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전체보기

모바일 상단 메뉴

본문 페이지

[잡담] 김남준, 소인섭 두 분께, 한때 이 세계를 사랑했던 이름 없는 유저가

흡혈황제
댓글: 10 개
조회: 492
추천: 2
2026-10-11 17:43:21
남겨진 사람의 마지막 편지


처음부터 끝을 생각하며 이곳에 머문 것은 아니었습니다.

함께 웃던 사람들이 있었고, 밤을 잊게 하던 시간들이 있었고, 내일이면 조금은 나아지리라는 작은 믿음 하나가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떠날 채비를 하고, 익숙했던 이름들이 하나둘 지워질 때에도 나는 그저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당신들이 말했던 내일을 나는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가 아프다 말했던 곳은 여전히 아픈 채로 남아 있는데, 바다 건너 새로 열린 세상에는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피어 있더군요.

이곳에서는 그토록 어렵던 일이 그곳에서는 가능했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견뎌 온 불편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기다린 시간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보낸 수많은 목소리는 도대체 어디에 닿았던 걸까요.

이제 돌아올 사람도 없겠습니다.

떠난 이들이 돌아온대도 굳이 이 낡은 세계를 찾을 이유가 없고, 새로 찾아올 이들마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걸어가겠지요.

그렇게 이곳은 누가 문을 닫지 않아도 스스로 문이 닫히는 곳이 되었습니다.

당신들은 버리지 않았다고 말하겠지만 버려진 사람의 마음은 그 말로 위로되지 않습니다.

한때 가득했던 광장에 이제는 바람만 오가고, 함께하던 이들의 빈자리를 남은 사람들이 서로 모른 척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게임이 아니라 돌아오지 않을 시절을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들이 믿어 달라 했을 때 정말로 믿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망해 간다는 말에도 웃어넘기고, 떠나라는 말에도 고개를 저으며, 언젠가는 달라질 거라며 끝내 자리를 지키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였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니 가장 서글픈 것은 떠나가는 사람들도, 무너져 가는 이 세계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끝나 가는 줄 알면서도 끝내 당신들을 믿고 싶었던 나 자신입니다.

쏟아부은 돈이 아까운 것은 아닙니다. 흘려보낸 시간이 아까운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시간만큼은 진심이었던 내가 이제는 한없이 어리석게 느껴진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아픕니다.

당신들에게는 수많은 서버 중 하나였을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매일 돌아오던 곳이었고, 누군가를 기다리던 곳이었고, 쉽게 떠날 수 없었던 작은 세상이었습니다.

그 세상을 딛고 더 찬란한 세상을 열었다면,

부디 그곳에서는 누군가의 기다림을 이렇게 오래 방치하지 마십시오.

이제 저는 떠납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람이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은 사과도, 보상도, 약속도 아닙니다.

그저 언젠가 당신들이 이 텅 빈 세계를 돌아보게 될 때,

그곳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 아니라 끝까지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당신들이 버리지 않았다는 세상에서 마침내 스스로 떠나가는,

한때는 누구보다 이 게임을 사랑했던 이름 없는 한 사람이.

— 끝내 버림받은 것은 서버가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Lv11 흡혈황제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지금 뜨는 인벤

더보기+

모바일 게시판 리스트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글쓰기

모바일 게시판 페이징

▲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