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뜨거운 안녕'까지 바란 건 아닌데 - OGN 이야기

칼럼 | 박태균 기자 | 댓글: 21개 |



OGN이 폐국 이야기가 나온지 어느덧 3개월이 흘렀다. 아직 공식 발표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철거가 진행된 사무실과 기존 프로그램만 무한 반복 재생되는 채널은 OGN의 마지막을 말하고 있다. OGN이 야심 차게 도전한 유튜브 채널 '44층 지하던전'도 2020년 12월 21일 영상을 마지막으로 아무 컨텐츠도 업로드되고 있지 않은 상태다.

OGN의 폐국은 어쩌면 시간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주 시청 층인 20~30대의 미디어 소비 트렌드는 온라인과 개인 방송 등으로 변했다. e스포츠 부흥을 위해 OGN의 제작 능력에 기댔던 게임사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유튜브, 아프리카TV, 트위치 등 OGN를 대체할 다양한 플랫폼이 생겼고, 오랜 세월 누적된 적자는 결코 적은 수준이 아닐 것이다. 이외 수많은 요인들이 뒤섞이며 점점 느려지던 OGN의 움직임은 끝내 멈췄다.

나 역시 기자이기 이전에 OGN, 구 온게임넷을 시청하며 자랐던 한 명의 게이머로서 위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운 맘이 들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말이었기에 거대한 상실감이나 뼈아픈 충격, 참담한 심정 따위는 없었다. 다만 가슴 한편에 가래처럼 달라붙은 찝찝한 생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아무리 급했어도, 최소한의 작별 인사는 해야 하지 않았나.

현재는 IT의 발전으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e스포츠를 시청할 수 있지만, OGN의 전성기는 이것이 가능해지기 훨씬 전의 이야기다. 최고의 시청각 미디어가 TV였던 80~90년대생 게이머들에게 OGN이란 학창 시절 언제나 곁에 있어준 친구와도 같을 것이다. 개국 초기였던 2000년대 초부터 스마트폰과 모바일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인 2010년대 초까지, 아무 때나 OGN을 틀어서 스타 리그 재방송만 봐도 즐겁고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당시의 OGN은 단순한 채널을 넘어 고단한 삶에 잠깐의 휴식과 위로를 주는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국내 게이머에게 OGN은 지난 시절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머리가 굵어지며 바빠진 생활과 복잡한 현실에 치여 구체적인 기억은 희미해졌을지라도, 그 순간을 되돌아보면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감정만큼은 결코 바래지 않는 법이니까.

하지만, OGN의 아쉬운 행보는 이러한 추억에 흠집을 남겼다. 시작과 과정만큼 중요한 마무리 단계에서 아무런 일언반구도 없이 게이머들을 외면한 것이다. 아티스트의 공연도 커튼 콜에서 가장 열렬한 박수가 쏟아지는 법인데, 게임과 e스포츠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온 OGN은 공연 말미에 무대를 박차고 나가버린 꼴이 됐다.

어쩌면 OGN이 정식으로 폐국한 것이 아니고, TV 채널도 계속 돌아가고 있기에 마지막 인사가 이르다고 판단한 것일 수도 있겠다. 채널이 없어지고 OGN이 진정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그날에 있을 성대한 이별을 준비 중일 수도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명맥만 간신히 유지 중인 현 상황에 앞서 짤막한 멘트라도 전하는 게 옳지 않았나. 게이머들이 바라는 건 '뜨거운 안녕'까진 아닐 것이다. 그저 '지금까지 고마웠어, 우린 여기까지지만, 앞으로도 게임을 사랑해 줘' 정도의 인사라도 상관없다. OGN과 함께 자랐던 이들에게 필요한 건 긴 말이 아니라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메시지일 테니까.

시간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지만, 인간은 때로 뒤를 돌아보며 살아간다. 그리고 OGN은 수많은 게이머의 뒤에서 멈춰 선 채 점점 더 멀어지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 거리가 더 멀어지기 전에, 서로의 존재가 더 희미해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팔을 뻗어 손을 흔들어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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