출발하더라도, 3세트를 가더라도 결국 T1이 승리하는 공식이 있는 듯했다.

그런 T1 앞에 아프리카 프릭스가 파훼법을 들고 등장했다. 3월 5일 경기 결과는 최근 상위권 경쟁에서 밀려나는 듯했던 아프리카 프릭스의 승리였기에 더 놀라웠다. 여전히 아쉬운 플레이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번 T1전의 아프리카 만큼은 아쉬움을 싹 가시게 해줄 만한 확실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현 최고의 기세 T1을 꺾어보기 위한 아프리카 의지가 드러났다.

아프리카의 출발은 그리 좋지 않았다. 1세트 초반부터 봇에서 큰 사고가 일어나며 불리하게 출발하면서 중반 한타에서 한번 승리하더라도 경기는 이기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다. 1세트는 어떻게 흘러가더라도 T1의 승리라는 공식이 여전한듯 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시작은 2세트부터였다. 교체 투입된 '드레드' 이진혁이 오늘은 제대로 칼을 갈고 나왔다. 밴픽 역시 3세트까지 확실한 방향성을 가지고 임했다. 칼리스타-탑 아칼리를 두 번이나 꺼내 그 의미를 증명했고, 중-후반 최고의 OP 평가를 받는 오른을 풀며 확실한 승부수를 띄웠다. 아프리카의 이런 노림수는 결국 T1의 승리 공식을 넘어섰다. 최근 T1 경기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경기 양상이었다.


T1전 의미있는 초반 주도권 잡으려면?
T1 승리 공식 : 말리지 않는 정글 '커즈' 공략법




그동안 초반 설계로 T1전에서 유리한 듯한 초반을 보낸 팀은 많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를 어떻게 활용해서 후반까지 경기를 이끌어갈지 정답을 찾은 팀은 없었다. 중반부에 스노우볼이 깨지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렇다. 정글러인 '커즈' 문우찬은 놀라운 성장 능력을 바탕으로 격차를 좁히거나 역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초반 주도권을 잃었다고 게임이 끝나지 않는 T1의 단단한 공식이 여기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이전 드래곤X전에서 '커즈'의 능력은 이미 잘 드러난 바 있다. 드래곤X와 1레벨 정글 싸움에서 킬을 내주면서 경기를 시작했던 '커즈'의 니달리가 어느새 격차를 좁히고 있었다. 정확한 와드 설치로 자신을 찾아다니는 '표식-케리아'를 피해 성장했고, 오히려 상대에게 시간과 동선 낭비를 하게 했다. 성장 격차를 좁힌 '커즈'는 다시 라이너와 함께 킬을 내면서 초반 격차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회복 능력을 선보였다.



▲ 라인 밀어줄테니 합류해



▲ '드레드' 엘리스의 쉬지 않는 줄타기

이를 공략하기 위해 아프리카 프릭스는 '드레드'에게 확실한 두 가지 임무를 맡겼다. 2세트는 상대 정글로 들어가 '커즈'를 붙잡아두고 동시에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었고, 마지막 3세트는 '커즈'가 성장할 시간에 갱킹으로 게임을 터뜨리라는 지령을 받았다. 팀에서도 이를 위해 밴픽부터 확실히 밀어줬고, '드레드' 역시 초반 임무를 완벽히 완수했다. '드레드'가 과도한 공격성 때문에 미끄러진다는 평가는 T1전 이전 일이었다. 그 정도로 정교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었다.

먼저, '드레드'의 공략 포인트는 T1쪽 칼날부리 지역이었다. T1이 와드와 렉사이의 진동 감지로 정글로 들어오는 엘리스를 발견했다. 무리하게 들어오면 공략할 준비를 하고 있는 T1과 '커즈'의 렉사이를 상대로 정확하게 선을 지켰다. 들어오다가 갑자기 뒤돌아서 빠져나오는 움직임에 딱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엘리스가 아껴둔 강타로 칼날부리를 빼먹는 모습이 두 번이나 이어졌다. 이를 경계하고 있는 '커즈'가 계속 '드레드'의 플레이에 붙잡히고만 것이다. 교전과 킬로 캐리력을 발휘해야 할 렉사이가 어느새 방어 아이템을 두르고 그 정체성을 잃어갔다. 이전까지 13승 5패로 승률 72.2% KDA 5라는 좋은 성적을 냈던 '커즈'의 렉사이가 킬 하나 올리지 못하며 0/5/3으로 2세트를 마무리해야 했다.



▲ 봇 주도권 + T1 정글로 들어가겠다는 의지



▲ 봇에 "얌전히 있어!"

이런 '드레드'의 플레이를 향한 팀적 지원 역시 완벽했다. 먼저 칼리스타-세트로 강한 봇 라인을 구성한 아프리카는 3개의 원거리 딜러 밴 카드를 쓰며 봇을 틀어막았다. '칸나'도 쓰지만 '에포트' 이상호가 강한 라인전을 선보였던 카르마까지 막아내면서 초반 봇 라인에 확실한 주도권을 쥐어준 것이다. 한동안 봇의 정글 합류는 꿈꾸기 힘든 상황이 계속 됐다.

미드 픽은 최근 잘 등장하지 않았던 픽인 키아나였다. 키아나는 '드레드'의 엘리스와 함께 정글로 들어가기 좋은 픽이다. 요즘 LCK에서 유행하는 메이지들에 비해 라인전이 약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드레드'가 먼저 라인을 밀어주고 귀환 타이밍을 봐주는 플레이로 한 발 빠르게 상대 정글로 합류할 수 있었다. 정글 지역으로 나중에 합류하는 '페이커' 이상혁 조이를 위협하는 그림이 나왔고, 이후 교전에서도 키아나-엘리스가 조이를 끊어주는 장면이 그대로 이어졌다. T1을 꾸준히 밀어넣은 아프리카가 정글 주도권을 바탕으로 낼 수 있는 이득을 꾸준히 챙긴 것이다.

이에 3세트에서 '커즈'는 그라가스를 뽑아 빠른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 현 메타에서 드래곤 스택이 중요해졌고, 필요에 따라 드래곤 강타 싸움까지 벌이는 정글러에게 레벨은 생명이다. 그러나 '드레드'는 이 공식을 거부했다. 성장의 효율보단 항상 벽 뒤로 돌아가는 갱킹 코스를 선택하며 상대에게 압박을 심어주는 데 전념했다. 쉬지 않고 갱킹과 합류를 반복한 '드레드'의 리 신은 어느새 탑과 봇에서 킬을 내면서 성과를 올리면서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나갔다. 초반 드래곤 앞 한타에서 아프리카가 패배한 적도 있지만, 이를 버티게 해줄 만한 격차를 미리 확보해둔 게 '드레드'의 플레이였다.


통계로 말할 수 없는 'AF 플레이'
T1 후반 승리 공식 : '테디' 공략법


이렇게 '드레드'가 만들어 놓은 판을 아프리카의 다른 선수들이 굳혀나갔다. 아무리 힘든 초-중반을 보내더라도 '테사기'로 불리는 '테디' 박진성만 건재하다면, 그동안 승리해온 팀이 T1이었다. 이 공식을 깨지 못한다면 초반 주도권 역시 그 의미를 잃게 된다. 그리고 아프리카는 뚝심 있게 자신들의 방식으로 밀고 나가 정면 돌파했다.

아프리카가 '테디' 공략을 위해 뚜렷하게 준비해온 카드의 핵심 역할은 '기인' 김기인이 맡았다. 1세트 패배로 아칼리의 LCK 스프링 성적은 3승 6패로 처참했다. '쵸비'를 비롯해 아칼리를 잘 다루기로 유명한 몇몇 프로게이머들이 활용했지만, 패치 후 아칼리는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기인'에게 마지막 3세트에서 다시 아칼리를 쥐여주면서 통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아칼리가 활약할 수 있는 가장 큰 조건은 두 가지였다. 넓은 지형과 수적으로 유리한 교전. 이전까지 '테디'는 수적으로 불리하더라도 끝까지 살아남아 딜을 넣어 한타를 승리로 이끌어왔다. 이 공식은 아프리카와 '기인'의 아칼리 앞에선 통하진 않았다. 다른 아프리카 팀원들이 CC기로 압박을 넣어주면 아칼리-리 신이 딜로 마무리하는 그림이 그대로 이어졌다. T1이 원하는 자리를 잡고 벌이는 정돈된 5:5 한타에서는 아칼리가 힘을 쓰지 못했지만, 상대 정글에서 '드레드-기인'의 암살 후 벌이는 한타는 아프리카의 승리의 연속이었다. 수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는 바론 버스트로 T1을 불러들여 사방에서 미스포츈을 노리는 그림을 이어갔다.


'플라이-미스틱-젤리' 역시 제 역할을 충분히 해줬다. T1이 먼저 교전을 걸 때는 '플라이' 송용준의 오른이 이를 받아넘기면서 한타에서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오른의 안정감과 진가가 '플라이'를 만났을 때 제대로 발휘되는 느낌이었다. 아군이 위험한 순간에는 '미스틱' 진성준의 칼리스타-바루스가 맹렬히 딜을 넣으며 반격했기에 아프리카가 후반에도 수적으로 앞서갈 수 있었다. 그렇게 점한 수적 우위는 서포터인 '젤리' 손호경이 노틸러스-세트의 이니시에이팅으로 잘 굳히면서 아프리카가 또 다른 승리 공식을 완성할 수 있었다.

통계와 기존 전력, 그리고 챔피언에 관한 평가만 본다면 이번 경기 역시 T1의 승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자신들이 만들어가고 싶은 경기 양상에 집중했다. OP 챔피언인 오른을 먼저 풀고 최근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한 사일러스로 대처하고, 승률이 저조한 아칼리를 뽑은 밴픽부터 그렇다. 그대신 아프리카는 자신들이 이 챔피언으로 경기에서 무엇을 해내야 하는지에 집중했다. T1 승리 공식에 관한 남다른 시각과 연구로 가져온 결과였다.

최근 상위권 경쟁에서 주춤했던 아프리카가 1R 최고의 승리로 마무리하게 됐다. 여전히 유리한 상황에서도 무리한 드래곤 한타를 벌이거나 운영 단계에서 인원 배분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번 T1전에서 자신들의 장점을 극대화해 이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렇게 자신감이 붙은 아프리카의 스프링 2R는 또 어떤 모습일지 역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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