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저끼리 싸울 문제가 아니다
커뮤니티를 보면 매일 직업 간 갈라치기다. 근데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8직업이나 만들어놓고 왜 유저들이 서로 자리싸움을 해야 하나? 설계가 제대로 됐으면 모든 직업이 제 자리가 있다. 유저들이 싸우는 건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라, 자리가 부족한 의자놀이판에 앉혀놨기 때문이다.
- 설계부터 꼬여 있다
아이온2는 8직업, 4인 파티로 설계됐다. 직업 수 비율만 보면 탱커/서포터/딜러/딜러 — 깔끔한 정석 구조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되는 문제가 두 가지 있다.
첫째, 하이브리드 구조
탱커 직군에도 딜러 성격이 섞여 있고, 서포터 직군에도 딜러 성격이 섞여 있다. 거기에 모든 직업이 자체 피흡과 시너지를 갖고 있다. 하이브리드 자체는 나쁜 설계가 아니다. 오히려 잘 쓰면 유저에게 선택지를 넓혀주는 이상적인 구조다. 다만 정상적인 하이브리드에는 trade-off가 있어야 한다. 유연한 대신 순수 역할보다 약하다는 기회비용. 지금은 그 trade-off가 없다. 하이브리드가 순수 역할의 상위호환이 되면서, 선택지가 넓어지는 게 아니라 최적 조합 하나로 수렴한다.
둘째, 서포터 내부의 역할 분리
서포터 2직업은 같은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하는 일이 완전히 다르다. 하나는 버퍼, 하나는 힐러다. 그리고 현실은, 모든 딜러가 자체 피흡을 갖고 있어 힐이 부족한 콘텐츠는 사실상 없고, 하위 던전에서는 서포터 한 명이면 충분하다. 반면 엔드 콘텐츠에서는 부활이 강제되는 모순이 생긴다. 콘텐츠 난이도에 따라 특정 역할이 통째로 필요 없어지거나 갑자기 필수가 되는 구조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 이 게임은 대체 MMO인가, 액션RPG인가?
결과: 구조가 자리싸움을 만든다
엔드 콘텐츠에서는 서포터 둘을 빼기 어렵다. 4인 파티에서 탱커 1 + 서포터 2를 채우고 나면 딜러 자리는 1개뿐이다. 8직업 중 딜러 직군은 5직업이나 된다. 그 5직업이 남은 1자리를 놓고 경쟁한다.
하위 던전에서는 반대다. 서포터 한 자리가 비면서 딜러가 들어간다. 같은 게임인데 콘텐츠 난이도에 따라 파티 구조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이건 특정 직업이 강하거나 약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4인이라는 파티 구조와 콘텐츠 설계가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다.
- 수치 패치로는 못 고친다
어떤 방향으로 수치를 건드려도 문제가 반복된다. 서포터를 버프하면 더 필수가 되어 딜러 자리가 줄고, 너프하면 콘텐츠 클리어 자체가 흔들린다. 딜러 피흡을 줄이면 힐러 의존도가 올라가는데, 그러면 또 다른 조합 강제가 생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하이브리드에 기회비용이 없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게임에서는 유연성과 효율이 반비례한다 여러 역할을 할 수 있으면 각각의 성능은 떨어져야 한다. 그래야 순수 역할과 하이브리드가 공존할 수 있다. 지금은 하이브리드가 효율까지 다 잡으니까, 수치를 아무리 조정해도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 그래서 엔씨에게 묻는다
액션RPG로 갈 거면 — 어떤 조합으로든 클리어가 가능하게 만들어라. 하이브리드를 허용한 이상, 특정 조합이 "필수"가 되는 순간 그건 밸런스가 아니라 강제다. 4인 파티든 상관없다. 자유로운 조합이 곧 액션RPG의 정체성이다.
정통 MMO를 고집할 거면 — 확실한 역할 구분을 주고 파티를 5인 이상으로 늘려라. 역할이 명확해야 모든 직업이 존재 이유를 갖는다.
MMO와 액션RPG의 중간이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중간을 가려면 양쪽의 장점을 가져와야 한다.
지금 아이온2는 MMO의 역할 강제와 액션RPG의 역할 모호함, 양쪽 단점만 합쳐진 상태다.
엔씨가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어떤 직업을 버프할까"가 아니라 "이 게임은 무엇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