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 게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죠?

칼럼 | 정재훈 기자 | 댓글: 5개 |



게임은 지금껏 '장르(Genre)'라는 기준에 따라 분류되어 왔습니다. 작품의 수가 다양해지고, 마치 유전 형질의 나무를 보듯 계파가 생성되면서 자연스럽게 나뉘었죠. 슈팅, 액션, RPG, 시뮬레이션, 어드벤쳐. 모두 다 게임의 장르명이자, 게이머들이라면 익숙한 개념들입니다.

물론, 게임만 그런 건 아닙니다. 영화, 드라마, 문학, 만화 등 모든 예술 분야는, 저마다의 장르적 분류 체계를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이런 구분이 늘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1년이 멀다하고 게임은 발전해왔고, 각 장르를 대표하던 속성들은 하나둘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20년 전, 게임을 설명하긴 참 쉬웠습니다. '총게임', '전쟁 게임', '비행기 게임' 이 정도면 게임 하나를 뚝딱 설명할 수 있었죠.

지금을 봅시다. 게임 하나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대충 이정도는 필요합니다. "일단 시점은 쿼터뷰 고정이고, 실시간 액션인데 파티플레이 되고 성장 요소 있고 퍼즐적 요소도 좀 있어"

장르는, 마치 살아있는 나무와 같습니다. 끊임없이 가지를 치고, 오래된 잎은 떨어지며, 새로운 잎이 돋아나죠. 그리고 게임 장르는, 다른 문화 예술에 비해 훨씬 빠르게 자라는 나무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말할 주제가 바로 이 '게임 장르'입니다. 최초의 아케이드 게임인 '퐁'이 개발되고, 올해로 48년이 지났습니다. 2년 후면 50주년이 되죠. 문학의 시작이 수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영화의 시작 또한 100년을 훌쩍 거스르지만, 게임은 아직도 50년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장르적 변화는 그 50년 사이 문학의 수천년을, 영화의 100년을 뛰어넘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지금껏 게임 장르는 어떻게 분화되어 왔고, 지금 이 시점에서 장르적 구분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그리고,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장르 구분이 꾸준히 쓰일까요?


게임, 구분되다

먼저, '장르'라는 단어에 대해 말해봅시다. 장르는 프랑스어로 'Type'에 해당하는 단어이며, 예술을 나누는 분류입니다. 좀 더 본질로 나아가면, '성공 패턴'이라고 볼 수 있죠. 장르는 '카피캣'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무리 독창적인 작품성을 가졌다고 해도, 하나의 작품만으로는 장르가 될 수 없죠.

하지만, 그 하나의 게임이 성공한다면, 이와 유사한 수많은 게임이 줄지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이 모여 하나의 '장르'를 이루게 됩니다. 그와중 최초 성공한 게임이 가진 재미요소가 바로 장르의 핵심 요소가 됩니다.



▲ '스페이스 인베이더'로 시작한 아케이드 슈팅 장르

간혹, 이렇게 분류된 하나의 장르에서 마치 돌연변이처럼 완전히 다른 게임성을 보이는 작품이 나오곤 합니다. '이렇게 하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만들어지는 변형이죠.

이렇게 변형된 작품의 경우 큰 단위에서 원래 장르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게임 플레이 자체는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변형된 장르의 작품에 또 다른 카피캣들이 생기면 '파생 장르'로서 새로운 장르의 축이 되곤 하죠.

90년대를 봅시다. 90년대 초에는 일본식 '4장르 분류법'이라는 전통적인 장르 분류가 있었습니다. '아케이드', '어드벤쳐', '롤플레잉', '시뮬레이션'이라는 분류 안에서 모든 게임이 나뉘었죠. '아케이드' 게임의 경우 말 그대로 오락실을 위주로 발전한 장르입니다. 아타리의 '퐁'으로 시작되어 타이토의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붐을 일으켰고, 수많은 아류작들이 만들어지며 '장르'가 되었죠.

이 당시 '아케이드 게임'이라는 분류는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수많은 장르들이 혼합되어 있었습니다. 벨트스크롤 액션, 종스크롤 슈팅, 대전 액션을 비롯해 '팩맨'과 같은 게임들도 대단위 분류에서 '아케이드'라는 하나의 틀에 묶였습니다.



▲ 벨트스크롤 액션, 대표작은 '던전앤파이터'가 있습니다.

이후,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갤러그'를 필두로 한 게임들은 '슈팅'으로, '파이널 파이트'와 '캐딜락 앤 다이노소어' 등의 게임 등은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으로 새로운 장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장르는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 뭔가를 '쏘는'것으로 분류되던 슈팅 게임은 3D 기술의 발달과 1인칭 시점의 도입과 함께 'FPS(1인칭 슈터)'로 분류되었습니다. RPG는 액션이 가미되면서 '액션 RPG'가 파생되고, 이후 온라인 기술의 발달로 MMORPG에 이르렀죠.

그러나, 모두 아시다시피 이런 분류 체계는 여러 맹점이 존재했습니다. 90년대 당시 시점으로도 '이 게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할 게임들이 상당했죠. 장르 구분 자체가 어떤 체계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뤄지다 보니, 분류 기준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아케이드 게임은 기판 위주의 게임이었고, 슈팅 게임은 일단 뭔가를 쏘면 슈팅이었죠. 롤플레잉은 '롤'만 있다면 롤플레잉으로 분류되었고, 그외 잡다한 장르는 시뮬레이션으로 퉁쳐버렸습니다. 당연히, 겹치는 부분도 있고, 전혀 해당하지 않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이러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캐릭터의 '롤'도 정해져 있고, 뭔가를 쏘기도 하는데 아케이드에서 서비스되는 게임은 뭐라 해야 할까요? 반대로, 롤도 없고, 쏘지도 않고, 아케이드 서비스도 아니며, 그렇다고 시뮬레이션이라 보기에도 이상한데 재미있는 게임은 또 뭐라고 해야 할까?



▲ 슈팅? 레이싱? 드라마? 액션?


장르 구분, 힘을 잃다


이런 게임들을 어떻게든 설명하고자, 장르명은 꾸준히 세분화되어왔습니다. 오늘날 장르 구분을 보면, 25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장르들이 보입니다. '1인칭 오픈월드 슈팅 RPG', '소셜 MMO 전략 시뮬레이션' 등 어떻게든 게임을 설명하고자 하는 단어들을 줄지어 늘어놨죠.

뿐만 아니라,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준이 장르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장르'로 구분되는 속성의 공통점은 여러 게임에서 '성공의 열쇠'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성공의 열쇠에는 서비스 주체나 조작 방법, 게임 플레이 방식을 넘어서 '전달하는 감정'이 될 수도 있죠.



▲ '감정' 본위의 장르 구분 '호러 게임'

공포 게임은 플레이어의 감정에 기반해 구분된 장르입니다. 더 애매해졌습니다. '공포 게임'이라 하면 '무서운 게임이구나'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포 게임이라는 네 글자만으로는 도무지 어떻게 플레이해야 하는 게임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 공포 게임의 스테레오 타입이 액션 어드벤처로 굳어져 대충 짐작하게 되지만, '프레디의 피자가게'를 보면 굳이 액션이 아니어도 충분히 공포 게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게임적 특성으로 장르 구분이 어려우니 아예 대표 게임을 가져다 장르명으로 붙여 버린 케이스도 존재합니다. 그 대표 사례가 '로그라이크'죠. 세이브와 로드가 불가능했던 던전 탐험 게임 '로그'가 인기를 끌자, 로그의 독창적 게임성을 따온 '유사 로그' 게임들이 다수 제작되었고, 이들이 '로그라이크' 게임의 시작이 됩니다. 이 중에는 '리니지'에 영감을 준 '넷핵'이 있었고, 추후 '던전 크롤러'라는 또다른 장르명의 출발이 되는 '던전 크롤'도 있었죠.



▲ '로그라이크'의 출발이 된 '로그'

이렇게 게임명을 장르화하면 설명이 훨씬 쉬워지는게 사실입니다. "3인칭과 1인칭을 지원하며 가상의 밀리터리 배경 공간에서 다수의 게이머가 한 장소에서 공평하게 시작해 필드에 놓인 아이템을 얻고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게임"이라는 설명보다 그냥 "배그같은 게임"이라고 하는게 편하니까요. 지금은 'MOBA'나 'AOS'로 불리는 게임 장르 또한 한때는 '도타라이크'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했습니다. 도타의 라이벌격 게임을 운영하는 회사들이 새로 장르명을 구분하면서 쓰이지 않게 되었지만 말이죠.

이렇게 장르 구분이 세분화되고, 쓰이는 용어가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래된 개념은 사멸하고, 새로운 용어들이 무수히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개발사중 일부는 어느 틈엔가 장르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장르명을 전통적인 게임 구분의 목적이 아닌, 자사 게임의 PR용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명맥이 끊긴 '메탈기어' 시리즈의 장르명은 '택티컬 에스피오나지 오퍼레이션'입니다. '괴혼' 시리즈는 '로맨틱 접착 액션'을 표방하고, 크라이스타의 경우 '울며 싸우는 미소녀 액션 RPG'입니다. 장르명을 제멋대로 하기 유명한 '테일즈 오브' 시리즈로 넘어가면 더 심해지는데, '「정의」를 관철하는 RPG', '네가 너답게 살아가기 위한 RPG'등 여러모로 주옥같은 장르명을 사용합니다. 이쯤 되면, 전통적 장르 구분의 무의미함을 알기에 그냥 안쓰겠다는 거죠.



▲ 이 게임의 장르명은 '서로 울려퍼지는 마음을 믿는 RPG'입니다.


새로운 분류 체계 '태그'


이렇듯, 오늘날 기존의 게임 장르 분류법은 잘 맞지 않습니다. 물론, 대단위 기준에서 RPG이냐, 슈팅이냐, 혹은 액션이냐 정도는 아직 의미가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게이머들에게 익숙한 기준이며, 게임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짧은 단위일 테니까요. 하지만, 줄줄이 늘어선 세부 장르를 이렇게 한 단어로 뭉뚱그려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동시에, 비교적 현실적인 부분에서도 영향을 줍니다. 국내에서 게임을 상업적으로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심의가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게임 심의 수수료 산정 기준에는 장르별 계수가 포함됩니다. 어디까지가 액션이고, 어디까지가 RPG인지 모호해진 지금, 산정 기준 또한 모호할 수밖에 없죠. 새로운 분류 체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 현재 게임위 심의수수료 산정 기준

지금껏 이런 분류가 되지 않았던 까닭은 장르 구분이 어떤 체계적 집단에 의해 구분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게이머들, 평론가들이 부르기 쉽게 칭하다 보니 굳어진 관용적 표현들, 그리고 맞지 않음에도 습관처럼 불러오던 단어들이 명문화되는 과정에서 기준이 잡히다 보니 중구난방인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물론, 모든 산업에서 구시대적 분류가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몇몇 플랫폼이나 ESD에서 게임을 포함한 다양한 미디어들은 기존의 장르적 분류와는 다소 다른 방법으로 기준을 세워 분류되고 있습니다. 바로 '태그'라는 수단을 통해서죠.

'태그'는 각 작품의 특성을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스팀'과 같은 ESD는 일찌감치 장르명에 따른 구분보다는 게임 속성을 파편화해 태그로서 게임을 설명하고 있죠. '1인칭', '핵앤슬래시', '대규모 멀티플레이', '서사적', 'SF', '역사 기반' 등등이 게임의 성질을 나타내는 태그입니다.



▲ 기존의 장르 구성 요소를 파편화한 '태그'

엄밀히 말하면, 태그는 기존의 장르 체계를 풀어헤친 것에 가깝습니다. MMORPG는 '대규모 멀티플레이'와 'RPG'로, FPS는 '1인칭'과 '슈팅'으로 나누죠. 하지만 게임 성질을 하나의 개념이 아닌 세포 단위로 나누고, 기입에 한계가 없다는 점에서 기존의 장르 구분과 근본적 부분에서는 같지만, 보다 간결하게 핵심만 짚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태그'에 따른 분류는 아마 차후에도 쭉 쓰이게 될 것입니다. 유전 형질이나 진화 과정에 따라 몇몇 '미싱 링크'를 제외하면 선후가 그럭저럭 보이는 생물 분류와 달리, 게임은 어느 순간 서너 스텝을 건너뛴 선구자적 작품이 나오는가 하면, 수년 전에나 유행했던 작품의 정신적 후속작이 등장하곤 합니다. 도입할 수 있는 게임성의 수가 무한대인만큼, 일정 기준에 따른 분류는 사실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다음 시대의 게임은?

이와 같은 분류 체계의 진화는, 게임 산업이 거대화하며 따라온 필연적 결과이지만 동시에 산업이 다음 과정으로 나아가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게이머는 늘 새로운 게임을 바라고 있지만, 기존의 장르 구분과 어긋난 부분을 이채롭게 쳐다봅니다. 일부는 거부감을 표하기도 하죠.

개발사들 또한, 자유롭지는 못했을 겁니다. 어찌됐건 '장르'는 성공 공식에 따른 분류입니다. 장르를 넘어선다는 건 기존의 성공 공식을 벗어난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성공 사례가 넘치는 지금, 고전적 구분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 기존의 성공 공식들을 변형, 왜곡, 그리고 응용해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내야 할 때죠.



▲ 기존 분류의 틀을 깨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이전의 우리는, '장르'라는 이름이 붙은 여러 형태의 틀을 마음 속에 넣어둔 채 새로 등장하는 게임을 틀 안에 넣어보았습니다. 쏙 들어가면 정통이고,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이상한 부분이었죠. 이제, 틀을 모두 버릴 시간입니다.

'슈팅 게임이라면 이래야 한다', '전략 게임은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와 같은 오랜 명제들은 이제 구시대적 사고방식일 뿐이죠. 게임을 만드는 이들, 그리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들 모두 열린 마음으로 게임을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시간이 갈수록 기존의 장르관과 맞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게임들이 등장할 것이고, 멀지 않은 시일 내에 지금껏 전혀 보지 못했던 게임들이 모습을 보일 겁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 이르면, 게임 산업은 지난 50년 간 굳어진 벽을 뚫고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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