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분명히 한 번쯤 들어봤을 그 목소리, '제니퍼 헤일'

인터뷰 | 허재민 기자 | 댓글: 9개 |
게이머라면 분명 한 번쯤 들어봤을 목소리의 주인공, 제니퍼 헤일.

과장한 말이 아니다. 분명 당신은 한 번쯤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오버워치의 신규 영웅 애쉬, 매스 이펙트 의 커맨더 셰퍼드, 디아블로3의 레아, 헤일로의 사라 팔머, 메탈 기어 솔리드의 나오미 헌터,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의 로살린드 루테스, 그리고 그 외에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호라이즌 제로 던, 갓 오브 워, 발더스 게이트, 더 롱 다크, 라스트 오브 어스, 포아너... 다양한 작품의 크고 작은 역할들을 맡아온 만큼, 게이머라면 분명 들어봤을 것이다.

게이머가 아니라도 들어봤을 수도 있다. 애니메이션 '신데렐라' 목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니까. 제니퍼 헤일은 1950년 첫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이후 작품들의 신데렐라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 개봉한 주먹왕 랄프2에서도 등장한다.

한편, 제니퍼 헤일과 엔터테인먼트 네트워킹 서비스, The Halp Network는 작년 11월 새로운 서비스를 공개하기도 했다. S.W.A.A.T(Specialized Workshops And Actor Tactics)이라는 조금은 특이한 이름을 가진 이번 프로젝트는 프로 성우들이 직접 게임 스크립트의 테이블리딩을 진행하고 스크립트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 무료 서비스다. 상업적인 목적보다는 개발자와 배우, 작가까지 모두가 함께 긴밀히 작업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이번 신규 프로젝트와 그녀의 커리어에 대하여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흔쾌히 좋다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끝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전한 제니퍼 헤일. 그녀에 대하여 짧게나마 몇 가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제니퍼 헤일(Jennifer Hale)

"중요한 것은 캐릭터지, 내가 아니다"
'카르멘 샌디에고를 찾아라'부터 '오버워치' 애쉬까지, 성우 '제니퍼 헤일'

제니퍼 헤일이 게임 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것은 무려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수로 시작해 카툰 애니메이션과 게임 성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녀가 처음 게임에서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카툰 애니메이션, '카르멘 샌디에고를 찾아라(Where on Earth is Carmen Sandiego)' 부터였다. 애니메이션의 주요 인물로 발탁되어 연기했고, 이어 게임 타이틀이 나오자 자연스럽게 함께 맡게 되었다고.

"제가 맡았던 첫 게임 타이틀은 '카르멘 샌디에고를 찾아라'였어요. 원작 카툰 시리즈의 아이비 역할을 맡았었는데, 자연스럽게 게임도 작업하게 됐지요."

게임 성우로서도 많이 알려졌지만, 그녀가 맡은 애니메이션 시리즈도 정말 다양하다. '파워 퍼프걸'과 '신데렐라' 시리즈를 비롯해 '릭앤 모티', '스타워즈', '저스티스 리그', '인어공주' 등 주요 인물부터 단역까지 다양한 작품에서 등장한다. 뜻밖에 그전까지 애니메이션을 잘 보는 편은 아니었다는 그녀의 말에 그녀 스스로도 게이머인지 물어보았다.

"오, 전 정말 끔찍한 게이머예요(웃음). 정말 게임을 못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플레이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기술의 발전을 누리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자유로운 시간에는 주로 밖으로 나가서 보내는 편이에요. 하지만 제가 작업한 부분을 듣고 있으면 다시 플레이하고 싶어지죠!"

유명한 성우인 만큼 다양한 역할에 대한 제안이 들어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녀는 스스로도 수많은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고 이야기했다. 이전에 공개된 제니퍼 헤일이 성우가 어떻게 작업하게 되냐는 질문에 대한 영상에서는 무료로 일하는 경우도 많다고.

"오디션을 보는 게 일반적이에요. 제게 직접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요. 한주에도 여러 번 다양한 프로젝트에 대한 오디션을 보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좋은 스크립트와 훌륭한 팀을 만나는 것을 좋아해요. 모든 것은 좋은 스크립트를 쓰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지요. "

▲게임 성우로서 일한다는 것은 어떨까? 죽는 소리를 내는 법 부분은 정말 흥미롭다. (영상 출처: CBS)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녀는 좋은 스크립트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카르멘 샌디에고를 찾아라'로 시작해 '메탈 기어 솔리드', '디아블로3', '매스 이펙트', 그리고 최근 '오버워치'까지 그녀가 작품 선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좋은 스크립트다. 이후 이야기할 프로젝트 S.W.A.A.T 또한 게임 개발자들이 더 좋은 게임 스크립트를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이기도 하고.

한편 배우로서 그녀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캐릭터' 그 자체다. 이전에 해외매체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신데렐라는 신데렐라다. 나는 그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가끔은 성우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아이콘이 되지 않나, 싶어서 그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물어봤다.

"말 그대로예요. 중요한 것은 캐릭터지, 내가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배우가 드러나는지는 개인적인 선택일 수 있고, 상황에 따라 달라져요. 이 부분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요."



▲"중요한 것은 캐릭터지, 내가 아니다."

커맨더 셰퍼드부터 디즈니 프린세스까지, 전혀 다른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제니퍼 헤일. 그녀가 맡았던 역할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자기 자신과 가장 비슷하다고 느꼈던 캐릭터가 있었을까?

"하나를 꼽기가 어려워요. 작업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이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해볼 수 있다는 점이었기 때문이죠. 비슷한 캐릭터는... 이부분도 하나를 짚어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제가 작업한 캐릭터 모두가 서로 조금 다른 부분일 수는 있지만, 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최근 오버워치의 신규 영웅 '애쉬'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올해 1월 진행했던 D.Va의 북미 성우, 샬렛 정과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인터뷰에서 "블리자드는 게임의 모든 것이 진정성을 가지고 있도록 신경을 많이 쓴다"고 언급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 제니퍼 헤일의 '애쉬'는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연기했는지 궁금했다.

"진정성과 깊이 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언제나 최우선으로 두는 가치에요. 블리자드는 정말 훌륭한 팀을 갖추고 있고, 플레이하고 싶을 만한 멋진 캐릭터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진정성과 깊이 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최우선으로 두는 가치"


무료로 서비스하는 이유는? S.W.A.A.T
개발진이 함께하는 커뮤니티를 위하여

이제 S.W.A.A.T에 대하여 이야기해 볼까. 앞서 언급한 대로 S.W.A.A.T.은 게임 스크립트에 대한 전문 성우들의 테이블리딩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전부 무료로 진행되며, 스크립트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여도 신청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글로 된 스크립트를 직접 읽어보는 단계인 테이블리딩은 실제로 사람이 말할 때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 확인하는 단계다. 직접 캐스팅된 배우들이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캐스팅 전 제작과정에서도 이루어지는 단계기도 하다. 전문 성우들로 진행하면 물론 좋겠지만, 사람이 모이면 돈이 나가는 법. 예산이 부족한 경우 개발자들이 자체적으로 읽어보는 정도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직접 대본이 어떻게 읽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개발자로 하여금 더 나은 스크립트를 만들 수 있도록 해줘요. 성별을 떠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고, 때때로 알지 못했던 문제점들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죠. 더욱 나아가 테이블리딩을 통해 처음에는 생각해내지 못했던 부분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기도 합니다."




S.W.A.A.T.은 게임 개발자들에게 테이블리딩 및 스크립트 작업에 대해 도움을 주고자 만들어진 워크샵이라고 할 수 있다.

"S.W.A.A.T은 개발자들과 좀 더 밀접하게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에요. 워크샵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개발자들이 게임의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을 구체화하고, 성우들이 게임에 가져다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제니퍼 헤일은 The Halp Network 덕분에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게임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이 필요한 사람들과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네트워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The Halp Network는 작년 7월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S.W.A.A.T은 The Halp Network의 칩 비먼(Chip Beaman)대표와 모든 사람 덕분에 현실화될 수 있었던 꿈이에요. 우리는 S.W.A.A.T을 통해 강력하고 창의적인 커뮤니티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게임 개발 창의력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리고, 그 과정을 통해 개발자, 작가, 성우, 그리고 그 외 모든 관계자가 함께하는 커뮤니티를 강화시키고자 합니다."




S.W.A.A.T.은 제니퍼 헤일 외에도 수많은 전문 게임 성우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무료 제공 서비스다. 게임 스크립트와 녹음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경험이 많은 성우진인 만큼 스크립트를 발전시켜나가는 부분에서 도움을 주기도 한다. 모든 것을 무료로 제공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물어보니 그녀는 개발자와 배우, 그 외 모든 관계자가 함께 협력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테이블리딩은 제작과정 중 하나고, 우리의 목표는 커뮤니티와 상업성을 떠나 협력할 수 있는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크립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궁금해졌다. 게임 스크립트가 다른 미디어(영화, TV 시리즈, 애니메이션)과 다른 점은 무엇일지. 또한, 작업 과정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배우의 입장에서 보자면, 게임 스크립트는 다른 미디어와 전혀 달라요. 부스 안에서 작업하고 있으면, 게임 세션은 마치 4시간 동안 진행되는 원맨쇼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TV나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훨씬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니까, 느낌이 다르죠. 모션 캡쳐 작업은 TV나 영화에서 하는 것과 비슷한데, 약간 과장된 부분들과 정말 못생긴 의상까지 똑같아요."


"최선을 다해 일하고, 다시 자신의 길을 걸어라"
제니퍼 헤일, 성우로서의 마음가짐



사진 출처: The Iris

인터뷰를 마무리해가면서, 그녀에게 성우로서 느꼈던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게임 성우로 일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었을까? 지금 되돌아봤을 때 어떤 부분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정말 많이 변화했죠. 스크립트 퀄리티도 훨씬 좋아졌고요. 업계에서는 성우가 게임에 가져올 수 있는 모든 요소에 대해서 알아차리기 시작했어요. 또한, 기술은 배우들로 하여금 유저에게 더욱 몰입감 있는 경험을 만들어줄 수 있도록 해주고 있고요."

한국에서 성우로 일하기는 쉽지 않다. 맡을 수 있는 역할도 많지 않고, 성우가 되는 것 자체부터 어렵다. 업계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지망생들은 많지만, 실질적으로 제대로 자리 잡은 프로들은 소수다. 제니퍼 헤일 성우에게 미국에서는 조금 다른지 물어보았다.

"도시마다도 서로 달라요.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은 도시 자체의 규모가 크고 인구가 밀집되어있는 만큼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편입니다. 하지만 기회는 다른 방법으로도 찾아볼 수 있어요. 특히 아틀란타나 시애틀과 같이 큰 제작 중심지에서도 좋은 기회를 찾아볼 수 있고요."

마지막으로 성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인상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제니퍼 헤일은 성우는 게임 전체 개발단계의 하나의 퍼즐 조각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만큼 시간약속을 잘 맞추고, 최대한 게임 개발 흐름을 방해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비즈니스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하세요. 연습도 계속해서 해야 하고. 제작 과정의 한 부분이 되어 자신이 하나의 퍼즐 조각일뿐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에 맞춰가시고, 자기 일을 최대한 노력을 다해 해내고, 다시 자신의 길을 걸으세요. 개발팀은 당신의 작업이 끝나 떠난 후에도 정말 많은 일을 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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