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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축] 더브라위너의 어릴적 이야기, 첼시시절 이야기, 연애썰

비엘사리
댓글: 2 개
조회: 1017
추천: 3
2024-06-28 07:34:01


제가 어렸을 때 부터 저는 극도로 조용하고 극도로 부끄러움이 많았어요. 플레이스테이션도 없었고, 친한 친구들도 별로 없었죠. 제가 제 자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은 축구였어요. 그리고 전 축구를 매우 잘 했죠ㅋㅋ축구장 밖에선 전 매우 내성적이었어요. 말 한 마디 없었죠. 축구장 안에선 완전 불이 붙었죠. 제가 다비드 실바에게 “LET ME TALK” 이라 소리치는 영상 다들 보셨을 거에요. 그런데 그건 제 어렸을 때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죠.



누구나 어렸을 땐...글쎄,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다는 걸 모르잖아요. 전 이 사실을 어렵게 배웠어요.


제가 14살일 때 전 제 인생을 바꿀 결정을 내렸죠. 겡크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할 기회가 있었고 저 혼자 벨기에의 반대편까지 이주했어요. 집에서 두시간이나 걸리는 곳이었지만, 부모님께 가고싶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제가 고향에서도 소심쟁이였다는 겁니다. 겡크에선, 저는 웃긴 사투리를 쓰는 전학생이었죠. 참 외로웠어요. 전 사회생활을 배우지도 못했어요. 쉬는 날은 일요일 뿐인데, 일요일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봤으니까요. 아카데미에서의 2년은 제 인생에서 다시 없을 가장 외로운 시기였을 겁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겠죠. ‘왜 14살 밖에 안 됐으면서 그런 선택을 하지?”


제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답변은, 축구를 할 땐 모든 게 잊혀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어떤 문제든, 기분이 어떻든 축구만 하면 다 사라졌어요. 축구만 할 수 있다면 모든 게 좋았습니다. 그걸 집착이라 부른다면, 어쩌면 집착일 수도 있겠네요. 간단히 말해, 축구는 제 인생입니다.


아카데미에서 첫 해는 기숙사에서 보냈어요. 그곳엔 침대랑 책상, 싱크대가 있는 작은 방 하나가 전부였죠. 다음 해엔, 양육가정으로 들어갔어요. 클럽이 어린 선수들을 위해 구한 곳이죠. 저를 비롯해 다른 두 선수가 같은 양육가정에 배정됐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어요.

저는 그 때에도 혼자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죠. 그 해에 전 학교생활도 잘 했고 축구도 잘했어요. 싸움 같은 것도 없었고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여름방학 전에 전 짐을 싸고 양육가정에게 인사했죠.

그들은 “그래, 방학 끝나고 보자! 여름 잘 보내렴”

그런데 부모님 댁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는데 어머니가 울고 계신 겁니다. 전 누가 죽었나 생각했어요.


“무슨 일 있나요?”


그리고 어머니는 제 인생을 바꾸게 되는 말씀을 하셨죠.
“양육가정이 돌아오지 말라고 하더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양육가정에서 너가 안 돌아왔으면 한대”
“뭐라고요? 왜요?”
“네 그 자체 때문에. (because of who you are) 너가 너무 조용해서 너랑 교감할 수가 없단다. 너가 어려웠대”
전 정말 크게 충격받았어요. 개인적인 원한으로 느껴질 정도였죠. 양육가정은 저에게 어떤 말도 한 적이 없어요. 절대 어떤 문제도 없었죠. 전 그저 제 방에 혼자 있었을 뿐이에요. 전 누구도 귀찮게 한 적이 없고 그들은 저에게 다시 보자며 손까지 흔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클럽에게 저를 받아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니요.

제 경력에 있어 이건 큰 문제였습니다. 왜냐면 전 뭐 빅스타도 아니었고, 이제 클럽은 제가 문제아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클럽은 제 부모님에게 다른 양육가정을 알아봐줄 순 없다고 했고 저는 다른 기숙사에서 지냈어야 했죠. 괜찮은 곳이 아니였어요. 그저 문제아 수용소였을 뿐.

전 어머니가 눈물을 흘렸던 걸 기억해요. 그 때 축구공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 제가 어렸을 적에 공을 차던 담장으로 향했죠.

말 한 마디가 저에게 깊게 각인됐습니다.


“네 그 자체 때문에”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죠. 몇 시간 동안이나 담장을 향해 공을 차댔어요. 그리고나서 아주 크게 소리지른 게 기억 나요.

“다 괜찮아질 거야. 두 달 안에 1군에 들어갈 거야. 무조건, 실패자로서 집에 돌아오진 않아. 무조건”


여름 방학 이후 겡크로 돌아갔어요. 2군으로 막 올라왔을 때입니다. 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죠. 그러나 훈련은 후..몸 속이 활활 불 타는 느낌이었어요. 미친 듯이 했죠.

전 모든 게 변했던 그 순간이 기억나요. 금요일 밤 경기였는데 벤치에서 시작했어요. 후반 교체 투입돼서 그냥 미친 폼을 보여줬죠.


한 골


너가 안 돌아왔으면 한다는구나



두 골


너가 너무 조용하대



세 골


네가 너무 어렵대



네 골


너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한다는구나



다섯 골


네 그 자체 때문에




전 후반전에만 5 골을 넣었습니다.

그러고나니까, 사람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전 두 달도 안 되어 1군으로 승격했고, 제가 다짐한 것 보다 며칠은 빨랐을 겁니다. 당연하게도, 클럽은 이제서야 양육가정비를 대주겠다고 했죠.

참 웃겨요, 축구를 잘 할 때 사람들의 태도를 지켜보는 것 말이에요.

어느날 절 버린 양육가정이 클럽에 찾아와서 모든 게 오해였다고 하더군요.
“우린 너가 돌아오길 바랬어! 주중에는 기숙사에 있고 주말에는 우리 집에 있기를 바랬다고! 주말엔 우리 집에서 지내도 돼!”
지금와서 보면, 그냥 웃긴 상황일 뿐이죠. 하지만 그 때엔 전혀 웃기지 않았습니다. 정말 상처가 컸기 때문이에요. 전 “아니, 날 쓰레기통에 버려놓고 내가 잘 하니까 다시 꺼내보고 싶다고?”라고 했어요.

지금와서 보면, 그냥 고맙다고 했어야 됐어요. 그 경험은 제 경력에게 아주 큰 동력이 됐으니까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이야기는 저를 내내 따라다니며 괴롭혔죠. 겡크에 있을 때도, 첼시로 이적할 때에도 벨기에 언론들은 제가 얼마나 까다로운 사람인지를 보여주려고 그 양육가정 이야기를 팔아댔습니다.

제가 흥분하는 성격인 것은 맞습니다. 특히 축구장 위에서라면 더더욱. 잘 참아내다가 뻥 하고 정신머리를 잃습니다. 보통은 5초 정도 지나면 괜찮아져요.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절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축구를 하며 배운 모든 것들은 딱 하나로 정의될 수 있어요-전 축구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제가 첼시에 있을 때, 언론은 저와 무리뉴 사이의 관계를 집중조명했죠. 하지만 진실은 저와 그는 딱 두 번 밖에 이야기를 안 해봤다는 거에요.


전 첼시에 와서 임대를 나가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죠. 그래서 2012년에 베르더 브레멘으로 임대이적했고 그 시즌은 아주 좋았습니다. 제가 다음 여름에 첼시로 돌아왔을 땐 몇몇의 독일 클럽들이 저와 계약하고 싶어했습니다. 클롭의 도르트문트가 그 중 하나였고, 전 그들의 플레이스타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어쩌면 첼시가 절 보내줄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무리뉴가 문자를 보내더군요. “너가 이 팀의 일부가 됐으면 해”


그래서 저는 ‘오 좋아. 내가 그의 계획에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제가 프리시즌에 합류했을 때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전 시즌의 4 경기 중 두 경기를 선발출전했고 전 나름 괜찮게 했다고 봐요. 뛰어나진 않았지만 꽤 좋았습니다. 첫 네 경기가 끝나자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전 벤치로 내려갔고 어떤 기회도 받지 못 했어요. 설명도 없었죠. 전 무슨 이유에서인지 밀려났어요.


물론, 제 실수도 있었죠. 그 당시에 저는 프리미어리그 선수로서 자기를 어떻게 관리해야하는지에 대해 조금은 안일했던 것 같아요. 눈 밖에 나버리기 시작하면 훈련에서도 전혀 주목받지 못 하게 된다는 거에요. 어떤 클럽에선, 아예 존재하지 않는 느낌마저 받게되죠.


만약 그런 일이 지금 일어난다면,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저 혼자서도 열심히 훈련할 수 있고 제 자신을 관리할줄 아니까요. 하지만 누구나 21세엔 그런 책임감을 느끼지 못 합니다. 컵경기에서 스윈던 타운을 상대로 기회를 받았을 즈음엔, 이미 몸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그리고 나서 첼시에선 완전히 끝났죠.


조세가 12월 즈음에 절 사무실로 부르더군요. 아마 이게 제 인생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순간일 거에요. 그의 앞에는 서류가 있었고 그는 제게 말했죠.

“어시스트 하나, 골은 없고 볼 탈취만 열 개”
그의 의중을 알기까지 한 일 분은 걸렸을 겁니다. 그리고는 다른 공격수들의 스탯을 읽어내려가더군요.
뭐 5 골, 10 어시스트 이런 식으로.
조세는 제가 무슨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는 눈치였고 전 결국 입을 열었어요. “하지만..이 선수들은 15-20경기를 치뤘어요. 전 3 경기만을 뛰었고요. 다른 상황 아닐까요?”

정말 이상했죠. 저희는 또다시 임대이적에 대해 얘기했고, 마타도 그 시기에 눈 밖에 났을 때였습니다. “그래, 마타가 떠나면 6옵션이 아닌 5옵션은 될 거다”

전 완전히 솔직하게 말했죠. “제가 느끼기엔 클럽이 절 원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전 축구를 하고 싶습니다. 5옵션 말고, 저를 판매해주세요”

그러자 조세는 조금 실망한 눈치였어요. 하지만 그도 알 겁니다. 저는 정말 축구경기가 필요했어요. 결국 첼시가 절 판매했고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첼시는 절 데려왔을 때보다 두 배 넘는 가격에 절 팔았고, 전 볼프스부르크에서 더 나은 환경을 얻었으니까요.
EfVFb
모든 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축구 때문은 아니에요. 제 미래의 아내를 만났기 때문이죠. 한 번도 표현한 적은 없지만 아내는 제가 성장하는데에 아주 큰 힘이 됐어요. 아, 이건 정말 부끄러운 얘긴데, 말하기가 망설여지네요. 뭐, 솔직하게 알려드린다고 했으니 공개할게요. 웃긴 이야기이기도 하고ㅋㅋ


트윗으로 시작됐어요. 전 당시 팔로워가 몇 천명 밖에 없었죠. 베르더 브레멘 임대생이었으니까요. 전 경기에 대해 트윗을 했는데, 아름다운 여자가 좋아요를 눌렀더군요. 저는 당시에 싱글이었고 제 친구에게 그 사진을 보고 있는 걸 딱 걸려버렸죠. 친구가 “착해보이는 여잔데, 아니야? 메세지 보내봐”

전 그래서 말했죠 “아니 아니 안 돼, 제발. 사람들은 날 안 좋아 한단 말이야. 날 이해 못 한다구. 답장도 안 할 걸?”
그랬더니 친구가 제 폰을 가로채더니 메세지를 치는 겁니다. 그리고 절 보며 “봐, 전송 눌러도 될까?”

저는 아마 손발이 오그라들어 바닥에 동동 구르고 있었을 거에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알았어, 전송해” 라고 했죠.


그게 전부입니다. 전 꽤 이름있는 축구선수였는데 제 미래 아내가 될 여자에게 메세지 보낼 용기도 없었던 거죠! 제가 어떻게 감히!

하지만 감사하게도, 친구가 메세지를 보내줬고 아내는 답장을 했어요. 서로 문자를 주고 받으며 몇 달을 보냈어요.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게되면 제 소심함도 사라지는 것 같아요. 정말 아름다운 순간이었죠. 그녀는 정말 많은 방향으로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솔직히, 아내 없이 어떻게 살았을지 모르겠네요.


-인터뷰 자체는 오래된거임, 최신 인터뷰 아님-

Lv26 비엘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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