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박사님은 마른 장작이 좋다고 하셨지' 오명의 주인공 치코리타

게임뉴스 | 황성현 기자 | 댓글: 14개 |


▲ 이미지 출처: Pixiv ID Hokanon


만남

기다림. 사실 몬스터볼 안은 따뜻하지만 외로움 때문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등을 기댄 벽이 차갑게 느껴진다.

함께 신입 트레이너를 기다리던 리아코는 2주 전쯤, 브케인은 5일 전 새로운 주인을 찾아 모험을 떠났다. 어떤 모험이 펼쳐질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친구들이 떠난 후 홀로 남겨진다는 것이 이렇게 쓸쓸한 것인지 몰랐다. 복잡한 감정을 떨쳐낼 수 있을까. 혼잣말을 하던 중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온다.

'어머 귀여워!' 작은 고사리 손으로 날 감싸 안은 소녀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였다. 원래 까칠한 성격이다. 하지만 따스한 손길과 품에 안기다 보니 외로움이 눈 녹듯 사그라들었고 딱히 저항하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좋은 아이인 것 같다. 다른 말로는 순진한. 왜 리아코, 브케인은 없고 나만 남았는지, 세간에선 내가 어떻게 불리는지 아직 모르는 것 같다.

앞으로 펼쳐질 길이 가시밭길이든 살얼음판이든 함께하겠다 다짐했다. 그 때 내게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온 미소를 지켜주고 싶었으니까.

놀림

'타는 쓰레기 지나간다!' 소녀가 치코리타를 스타팅으로 선택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옆 동네에서 찾아온 트레이너들은 지약캐 3대장, 장작 등으로 나를 비유하며 놀려댔다. 그럴 때마다 소녀는 나를 위로하며 트레이너들에게 돌을 던져 쫓아냈다. 훌륭한 투구폼. 몸 쪽 꽉 찬 돌직구를 던져대는 소녀의 모습은 트레이너들을 겁주기 충분했고 그때부터 놀림을 당하는 일은 적어졌다.

나를 위해 싸워주는 사람이 있다니. 너무나도 행복했다. 하지만 화사하기만 했던 소녀의 미소는 놀림이 시작된 이후 조금씩 잦아들었다.

배틀

풀숲에서 나타난 구구는 너무도 강력하다. 분명 레벨은 내가 훨씬 높은데 비행 공격을 맞을 때마다 뇌가 흔들리는 느낌이다. 소녀는 풀숲에서 사냥을 하는 동안 계속 내게 빨간약을 발라줬고, 그때마다 고통에 무감각해졌다. 전투를 끝낼 때마다 상처 약을 꺼내야 했던 소녀의 표정은 조금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여차여차 레벨을 올리고 어느덧 도라지 시티에 도착했다. 관장의 이름은 비상이었다. 날카로운 눈을 가진 피죤이 등장했고, 바람을 일으키며 나를 위협했다. 피죤과 나는 몸통 박치기를 사용하며 싸웠다. 중간에 잎 날 가르기를 사용하긴 했지만 효과가 적었다. 어느 순간 피죤이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했다. 아뿔싸. 바람 일으키기가 날아올 것이다. 더 이상 지체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귀여운 울음소리로 피죤을 방심시키려 했다. 평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단련한 성대에선 칠판을 긁는 듯한 쇳소리가 났고 정신을 차려보니 포켓몬 센터였다.

최선을 다했다. 결국 쓰러지긴 했지만 남아있던 꼬렛이 피죤을 물리쳤다. 지금껏 풀숲에서 튀어나오는 포켓몬들에게 사용한 몸통 박치기들이 헛수고는 아니었다 생각하니 뿌듯하다. 소녀는 나를 일으키고 간호순과 대화를 나눴다. 얼핏 들려오는 소리에 따르면 다음 목표인 고동 체육관에서는 벌레, 비행 타입을 가진 스라크가 나온다고 한다. 소녀의 동공은 흔들렸고, 바깥에서 피죤투가 출현했다는 소식에 황급히 뛰쳐나갔다.

이별

오늘도 힘겹게 전투를 마쳤다. 소녀의 얼굴에선 미소를 찾아볼 수 없었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에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포켓몬 센터로 향했다. 알고 있었다. 단순히 치료를 받기 위한 여정이 아니었음을. 소녀는 나를 몬스터볼에 넣고 전송 컴퓨터 위에 올렸다. 눈가가 촉촉한 것이 보인다. 변명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최선을 다해 싸웠을 뿐.

박사님께 전송되며 지난날이 떠올랐다. 소녀의 화사한 미소가 어두운 벽에 오버랩된다. 다짐했다. 언젠가 다시 찾아줄 때, 그녀의 미소를 지키기 위해 다시 한 번 싸울 것을.

- 어느 치코리타의 회고록




귀여워서 골랐다! 치코리타와의 첫 만남




▲ 이미지 출처: Pixiv ID あずき大福

2세대 포켓몬이 등장하는 포켓몬스터 골드 버전. 설렘을 안고 시작한 게임 오프닝에선 창공을 가르는 루기아의 신비로운 실루엣이 보였고 어린 나를 환상과 동경에 빠지게 했다. 게임을 시작하면 공박사에게 치코리타, 브케인, 리아코 등 귀여운 포켓몬을 받을 수 있었다. 갑작스레 나타나 공박사의 몬스터볼을 강탈한 라이벌과 대치하고, 다음 마을로 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무(꼬지모)에 물을 줬던 기억과 새빨간 갸라도스, 아직도 잊히지 않는 밀탱크의 두려움 등 2세대 포켓몬은 어린 시절, 청소년기의 우리를 하나의 주제로 묶어주는 매개체 같은 존재였다.

골드 버전에서 처음에 공박사에게 받는 스타팅 포켓몬 중 가장 귀여웠던 치코리타를 선택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머지않아 등장하는 비행, 벌레 타입 체육관 관장과 역상성 타입의 공격, 맥을 못 추리고 쓰러지는 치코리타 진화체를 보며 실망을 감출 수 없었던 것도 기억난다.

스타팅 포켓몬임에도 불구하고 공격보다는 방어, 서포팅에 최적화된 능력치와 단일 타입이란 점 때문에 많은 유저들에게 좋지 않다는 평을 듣고 있는 치코리타. 지약캐 3대장, 타는 쓰레기 등 다양한 오명으로 불리던 과거를 청산하고 포켓몬GO에서는 그 입지를 다질 수 있을까?


치코리타는 어떤 포켓몬인가?


치코리타는 단일 풀 타입 포켓몬이다. 즉 독, 불, 벌레, 비행, 얼음에게 추가 대미지를 받는다. 원작을 플레이하며 초반에 자주 등장하는 구구를 비롯한 비행 포켓몬과 벌레 포켓몬에게 추가 대미지를 받아 육성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초반에 등장하는 관장들의 포켓몬 타입이 비행, 벌레인 것도 게임 난이도를 높이는 데 한몫한다.

물론 전기, 물, 풀, 땅 타입에는 받는 대미지가 줄어든다. 하지만 타입을 떠나서 치코리타 진화체의 능력치는 스타팅 포켓몬임에도 방어, 체력에 집중되어 있고 스킬 구성 역시 상태 이상 공격, 견제기가 많다. 때문에 스토리에서 강력한 공격 스킬로 적을 처치하고 레벨업을 하기 힘든 스타팅 포켓몬이었다.



▲ '치코리타를 쓸바엔 구구를 쓰겠다!' 이미지 출처: Google 이미지 검색


포켓몬GO에서의 성능은?




▲ 포켓몬GO에서의 치코리타 진화체


2세대 포켓몬이 업데이트된 이후, 귀여운 외모를 가진 치코리타에 대한 기대감은 높았다. 하지만 원작과 비슷하게 방어력이 높고 공격력, 체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종족값, 최대 CP가 낮은 점, 1세대 스타팅인 이상해꽃에 비해 스킬 DPS가 낮아 트레이너들에게 성능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특수 스킬로 자속성 보정을 받지 못하는 지진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포켓몬GO에서는 포켓몬이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이 한정되어 있다. 때문에 포켓몬스터 원작 게임처럼 서포팅, 상태 이상 스킬을 배우지 않아 포켓몬 간의 성능의 편중이 줄어든 편이다. 하지만 치코리타 진화체는 체육관 전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능력치 '체력'이 낮고 단일 풀타입이다. 때문에 체육관에 배치된 샤미드를 상대할 때를 제외하면 자주 사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원작의 오명은 포켓몬GO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 최대 CP 값이 낮고 단일 풀타입, 체력이 적어 자주 사용되진 않는다



귀여우면 됐지, 뭘 더 바랍니까?


긍정이든 부정이든 치코리타의 인지도는 높다. 귀여운 외모 때문인지 관련된 IP 상품도 자주 출시된다. 포켓몬GO 인벤 커뮤니티 내에서도 매일 치코리타협회의 출석 체크 글이 올라오고, 메가니움 관련 리뷰를 작성한 유저도 있다. 물론 부정적인 평가가 다수이다. 이토록 치코리타가 자주 언급되는 것은 귀여운 외모로 인한 보호본능, 함께 고난을 극복하고 역상성인 적을 상대하면서 쌓인 애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팁과 노하우 게시판에 올라온 '강력한레네기' 유저의 메가니움 리뷰




▲ 자유게시판에선 매일 치코리타협회 출석 체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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