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천재 이윤열', 그의 도전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기획기사 | 이상훈 기자 |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왔습니다."

아프리카 스타리그(이하 ASL) 시즌7 24강 개막전이 펼쳐졌던 지난 14일,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역대 최고의 테란으로 손꼽히는 '천재 테란' 이윤열이었다. 이윤열은 2009년 로스트사가 MSL 이후로 10년 만에 개인 리그 본선에 진출한 것이다.

많은 스타 팬들은 이윤열의 본선 진출을 반가워했고 강남 프릭업 스튜디오 현장에 모인 그의 팬들은 오랜만에 펼쳐질 방송 경기에 흥분한 분위기였다. 이윤열은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당찬 포부로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며 개막전 출사표를 내던졌다.

개막전의 상대는 아프리카에서 두각을 드러낸 '홍그리거' 임홍규. 현역 시절에는 SK텔레콤 T1의 2군 연습생이었지만, 아프리카 BJ로 전향한 후 온라인 경기에서 뛰어난 피지컬과 운영으로 경기를 압도해 팬들 사이에서 '저황(저그 황제)'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윤열은 이런 상대에게 주눅들지 않고 스스로 연구한 '패스트 핵' 전략을 사용해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 ASL 시즌7 개막전 1경기 vs 임홍규 - 이미지 출처: 아프리카TV ASL 공식방송



천재(天才), 살아있는 화석이 되다
퇴보해가는 올드 게이머들의 희망, 쟁쟁한 신인들 사이에서도 굳건해

이윤열은 2000년 iTV 경인방송 '체인지업! 고수를 이겨라'에서 최인규를 꺾고 당당히 프로게이머로 데뷔했다. 당시 17세의 어린 소년이었던 이윤열은 등장부터 팬과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특급 신인이었다.

2002년 MSL의 전신 KPGA 리그에서 '폭풍' 홍진호, '영웅' 박정석, '목동' 조용호 등 당대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내리 꺾고 3회 연속 우승을 거머쥔다. 이후 파나소닉 스타리그에서 조용호를 다시 만나 3:0으로 압도하며 우승을 거머쥐고 GhemTV 스타리그에서 '대마왕' 강도경을 꺾으며 게임 방송사 3사 그랜드 슬램을 달성해 자신의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그의 전성기 플레이 스타일은 앞마당을 빠르게 가져간 후 6팩토리를 빠르게 건설해 폭발적인 물량과 빠른 타이밍으로 진출하는 전략이었다. 이를 두고 '토네이도 테란', '로스트 템플에서 앞마당 먹은 이윤열은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이 격언처럼 돌 정도였다.

하지만 최전성기를 맞이한 이듬해인 2003년 스타우트 MSL에서 강민에게 0:3으로 패배한다. 결승 당시 0:2 패배였지만, 승자 어드밴티지로 강민이 1점을 얻고 시작하는 독특한 경기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이후 센게임 MSL 결승전에서 '괴물' 최연성과의 '머머전'(이윤열의 별명 '머신'과 최연성의 별명 '머슴'의 앞글자를 딴 경기)이라는 명경기를 만들었지만, 경기 스코어 2:3으로 아쉽게 패하고 최강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2005년 당신은 골프왕 MSL 결승전에서 절정의 기량을 뽐내던 '운영의 마술사' 박태민과 대회 최초로 열린 7전제 결승전에서 2:4로 패배하지만, 이후 아이옵스 스타리그 4강에서 박태민을 다시 만나 접전 끝에 설욕전을 승리로 장식한다. 결승전에 두 번째로 진출한 '투신' 박성준을 3:0으로 셧아웃시키며 우승을 차지했지만, 이후 꽤 오랜 기간 슬럼프를 가진다.




▲ 린킨파크가 우승자를 점쳤다는 전설의 아이옵스 스타리그 - 이미지 출처: OGN 공식 유튜브



이윤열이 최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2002년이지만, 스타리그 3회 우승을 달성해 최초로 골든 마우스를 수상한 영예를 얻은 2006년은 다른 의미로 전성기였다.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2에서 박정석 이후 임요환의 3회 우승을 저지하며 '가을의 전설'의 새로운 주인공이 된 '사신' 오영종을 결승전 상대로 맞이한다.

당시 이윤열의 우승을 깎아내리는 여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스타리그 역사상 최초로 가을에는 프로토스가 강해진다는 '가을의 전설'을 꺾어버린 테란이라는 것과 극적인 명승부를 만든 이윤열은 "이 우승의 영광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바칩니다"라는 소감을 밝혀 많은 팬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라 했던가. 이윤열은 2006년 이후 이렇다 할 개인 리그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08년 곰TV MSL 시즌4 8강에서는 자신의 팀 후배 '독사' 박성균을 상대로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클럽데이 온라인 MSL 8강에서는 당시 강력한 6명의 프로토스 '육룡' 중 한 명 윤용태에게 0:3 셧아웃을 당하기도 한다.

다음 해인 2009년에도 노장투혼을 발휘하며 로스트 사가 MSL 8강에 진출한다. 당시 테란전 성적이 훌륭했던 '올마이티' 허영무를 만나 1세트를 완벽한 운영으로 가져갔지만, 5세트 접전 끝에 아쉽게 패배했다.

특히, 허영무와의 경기는 예상과 달리 엄청난 선전을 하며 팬들은 '혹시 이윤열이 4강에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기도 했다. 물론 이 경기를 끝으로 이윤열의 마지막 불꽃이라고 부르며 '벼닉스'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임홍규도 당황한 패스트 핵, 퍼포먼스가 아닌 하나의 빌드로
기존의 일회성 깜짝 전략에서 전술적인 빌드로 최적화한 것이 다른 점

지금까지 스타크래프트로 진행한 방송 경기에서 고스트의 핵은 전술적인 것보다 '쇼맨십'에 가까웠다. 대표적으로 핵을 발사하는 데 성공한 방송 경기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 이성은 vs 박정욱, 곰TV MSL 시즌2 32강 임요환 vs 강민, 스타 챌린지 2008 한동욱 vs 장육 등이 있다. 주로 중후반 운영을 배제하고 빠르게 핵을 개발하거나 경기가 많이 기울었을 때, 쐐기를 박는 회심의 일격으로 보여주는 퍼포먼스 용도였다.

이윤열은 패스트 핵 빌드를 어떻게 준비했을까? 24강 대회를 앞둔 이윤열은 개막전 승리를 위해 빌드를 고민하던 중 저그전의 주요 체제인 바이오닉에서 소수 배틀크루저를 추가하는 임진묵의 플레이를 떠올렸다. 그러던 중 문득 '배틀크루저 생산에 사용할 가스 자원을 핵에 투자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번뜩였다고 개인 방송에서 밝혔다.

경기가 치러질 전장 '블록체인'의 지형은 앞마당 멀티를 집중적으로 방어해야 하는 형세였기에 수비하기 쉽다. 그러므로 드롭쉽을 활용한 견제 플레이를 의식하도록 유도하고 역발상으로 빠르게 핵 공격으로 앞마당을 무력화시키는 빌드를 준비한다. 후배 선수들과의 연습을 통해 빌드 최적화에 성공, 이영호에게까지 검증받으며 승리를 확신한다.

하지만 임홍규는 이윤열이 생각한 것 보다 쉽지 않았다. 경기 당일 임홍규는 9 드론-선 스포닝 풀 빌드를 선택해 안전하게 출발하고 빠르게 생산한 저글링 6기를 이윤열의 본진에 난입시킨다. 이윤열의 안정적인 수비로 임홍규는 큰 피해를 주지 못했지만, 이윤열의 테크 건물 팩토리와 앞마당 리파이너리 건설을 늦추는 데 성공한다. 또한, 임홍규는 6시 멀티 지역에 저글링을 보내 중립 어시밀레이터를 파괴해 섬 지형으로 미리 만들고 가스를 확보해 하이브 변태 타이밍을 빠르게 가져갈 수 있었다.




▲ 안전한 초반 빌드 9드론을 선택하는 임홍규 - 이미지 출처: 아프리카TV ASL 공식방송



▲ 본진에 난입한 저글링때문에 이윤열의 빌드 타이밍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 이미지 출처: 아프리카TV ASL 공식방송



▲ 임홍규는 6시 중립 멀티 바깥쪽 입구의 어시밀레이터를 파괴해 섬 지역으로 만든다
- 이미지 출처: 아프리카TV ASL 공식방송



▲ 오랜만에 보는 컨버트 옵스… 관중들은 놀란 듯 술렁이기 시작한다
- 이미지 출처: 아프리카TV ASL 공식방송


이윤열은 앞마당 가스를 늦게 채취한 탓에 1차 핵 발사를 시도할 때 고스트의 사거리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지 않아 배치한 병력보다 앞서나가 핵을 조준했다. 임홍규는 이를 간파하고 고스트를 처치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또한, 이윤열은 무리하게 고스트에게 디펜시브 매트릭스를 시전하기 위해 머리 위에 떠 있던 사이언스 베슬을 움직여 임홍규가 고스트만 솎아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한 차례 위기를 넘긴 임홍규는 안정적으로 울트라리스크를 확보하고 전용 방어력 업그레이드까지 완성했다. 하지만 2차 핵 발사를 시도할 때, 임홍규는 핵 공격이 감지됐다는 알림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앞마당에 핵미사일이 보일 때, 기지를 발휘해 앞마당에 변태 중인 울트라리스크를 취소해 가스 자원을 보존했다. 이윽고 이윤열의 핵미사일이 임홍규의 앞마당 성큰 콜로니 방어 라인을 파괴하는 데 성공한다.




▲ 1차 핵 공격, 하지만 고스트를 가리지 못해 성공하지 못한다
- 이미지 출처: 아프리카TV ASL 공식방송



▲ 2차 핵 공격으로 앞마당의 성큰 콜로니 라인을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이윤열
- 이미지 출처: 아프리카TV ASL 공식방송



이어서 이윤열은 사이언스 베슬의 이레디에잇을 활용해 드론의 자원 채취를 방해한다. 하지만 임홍규는 빠르게 스커지를 생산해 베슬을 요격하고 6시와 9시 가스 멀티를 기반으로 울트라리스크를 빠르게 생산해 병력을 센터로 이동시킨다. 추가로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울트라리스크의 방어력은 이제 4단계. 지우개로 이미 마나를 소모한 사이언스 베슬은 센터로 진출한 울트라리스크의 체력을 깎을 수 없었다.

본진과 앞마당의 자원이 고갈되기 전, 이윤열은 11시 지역에 멀티를 추가한다. 임홍규는 빠르게 가스 멀티를 확보한 덕분에 이윤열보다 업그레이드가 한 단계씩 앞서나가고 있다. 방어력 4단계 업그레이드가 완성된 임홍규의 울트라리스크는 이윤열의 바이오닉 병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미리 섬 지역으로 만든 6시와 9시 가스 멀티까지 추가로 확보한 임홍규는 상대적으로 매우 부유한 상황이라 울트라리스크가 계속해서 추가되고 있었다. 이윤열은 11시 멀티를 뒤늦게 따라가지만, 마음이 조급해진다. 센터 교전에서 승리를 거둔 임홍규는 이윤열의 11시 멀티 지역을 저지하고 이윤열의 앞마당까지 몰아넣는 데 성공한다. 자원이 고갈돼 수세에 몰린 이윤열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gg를 선언한다.




▲ 이레디에잇을 활용한 지우개로 자원채취를 방해하는 이윤열
- 이미지 출처: 아프리카TV ASL 공식방송



▲ 자원이 마르기 전에 11시 멀티 두 곳을 동시에 가져가는 이윤열
- 이미지 출처: 아프리카TV ASL 공식방송



▲ 임홍규의 울트라리스크는 벌써 4단계 방어력 업그레이드가 완성된다
- 이미지 출처: 아프리카TV ASL 공식방송



▲ 전술은 훌륭했지만, 빠른 방업을 앞세워 이윤열의 gg를 받아내는 임홍규
- 이미지 출처: 아프리카TV ASL 공식방송

▲ ASL 24강 A조 1경기 - 영상 출처: 임홍규 공식 유튜브 '액션홍구'



30대 프로게이머, 그리고 올드는 과연 안될까?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임홍규와의 경기는 비록 패배했지만, 패자조에서 유영진을 만나 완벽한 운영을 선보이며 승리를 거둔다. 이후 최종전에서 이경민의 연이은 리콜로 본진을 장악당해 아쉽게 탈락하며 이윤열의 ASL 시즌7 도전기는 막을 내렸지만, 많은 팬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좋은 경기를 선보이고 박수받으며 퇴장했다.

오래전, '황제' 임요환은 공군복무를 마치며 '30대가 돼서도 프로게이머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지금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단이 없어 선수 생활을 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도 개인 방송을 즐기며 ASL과 KSL에 참가하는 전 프로출신 선수가 많다. 선수 시절 20대 초반이었던 그들은 어느덧 세월이 흘러 30대를 맞이했고, 스타를 보며 자라던 10대 팬들은 어느덧 20~30대 사회인이 되어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찾아오는 팬들도 있다.

e스포츠 선수의 수명이 짧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선수가 경기를 참가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 그리고 응원해주는 팬과 대회만 있다면 선수들은 언제고 대회에 참가하지 않을까. 이윤열은 이번 경기를 통해 스스로 대답했다. 천재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현재 진행 중이라고.




▲ 현역 시절 사용한 유니폼에 사인을 받았던 팬이 다시 경기장을 찾아와 응원하고 있다
- 이미지 출처: 아프리카TV ASL 공식방송



▲ "올드는 진짜 안될까?" 한 팬의 치어풀이 화면에 잡힐 때,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 이미지 출처: 아프리카TV ASL 공식방송

▲ 경기 후 개인 방송에서 경기 내용을 설명하는 이윤열 - 영상 출처: 이윤열 공식 유튜브 'NaDa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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