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라는 게 이래서 존나 무섭다는 거야.
경력이라는 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력과 질 좋은 경험이 반드시 비례하지도 않거든.
지방도시에서 10년동안 파스타가게만 전전하며 쌓은 경력으로 파스타집을 오픈하면
딱 자기가 일했던 곳들에서 만들던 맛밖에 안나.
그래서 더 유명한 곳, 더 잘하는 사람이 많은 대도시로, 서울로 다 가려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야.
미디어에 유명한 요리사들이 나오면서 해외 유명한 명문 요리대학, 거기서 일했던 커리어가 같이 조명되잖아.
결국 더 많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더 많은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업의 질이 향상되는 거잖아.
의사도 마찬가지야.
보드 따고 지방에서 페이닥터로 일하다 개인병원 차린 의사랑
어떻게던 서울에 붙어서 학회 다니면서 새로운 기술 없나 찾아다니고, 소개받고
잘하는 사람들 많은 곳에 있으려고 하는 의사의 경험은 분명한 차이가 나.
지금이야 워낙 기술이 좋아지고 의료보단 미용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려있으니까 덜하지만
당장 한 두세대 위만 해도 미국에서 특정 수술에 관한 컨퍼런스, 참관만 해도 경력으로 쓸 수 있었거든.
아마 다른 기술직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게임도 당연히 같은 결을 가지고 있겠지.
내가 아이온2를 지금까지 하면서 느낀 건
'아 이 사람들은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구나'야.
게임을 만드는 기술은 있지만, 만들고자 하는 게임이 어떤지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야.
사실 여부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업계쪽 지인에게 아이온2는 개고기 이미지를 없애기 위한 브랜드 개선을 목적으로 내놓은 게임이란 말을 들었어.
처음부터 그럴 요량으로 개발을 시작했을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릴리즈했던 순간만큼은 진짜라고 생각해.
개발진들이야 둘째치고, 일단 나는 디렉터부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
브랜드 이미지를 뒤바꿀 수 있는 게임,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는 사실 크게 의심하지 않아.
직장인이라면 다 알겠지만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은데 매 주 그렇게 라방키는 거 절대 쉬운 일이 아니야.
'본인이 만들고 싶은 게임의 명확한 방향성, 정체성, 그리고 그걸 위한 벤치마킹'이 압도적으로 부족한 게 문제야.
막말로 PC 온라인mmo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이미 저물어버린 장르야.
그럼에도 아직 장시간 살아남은 국산 RPG가 있고, 전세계 투탑 mmo는 둘 다 해외게임이야.
이 게임들 과연 디렉터를 비롯한 개발진들이 다 제대로 플레이 해본 경험이 있을까?
난 없다고 생각해.
게임을 기획하고 만드는 걸 업으로 한다면, 그 만드는 게임의 장르를 오랫동안 다양하게 해보는 것 또한
분명한 경험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