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은퇴합니다" 6년을 달려온 '매드라이프' 홍민기의 시간여행 -2

인터뷰 | 박범, 남기백, 유희은 기자 | 댓글: 20개 |



'매드라이프' 그리고 홍민기 모두 성숙해졌던 CJ 엔투스 시절을 지나, 이제는 그의 마지막 팀으로 남을 골드코인 유나이티드 시절에 도착했다. 사실 모두가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매드라이프'가 LCK가 아닌 NA LCS로, 게다가 2부 리그 팀으로 이적했기 때문이었다.

"팀을 나오고 나서 다음 팀을 알아보려니 까마득하더라고요. 오직 믿을 건 팀을 나왔다는 소식을 전했던 기사와 제 SNS 밖에 없었죠. 그런 와중에 '로코도코' 최윤섭이 헤드코치로 있었던 골드코인 유나이티드에서 연락이 왔어요. 2부 리그 팀이지만 경험 많은 선수들이 많으니 바로 승격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곧장 합류했죠. 프랜차이즈에 대한 소식도 어렴풋이 들렸기에 희망과 꿈을 품고 갔던 기억이 나요."

"일단 모두가 말하는 것처럼 LCK보단 편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찌 보면 느슨하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한국보다 연습 일정이 촉박하지 않았어요. 선수들도 뭔가 자기 관리에 더 신경 쓴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죠. 항상 운동하러 가는 친구들도 있었으니까요. 그게 약간 필수과정 느낌이었어요. 몇 번 따라갔는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확실히 한국보다 편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북미 지역 2부 리그 팀으로 향한 '매드라이프' 홍민기. 국내 팬들에게도 충격적이었던 만큼 북미 지역 선수들에게도 색다른 소식이었을 것 같았다. 프로게이머를 하고 있는 선수 대부분이 '매드라이프'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터였다. 1세대 프로게이머이자 서포터 캐리의 가능성을 알렸던 최고의 선수. 그런 선수가 2부 리그 팀 숙소에 도착했을 때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다들 처음에는 신기하다는 반응이었어요. 그래도 2016년의 CJ 엔투스 때보다는 덜했어요. 아무래도 그때보단 경험이 풍부한 팀원들이 많았거든요. 오랫동안 프로게이머 생활을 해왔던 '산토린' 등 베테랑들이 팀원들로 있었죠. 커뮤니케이션이나 서로의 메타 이해도에 대한 걸 조율하는 과정은 있었어요. 다들 열심히 하자는 분위기를 만들었죠.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해외 팀으로 향한 한국 선수들은 이적의 이유에 대해 모두 비슷한 답변을 했다. LoL 월드 챔피언십 출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영어를 배울 수 있기 때문에. 팀의 좋은 성적과 자기계발에 대한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기회라는 말을 많이 했다. '매드라이프' 홍민기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욕도 넘쳤다. 적어도 처음에는 말이다.




"자기관리나 자기계발에 대한 욕심도 처음에는 많았죠. 북미를 택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영어였어요. 그곳에서 잘 됐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잘 안 풀리다 보니 모든 것이 다 모호해졌죠. 운동도 하다 말고, 영어도 배우다 말고...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진짜 잘 풀렸다면 제 계획대로 잘 됐을 것 같은데... 승격강등전에서 처음 떨어졌을 땐 운동할 시간에 그냥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연습에 더 매진하게 됐죠."

"두 번이나 실패를 경험했을 땐 소위 '현자 타임'이라는 걸 심하게 겪었어요. 심지어 섬머 스플릿 도중에는 이겨도 승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어요. 정말 힘들었죠. 지금 하는 지금 하는 노력들이 물거품에 가까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팀원 모두 몸값을 올려서 다른 팀으로 이적을 노려야 하는 상황까지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만약 승격을 했다면 상황이 엄청 달라졌을 것 같아요. 전 아마 지금도 미국에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새로운 도전을 위해 나섰던 해외 진출이었지만, '매드라이프' 홍민기에겐 아쉬움 가득한 기간이었다. 원하던 목표를 거의 이루지 못한 채 팀에서 나왔다. 그리고 은퇴를 선언한 지금, 골드코인 유나이티드는 '매드라이프'의 이력 마지막 줄을 채우는 팀이 됐다.

"골드코인 유나이티드가 해외 팀 경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됐네요. 자주 갔던 올스타전과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현지 프로게이머와 리그 경기에도 출전하고 그들의 문화도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기였죠. 재미있던 친구들도 많았아요. 성적만 나왔으면 완벽했을 팀이었다고 생각해서 더욱 아쉽네요. 지금도 그때 동료들과 가끔 연락을 주고받아요. 팀 오너랑 아직도 친하게 지내요. 생애 처음으로 뮤직비디오도 찍어봤고... 그게 저에게 가장 안 좋은 경험이네요(웃음). 파란만장했던 팀이었다고 정리할게요."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여기서 마무리됐다. 남은 촬영을 마친 뒤에 '매드라이프' 홍민기와 함께 뚝섬한강공원으로 향했다. 이렇게 분위기 좋은 곳이 있었다는 사실에 홍민기는 깜짝 놀라면서 밝게 웃었다. 잔잔하게 불어오는 강바람과 서쪽 지평선에 걸쳐 은은한 빛을 뿜어대는 태양, 옹기종기 모여 저마다의 자유시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평소 고양이를 좋아하는 홍민기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계속 주변을 맴돈 고양이 두 마리까지.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자주 밖으로 나와서 시간을 보내진 않았어요. 보통 예전 팀 동료였던 동생들 보러 일산에 가기도 했고, 중간 지점인 홍대입구역 쪽에서 과거부터 계속 함께 했던 동료들을 만난 정도? 이상하게 홍대입구역 쪽은 길을 외울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게임 안에서는 길을 정말 잘 외운거든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소위 '길치'예요. 미니맵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M 버튼을 눌러도 맵이 안 뜨니까(웃음)."

"확실히 실제 풍경이 게임 풍경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이렇게 강가의 전경이나 높은 건물들이 멀리서 보이는 광경은 게임 내에서만 많이 봤거든요. 그러면서 그래픽에 대한 감탄만 했어요. 현실에서 오랜만에 보니 마음의 위안도 얻는 느낌이고 기분이 좋네요."


LoL e스포츠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던 '매드라이프' 홍민기였지만,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의 은퇴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시작부터 함께 했던 동료들, 그를 보고 프로게이머의 꿈을 키웠고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 그 외 수많은 e스포츠 관계자들은 '매드라이프' 홍민기가 처음으로 은퇴 소식을 전하는 이 인터뷰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다들 엄청 바빠요. 섬머 스플릿 일정이 워낙 힘들잖아요. 그래서 저한테 관심도 없지 않을까요?(웃음) 그냥 흘러가는 물이구나, 갈 사람이 가는구나 정도로 생각할 것 같아요. 관심을 보여주신다면 저는 감사할 따름이죠."

"솔직히 기사가 나올 때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나름대로 걱정을 했는데 다른 분들이 아예 아는 거랑 모르는 건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기사가 나와봐야 체감이 될 것 같아요. 아마 지금보다 많이 달라질 것 같네요. 매체나 방송국 등에서 저를 대하는 태도도 조금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예상해요."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은퇴'라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이 교차하리라. 그러다가 문득 앞만 보고 달렸던 '매드라이프' 홍민기가 이토록 긴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질감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사실 사복을 입고 한강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 자체가 색다르기도 했다. 기자 대 프로게이머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미국에서 귀국하고 작년 9월부터 4개월 동안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있었어요.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팀을 알아보고 스프링 스플릿에 바로 복귀하려 했는데 아쉽게 무산됐고요. 휴식이 길어지다 보니 무뎌지는 것 같더라고요. 미국에서의 편안함, 쉬면서 얻는 편안함에 나태해졌다는 느낌이 내 몸 안에 잠식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아직 이렇게 긴 휴식이 어색해요. 뭔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랭크 게임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런 버릇들이 몇 년 간 계속됐으니 쉽게 없어지진 않더라고요. 쉰다는 것에 익숙해지기 힘드네요."

"제가 사실 모든 시간적 개념을 게임 횟수로 환산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한강에서 치킨을 시키면 도착할 때까지 하스스톤이 다섯 판이다, 뭐 이런 느낌? 앞으로 자주 나와야겠어요. 집에서 게임만 하다 보니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 같네요."


이제 '매드라이프'가 아닌, 홍민기가 경험할 미래로 시간을 앞당기기로 했다. 6년 동안 앞으로 달리기만 했던 홍민기가 '매드라이프'라는 이름에서 벗어나 조금 더 자유로워질 나날들. 그에 대한 홍민기의 생각과 결심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그와 함께 했던 동료들은 아직도 e스포츠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는 현역 프로게이머로, 다른 사람들은 해설위원이나 코치, 감독으로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행보를 보면서 은퇴를 결심한 홍민기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옆에서 보면서 제가 간접적으로나마 느껴요. 해설위원을 하게 되면 어떤 면에서 힘들지, 코치나 감독을 하면 어떤 부분이 어려울지. (손)대영이 형에게는 직접 많은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요. 제가 무언가를 e스포츠 쪽에서 딱히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사실 제 자신도 못 챙기는데 코치랍시고 팀원들의 멘탈을 챙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다. 저 같은 선수가 팀에 있다면 화가 너무 날 것 같거든요(웃음)."

"애초에 해설위원 쪽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저번에 했던 객원 해설도 경험을 쌓기 위한 선택이었고요. 북미 진출과 비슷한 성격이었다고 할까요? 아무래도 이벤트 매치가 아닌 LCK 공식 경기를 중계했던 거라 두려움 비슷한 것도 있었어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물어보기보다는 스스로 했던 해설 멘트들을 모니터링해봤어요. 정말 나중에 해설위원을 하게 된다면 많은 것을 고쳐야 할 것 같았어요. 그렇게 된다면 현우 형에게 가장 많이 물어볼 것 같아요."





그의 과거 동료들 중에는 e스포츠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개인 방송에 매진하는 사람들도 많다. 최근 개인 방송 시장이 거대해지면서 딱히 LoL이 아니더라도 프로게이머 은퇴 후에 전문적으로 개인 방송 활동을 하기도 한다. 홍민기 역시 실제로 개인 방송을 진행하고 있으니 그런 미래를 한 번쯤은 상상해봤을 것 같았다.

"스트리머로 활동하는 것도 생각 중이에요. 제가 CJ 엔투스 소속일 때는 개인 방송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은퇴하게 되면 코치를 하거나... 뭐 그렇게 막연하게 떠올리기만 했었죠. 프로게이머는 은퇴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면서 '클템' (이)현우 형이 부러웠어요. 처음에는 리 신 코스프레 같은 걸 보면서 많이 힘들어 보였어요. 지금도 가끔 방송에 나오는 걸 보면 가장의 무게가 느껴지긴 해요(웃음). 최근에는 전 프로게이머들이 개인방송 노하우도 알려주고, 새로운 모습도 알게 되면서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인터뷰가 슬슬 마무리되면서 이제 그는 '매드라이프'보다는 홍민기의 삶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조금 이상할 수는 있어도 왠지 홍민기가 그동안 고생한 '매드라이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았다. 홍민기 역시 잠시 고민하더니 이런 답변을 내놓았다.

"어떻게 보면 선수 생활은 끝이지만, 많은 사람이 저를 앞으로도 '매드라이프'로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저랑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홍민기 씨 맞으세요?'보다는 '매드라이프 선수 아니세요?'라고 할 가능성이 높잖아요? 그러니까 아직 죽지 않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문득 개명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성은 '매', 이름은 '드라이프'. 보통 이럴 때 수고했다는 말을 하는데 그건 정말 끝에 하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수고했다는 말을 스스로한테 해주고 싶지 않아요."

"조금 더 직접적으로 해주고 싶은 말을 할게요. 선수가 아닌 다른 걸 하게 되면 적응하기 어려울 텐데, 선수를 처음 할 때처럼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스스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잘 살렸으면 좋겠다. 부족한 부분은 알아서 잘 채울 거라고 믿어. 하던 대로 열심히 하자."


이제 정말 홍민기만 남게 되고 '매드라이프'라는 이름은 사람들의 추억 속에 존재하게 되는 시점이 왔다. 과거부터 미래까지 둘러봤던 시간여행이 끝났다. 프로게이머로 임하는 마지막 인터뷰의 마지막 멘트에 대해 묻자, 홍민기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심사숙고했다. 그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해 설명한 뒤에 앞으로도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줄 팬들에게 전하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많은 사람이 저를 기억해주는 게 '와드박는 기계'에서 '캐리할 수 있는 포지션'으로 서포터의 이미지를 바꿨다는 것이잖아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정말 만족스럽고 행복해요. 최근까지도 팬들이 저에게 '매드라이프 선수 보고 서포터 시작한 몇 년 차 팬입니다' 라든지, '덕분에 블리츠크랭크 시작했고 그 덕분에 욕 많이 먹어요' 같은 장난스러운 반응도 보내주세요(웃음). 그런 분들을 접하면 정말 뿌듯하고 만족스러워요. 아무래도 제가 LoL 초창기에 서포터의 이미지를 바꾼 첫 사람이니까 그렇게 기억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그리고 보통 경기가 끝난 뒤에 이 구간의 질문에는 감사한 분들에게 인사를 전하는 부분이었어요. 선수로 저를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런데 이후에도 저는 계속 살아있거든요. 홍민기가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 관심을 보여주셔도 저는 좋을 거 같아요. 앞으로도 개인 방송이나 객원 해설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모습을 비춰드릴 테니 변함없는 응원 부탁드려요. 또 다른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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