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월드컵 실패는 단순히 홍명보 감독 한 사람의 실패가 아니다.
아무런 원칙과 비전 없이 운영된 대한축구협회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감독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어쩌면 이번 실패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홍명보는 분명 한국 축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선수다. 1990년대부터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고, 2002년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끌며 브론즈볼까지 수상했다. 당시에는 2006년 월드컵까지 뛰어야 한다는 여론이 강했지만, 결국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뒤 대표팀 코치로 합류했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지도자 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대한축구협회 역시 장기적으로 그를 국가대표 감독감으로 육성하려 했다.
그리고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김태영, 박건하 등과 함께 코치진을 구성해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인 동메달을 획득하며 일약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특히 경기 시작 직후 기습 공격을 지시했고, 이것이 그대로 득점으로 이어진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그의 지도력을 높게 평가하게 만든 장면이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2013년, 휘청거리던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게 된다.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런던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성과가 있었기에 큰 반대 없이 선임됐다.
그는 런던 올림픽에서 함께했던 코치진을 그대로 국가대표팀에 이식했고, 선수단 역시 올림픽 대표 출신들을 중심으로 재편하며 세대교체를 시도했다. 또한 국가대표 소집 시에는 모두 정장을 입도록 지시하며 선수단 기강을 바로 세우려는 모습도 보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큰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월드컵까지 남은 시간이 고작 1년 정도밖에 없었다는 점이었다.
결국 그는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기보다는 기존에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선수들 위주로 팀을 구성했고, 4-2-3-1을 플랜 A로 삼았다. 그러나 그의 전술은 지나치게 단조로웠고, 상대 전술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플랜 B와 플랜 C가 보이지 않았다.
선수 선발에서도 논란은 이어졌다.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던 선수들이 유럽파가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되는 경우가 있었고, 반대로 유럽에서 충분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선수들이 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했다.
당시 그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는 뽑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이후 유럽파와 국내파를 구분하는 듯한 발언으로 스스로 세운 원칙과 배치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은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특히 1승 상대로 여겨졌던 알제리에게 2대4로 대패한 경기는 한국 축구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고, 귀국한 선수단은 공항에서 팬들의 엿 세례를 받았다.
그렇게 홍명보 감독의 첫 번째 국가대표팀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이후 그는 한동안 조용히 지내다 2016년 중국 항저우 축구팀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이듬해 팀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로 취임했다. 당시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2018년 벤투 감독 선임 과정에서 김판곤 당시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공개되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21년에는 울산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왕조와도 같았던 전북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고, 부임 첫해 준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2022년과 2023년에는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지도자로서 다시 부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클린스만 감독 체제의 실패 이후 그는 차기 국가대표 감독 후보로 거론됐지만, 여러 인터뷰를 통해 국가대표 감독직에 관심이 없다며 사실상 고사 의사를 밝혔다.
당시 축구계 안팎에서는 외국인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했다. 그러나 점차 홍명보 감독과 같은 국내 지도자도 후보군에 포함돼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시즌 도중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임됐다.
당시 감독 선임위원이었던 박주호가 휴대전화로 홍명보 감독 선임 소식을 접한 뒤 당황한 표정을 짓는 장면은 지금도 많은 축구 팬들에게 회자된다.
이후 국회 현안 질의까지 열리며 감독 선임 과정과 축구협회의 폐쇄적인 운영 방식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박문성 등 축구인들도 정몽규 회장을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고, 회장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홍명보호 2기는 예정대로 출범했다.
당시 여론은 감독 선임 과정과 축구협회를 향한 비판에 집중됐고, 정작 홍명보 감독의 역량 자체는 울산에서의 리그 2연패와 런던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성과 덕분에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려는 현실이 됐다.
홍명보호 2기는 아시아 예선을 무난히 통과했지만, 어느 경기에서도 벤투호 시절 보여줬던 유기적인 빌드업과 조직적인 움직임을 재현하지 못했다. 결국 손흥민과 이강인 등 일부 스타 플레이어들의 개인 기량에 의존한다는, 이른바 '해줘 축구'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갑자기 3백 시스템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는 과거 선수 시절 경험했던 히딩크 감독의 3-4-3 전술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히딩크의 3-4-3은 단순히 포메이션만 같은 전술이 아니었다. 90분 내내 강한 압박과 빠른 역습을 수행해야 했고, 상대 전술에 따라 유연하게 형태를 바꾸며, 누가 들어가더라도 동일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완전한 '원팀'이었기에 가능했던 시스템이었다.
반면 홍명보호의 3-4-3은 형태만 비슷할 뿐이었다. 마치 바둑판 위에 돌을 놓듯 선수들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그 안에 담긴 철학과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특히 세계적인 측면 공격수인 손흥민을 최전방에 세우는 등 선수 활용에서도 끊임없이 의문을 남겼다.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평가전에서도 발전된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경기 내용과 결과 모두 불안함만 남겼다.
그러던 중 포르투갈 출신 아로소 코치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전술을 담당하고 홍 감독은 대표팀의 얼굴에 가깝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팬들의 불신은 더욱 커졌다.
그럼에도 홍명보 감독은 끝까지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다.
그리고 월드컵이 끝난 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상대를 분석하고 그에 따라 대응하는 것도 있겠지만, 우리가 준비한 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
월드컵과 같은 단기 대회에서 상대 분석과 대응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축구를 유지하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과거 그를 경험했던 선수들의 인터뷰를 보면, 홍명보는 자신의 전술로 성과를 거두면 끝까지 그것을 밀어붙이는 성향이 강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또다시 자신의 고집에 갇혔고, 또다시 실패했다.
한국 축구는 이번 실패를 단순히 한 감독의 실패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감독 선임에 대한 철학도, 장기적인 비전도 없는 축구협회의 시스템 자체를 돌아봐야 한다. 단기 성적에만 급급할 뿐, 궁극적으로 어떤 축구를 지향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신체 조건에 맞춰 패스 중심의 축구를 꾸준히 발전시켜 왔고, 오랜 시간 같은 방향성을 유지하며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 역시 이와 같은 장기적인 비전과 철학을 바탕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홍명보와 정몽규 체제는 한국 축구에 큰 상처를 남겼다. 부디 이번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손흥민의 마지막 월드컵 도전이 이렇게 끝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손흥민을 비롯한 선수들 역시 이번 실패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다시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