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연기] 잘 차려진 비빔밥 같은 로그라이크, '미스트오버'

리뷰 | 윤서호 기자 | 댓글: 16개 |


⊙개발사: 크래프톤 ⊙장르: RPG ⊙플랫폼: PC, 닌텐도 스위치 ⊙발매일: 2019년 연내 출시 예정

다크 판타지의 느낌, 그러면서도 덕스러운 감성을 자극하는 캐릭터들. 어떻게 보면 모순된 요소지만, 흔히 '덕후'라고 불리는 유형의 유저라면 아마 이런 조합은 새삼 낯설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이런 게임 안 나오려나? 하고 기다릴 가능성이 꽤 있죠. 로그라이크의 대명사가 된 모 게임, 혹은 서양식 샌드박스 RPG에서 흔히 말하는 덕후스러운 스킨이나 모드 적용해서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물론 "망가는 벗어버려!"라는 일갈을 하는 유저도 있겠지만요.

낯뜨거운 고백이긴 한데, 어쨌든 개인적으로 전자에 속하는 유형이다보니 '미스트오버'가 공개되자마자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뭐 과장되게 말한다면 "어머 이건 꼭 해야 해"라고 해야 할까요? 꿈도 희망도 없는 스토리에 한 번 죽으면 끝에다가 무작위성 가득한 로그라이크 요소의 조합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는 기존에 나왔던 여러 작품을 통해서 이미 검증된 바 있으니까요.

크래프톤에서 개발 중인 '미스트오버'는 이러한 로그라이크 스타일에 다소 밝고 때로는 서브컬쳐 느낌이 나는 캐릭터 디자인을 가미한 RPG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온전히 서브컬쳐 스타일이 아니라, 다소 굵직하고 거친 외곽선과 어둡게 느껴지는 라이팅을 가미해서 다크한 던전크롤러의 분위기에 녹아들게끔 했죠.




사실 이런 게임을 기다려왔다고는 하지만, 시연 전에는 내심 우려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캐릭터 게임, 그리고 로그라이크는 어떻게 보면 서로 상성이 정말 안 맞거든요. 캐릭터 게임은 계속 품고 가고 싶은 귀여운 캐릭터, 매력 있는 캐릭터를 무기로 삼는데 로그라이크는 한 번 죽으면 그걸로 끝, 영원히 이별해야 하니 말이죠. 뭐 "에이스는 죽었어"라는 식으로 쿨하게 받아들일 수야 있겠다만, 당장 여행 같이 하던 멤버들이 픽픽 죽어나가면 살짝 느낌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캐릭터가 스트레스 쌓인다고 갑자기 폭언을 쏟아붓기 시작하면 멘탈이 나가는 건 일도 아니죠.

일단 '미스트오버'의 근간을 말하자면, 로그라이크가 맞습니다. 그 기본기는 확실히 지키고 있습니다. 무작위성, 랜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죽음 등 말이죠. 처음에는 로닌, 위치, 쉐도우 블레이드, 시스터, 팔라딘이 고정으로 나오긴 하는데, 스킬 구성이나 캐릭터의 징크스 같은 걸 면밀히 살펴보면 회차마다 다 다르게 나옵니다. 실제로 시연을 PC 버전 한 번, 닌텐도 스위치 버전 한 번 이렇게 두 번 했는데 동료들의 스킬 구성이 그때마다 조금씩 달랐습니다. 던전의 시작점이나 탈출구의 위치, 오브젝트 위치, 몹의 분포도도 달라졌고요.


다만 플레이 자체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난이도가 어렵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간 이곳저곳에서 접하면서 익숙해진 게임들의 요소가 스며들어있기 때문에 적응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말이었죠. 다소 다르긴 하지만 캐릭터의 진형 배치 문제나 스킬 활용, 공복 및 빛 관리라는 개념은 '미스트오버'가 새롭게 내세우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다만 스트레스 게이지가 꽉 차서 갑자기 이기적으로 돌변한다던가, "너 왜 그래?"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쓸데없는 소리만 주저리주저리하고 턴을 넘기는 일은 없다는 것만으로도 좀 더 라이트하고 쾌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 어두워지면 불 밝히면서 가고, 배고프면 음식먹으면서 가는 건 기본이죠



▲ 순순히 죽어주진 않지만, 그런다고 악다구니를 쓰고 그러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쉬운 게임이냐, 그건 아니었습니다. 스트레스는 없는데 스킬을 쓸 때 MP 등 코스트를 소모하고, 이게 전투가 끝난 뒤에도 마땅히 회복을 할 수가 없다보니 다른 방면에서 접근을 해야 했습니다. 관리를 잘못하면 나중에는 평타만 치기 일쑤였거든요. 처음엔 스킬을 못 쓰다가 전투하면서 요력을 충전,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로닌 같은 특수 클래스도 있다보니 조합에 따라서 운용도 상당히 달라지는 편이었습니다. 방어를 하면 또 MP가 좀 더 빨리 회복되기 때문에 나중을 위해 공격과 방어를 적절히 턴 배분하는 전략성도 요구됐고요.



▲ 생각없이 전투하면 MP가 바닥나서 평타만 계속 치는 양상이 됩니다

또 초반이었는데도 적들이 아군의 위치를 바꾸는 스킬을 생각보다 많이 사용했습니다. 물론 다이스갓이 작용하고 있는 터라 안 움직일 때도 있긴 합니다. 그래도 시행이 많고 확률은 결국 그 수치에 맞게 수렴하니 이래저래 아군의 위치를 변경해야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았죠. 그래서 전투가 다른 의미에서 좀 까다로웠습니다.



▲ 극초반인데도 적들이 위치 전환을 강제하는 스킬을 자주 쓰는 편입니다

필드를 보면 던전크롤러 방식에 턴제 RPG를 도입했는데, 이게 상당히 시너지가 잘 나는 편이었습니다. 실시간으로 모든 행동이 진행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턴으로 계산하는 식이라서 필드에서 동선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서 몬스터에게 먼저 선공을 가할 수도, 혹은 기습을 당할 수도 있었죠. 몹들도 멀뚱멀뚱히 있는 게 아니라 일부 개체들은 주변의 몹들을 호출하는 식이라서 자칫 잘못하면 던전크롤러 게임에서 포위당하듯이 몹들에게 둘러싸이는 구도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좀 더 효율적으로 던전을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필드 턴에 대한 이해, 그리고 오브젝트 활용 등을 요구했죠.

게다가 던전에서 일정 시간 있으면 죽었던 몹들이 다시 부활해서 활보하는데, 부활한 몹들은 경험치를 안 주는 애물단지들입니다. 따라서 몹들을 죽인 후에 최대한 빨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동선을 짤 필요가 있었죠. 티저 화면으로 보았을 때 던전의 크기는 상당히 작아보였지만, 실제로 조작해보면 크기는 작지는 않아서 탐사 목표를 달성할 정도로 돌아다니려면 꽤나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에 몹이 부활하는 일은 생각보다 잦았습니다.



▲ 이동뿐만 아니라 필드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행동이 다 턴제를 기반으로 합니다

캐릭터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캐릭터들은 어느 정도 덕심을 자극하는 디자인에 설정이나 구성도 그 판타지를 자극하는 요소들은 충분하긴 했습니다. 공작가의 어린 후계자에 미녀 보좌관 같은 설정이나, 발랄하고 활기찬 소녀 같은 선배 조사단원, 귀여운 잡화점원 등 캐릭터를 보면 그런 느낌이 물씬 났거든요. 그렇다고 캐릭터의 비중이 높은 건 아니고, "어 그냥 괜찮네?"라는 수준으로 넘어갈 정도로만 비중을 둔 편입니다.










실제로 모험에 편성하는 캐릭터들도 디자인이 귀엽고 동글동글한 느낌이지만, 무언가 깊이 있는 에피소드가 오간다거나 하는 건 아니라서 그 정도 느낌에만 그쳤고요. 가끔씩 캐릭터가 대사를 하기는 하지만 기합 같은 느낌에 그칠 정도라서 특별히 몰입을 할 정도의 그런 느낌은 아녔습니다. 그냥 가볍게 캐릭터를 입혔다, 이런 수준이었습니다. 다만 일본 쪽을 다분히 의식한 듯 일본어 더빙이 되어있었는데, 이게 캐릭터 디자인과 결합하면서 일부에서는 "좀 부담된다"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긴 했습니다.






▲ 특히 시스터 클래스가 상당히 항마력을 요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처음에 '미스트오버'를 봤을 때 느낌을 요리로 설명하자면 오므라이스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딱 보면 볶음밥인데 여기에 계란만 얹고 케찹 뿌려서 다른 요리라고 말하는 그런 거 말이죠. 그렇지만 시연을 해본 뒤에는 비빔밥에 비유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존에 있던 이 요소 저 요소를 다 고루고루 섞고, '미스트오버'식으로 비벼낸 거죠. 여기에 살짝 감칠맛을 더하기 위한 양념, 즉 캐릭터 디자인이나 그래픽, 스토리 요소, 거기에 '미스트오버'에서 변주한 여러 요소들이 가해지면서 재료를 단순히 섞기만 한 것과는 다른 맛을 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국산 콘솔 게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콘솔에 맞게 잘 구현한 편입니다. 오히려 패드로 조작할 때 훨씬 편할 정도로 UI, UX를 그쪽에 맞춰서 구현한 감이 들었습니다. 물론 마우스와 키보드도 대응하는 만큼, 이 문제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선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 UI, UX는 컨트롤러, 패드에 최적화된 느낌입니다

간담회장에서는 미스트오버만의 특징으로는 '인류 멸망 시계'라던가 선택, 그리고 진엔딩이나 게임 오버 같은 요소도 언급하긴 했는데, 그걸 느끼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은 말씀드리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사실 어떤 게임이건 반전이나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단계에 돌입하려면 일단 각 잡고 달려봐야 하는데, 간담회장은 그런 자리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간담회 빌드 자체가 QA 테스트를 거치지 않은 빌드라 다소 불안정하기도 했죠.



시연해본 입장에서는 아마 출시하고 난 뒤에 그게 무슨 소리인지 직접 확인하려고 구매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미 기존에 있던 요소들을 섞고, 양념을 가미하고, 또 변주해낸 것만으로도 꽤 맛나게 게임을 구현했기 때문이죠. 과연 이걸 어떻게 완성해나갔는지, 확인해볼 만한 가치는 있었습니다. 아, 한 가지 주의를 드리자면 서브컬쳐에 극단적으로 내성이 없는 분들은 적어도 언젠가 우리말 더빙이 업데이트될 때까지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개인차가 있긴 하고 저는 딱히 못 느끼겠는데, 어쨌든 현장에선 그런 반응이 있긴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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