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https 검열', 저 지금 야동 때문에 화내는 거 아닙니다

칼럼 | 정필권 기자 | 댓글: 76개 |



최근, 일부 국내 인터넷 사용자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11일 오후 즈음을 시작으로 일부 통신사에서 https로 접속하던 사이트들의 접속이 블랙 아웃 상태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2일에는 방송통신위원회의 공식 발표로 차단이 확정되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차단하기로 한 해외 불법 사이트 895곳에 대한 접속이 모든 통신사망에서 제한이 걸렸습니다. 익숙한 워닝 페이지를 넘어서는 강력한 차단책입니다.

이전까지 사용하던 DNS(Domain Name System) 검열은 블랙리스트를 기준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워닝(warning.or.kr) 페이지를 보여주던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어떤 사이트에 접속하려고 하는지 암호화하는 https 기술을 이용하여 차단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통신 과정이 암호화되었기에, DNS가 보유한 차단 리스트와 대조를 할 수 없어졌고, 그간 워닝 페이지가 없이 사이트들에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검열은 https에서 이용하던 SNI(Server Name Indication)를 기준으로 차단하는 방법입니다. 인증서의 정보 교환을 위해서 암호화되지 않은 채 교환하는 SNI를 분석하고, 이를 기준으로 사이트를 차단합니다. SNI를 분석하면 불법 사이트 도메인 접속 여부를 확인할 수 있거든요. https가 암호를 정해서 대화하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SNI는 그 암호를 전달하기 위해 최초 연락하는 과정을 잡아내어 차단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방통위의 이번 차단은 갑작스레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지난해 '밤토끼'와 같은 불법 사이트들이 https를 이용했음에도 사이트가 차단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당시부터 https를 이용한 차단을 고민한 바 있고, 실제로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불법 사이트들의 차단이 이루어지기도 했으니까요.

이번 조치는 목적 면에서는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습니다. 불법적인 콘텐츠들이 차단된 사이트에 게시되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산업 및 개인 권리의 보호를 위해서 차단이라는 강제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해외 사업자에게 문제가 되는 콘텐츠를 삭제해달라 요청하면 위험한 콘텐츠를 거르는 것이 가능이야 하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불법 콘텐츠는 물론이고 스트리밍까지에 이르는 무차별적인 차단은 우선 "성인이 성인물을 보지도 못하냐!"는 의견으로 이어졌습니다. 합법화에 대한 사회적·행정적 논의도 없이 진행된 사안이기에, 이용자들의 반응이 나왔음은 어느 정도 당연할 겁니다. 국내야 포르노가 불법이지만, 해외에서는 합법이고. 해외 콘텐츠 이용을 막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저도 이 심정에는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심지어 전 프리미엄 날짜가 아직 남아있었다고요.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방심위의 이번 차단 방법은 크게 두 측면에서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고 봅니다. 첫 번째는 암호화되지 않은 SNI 패킷을 살펴보는 행위가 '감청 또는 검열'에 해당하지 않느냐는 것. 두 번째는 불법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접근 자체를 본격적으로 막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두 문제의 무게감을 생각하면, 야동을 못 본다는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감청과 검열이라는 이슈도 매우 중요한 문제겠습니다만... 이번에는 후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논란에서 원천 차단한다는 결정 자체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되는 콘텐츠를 수정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 아니라, 접근을 막아버리는 행정 편의적 발상의 위험성입니다.

'일단 차단하고 보는' 행위는 결국에는 기준이 문제가 됩니다. 기준을 정하는 측의 생각에 따라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포르노 외에도 국내에서 불법으로 규정하는 모든 콘텐츠에 접근 차단을 내리는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선택적으로 문제가 되는 콘텐츠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접근 자체를 막아 버리는 데에 과도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죠.




그렇기에 이번 갑작스러운 차단을 지켜보면서 지난 2007년 있었던 웹게임 차단과 2014년 스팀 게임 차단 논란이 뇌리를 스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군가 '포르노는 차단. 그럼 같은 불법인 해외 게임은?'이라고 질문을 한다면, 마땅한 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국내 기준으로 불법 콘텐츠'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가 현재 해외에서 구매하여 국내에서 즐기는 게임물 대다수가 불법으로 해석됩니다. 당장 스팀에 있는 게임들 대다수가 그렇습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채 국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게임들은 불법 게임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기자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해석에 따른 것입니다.

2014년 헌법재판소는 셧다운제 위헌과 관련한 헌법 소원(헌법재판소 2011헌마659, 683(병합) 결정, 2014. 4. 24)을 기각, 각하하며 아래와 같은 판결문을 보여줬습니다.




즉, 국내에서 '인터넷 게임'.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게임물이 불법 게임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내에 지사 설립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지사가 없다면 불법의 영역에 들어가고 이용을 제한해도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포르노처럼, 국내에서 불법으로 해석되는 게임들도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답은 '그렇습니다' 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이유에서 2009년 즈음 '부족전쟁', '오게임'과 같은 웹게임의 차단이 진행된 전례가 있거든요.

이후 서비스를 국내 업체에 이관하면서 차단이 풀리기는 했으나, 당시 "국내에서 접근해 이용할 수 있는 게임물이면 심의의 대상으로 고려된다"는 게임위 관계자의 발언은 많은 논란을 낳았습니다. 한국어로 서비스를 진행하는 사실이 '게임물을 유통하거나 이용에 제공하게 할 목적으로 게임물을 배급하고자 하는 자'에 속하는 것인지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2014년 당시에는 비슷한 이유에서 박주선 의원(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교문위 소속)의 발언으로 스팀 한국 서비스가 화두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박주선 의원은 당시 "스팀, 한국서만 등급분류 안 받았다"고 이야기하며 "스팀 미심의 게임을 엄벌하거나, 국내 심의 족쇄 풀어라"라는 발언을 남겼습니다.

뭐. 결과적으로는 시간은 걸렸지만, 자율 심의와 관련한 개정안이 나오면서 개선이 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스팀과 같은 플랫폼. ESD를 두고 어떠한 해결책을 내야 할 것인지는 아직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웹게임의 차단 이후 10년, 박주선 의원의 스팀 한국 서비스 논란으로부터 5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법 체계의 변화와 현실적인 문제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처할 규칙을 만들자", "급변하는 세계 시장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14년 당시의 지적이 무색할 정도로 실질적인 변화가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서야 자체등급분류 사업자가 선정되었으나, 거기에 스팀은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그간 대부분 게임이 글로벌 서비스를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플랫폼 자체도 그 사이 늘었습니다. 게다가 콘텐츠 소비에서 국경 개념이 더욱 희미했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하급수적으로 출시되는 게임의 등급분류를 모두 다 받는 건 이제 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됐습니다. 여전히 법 체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할만합니다.

단적인 예로, 전 세계 시장에서 하나의 플랫폼으로 자리한 '페이스북 게임'은 2019년 현재에도 국내에서는 이용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지금 접속하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지 않은 게임은 한국에서 이용할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만 출력될 뿐입니다.

'에픽 게임 스토어'도 국내에서 자사 플랫폼으로 출시되는 게임들을 에픽게임즈코리아가 심사받기 시작했으나, 아직 스토어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VPN와 IP 우회가 필요합니다. 이후 에픽 게임 스토어로 인디 게임들이 여럿 출시된다고 생각한다면, 모든 게임을 에픽게임즈코리아가 등급분류를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막대한 시간이 들어가기도 할 겁니다. 또, 얼마 전 등장한 다크호스 'APEX 레전드'도 국내 등급 분류를 받았으나, IP 우회로만 게임을 설치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현재 우리는 게임과 관련된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불법 게임물 또한 불법 콘텐츠라는 대분류에 속하기에, 이번 차단 사건에 우려의 시선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 또한 야동과 같이 '해외에서 합법이고 국내에서는 불법이지만, 이용자는 분명 존재한다'는 점에서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걸고넘어지자면, 걸릴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이미 불법 게임물에 대한 논란이 과거에 있었고. 불법 게임물에 대한 정의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준으로 실질적인 접속 차단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불안감이 나옵니다. 심지어 이번 방심위의 차단 결정이 '콘텐츠 수정'이 아니라 차단으로 접근 자체를 막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불안감은 어디까지나, 원리 원칙대로. 현 법 체계를 따라가자면. 그리고 전례에 비추어 보자면 차단이 현실적인 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긴 합니다. 물론, 게임물을 담당하는 게임위가 해외 게임물의 접속 차단이란 초유의 선택을 내릴 가능성은 낮을 겁니다.

하지만 현 법 체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기에 분명한 위험은 남아있습니다. 해외 게임물의 불법 여부를 떠나서, 최근 정책 개정으로 스팀이 무삭제 게임을 판다는 사실도 문제가 됩니다. 인증 제도가 생일로만 이루어지기에 청소년 보호 측면에서도 비판거리가 됩니다. 만약 이후 게임위가 아닌 다른 부서에서 차단 움직임이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더 쉽고 강력한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최악의 경우 국내에서 등급 분류를 받지 않은 게임들은 지역 제한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VPN을 통한 우회 구매도 불가능하게 됩니다. 스팀은 약관에서 VPN을 써서 구매하는 행위에 계정 정지를 시키고 있는 상태거든요.



▲ 신고 자체에는 일단 예외로 들어가 있기는 합니다.

결과적으로 국내 인터넷은 이번 조치를 통해 법 제도에 따른 광범위한 차단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무차별적 차단이라는 사안을 앞에 두고 고민과 변화가 필요한 시간입니다. 감청 논란과 더불어, 불법의 범주에 포함되는 해외 콘텐츠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인터넷,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개념에 맞는 법 체계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이대로 이용자들이 우회로만 찾게 내버려 둘 것인지. 현실을 행정에 반영하기 위한 행정부와 입법부의 결단이 필요한 때가 왔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법 체계의 정비는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법 개정이 어렵다면, 이미 지난 17년에 국제등급분류연합(IARC)에 게임위가 가입한 만큼, 해외 자율 심의 결과를 국내와 연동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을 거고요. 적어도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해외 게임들에 불법이란 꼬리표가 붙어, 차단의 위험성을 안고 가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 입장에서, 일단 접근부터 방지하겠다는 지극히 행정 편의적인 결정에 부정적인 시선과 목소리를 내보냅니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시. '처음 그들이 왔을 때(First they came)' 처럼,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없는' 경험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게임도 부디 모든 면에서 "현실에 맞는. 글로벌 기준에 대처할 수 있는" 체계와 제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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