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스트리콘: 브레이크포인트, "엉망진창"

리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20개 |



'고스트리콘: 와일드랜드'가 출시되고 2년이 더 지났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전작도 평가는 낮았지만 그냥저냥 할만한 게임이었죠. 전 나름 재미있게 했습니다. 거대한 오픈월드도 좋았고, 적들이 수두룩빽빽 들어찬 요새를 몰래 침투해서 죄다 털어버리는 그 재미는 '메탈기어솔리드: 팬텀 페인'이후 참 오랜만에 느꼈으니까요. 오랜 시간 유비소프트의 자발적 노예로 살아오면서 물음표에 대한 공포는 진즉에 떨쳐버렸습니다. 와일드랜드는 분명 한계가 있는 게임이었지만, 저에겐 꽤 괜찮은 게임이었죠.

뜬금없이 2년 전 얘기로 리뷰를 시작하는 이유는, 제가 이 시리즈의 팬임과 동시에 유비소프트에 충성을 다 하는 촉나라 백성임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유비소프트가 내놓는 게임들은 거의 다 샀습니다. 유플레이 계정 레벨이 50을 넘었고, 유플레이로만 가지고 있는 게임도 50종은 됩니다. 심지어 국내 게이머들은 별 관심도 없는 ANNO 시리즈도 다 샀고, 포 아너도 시즌패스를 전부 다 샀어요. 제가 이렇게 유비소프트 게임을 열심히 합니다.

이번 시즌에 게임이 꽤 많이 나왔습니다. 몬스터헌터 확장팩도 나왔고, 보더랜드3도 나왔으며, 데스티니 가디언즈도 새 확장팩이 나왔어요. 곧 '콜오브듀티'의 신작도 나오죠. 하지만 제가 제일 기대한 게임은 '고스트리콘: 브레이크포인트'였습니다. 상상만 해도 어렴풋이 오토바이 한 대로 가로지르던 유우니 소금사막과 볼리비아의 흙길이 생각났어요. 전작의 플레이가 고스란히 떠올랐죠.

그래서 기대했습니다. 와이프한테 졸라서 얼티밋 에디션 사전구매도 했고, 행복하게 해준다더니 게임만 하냐는 타박에도 플레이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 만큼 했어요. 만렙도 찍었고, PVP도 해 봤고, 전부위를 최고급 아이템으로 도배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픔은 뭘까요. 내가 원했던건 이런게 아닌데. 왜 지도상의 물음표는 점점 사라져가는데 제 머릿속의 물음표는 늘어만 가는 걸까요? 그 이유로 앞서 제가 유비소프트의 팬이고, 골수 게이머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간만에 칼을 좀 뽑아야 될 것 같은데, "뭣도 모르고 게임을 까는구나"하면 억울하잖아요?



▲ 크큭


오픈월드 서바이벌 슈팅 RPG



먼저, 이번 작품의 컨셉을 봅시다. 스포일러는 없이 초반 20분만 플레이하면 알 내용들을 읊어보겠습니다. 볼리비아에서 죽을똥을 싸며 마약 카르텔을 분쇄한 고스트리콘 요원들이 이번에는 남태평양의 가상의 섬인 '오로아'에 왔습니다. 무슨 천재 과학자가 자신만의 유토피아로 계획한 섬인데 여차저차되서 마경이 되었죠. 그렇게 주인공 '노매드'와 그의 세 친구가 섬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친구 셋 중 하나는 사망, 하나는 실종, 하나는 부상으로 병동 신세를 지게 됩니다. 전작의 역전의 용사들이 게임 시작과 동시에 0.25라는 기적의 방어율을 보여주었죠. 무슨 말이냐고요? 더 이상 여러분의 모험을 함께할 동료가 없다는 겁니다. 이에 대한 항의가 있어 유비소프트가 AI 동료를 추가하겠다고 밝혔지만, 뭐 늘 그렇듯 언제가 될지는 모릅니다. 그렇게 급격히 외로워진 주인공 '노매드'는 온통 적으로 가득한 이 섬에서 혼자 섬을 전복시키기 위한 모험에 나섭니다.

그 와중에 여러가지 요소가 추가되었습니다. 야외 비박도 해야 하고, 수통에 물도 채워줘야 하며, 부상에 따라 움직임이 제한받기 때문에 제때 치료도 해줘야 하죠. 결과물과는 무관하게 일단 유비소프트는 '서바이벌'의 느낌을 내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게임이 나오기 전, 동료 기자들과 이번 작품에 대해 말할 때도 이런 요소에 기대를 걸긴 했습니다. 적만 가득한 넓은 공간에서 서바이벌을 한다는 그 자체가 뭔가 로망이 있잖아요.



▲ 뭔가 이런 느낌 크...

그러면서 게임 시스템도 꽤 바뀌었습니다. 플레이 자체는 예전과 동일하죠. 목표물을 찾고, 싹 다 죽이면 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조금 달라졌죠. 일단 전작의 PVP에서나 있었던 '병과 시스템'이 PVE에 도입되었습니다. 근접 공격도 달라져서 첩보물 액션 영화같은 모션이 추가되었죠. 아이템 시스템도 바뀌어서 장비 점수 시스템이 도입되었고, 스킬 시스템도 포인트만 얻으면 찍을 수 있도록 바뀌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여러 게임의 다양한 시스템이 섞여 녹아들어간 느낌입니다. 멀티 플레이를 상정한 병과 시스템과 '레벨 캡'에 다다르기까지 계속해서 상승하는 아이템 레벨 등이 그렇죠. 이렇게 보면 꽤 괜찮아보입니다. 좋아보이는 건 일단 가져오고 보는 딱 유비식 게임이니까요. 키워드로 나열해봅시다. '넓은 맵', '많은 아이템', '지속적인 성장', '서바이벌'. 다 섞어서 이리저리 휙휙 돌려 섞으면 꽤 그럴싸한 게임이 나올 것 같습니다.

결국, 전작인 '와일드랜드'에서 이어진 고스트리콘 시리즈만의 고유한 매력은 '건플레이' 뿐입니다. 다른 게임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400~500미터 단위의 저격을 필두로 한 잠입 건플레이죠. 사실 이것도 '메탈기어솔리드: 팬텀 페인'에서 이미 본 거지만, 유비소프트의 게임 중에서 이런 플레이를 지향하는 게임은 고스트 리콘 뿐이니 고유 매력이라고 일단 칩시다. 그렇게 핵심 재료 하나만을 남겨둔 채, 온갖 산해진미를 가져다가 짬뽕한 요리가 바로 '고스트리콘: 브레이크포인트'입니다.



▲ 이 장면을 보고, 구매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 이하 내용은 스토리 상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서두에서 제가 이미 이번 리뷰를 어떻게 풀어갈지는 충분히 밝혔으니 이제 한 번 썰을 풀어 봅시다. 이 게임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열거하면 리뷰가 너무 길어지니 항목별로 정리해보죠. 사실 이미 한 번 쭉 썼다가 대하소설급 리뷰가 나와서 지금 다 지우고 다시 쓰는 겁니다.

※ 게임 컨셉과 플레이가 너무 다른데요?

가장 먼저 말해야 할 건, 게임 디자인의 문제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게임 디자인과 컨셉의 불협화음이죠. 모든 게임은 게임이 내세우는 컨셉과 게임 내 플레이 디자인을 일치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예를 들어 공포게임의 경우 도움을 주는 NPC가 굉장히 적고, 여러 편의 기능을 제한하는 등으로 공포감을 극대화하죠. 당연한 겁니다. 무서우라고 게임을 만들었는데 안무서우면 안되잖아요.

'고스트리콘: 브레이크포인트'를 봅시다. 이 게임의 정체성을 한 문장으로 축약하면 '오픈월드 서바이벌 슈팅 RPG'입니다. '오픈월드 슈팅'은 전작부터 이어져온 아이덴티티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서바이벌이 도입되었고, RPG 요소가 강화되었죠. 그리고 유비소프트가 가장 크게 내세운건 '서바이벌'입니다. 적으로 가득찬 섬, 수통, 비박, 부상시스템, 요리와 폭발물 제작까지. 키워드만 나열하면 서바이벌 게임 하나 만들었다 이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게임플레이 도중 이 게임이 서바이벌이라는 느낌은 단언컨대 1도 들지 않습니다. 초반 20분은 그럴싸합니다. 헬기가 불시착하고, 주인공만 살아남았죠. 붕대질도 하고 흙바닥을 기어가면서 여차저차 게임 조작법을 익히는 동안은 '뭐야 괜찮은데?'싶어요. 하지만 20분이 지나고 '에레혼'에 도착하는 순간, 게임 플레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흙바닥을 전전하며 근근이 먹고살던 흙수저 소녀가장이었던 주인공이, 에레혼이라는 백마탄 왕자님을 만나버리죠.



▲ 텃밭에 캠프파이어에... 편의점도 있습니다.

에레혼은 게임 시작 20분만에 만나는 저항군 본부입니다. 전기도 들어오고, 무기상점도 있고, 병원도 있습니다. 심지어 농장도 있고 중앙의 모닥불에선 수백수천명의 고스트 생존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캠프파이어를 즐기고 있죠. 이 게임 세일즈 포인트 서바이벌이잖아요? 그렇다고 작전 나가서 에레혼으로 돌아오기 힘든 것도 아닙니다. 게임적 허용이긴 하지만 언제나 빠른 이동으로 돌아올 수 있죠. 차라리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저항군을 모아 에레혼을 만들어가는 구도였다면, 게임이 훨씬 흥미로웠을 겁니다.

유비소프트는 게임 출시 전에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웠던 서바이벌 요소를 게임 내에서 완전히 부숴버렸습니다. 처절함의 상징이 될 것 같던 비박 시스템은 아무데서나 A형 텐트 치고 땅파고 들어가서 자는게 아니에요. 맵 곳곳에 있는 야영지 포인트에서 하는거죠. 쓸데없이 어깨근육 뽐내면서 텐트 치고 나면 야영지가 생기는데, 심지어 물건을 사면 총이건 소모품이건 무료로 로켓배송까지 해줘요. 치킨도 가려서 배달오는 경기도 외곽의 제 집보다 배달이 더 잘됩니다.



▲ 텐트치는 모션좀 줄여주지

수통은 이론상 스태미너 회복을 위한 수단인데, 스태미너 모자란다고 총알이 안나가는게 아닙니다. 좀 쉬면서 뛰고 하면 스태미너가 모자랄 일이 없어요. 높은 절벽에서 내려오다가 데굴데굴 구를때나 좀 아쉽죠. 게다가 섬 곳곳에 있는 건물 안 정수기에서는 물도 못 뜹니다. 일부러 더러운 물만 골라 떠마셔요. 이게 그 말로만 듣던 패션 생존인가 봅니다.

부상 시스템도 봅시다. 출시 전에는 부상을 입으면 전투에서 이탈해 오랜 시간 붕대를 감아야만 회복되는듯이 보여주었죠. 하지만 실제로는 여기저기 널려있는 주사기 한 방이면 웬만한 부상은 싹 낫습니다. 그걸로 안 되는 부상은 총알구멍도 메워주고 뼈도 붙여주는 '주사기 Mk2'면 한 방입니다. 타이틀샷에서 주인공이 동료 어깨에 지고 처절하게 뛰고있죠? 그거 다 액션입니다. 주사기 한 방이면 되는데 말이죠.

게임이 이렇습니다. 넓은 섬에서 펼쳐지는 서바이벌인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병원에 식당까지 있는 편안한 본부에서 배불뚝이 저항군 아저씨가 주는 심부름이나 해야 하죠. 장거리 저격과 잠입으로 이어지는 고스트리콘 특유의 건플레이는 여전해요. 아마 그것마저 없었다면 이 게임은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게임이었을 겁니다.



▲ 그래도 이거 하나 지켰다


◈ 성장 요소도 제멋대로, 아이템 구조도 어영부영

그런가 하면, 보다 플레이어들에게 밀접한 문제인 캐릭터 성장 곡선과 아이템 드랍 시스템도 문제입니다. 이쪽은 진짜 대충 만든게 딱 보여요. 먼저, 맵이 크다 보니 복사 붙여넣기로 욱여넣은 임무들이 굉장히 많고, 이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경험치를 쌓게 되는데 캐릭터 성장은 레벨 30에서 멈춥니다.

아무생각없이 눈에 보이는 사이드 미션들을 하나씩 하다 보면 어느새 캐릭터는 만레벨인데 전체 지역 중 반도 탐험을 못 한데다, 메인 미션은 제대로 진행조차 하지 않은 상태일 수가 있어요. 게다가 여기저기서 퍼준 스킬 포인트 때문에 모든 스킬을 다 찍고도 스킬 포인트가 수십개가 남죠.



▲ 더 찍을 스킬도 없는데

실제로 제가 그랬습니다. 전 처음에 레벨 제한이 30이 아닌줄 알았어요. 스토리 진행은 중반도 안 한것 같은데 더 이상 레벨이 오르지 않아서 찾아보고 그때 알았습니다. 유비소프트의 다른 게임인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를 봅시다. 이쪽도 결국 마지막에 이르면 모든 스킬을 다 찍을 수 있지만, 레벨 상승이 그리 가파르진 않아요. 그리고 스킬을 어떻게 찍냐에 따라서 캐릭터의 컨셉을 맞출 수 있죠. 후반부에 이르면 스킬에 드라마틱한 고유 효과가 생기거든요.

하지만 이 작품엔 그런게 없습니다. 스킬 대부분이 그냥 무의미한 수치 증가이거나 장비 해금입니다. 성장 시스템은 있는데, 성장 시스템에서 오는 재미는 없죠. 실제로 1레벨이나 30레벨이나 싸워보면 별로 달라지는게 없어요. '저격 - 잠입'이 압도적으로 편하다 보니 폭발물을 쓸 일도 잘 없고, 해금을 안 해도 그냥 주워서(?) 쓰면 쓸 수 있습니다. 새로 추가된 돌파용 토치는 쓰느니 돌아가는게 더 빠릅니다. RPG 요소를 넣었으면 어느 순간 극적으로 플레이 스타일이 변하는 시점이 있거나, 혹은 끊임없이 강해져야 하는데 레벨 스케일링 때문에 모든 구간에서 플레이 스타일이 똑같습니다.



▲ 병과 랭크업도 다 했지만 별로 달라지는게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이템 시스템이 특별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어느정도 캡에 이를때까지 꾸준히 레벨이 상승하는 시스템이죠. '데스티니' 시리즈에서 채용한 그 아이템 시스템입니다. 점수와 별개로 보라색, 노란색으로 구별되는 등급제도 도입되어 있는데, 노란색이 붙는 조건이 따로 없습니다. 그냥 운 좋으면 노란색이 붙는데다가 드랍율이 낮지도 않고, 설계도로 제작을 해도 열 번 정도 굴리면 노란색이 하나 정도는 떨어집니다. 그렇다고 다 쓸만한 것도 아니고 가끔은 전혀 쓸모없는 노란 총이 나오기도 하죠. 이 부분은 '앤섬'에서 본 것 같습니다.

성장 곡선과 무성의한 아이템 시스템이 만나니 아주 중대한 문제가 생깁니다. '게임을 할 이유'가 사라진다는 거죠. 무기도 말로는 더 세다 더 좋다 하는데 막상 써보면 그냥 그게 그거고, 레벨업을 해서 스킬을 찍어도 그냥 그게 그겁니다. 전작에서는 대물 저격총 먹어보겠다고 아둥바둥 애쓰던 기억이라도 있어요. 하지만 이번 작품은 처음부터 모든게 되고, 나중으로 가도 달라지는게 없죠.

더 큰 문제는 이 게임의 소액결제 시스템입니다. 저는 솔직히 유비소프트 게임은 비판한 적이 있지만, 유비소프트 자체를 비판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결제도 잘 안되는데다 환불도 어렵지만 적어도 게임 내에서 소액결제로 선을 넘는다는 느낌은 없었거든요. 가끔은 바보같은 친구지만 그래도 착한 친구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 오랜 세월 유비소프트의 게임을 플레이했겠죠. 하지만 이번엔 정말로 선을 넘었습니다.



▲ 지진으로 고립되었는데 옆건물이 마트인 상황

소액 결제만 하면 안되는 게 없습니다. 게임 내에서 모을 수 있는 모든 총기 설계도와 부품을 '고스트 코인'으로 살 수 있죠. 이번 작품의 콘텐츠 줄기는 레이드를 제외하고 크게 다섯가지입니다. 메인 미션, 사이드 미션, 진영 미션, 총기 및 부품 수집, PVP죠. 이중 '총기 및 부품 수집'의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뭐 그렇다 칩시다. 그런데 여기에 또 빵점짜리 상점과 결제 시스템이 화를 더 돋웁니다. 제 예를 들어보죠. 길리수트를 사고 싶은데 바지는 소액결제로 사야 합니다. 다른 시리즈로 하면 이번엔 상의를 돈 주고 사야 해요. 그래서 아쉽지만 게임 내에서 살 수 있는 '다이버' 상의를 샀습니다. UDT 느낌이라도 내 보려고요. 상의는 샀는데 하의는 어디있는지 안보입니다. 정보 창에서는 상점에서 판다는데 상점에 없어요. 그래서 상의만 다이버인 변태가 되었습니다. 내 바지 어디있어요? 네? 그리고 왜 하의는 장비인데 상의는 또 악세사리입니까? 이 세계는 상의탈의가 기본이에요?



▲ 그래서 내 다이버 바지 어디서 파는데?


◈ 시나리오... 너마저...

여기까지 파악한 저는 의식을 잃을 것 같았지만 가까스로 정신줄을 부여잡았습니다. 마지막 희망인 '시나리오'가 있잖아요. 이번 작품의 간판 악역은 '워커 중령'입니다. 각종 전쟁 영화로 얼굴을 알린 '존 번셜'이 모델을 맡았죠. 전작의 시나리오는 막 엄청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 편이었어요. CIA 요원인 '카렌 보우먼'이 워낙 흥미로운 캐릭터라 꽤 재미있게 메인 미션을 즐겼죠.

솔직히 저도 이 게임이 스토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게임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오픈월드에서 총 좀 쏘려고 하는건데, 스토리가 뭐 중요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시나리오에 희망을 건 이유는 다른 모든 부분이 엉망진창에 가까웠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이번에도 이 게임은 제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쯤되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고스트리콘: 브레이크포인트'의 시나리오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완결이 안났습니다. 원래 게임 스토리는 하나의 게임에서 완결이 나고, DLC는 외전이 되어야 정상 아닙니까? 그런데 이 게임은 어정쩡하게 스토리를 끝내 놓고 뒷 이야기는 DLC에서 만나보라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게임의 시나리오가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길이 없습니다.



▲ 왜 업데이트 로드맵에 메인 스토리가 있지?

그렇다고 내러티브가 좋은 것도 아닙니다. 이번 작품의 메인 미션을 이루는 두 축은 메인 악역인 '워커 중령'과 섬을 만든 천재 과학자 '제이스 스켈'입니다. 둘 중 어느쪽의 비중이 더 크냐고 하면 당연히 워커 중령이죠. 출시 전 PV부터 꾸준히 얼굴을 들이밀었고, 게이머들에게 도전장을 던졌던 워커 중령입니다. 그에 비해 제이스 스켈은 별 존재감이 없어요. 이쪽 미션들은 뭐 전자기기가 어쩌고, 해킹이 어쩌고 하는 내용들뿐이라 사실 크게 몰입이 되지도 않죠.

문제는 이 간판 악역인 '워커 중령'과의 만남입니다. 초반 메인미션을 조금 하다가 제이스 스켈과 워커 중령으로 미션이 갈라지고 나면, 곧장 워커와 만나는 미션이 해금됩니다. 레벨이 어느 정도 되고, 장비 점수가 150점을 넘어갈때쯤 맵에 보면 '워커 중령을 처치하세요'하는 미션이 정말 뜬금없이 떠요.



▲ 아랫사람 안거치고 바로 대표부터 만나는 클라스

전 그래서 이게 1차전 같은 건 줄 알았습니다. 2차, 3차전 정도 하면 엔딩을 볼 줄 알았죠. 그래서 미션을 시작했는데 어랍쇼? 워커 중령이 죽었네요? 밑으로 네 명의 간부가 있다고 하는데 전 그 간부들 얼굴도 못 본 상태였습니다. 그냥 주변에 널린 사이드 미션이니 진영 미션이니 가까운 것부터 하다 보니까 만레벨이 되었고, 갑작스럽게 간판 보스를 없애버렸어요.

유저 동선을 유도하지 못합니다. 전작의 경우 보스인 '엘 수에뇨'를 만나려면 산하의 카르텔을 밑에서부터 하나씩 사냥해야 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에 이르면 보스와의 만남이 이뤄지고, 엔딩으로 이어지죠.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게 없습니다. 두 스토리라인 중 하나는 재미가 없고, 하나는 갑작스럽게 마무리 단계로 가버려요. 원더랜드가 어쩌고 하면서 유언을 남기는데 그 말을 듣기 전까지 전 원더랜드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모르긴 합니다. 미션 동선이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라 지역을 넘나들면서 마구잡이로 구성되어 있기에 그냥 가까운 것부터 하다 보니 이렇게 됐죠.



▲ 이땐 하나씩 지워나가는 재미가 있었는데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그렇게 제 '고스트리콘: 브레이크포인트'는 갑작스럽게 끝이 났습니다. 솔직히 더 할 거야 엄청나게 많았지만 해야 할 이유를 조금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엄청나게 많은 물음표를 전부 다 깨버릴 이유가 없었어요. 한다고 뭘 주는 것도 아니고, 준다고 그걸 어디 쓸데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게다가 숫자도 보통 많은게 아닙니다. '아캄 나이트' 할 때 200개가 넘는 리들러 챌린지에 열받았는데, 이곳에서 리들러는 동네 꼬마입니다. 물음표 숫자부터 밀려요.

종합적으로, 이 게임은 둘부터 열까지 단 하나를 뺀 모든 면이 단점인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는 전작부터 이어온 야외 국지전의 전투 감각이죠. 솔직히 그거 하나는 재미있었어요. 달리 말하면, 전작에서도 재미있었던 부분을 제외하면 재미있는 부분이 아예 없었어요. 전보다 나은 후속작을 바란 것도 아니고, 딱 전작 정도만 되어도 전 만족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어쩜 이렇게 전작만 못한 작품이 나온 걸까요.

무엇보다 괴로웠던 건, 개발 도중에 노선이 변경되거나, 기획이 스러진 부분들이 마치 각질조각마냥 게임 곳곳에 깔려 있는 걸 보는 것이었어요. 게임이 엄청나게 난잡한 느낌을 주었죠. 존재 이유를 찾기 힘든 수통, 안전가옥인데 건물 모델링이 힘들어서 대충 화덕으로 때운 야영, 마법 주사기 한방에 씻은듯 사라지는 부상, 비행기 뜰 때 빼고는 쓸모도 없는 포복 위장에 억지로 분류는 해놨는데 그냥 예전에 있던 스킬 대충 갈라서 하나씩 준 느낌의 병과 시스템까지... 이 모든게 어거지로만 느껴집니다.



▲ 이정도 점수면 취향도 안 타는 난국이라는 겁니다

지금 리뷰에서, 일일이 말하기 번거로운 자잘한 단점은 굳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각종 버그나 불안정한 프레임, 엉망진창 UI 등, 다른 게임이라면 문제가 될 부분들이지만 여기서는 언급할 시간조차 없습니다. 게임을 해 보신 분들은 잘 느끼셨을 거예요. 이 게임 내에서 '와 잘 만들었네'하고 감탄이 나오는 부분은 단언컨대 한 부분도 없습니다.

도대체 개발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여러 종의 게임을 플레이하고, 개발 비화를 듣다 보면 대충 게임만 해도 개발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지 감이 잡힙니다. 퍼블리셔와 개발사가 마찰이 있었구나, 주요 디렉터가 바뀌었구나, 개발비가 모자랐구나 하는 짐작들이죠. 하지만 이 게임은 도무지 개발 과정에서 무슨 비극이 있었길래 이렇게 나왔는지 짐작도 안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추측은 누가 메인 데이터 PC에 커피를 쏟은 겁니다. 그래서 급하게 새로 만든거죠.

그리고 이런 생각은 비단 저만의 생각만은 아닌가 봅니다. PS4, PC, Xbox 세 플랫폼의 메타크리틱 점수 평균이 63점이 안 됩니다. 여기서 전 하나 더 깨달았습니다. 이 게임보다 점수가 낮을 수도 있다니. 세상엔 좋은 창작자만큼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말고, 유비소프트도 이번에 하나 더 깨닫기를 바랍니다. 좋은 재료만 섞는다고 좋은 맛이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그럴싸하게 섞으면 퓨전 요리이지만, 잘못 섞으면 그냥 음식물 쓰레기입니다.

참 놀랍게도, 게임의 부제가 '브레이크포인트'입니다. 사전적으로는 공세에서 수세로,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시점을 뜻한다는 의미죠. 하지만 이번 작품에 한해서는 다른 의미가 될 것 같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다음 작품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이번 작품이 아마 고스트리콘 시리즈를 멈춰버리는 '브레이크포인트'가 될 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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