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다 아는 얼굴들이로구만

칼럼 | 양영석 기자 | 댓글: 19개 |



최근 532일 만에 진행된 닌텐도 다이렉트와 블리즈컨라인을 보면서, 따지고 보면 그 이전부터 출시되는 게임들을 마주하면서 느낀 부분입니다. 뭔가…'반갑다, 오~ 재밌겠네'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한 방'이 없었다고 할까요. 블리즈컨이야 행사의 성격 자체가 좀 다르니 그렇다 치더라도, '새로운 IP'로 제작된 게임보다는 기존 IP가 부활한다는 경향이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벌써 블리자드가 17년만에 선보인 신규 IP인 '오버워치'도, 공개된지 7년이 지났습니다.

살짝 시간을 거슬러서 돌이켜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정말 '새로운 IP'를 보면서, 어떤 게임일지 상상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 못 하는 그런 게임은 대체 언제 있었을까 하고요. 지금도 잘나가고 흥한 좋은 게임도 있었지만, 생각보다는 저조한 실적을 올리면서 다소 잊힌 게임들도 있더라고요. 근데, '많았다'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근시일내로 기대했던 새로운 IP는 '사이버펑크 2077', 아마존의 '뉴월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와 동시에 '리메이크'와 '리마스터'가 정말, 정말 많이 보이는 현실도 느껴졌습니다. 물론 저도 이러한 '과거의 영광'을 현 세대에서 더 나은 경험으로 제공하는 부분은 좋아합니다. 한때 메피스토/바알을 수도 없이 잡으며 밤을 지새운 입장에서 디아블로2 레저렉션은 반가운 게임이었고 현 세대로 리메이크된 고전 게임들을 즐겁게 플레이한 경험도 적지 않으니까요.



▲ 파판7의 리메이크, 기분은 좋지만, 분명히 '아는 얼굴'이긴하죠.

세월이 지나며 고도화되고, 더 나은 그래픽으로 만나는 과거의 영광, 리마스터와 리메이크는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팬들도 리메이크, 리마스터를 원하는 게임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이 과거의 '재미'를 기억하고 있으니, 상대적으로는 리스크가 낮고 높은 성공률을 점쳐볼 수 있겠죠. 어떻게 보면 상대적인 안전 자산입니다.

게임 개발사 입장에서, 신생 개발사가 아닌 중견-대형 개발사가 '새로운 IP'에 도전하는 일은 어려운 과제입니다. 이미 잘나가고 있는 프랜차이즈, 대표 타이틀이 있으니까요. 이러한 대표 시리즈를 잘 내놓고 케어를 해주는 게 위험부담이 적죠. 그렇게라도 '새로운 신작'들이 계속 잘 나와준다면 팬들도 만족합니다.

그렇지만 IP는 하나의 얼굴이고, 회사의 스펙트럼이자 DNA라고 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장기적으로 흥행할 목표를 두고, 꾸준히 성장시켜야 할 '미래의 성장 동력'이라고 할 수 있죠. IP가 많을수록 시도해볼 수 있는 기반도 많아지게 되는 셈입니다. 미래의 먹거리를 위한 투자이자, 도전이라고 할 수 있죠.


2014년에 출시된 블리자드의 신작, '오버워치'의 예시를 들어보죠. 오버워치는 블리자드가 무려 17년 만에 도전한 신규 IP입니다. 거대한 게임 개발사 중 하나인 블리자드도, 새로움에 도전하기까지 17년이란 세월이 걸린 셈입니다. 오버워치도 깜짝 공개에 가깝게 공개하는 동시에 새로운 정보를 쏟아내었죠. 정말, 생각지도 못한 한 방이었습니다.

성공적으로 안착한 오버워치를 통해 블리자드는 새로운 시도도 많이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프랜차이즈로 대표되는 블리자드 라인업에 '오버워치'라는 새로운 페이스가 추가되었고,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이제는 블리자드를 대표하는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블리자드는 이후로 프랜차이즈를 도입한 e스포츠 리그는 물론 'FPS'라는 장르의 개발력도 갖추게 됐고, 단편 애니메이션 등 엔터테인먼트에도 도전했죠. 성공적인 IP의 안착으로, 블리자드는 또 하나의 성장 동력과 사업 분야 및 경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규 IP는 게임 개발사들에게 어려운 도전 과제이지만, '미래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필수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 하나의 IP만 고집할 경우, 해당 IP의 인기가 식게 되는 순간 위기에 빠지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 될 테니까요. 대표적으로 '앵그리버드'를 개발한 로비오는, 앵그리버드의 인기가 한 풀 꺾인 현재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 새로운 IP, 호라이즌 제로 던으로 게릴라 게임즈의 평가도 180도 바뀌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게임의 흥행 여부는 출시되기 전까지는 모릅니다. 출시 전에 많은 호응을 받아도 결과가 썩 좋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회사에 타격이 되는 애물단지가 될 확률도 있습니다. 신작이 쏟아지던 과거와 달리 게이머층과 게임 유통 및 제작 환경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쉽게 '게임사들이 도전을 하지 않는다'라고만 볼 문제도 아니죠. 그만큼 게임 시장이 시간이 지나면서 완숙되고 생태계가 어느정도 잡혔다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지만 새로운 IP의 개발은 게임사의 입장에서도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과제인데다가 성공의 결실도 매우 달콤합니다. 게임사들도 모르는 일이 아니지만, 새로운 IP 개발/확보와 운영은 리스크가 큰 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하므로 새로운 IP는 사실상 자리를 잘 잡은 게임사에서는 보기 힘들긴 하죠.

물론 팬들의 요청도 있었겠지만, 새로운 도전보다는 비교적 안전 자산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게임사들의 결정도 이해할 순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과거의 성공작을 이식하는 리마스터, 리메이크에 대한 시도가 많았고, 그래서 "다 아는 얼굴들이구먼"하는 감상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몇 년간은 그런 시도가 더더욱 많았으니까요.



▲ '뉴월드'는 "아마존이 MMORPG?"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한 방은 있었습니다.

리스크가 있기에, 새로운 IP의 성공은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이미 성공하여 기존 시리즈를 잘 이어온 작품보다도 더 높은 평가를 받곤 하죠. 대표타이틀 '킬존'을 갖고 있었고 한국에서도 다소 인지도가 떨어졌던 게릴라 게임즈는, '호라이즌 제로 던'이라는 걸출한 성공작을 내놓으면서 인식과 인지도도 달라졌습니다. 아마 게릴라 게임즈를 모르는 게이머도, 호라이즌 제로 던의 개발사라고 소개하는 순간 와닿는 느낌이 과거와는 다르겠죠.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도 있듯이, 구작을 리메이크/리마스터해서 새로 내놓는 게임들이 싫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게이머로서는 새로운 재미, 신선한 경험을 원하는 만큼, 이제는 '새로운 얼굴'을 좀 더 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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